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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빨간불을 켰다...반월공단은 누가 움직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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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빨간불을 켰다...반월공단은 누가 움직이는가?

[반월공단의 그늘 下] 입안의 혀처럼 사용되는 노동자들

복사기 등을 만드는 안산 반월공단 내 롯데캐논 공장.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41명이 2017년 12월 1일, 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모두 롯데캐논과 도급계약을 맺은 협력업체 유천산업 주식회사 소속이다. 원청인 롯데캐논이 자기 소속 업체와 도급계약을 체결했으나 실제 자신들의 업무는 롯데캐논의 지휘명령 속에서 진행됐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롯데캐논이 자신들을 직접고용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이 진정서를 낸 이유다.

하청 노동자가 자신들 관련, 불법파견이라며 노동부에 진정서를 내는 경우는 드물다. 진정서를 내는 순간, 해고되거나 소속 업체가 폐업되는 게 수순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왜 노동부에 진정서를 내야만 했을까. <프레시안>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 안산 반월공단. ⓒ연합뉴스

목표치 달성 못하면 '빨간불'

안산 반월공단 내 롯데캐논 하청업체 유천산업 소속 노동자 41명이 노동부에 낸 진정서를 보면 사내하도급업체 유천산업은 독자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다. 원청이 작성한 작업표준서에 따라 작업을 할 뿐이라는 것. 그간 원청이 작성한 작업표준서를 공정마다 꽂아놓고 여기에 따라 작업을 해왔다. 그나마 2017년 이전에는 작업표준서 표지에 노골적으로 '캐논코리아 제조1팀'이라고 적시돼 있었다. 하지만 2017년 1월부터 여기에 종이를 덧붙여 '유천산업'이라고 표기했다.

게다가 모든 기계 설비는 원청에서 무상 제공한다. 컴퓨터, 카터기, 절연내압기계부터 가공소요품(원자재, 치공구, 작업태, 적치태, 알콜 장갑과 같은 소모품)도 모두 받는다. 한마디로 하청업체는 인력파견업체에 불과한 셈이다.

그렇다 보니 원청의 업무지시 등은 노골적이고 직접적이다. 매주 금요일에는 원청 직원이 작업할 기종과 수량이 적힌 종이를 하청 노동자에게 전달한다. 그러면서 그대로 작업할 것을 지시한다. 일을 하다 원청 직원이 하청 직원에게 작업순서 및 수량 변경을 지시하면 이 역시 이행해야 한다.

또한 원청은 매달 한 번씩 직접 공정감사를 실시한다. 하청업체 작업장의 청소 상태, 먼지 측정, 공정순서, 부품을 적당량 가져다 놓고 하는지, 기계는 제대로 사용하는지부터 복장 상태, 모자착용 여부, 심지어 작업화 뒤축을 구겨서 신지 않았는지 등과 관련해 감사를 진행한다.

2014년까지는 원청 직원이 조회를 직접 했을뿐만 아니라 하청 노동자들은 원청 출퇴근 리더기에 사원카드를 찍고 출근하기도 했다. 사원카드 하단에는 '롯데캐논'이라고 인쇄돼 있고 원청은 하청노동자에게 '사원 번호'를 부여했다.

이는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근태관리를 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유천산업 노동자가 원청 출퇴근 리더기에 사원카드를 찍지 않고 중간에 조퇴하면 캐논 직원이 와서 이를 확인했다. 진정서에 따르면 롯데캐논은 하청 노동자의 근태를 산성분석프로그램을 통해 관리했다.

롯데캐논은 하청 노동자들이 작업하는 라인 근처 벽에 전광판을 설치해 놓기도 했다. 캐논코리아와 사내하청 업체들의 각 라인 반장 사진, 그리고 각 라인 목표수량과 현재 작업 수량이 실시간으로 전광판에 표시된다. 만약 목표수량에 달성하지 못하면 빨간색 불이 들어오고 목표를 달성하면 초록색 불이 들어온다. 한마디로 각 라인 반장이 책임지고 그날 목표수량을 달성하라는 의미다. 이러한 목표수량은 원청인 롯데캐논이 설정한다.

관련해서 문상흠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노무사는 "생산물량과 순서를 정해주고 전광판에 목표량을 설정하는 것은 위장도급 여지가 있다"며 "하지만 노동부에서 어떻게 판단할지는 두고 볼 일"이라고 설명했다.

▲ 2017년 1월 1일 이전 전광판에는 롯데캐논과 유천산업 등 하청업체 작업량이 표시됐다. 만약 목표량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빨간불이 켜지고, 목표량을 달성하면 초록불이 켜진다. ⓒ프레시안

입 안의 혀처럼 사용되는 노동자들

롯데캐논 사내협력업체 노동자는 원청 노동자와 같은 공장 지붕 아래에서 같은 일을 한다. 같은 식당을 이용하고 같은 통근버스를 탄다. 심지어 색깔만 다른 작업복을 입는다. 다른 게 있다면 원청 노동자에 비해 적은 월급과 복리후생을 적용받는다는 점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도급’이라는 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완성할 것을 약속하고, 상대편이 그 일의 결과에 대해 일정 보수를 지급하기로 하는 계약을 도급이라고 일컫는다. 쉽게 말해 협력업체가 일정 물량을 생산할 경우, 그에 따른 비용을 원청에서 지급해주는 것을 말한다.

도급이란 물량이 늘어나 원청이 이를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 사용하는 제도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된다. 구조조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원청은 협력업체와의 계약해지라는 명분으로 손쉽게 인력감축이 가능하다. 부당해고 등의 부담에서 벗어나 마음대로 해고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비용 절감도 도급의 이유 중 하나다. 원청 노동자와 동일한 노동을 하지만, 그보다 훨씬 적은 임금과 노동조건에 처해 있는 게 하청노동자다. 원청의 이른바 ‘물량 후려치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협력업체에서 생산하는 물량의 품질, 생산 목표량 등은 원청 수준으로 유지돼야 하기에, 직·간접적으로 원청은 협력업체에 업무지시, 품질검사 등을 한다. 안산 반월공단 내 롯데캐논도 마찬가지다.

주목할 점은 이것이 지나칠 경우, 위장도급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위장도급이란 원청이 협력업체 노동자를 직영 노동자처럼 사용하면서 자기 사업계획과 목적에 맞게 이용하지만, 사용자의 책임과 부담을 회피하는 위법 행위를 말한다.

문제는 이러한 위장도급 관련, 위법 여부를 밝혀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시사항 관련, 원청이 발뺌하고 협력업체 역시 스스로 했다고 할 경우, 위법 여부를 밝혀내기는 매우 어렵다. 원청의 직접적인 지시사항이 증거로 없는 이상 위장도급을 인정받기는 요원하다. 그나마 노동자들이 오랫동안 증거를 모아야만 노동부에 진정서라도 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모은 증거로도 검찰에 의해 위장도급으로 기소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설사 기소됐다 하더라도 법원에서도 위장도급으로 판결내리는 일은 거의 드문 게 현실이다.

▲ 롯데캐논 직원이 하청업체 직원을 교육하는 모습. ⓒ프레시안

상시적 고용불안, 저임금 시달리게 하는 단기파견, 일용직, 사내하청

주목할 점은 이러한 원청의 통제와 관리를 받는 협력업체들이 안산 반월공단 안에 무수히 많다는 점이다.

서울·경기 지역에 집중된 인구와 공해 발생 업종을 분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안산 반월공단은 조성 10년만인 1986년에 공장유치 목표치인 1000개소를 넘어섰고 이후 시화공업단지가 추가로 조성되면서 2012년 12월 기준으로 시화공단 포함 총 1만5648개 업체에 고용인원수는 25만8974명에 육박하는 수준이 됐다. 전국 산업단지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다.

단기간 급성장하면 그만큼 부작용도 남게 되는 법이다. 현재 공단의 노동구조는 심각하게 왜곡돼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입주 업체들이 대부분 대기업에 납품하는 협력업체이기 때문이다. 자체적으로 산업구조 변화나 경기침체 등에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원청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작업을 진행하는 이유다.

또한 기술력이나 자본력이 없는 영세업체인지라 저임금 노동자로 노동력을 후려치는 식으로 이윤을 남긴다. 그렇다 보니 공단 내 노동시장 구조는 저임금, 저숙련 노동 중심의 취약한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불법파견을 회피하기 위한 6개월 내 단기파견, 일용직, 사내하청 등을 활용한 생산방식이 대표적이다. 자연히 노동자들은 상시적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게 된다.

그나마도 앞으로가 더 문제다. 대기업 제조업 공장의 해외 이전 등으로 반월공단 내 협력업체들이 설 곳이 더욱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1994년에는 공단 내 1개 사업체당 평균 종사자 수가 21명이었으나 2012년에는 9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덩달아 노동자의 고용조건도 더욱 영세해지는 형국이다.

열심히 일하는 영세 사업장 노동자만 피해를 보는 식이다. 롯데캐논 사내하청업체 유천산업 소속 심옥임(55) 씨는 "10년 동안 캐논 정규직과 비교해 온갖 차별은 다 받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일했다"며 "하지만 생산 물량이 없으면 제일 먼저 해고되는 게 우리"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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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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