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2년여 만에 열린 회담에서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석과 군사 당국회담 및 향후 고위급 당국회담을 열자는데 합의했다. 설 계기 이산가족 상봉 개최 등은 불발됐지만 그동안 꽉 막혀있던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첫발을 뗐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통일부는 9일 고위급 남북당국회담 종료 직후 배포한 자료에서 북한 대표단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합의했다고 밝히면서 "개회식 공동 입장 및 남북 공동문화 행사 개최에 대해 의견을 접근했다"며 "이외의 사안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밝혔다.
만약 성사된다면 남북 공동 입장은 동계올림픽의 경우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이어 두번째다. 또 2007년 창춘동계아시안게임 이후로 보면 10년만의 일이다.
남측 수석대표였던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이날 회담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북측의 고위급 대표단이 평창올림픽을 찾을 것이라는 북측의 제의에 대해 "북측이 자연스럽게 우리측 및 국제사회와 소통하고 여러 현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의 고위급 대표단의 규모 및 파견 시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힌 바가 있느냐는 질문에 조 장관은 "관련해서는 앞으로 실무협의를 통해서 협의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북한이 보내겠다고 밝힌 선수단과 예술단, 참관단의 규모에 대해서도 실무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한이 북한 대표단의 편의를 제공해주는 것으로 합의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남북 및 국제사회 관례에 따라 편의를 제공하기로 했다"며 이 역시 실무협의를 통해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부터 정부가 북한에 요구하고 있는 남북 군사당국 회담 개최에 합의한 것에 대해 조 장관은 "남북 간 우발적 충돌을 방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남북 당국은 향후 고위급회담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통일부는 "제2차 (고위급) 회담의 개최 시기와 장소 등은 추후 판문점 연락 채널을 통해 북측과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조 장관은 이에 대해 "당국 회담의 연속성을 확보한 것도 중요한 부분"이라며 "단절된 남북 관계 복원의 중요성에 대해 남과 북이 공감대를 형성한 것도 중요한 성과"라고 말했다.
조 장관은 "문재인 정부가 새로 출범한 이후 남북 당국이 처음 만난 자리인 만큼, 문재인의 한반도 정책에 대해서도 설명했다"며 "우리는 북측을 평화 정착의 상대방으로 인정‧존중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할 의사가 있다고 강조했고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이 남북한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도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회담에서 남북이 올림픽과 군사 부문에서 일정한 합의를 이뤘지만, 지난해 7월 군사 당국 회담과 함께 제안했던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회담' 개최는 이번에도 기약할 수 없게 됐다.
조 장관은 이에 대해 "필요성이라든지 시급성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했고 북측도 상당 부분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졌다고 의견 교환이 이뤄졌다"며 "북측 나름의 사정과 입장이 있기 때문에 조금 더 논의하면서 풀어나가자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공동보도문 2항 합의에 남과 북은 다양한 분야에서 접촉과 왕래,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한다고 했는데 이산가족 상봉도 (여기에) 상정했지만, 구체적인 표현은 들어가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한미 연합 군사 훈련과 관련해 북한의 입장 표명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조 장관은 "훈련을 연기하는 것과 관련해 북측도 평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며 "한미 군사 훈련 중지라든가 여러 가지 관련 문제에 대해 기존 입장을 회담 중에 저희에게 설명한 바는 있다"고 답해 북한이 훈련 중지 또는 축소를 요구한 것으로 관측된다.
리선권, 서해 군 통신선에 민감한 반응보인 이유는?
한편 이날 회담의 종결회의는 오후 8시 5분에 시작해 42분에 종료됐다. 통상적으로 종결회의는 남북 양측이 이미 완성된 합의문이나 공동 보도‧발표문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30분 이상 걸리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이날 회의에서는 종결회의만 37분이 소요됐다. 이는 북측 수석대표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의 발언 때문이었다.
리 위원장은 우선 서해 군 통신선 복원의 시점을 문제삼았다. 정부는 이날 오전 북한과 합의에 따라 서해 군 통신선을 10일 재개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리 위원장은 남한 언론에 "우리 최고 수뇌부 결심에 따라 3일 15시 개통된 군통신이 아직까지 열지 않았다고 거짓 보도한 데 대해 당장 취소시킬 것을 강하게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조명균 장관은 "우리 측 군사당국에서는 매일 아침 시험 통화 했을 때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측에서는 개통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었고, 북측에서 오늘 회담에서 서해 군 통신선 개통됐다고 해서 다시 시도해 그제서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술적인 문제가 있었던 거 같고, 그런 사안을 우리 대표단 측이 우리 언론에 알려줬다. 언론은 우리가 알려준 내용을 그대로 보도한 것"이라며 "우리 언론이 이 부분에 대해 사실과 다르게 하거나 왜곡한 것 전혀 없었다"고 덧붙였다.
리 위원장은 또 남한이 모두 발언에서 비핵화를 언급한 것과 관련해 항의하기도 했다. 그는 "남측 언론이 북남 고위급 회담에서 그 무슨 비핵화 문제 가지고 회담을 진행하고 있다는 얼토당치 않다는 여론을 확산하고 있다"며 "우리가 보유한 원자탄과 수소탄, 대륙간 탄도 로켓 비롯한 모든 최첨단 전략 무기는 철두철미 미국을 겨냥한 것이고 우리 동족을 겨냥한 것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조 장관은 "남측 언론에서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남측 국민들의 관심을 반영한 것"이라며 "그런 측면에서 귀측이 상호 존중과 이해 정신에서 잘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라고 대응했다.
이와 관련 조 장관은 종결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를 이야기했고, 남과 북이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연기에 따라 취해야 할 사항에 대해 언급했고, 무엇보다 대화를 통해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측이 노력해주길 바란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조 장관은 "첫술에 배부르냐는 마음으로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회담하겠다는 입장"이라며 "합의 내용들이 착실히 이행되고 관계 개선을 위한 첫걸음이 뒤로 돌아가지 않도록 진지하고 성실하게 회담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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