K의 죽음과 사설탐정 S
정지된 눈동자에 먹구름이 흘렀다 생각의 방위를 따라 구름을 복기하면 삶과 죽음이 팽팽하게 균형을 이룬 저울추가 보인다 한 생애를 계근하는 저울에 동전 한 닢을 올리면 어느 쪽으로 추가 기울까? S는 사설탐정 영세상인 K의 죽음을 탐문 중이다
하나 둘 셋, 하나! 하나 둘 셋, 둘! 하나 둘 셋, 셋!… 키 큰 사람은 앞에 서고 작을수록 뒤에 선다 하나 둘 셋, 쉰여덟! 하나 둘 셋, 쉰아홉! 하나 둘 셋, 예순!… 봉을 들어서 올렸다 내렸다 올렸다 내렸다 사람에게서 소금 냄새가 나는 삼복염천이었다 하나 둘 셋, 아흔여덟! 하나 둘 셋, 아흔아홉! 하나 둘 셋, 백!
봉의 규격과 무게는 앞뒤 균등하다 같은 간격 같은 무게 같은 횟수 봉체조는 평등하다 아주 평등하다 힘세고 키 큰 앞쪽 봉이 공중으로 솟구칠 때 키 작고 힘 약한 뒤쪽 봉 지렛대처럼 끄응 대각선으로 눕는다 이때 봉의 무게는 어느 쪽으로 전가되는가?
기울어진 운동장, 공룡자본이 사인死因이다
<시작노트>
1
괴물이 출몰했다 이 작은 도시에도 서울, 뉴욕, 도쿄, 런던, 파리에도 출몰했던 녀석이다 놈의 식욕은 왕성하다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다 목젖까지 차오르도록 먹고선 게워낸다 게워내야만 포만감을 느낀다 놈의 뱃속은 유리알 투명하다 밤중에도 속이 다 훤히 보인다 가죽재킷, 프라이팬, 육류, 야채, 칼, 도마 없는 것이 없다 많은 사람들 스스로 놈의 뱃속에 들어갔다 토사물에 섞여 나온다 목 잘린 닭, 발 없는 오리, 냉장고, 텔레비전, 가스레인지와 함께 섞여 나오기도 한다 오늘은 새 옷을 바꿔 입은 아내가 토사물 속에서 활짝 웃고 있다
2
지폐가 동전바퀴를 달고 이 골목 저 골목으로 굴러다니던 담론 1976년. 그땐 그랬었다 골목길에 우뚝 선 전봇대 도시의 솟대였다 우산살처럼 펼친 전깃줄 도시의 혈관이었다 혈관 속으로 흐르는 쌀, 연탄, 이발가위, 장도리, 브래지어, 고등어; 이 도시의 백혈구와 적혈구들; 풍년쌀집, 삼천리연탄, 행복이발소, 근대화철물, 미도양품, 서해건어물, 할매순대국, 허바허바사장, 종점미장원, 시대양복점, 상아탑문구, 다복다방, 자매수선집, 식칼 갈아요 곤로 고쳐요 울어라열풍만물수레상……돌고 도는 돈의 정처 없는 착지, 먹이사슬의 상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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