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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은 다 죽었다…박근혜, MB에 세게 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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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은 다 죽었다…박근혜, MB에 세게 싸워라"

[르포] 메마른 대구 민심…"MB 입장 발표? 만우절인데 우야노"

대구에 건조주의보가 내려졌다. 최근들어 부쩍 기상특보가 내려진다고 했다. 3월 31일 오전 달성군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본 TV 속 기상캐스터는 이같은 내용을 알리면서 "대기 중 습도가 몹시 낮으니 화재가 날 것을 조심하라"고 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건조주의보가 내려진 이날 오전, 자신의 지역구 대구광역시 달성군을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동남권 신공항 건설) 약속을 어겨 유감"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우회적으로 해석하면 대구 민심에도 불이 날 지경이라는 말이다.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는 말을 박근혜 전 대표를 수행한 조원진 의원(대구시당 부위원장)에게 던지니 "위로요? 위로하고 싶으면 신공항 백지화 철회되게 해 주세요"라는 대꾸가 씁쓸한 웃음과 함께 돌아왔다.

"여긴 무조건 한나라당 아입니까"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신공항 백지화 화두가 튀어나오면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다. '여긴 무조건 한나라당인데, 당신들이 이러면 되느냐. 나는 욕할 자격이 있다'는 투의 자신감이었다. 많은 시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 파기에 분노했고, 나아가 박근혜 전 대표에게 "이명박에 맞서 싸우라"고 주문했다. 이 대통령의 '경제성 논리'에 공감하는 시민들도 일부 있었지만, "그래도 화는 난다"고 했다.

때문에 이곳 대구에서 박 전 대표는 '야당'의 수장이었다. 대구 민심에 건조주의보가 내려졌다.

▲ 지난 1월 26일 오후 3시께 동남권신공항 밀양유치 범시·도민결사추진위원회 발대식이 열린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경남, 울산, 대구, 경북 등에서 200여 시민단체 3000여명이 모여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뉴시스
"박근혜, 대구·경북 확실히 밀어라…그리고 MB와 싸워달라"

대구 칠성시장. 곳곳에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영남권 신공항 최적지는 밀양-고성·침산· 칠성동 생활안전협의회", "태풍길(부산 가덕도)에 공항이 뭐꼬. 신공항은 밀양!-카스켄 자동차 검사대행" 이제는 이런 현수막도 떼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현수막에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는 기자에게 한 시민이 말을 걸었다.

"인자 다 끝난 거 아입니까. 정치 놀음 한바탕 했제. 저거 순 정치인들 놀음 아입니까. 수도권 눈치 보는 이명박이나 판 끝나니까 입 연 박근혜나. 박근혜는 와 이제와서 입을 여노." 소식도 빨랐다. TV 보는데 자막으로 박 전 대표의 발언이 나왔다고 했다. "어제도 대구 사람들 전부 TV 앞에 앉아서 백지화 뉴스 보고 있었죠. 허탈하지. 민심이 지금 흉흉합니다." 옆에 있던 상인이 거들었다. "대통령이 내일 입장 낸다죠? 내일 만우절인데 우야노."

택시를 탔다. 도심 번화가인 동성로로 향했다. 동남권 신공항 얘기를 꺼내자마자 55세 택시기사 문영인(가명) 씨가 말을 쏟아냈다.

"대구가 굉장히 어렵잖아요. 경기가. 대구만큼 어려운 데가 어디있습니까. 왜냐하면 70, 80년대에 섬유 경기가 좋을 때는 대구 경기가 '왕창왕창' 했거든요.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섬유 경기가 와르르 와해됐뿐게(와해돼), 지금 구심점이 없다 아입니까. 가게라도 하나 해야 하는데, 상가들 다 봐라. 자고 일나면(일어나면) 업종 전부 바뀝니다.

박근혜 씨도 정말로 대구 경북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하게 해야 됩니다. 그게 선이 분명하지 않으면요...지금 대구시, 달성군 안에서도 (박근혜) 선호하는 사람이 많지만, 아닌 사람도 많거든요. 확실하게 대구 경북을 밀어줘야지, 대구가 우에(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사실 대구 경북 표가 (대선에서는 항상) 변수거든요. 이기 안되뿌므는(대구 경북 민심을 못 잡으면) 암껏도(아무것도) 안되거든요."

그는 특히 공약을 뒤집은 부분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할 말이 많았다. 문 씨는 "사실 신공항은 대선 공약 사항 아닙니까. 여기 택시도 다섯 가지 공약 사항이 있는데 하나또 안지킵니다. 우리 여(택시) 뒤(창문)에 (공약 이행) 띠 해서(붙여서) 다녀도 거 다니면 뭐합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신공항 건설을 백지화한 이 대통령을 보고 "원래 공약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어버린 모양이었다.

동성로에서 만난 한 식당 주인도 한탄에 가까운 말들을 쏟아냈다.

"대구 사람들 이명박 찍은 분들 많죠. 나이 든 사람들 있잖아요. 50대, 60대, 말하자면 우리 세대 되는 사람들 그래도 이명박 대통령 찍었죠. 아직은 우리나라는 여자 대통령이 나올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고, 그 다음에 경제가 어렵다보니까 이명박 대통령을 많이 찍었지. 근데 뭘 살릴 줄 알았는데, 똑같대요.

그만큼 이제, (이명박 정부 출범) 3년 지났잖아요. 가능하면은 박근혜 씨는 대통령 하고 조금 트라블(불화)이 있더라도 자기 목소리를 내야 돼. 그래야지 막연히 가만 있으면 안 돼. (이 대통령을 상대로) 좀 치열하게 싸워야된다니까요. 여당 내에서도 비판하는 세력이 있어야지...옛날에는 (경선에 지고 보복당한 박근혜가) 불쌍하다고 했는데, 이제는 그런 거 없다 아닙니까. 박근혜도 그렇고, 여기 국회의원들 전부 헛방인기라. 선거 할 때만 지역에 와서 (일을) 하지."



▲ 지난해 5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대구를 찾아 '대구경제살리기정책토론회'에 참석했다. 이 토론회에서 박 전 대표는 "(대구 경제 살리기 정책들이)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하는 약속이 되어서는 안된다" 며 "국민 앞에서 한 약속것은 반드시 지켜야한다"고 말했다. 토론회 직후 박 전 대표는 참석자들과 밀양 공항 유치 결의대회에 참석했다. ⓒ뉴시스

이 대통령의 '결단'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구역에서 만난 40대 직장인 성만호(가명) 씨는 "나도 얼마전까지 신공항에 찬성했고, 이 대통령이 공약을 뒤집는데 대해 불만이 많았다. 그런데 며칠 전 지인의 얘기를 들어본 후 신공항이 경제성이 없다는 데 설득이 됐다. 인천공항이나 밀양 공항이나. 두개가 생기면 둘 다 적자를 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성 씨는 "쉽게 얘기하면 신공항은 '미끼' 아니냐. 정치권에 대한 불신만 커졌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래 저래 박탈감이 느껴지는 반응들이다. 이 지역 민심과 관련된 최근 데이터가 있다. <중앙일보>가 지난 28일 한나라당 부산·경남, 대구·경북 출신 의원(50명)들에게 물은 결과 38명(76%)이 "영남 민심이 좋지 않다"고 답했다.

"MB가 수도권 눈치 보느라 신공항 백지화 한것 아니냐"

전선이 그어진 것처럼 보였다. 대구에서 40년을 살았고 현재 구미에 거주하며 대구로 출퇴근한다는 박한수(가명) 씨는 "수도권 눈치 보느라고 이명박 대통령이 신공항도 안한다고 한 거 아니냐. 이명박 대통령은 수도권 대통령이다. 지역은 다 죽었다"고 말했다. 수도권-영남 사이에 선이 그어졌다고, 적어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게 대구 민심이다.

'스타' 서울시장 출신인 이 대통령은 17대 대선에서 수도권의 압도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당선됐다. 이 대통령 본인은 자신의 진정성을 강조하지만, 한나라당의 최대 주주라고 할 수 있는 영남, 그 중에서도 핵심 도시 대구의 민심은 이 대통령에게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이 대통령에 대한 대구 시민의 소외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지만, 현재 박근혜 전 대표의 존재감은 그 자리를 충분히 메우지 못하고 있다. "미리미리 신공항 관련해서 발언을 해야 했던 것 아니냐"는 불만은 그래서 나온다.

다른 지역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총선을 1년 남짓 앞두고 영남도 '전략적 사고'를 시작했다. 한나라당을 둘로 나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야당이 대구에서 당선되는 상황은 쉽게 상상할 수 없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이 '물갈이' 되는 것은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대구 민심은 이 대통령에게 실망하면 할수록 '여당내 야당' 박근혜 전 대표에게 바라는 것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대구에 내려진 건조주의보는 2012년 12월까지 계속 유지될 전망이다. 아니, 자칫하면 건조경보로 바뀔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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