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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삭감을 위해 동원된 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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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삭감을 위해 동원된 마술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청와대의 미조직·비정규직 임금삭감 2차 공격

한반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임금으로 칭송받아 1만 원권 지폐에 자신의 얼굴을 아로새긴 세종대왕. 그래서인지 최저임금 1만 원 운동이 펼쳐질 때마다 세종대왕 캐릭터가 자주 등장하곤 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가여운 임금은 누구일까? 그건 바로 '최저임금'이다.

임금 삭감을 위해 동원된 마술(魔術)

새해 벽두부터 아재 개그로 <인사이드 경제>를 시작한 탓은, 결코 웃어넘길 수 없는 블랙 코미디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 역대 최대"라며 홍보와 자랑을 해대던 문재인 정부가, 이제 이를 무력화시킬 수단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그 수단이란 바로 최저임금의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마술이다. 본래 최저임금에는 매월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임금만 포함되도록 하고 있다. 이를테면 2∼3개월에 한 번씩 지급되는 상여금은 최저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 아울러 식비·교통비·주택수당·가족수당 등 복리후생 성격의 급여 역시 최저임금 산입범위에서 제외된다.

그런데 난데없이 상여금을 최저임금에 포함시키자고 한다. 식비·교통비 등 각종 수당까지 모조리 산입범위에 넣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최저임금을 아무리 많이 올려줘도 실제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임금은 거의 오르지 않도록 만들 수 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실제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어떤 사업장에서 지난해 최저시급(6470원)을 받는 노동자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이 노동자는 4개월에 100%씩, 연간 300% 상여금을 받는다. 만일 상여금을 최저임금에 포함시킬 경우, 이 노동자의 시급은 대폭 상승하게 된다. 4개월에 100%, 즉 월 25%만큼의 임금이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보태지기 때문이다.

최저시급 6470원의 25%면 1600원 가량이니, 최저임금에 포함되는 시급은 갑자기 8000원대로 급상승한다. 실제로 받는 임금 총액은 그대로인데, 최저임금 산입범위(계산방법) 하나 바꿈으로써 천지가 개벽을 한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급 7530원이므로 자본가는 이 노동자에게 임금을 올려줄 이유가 하나도 없게 된다.

ⓒ프레시안(최형락)

상여금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얼마 안 되지 않느냐고? <인사이드 경제>는 저임금 노동자의 압도적 다수가 상여금을 받고 있다는 주장을 펼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런 노동자들이 거의 없다는 주장 또한 사실이 아니다. 소액이라 할지언정 200% 안팎의 정기상여금 또는 명절상여금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 규모가 작지만은 않다.

그러나 식대·교통비 등 이런저런 수당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들 규모는 훨씬 많다. 만일 이런 수당이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된다면? 예를 들어 식비 10만 원만 포함시켜도 최저임금에 포함되는 시급은 거의 500원 가까이 상승하게 된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분은 시급 1060원이니 실제 자본가들의 부담은 박근혜 정권 수준으로 확 떨어지게 된다.

다시 말해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으로 생색은 확실히 내고, 자본가들 부담은 모조리 덜어주려는 것이다. 아니, 이게 사기나 속임수지 무슨 마술이냐고? 그렇다. 본래 마술이란 게 '눈속임' 아니던가. 그런데 마술사의 속임수는 유희를 위해 돈 내고 보러 간다지만, 정부의 이런 속임수는 저임금 노동자 호주머니에서 허락도 안 받고 돈을 빼가는 결과를 낳는다.

자본가들이 사용해온 온갖 사술(邪術)을 합리화 해주다

사실 문재인 정부가 지금 하려는 일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 자본가들이 불법·탈법적으로 사용해온 사술(邪術)이다. 자본가들은 최저임금이 오르더라도 임금 올려주지 않으려고 저임금 노동자들 상여금과 각종 수당을 기본급으로 전환하는 짓을 벌여왔다.

촛불 혁명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지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지만 자본가들의 행태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좀 더 과감해졌다. 아래 내용은 최근 서산 지역의 한 노동조합이, 현대그룹 계열사에서 상여금을 기본급으로 전환해 임금상승을 억제해온 사례를 정리해 소식지에 게재한 내용이다.


물론 위에서 열거하고 있는 사례는 대부분 사내하청을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것이다. 여하튼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 사업장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우조선을 비롯한 조선소의 경우 이미 지난 2∼3년 사이 상당한 규모의 상여금을 기본급으로 전환했다. 그러니 중소규모 사업장이야 더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앞서 얘기한 것처럼 한국의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들 중 상여금을 받는 이들의 규모는 결코 작지 않다. 이들의 상여금과 수당은 지난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삭감되고 말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자본가들이 이런 일을 벌이는 사실을 알면서도 재제하거나 감독·단속을 벌이지 않았다. 최저임금이 아무리 올라도 이들의 임금은 상승하지 않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눈감아주며 성행하기 시작한 자본가들의 불법·탈법을, 문재인 정부는 감독·단속을 통해 원칙을 바로잡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합리화 해주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감히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일, 아예 법을 개정해 주겠노라고 공언하고 나섰다.

당선 직후부터 노골적으로 개악 의도 보여줘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바꿀 필요가 있다. 올 하반기 최저임금제 개선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논의할 것" (김영주 고용노동부장관, 지난해 8월 11일 장관 인사청문회)
"(개인 견해임을 전제로) 정기상여금, 식대 등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 (어수봉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 지난해 10월 17일 환경노동위 국정감사)
"(최저임금에 상여금·수당 등을 포함시켜달라는 경영계의 요구에) 최저임금위원회에 현실적인 기준을 가져야 한다고 전달했다 … 크게 걱정할 필요 없을 것" (홍영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지난해 10월 25일 대한상의 초청 강연)
"최저임금 산입범위는 최저임금위원회 태스크포스(TF)가 논의해 내년 1월 결론 낼 예정 … 그렇지만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개선할 필요성은 분명 느끼고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지난해 12월 2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송년 기자간담회)

경제부총리부터 노동부 장관까지, 여당 출신 상임위원장은 물론이고 최저임금위원장까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산입범위 확대·개악을 주장하고 있다. 평소 같으면 논란이나 불똥이 튈까봐 입장 밝히는 걸 꺼려할 사안인데 ‘소신’까지 내세우며 목소리를 내고 있는 걸 보면 믿는 구석이 있다는 얘기이다. 뒤에 청와대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가 직접 저런 얘길 한 적은 없지 않느냐고? 아니다. 청와대는 노골적으로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 의도를 드러낸 바 있다. 지난해 10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일자리위원회 제3차 회의에서 의결된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에 따르면, 아예 올해 하반기 과제로 “최저임금 산입범위 등 개정”을 명시해놓기까지 한 것이다.

▲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 중 ‘세부 추진과제별 이행계획’. (“산입범위 등 개정”을 붉게 밑줄로 강조한 것은 <인사이드 경제>가 한 것임)

자본가들 위해 법까지 개정해 주겠다는 문재인 정부

앞서 김동연 부총리와 김영주 장관의 얘기에서 나오는 것처럼, 최저임금위원회에 제도개선 관련 전문가 TF가 설치되었다. 지난해 12월 26일, 전문가 TF 논의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청와대와 정부·여당이 원하는 내용이 그대로 실려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교묘하고 정교한 속임수를 써서 정부 의견을 관철시키고 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관련 전문가들은 "확대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의견을 모았으나, 구체적인 조정내용에 대해서는 의견을 모으지 못했다. 특히 정기상여금에 대해서는 다수 의견과 소수 의견으로 나뉘어졌다. 매월, 즉 1개월에 1회 이상 지급되는 상여금만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 다수 의견, 1개월을 넘겨 1년 이내 지급되는 상여금까지 포함시키자는 게 소수의견이다.

<인사이드 경제>는 이런 복잡하고 어려운 쟁점에 대해 코멘트를 달 생각은 없다. 다수와 소수 의견 사이에서 뭐가 옳은지 논쟁으로 빠져들면 핵심을 놓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정부가 사용한 교묘한 속임수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원했던 것은 다수·소수 의견에 대한 장황한 설명 뒤에 짤막하게 덧붙여진 이 내용이었다.

그러나, 다수 의견과 소수 의견 모두 '근로자의 생활안정' 차원에서 기존 상여금 등을 총액 변동 없이 매월 지급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를 위한 입법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

그렇다. 간단히 말하면 1개월을 넘겨 지급하는 상여금을 최저임금에 포함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만일 상여금 지급시기를 변경할 자유를 자본가들에게 부여한다면? 예를 들어 4개월에 100%씩 연 300% 상여금을 보장하는 사업장이 있다고 해보자. 이걸 월 25%씩 매월 지급해도 종전과 상여금 총액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노동자 동의도 구하지 않고 자본가 마음대로 지급시기를 변경할 경우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논란이 생길 수 있다. 이른바 '전문가'라는 양반들은 이런 꼼수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아예 법을 고쳐서 지급시기 변경은 불이익변경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못을 박자는 것이다. 노동자 동의 없이도 4개월 100%를 1개월 25%로 바꿀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1~2년은 임금인상 안 해도 최저임금 맞출 수 있게 된다. 이런 내용을 전문가라는 양반들이 "입법적 조치가 필요하다"라는 짤막한 문구 안에 모두 숨겨놓은 것이다. 자본가들이 노동조합이고 나발이고 신경 쓰지 말고 마음대로 변경해서, 최저임금 아무리 올라도 실질임금 오르지 않도록 아예 법을 바꿔주자는 것!

줬다가 빼앗아가는 놈이 더 치사하다

"한국의 기형적 임금체계와 좁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탓에 고임금 노동자도 최저임금 위반이 되고 있다. 이런 건 고쳐야 한다."

정부·여당 인사들과 자본가들은 틈만 나면 이렇게 주장한다. <인사이드 경제>는 그분들에게 간청하고 또 간청한다. 제발 그런 사례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사업장에서 몇 명의 노동자들이 위반이 되는지 구체적으로 좀 알려달라고 말이다.

저런 얘기를 하는 인사들 중에 구체적인 사업장을 거론하거나 사례를 언급하는 이들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저 따위 얘기를 하는지 노동자·시민들은 알 수가 없다. 근거가 있다면 정정당당하게 사업장 이름, 임금명세서 다 공개하고 토론하자.

"상여금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 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니 상여금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시키더라도 저임금 노동자에게 큰 피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법을 바꾼단 말인가? 고임금 노동자들 최저임금 위반 때문에? 일단 그런 사례가 뭔지도 밝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앞에서 충분히 얘기했다. 설사 그런 사례가 있다고 하더라도, 고임금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자본가라면 지불능력이 충분한 상태일 것이다. 그 자본가들 부담 덜어주려고 법까지 개정해준단 말인가?

문재인 정부가 지금 벌이는 짓들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알고 하는 일일까? 중복할증 폐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이것 모두 저임금 장시간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는다. 반대로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대규모 고용하고 있는 재벌을 비롯한 자본가들은 엄청난 이득을 보게 된다.

지난 글에서도 밝혔지만, 노동시간 단축하면서 휴일노동에 대한 중복할증을 폐지하게 되면 임금삭감 피해는 고스란히 미조직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돌아간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중복할증 폐지가 아니라 그 할아버지가 와도 피해를 입지 않는다. 단체협약으로 이미 중복할증을 다 보장받고 있기 때문이다.

상여금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시키면 그 피해는 누구에게 가는가? 약간이라도 상여금을 받고 있는 저임금 노동자들이다. 복리후생적 수당까지 포함시킬 경우 식비·교통비·가족수당을 받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는다. 반대로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임금을 올려줘야 하는 재벌과 자본가들은 그 부담을 덜게 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수많은 저임금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1만 원을 비롯해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요구했으나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비록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3년간 1만 원'으로 선회했지만, 그나마 그 공약은 지키는 방향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산입범위를 확대하게 되면, 사실상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의 인상률과 다를 게 없는 결과로 이어진다.

줘야 될 돈을 안 주는 인간도 나쁜 사람이지만, 줬다가 도로 빼앗아가는 인간이야말로 정말 치사한 사람 아니던가. 게다가 빼앗기는 노동자들이 죄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온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박근혜 정부는 정규직 임금 깎아서 하향평준화를 하려 하더니, 문재인 정부는 아예 시작부터 비정규직 임금부터 공격한단 말인가.

지하에 계신 세종대왕께서 진노하시겠다. 그냥 돈이 아니라 '임금' 아닌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가여운 '최저임금'… 임금님들 수난시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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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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