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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130만원, 그래도 안 잘리면 감사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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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130만원, 그래도 안 잘리면 감사할 수밖에..."

[반월공단의 그늘 上] 같은 옷, 식당, 버스 이용해도 우리는 비정규직

복사기 등을 만드는 안산 반월공단 내 롯데캐논 공장.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41명이 지난 12월 1일, 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모두 롯데캐논과 도급계약을 맺은 협력업체 유천산업 주식회사 소속이다. 이들은 원청인 롯데캐논이 자기 소속 업체와 도급계약을 체결했으나 실제 자신들의 업무는 롯데캐논의 지휘명령 속에서 진행됐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롯데캐논이 자신들을 직접고용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이 진정서를 낸 이유다.

하청 노동자가 자신들 관련, 불법파견이라며 노동부에 진정서를 내는 경우는 드물다. 진정서를 내는 순간, 해고되거나 소속 업체가 폐업되는 게 수순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왜 노동부에 진정서를 내야만 했을까. <프레시안>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일도 캐논 정규직보다 더 열심히 하고 물량도 더 많이 빼는데도 해고는 우리가 제일 먼저예요. 게다가 정규직보다 임금이나 노동조건도 훨씬 열악해요. 일하다 보면 화가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지 않겠어요?"

올해 55세인 심옥임 씨. 안산 반월공단 내 롯데캐논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2007년 이 회사에 입사했고, 12년 동안 줄곧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당시 시급은 3100원. 한 달 꼬박 일하고 손에 쥔 월급은 54만 원에 불과했다.

그나마 세상이 나아진 걸까. 지금은 최저임금 시급보다 50원 더 받는다. 한 달 만근 수당 5만 원을 합하면 130만 원 정도 받는다.

하지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노동조건은 달라진 게 거의 없다. 아침 7시20분에 출근해 작업복을 갈아입고, 출근카드를 찍은 뒤 7시50분에 조회를 한다. 조회내용도 10년 동안 거의 똑같다.

"경기가 안 좋다. 캐논 분위기가 안 좋다. 물량이 줄어들 수 있다. 불량 내지 마라. 계약이 안 될 수도 있다."

▲ 안산 반월공당 전경. ⓒ연합뉴스

마음대로 화장실도 이용하지 못해 방광염에 변비까지

오전 8시부터 시작되는 근무시간. 라인에서 부품이 쏟아져 나오면 하청노동자들이 일제히 라인에 달라붙어 이를 조립하기 바쁘다. 자기 앞에 있는 노동자의 작업속도가 빠르면 그만큼 뒤에 있는 노동자 입에서는 단내가 난다. 자칫 작업속도가 떨어질 수 있어 노심초사다. 콧물이 흘러도 닦을 시간이 없어 시커먼 장갑으로 연신 이를 닦으며 일해야 한다.

그나마 10시부터는 10분간 쉬는 시간. 그나마도 지난 4월 이전에는 7분이 쉬는 시간이었다. 용변이 급해도 사람은 많고 화장실은 적다. 긴 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10분이라는 시간 동안 화장실 한 번 다녀오고 물 한 잔 마시면, 잠깐 쪼그려 앉을 시간도 없다.

45분에 불과한 점심시간도 마찬가지. 식당은 캐논 정직원이 일하는 라인 근처에 있기에 거기에서 떨어진 곳에서 일하는 하청 직원들은 한참을 걸어야 한다. 아니 달린다. 조금이라도 휴식 시간을 만들어보려는 노력이다. 식사도 허겁지겁 끝내기 일쑤다. 밥 먹으면서 서로 말하지 않는 건 상대를 위한 배려가 된 지 오래다.

오후 시간에는 그날 할당 받은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죽어라 일한다. 라인마다 그날 정해진 물량 숫자가 라인 뒤 전광판에 명시돼 있고,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전광판에 빨간불이 켜진다. 이를 초록불로 바꾸기 위해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일한다. 한 라인에 12명의 노동자가 일렬로 서서 복사기, 복합기 등을 조립하다 보면 온몸에 진이 다 빠진다.

선 처리, 전동기 사용, 작은 부품 조립 등으로 손목터널 증후군 증상을 겪는 이들이 상당하다. 이 때문에 수술까지 하기도 한다. 라인 뒤로 갈수록 조립품은 무거워지는지라 조립하기란 쉽지 않다. 빠듯한 공정 시간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일하다 보면 어느새 손가락은 휘어지기 일쑤다. 무통 주사를 맞아가며 일하는 노동자도 있다.

종일 서서 일하다 보니 디스크는 물론, 각종 직업병에 걸리는 그들이다. 게다가 마음대로 화장실도 이용할 수 없어 방광염에 변비까지 걸린다. "회사에 돈 벌러 왔는데, 죽으러 온 듯하다"는 우스갯소리 아닌 우스갯소리를 서로 하는 이유다.

같은 식당, 통근버스 작업복 입지만 우리는 비정규직

안산 반월공단 롯데캐논 공장 내에는 직영만이 아니라 5개의 하청업체(4개 하청업체, 1개 파견업체에서 단기 알바 인력만 투입)가 있다. 이들은 롯데캐논 직영 노동자와 같은 공장 지붕 아래에서 같은 일을 한다. 같은 식당을 이용하고 같은 통근버스를 탄다. 심지어 색깔만 다른 작업복을 입는다.

다른 게 있다면 직영 노동자에 비해 적은 월급과 복리후생을 적용받는다는 점이다. 롯데캐논 직영은 하청보다 기본급도 높고, 상여금도 연 800%를 지급한다. 반면, 하청 노동자들은 연 100%의 상여금을 받는다.

그러면서도 품이 적게 들면서 생산량이 많이 나오는 라인은 직영의 몫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은 하청의 몫이다.

하청이 그렇게 어려운 일을 더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매년 10월 롯데캐논은 하청업체에 재계약 여부를 통보한다. 실적이 떨어질 경우, 재계약 성사는 불투명하다. 하청 업체 사장이 조회 때마다 '열심히 해야 캐논이 재계약해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가장 먼저 해고되는 것도 하청이다. 2015년 롯데캐논에서는 물량이 감소했다면서 하청에 인원을 축소하라고 압박했다. 당시 롯데캐논의 하청업체 중 한 곳인 유천기업은 전체 90명의 노동자 중 40여명에게 사표를 받았다. 말이 자진 사표였지 사실상 부당해고였다.

연차가 낮은 노동자이거나 산재 신청을 한 노동자, 부양가족이 없는 노동자 등이 해고대상자로 올랐다. 하청업체는 연차가 높다고 월급을 더 주지 않았다. 연차에 상관없이 모두 동일한 임금을 받는다. 고숙련 노동자인 연차 높은 노동자보다는 저숙련, 즉 연차가 낮은 노동자를 해고한 이유다.

그 결과, 지금 남은 44명명의 노동자들은 대부분 50대 여성이다. 남성은 단 3명에 불과하다. 남성의 경우, 여성과 달리 한 달 8만 원의 수당이 더 부여된다. 왜 남성에게만 수당을 주는지 여성 노동자들은 알지 못한다.

"그저 잘리지 않고 일하는 것에 감사할 수밖에요"

그동안 이러한 차별과 멸시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것도 고민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적은 돈이지만, 가족 생계에 보탬이 됐다. 자녀 결혼 비용과 본인들 생계비용도 걱정이다. 다른 일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안산이라는 도시에서 여성의 몸으로 직업을 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지금보다 '아래'로 곤두박질 친다.

<반월·시화 공단서 본 파견 노동자 현실>

"지금의 회사에 오기 전에는 반월공단에서 파견노동자로 일했어요. 그때 이미 파견노동자는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일이 고정적이지 않았어요. 몇 달 일하다 회사가 없어지기도 일쑤였죠. 거기에다 하루아침에 해고돼 다른 회사로 가는 일도 비일비재했어요. 고정적인 수입이 필요한 제가 그런 곳에서 일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박미령(48) 씨는 "안산에서 여성의 경우, 45세 이상이면 대부분 파견직으로 일할 수밖에 없다"며 "직업소개소에 하청업체 구직을 위해 전화하면 곧바로 몇 살이냐고 묻는데 나이를 말하면 그냥 끊어버리기 일쑤다"라고 설명했다.

심옥임(55) 씨도 "이곳에 오기 전에 일용직 등의 일을 했는데 일도 정기적이지 않을 뿐더러 노동조건도 열악했다"며 "반월공단 내 업체들은 너무나 빨리 사라지기에 일용직으로 가면 답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 관련기사 바로가기 : "나는 코 한 번 풀고 버려지는 '용역'입니다")

그렇다고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정규직 전환은 언감생심이다. 롯데캐논 신규 정직원 자리는 대부분 특성화고 현장실습생들의 몫이다. 고3 졸업 뒤, 현장실습을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정부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기에 롯데캐논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김미애(34) 씨는 "이곳에 온 이유는 롯데캐논 정직원으로 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해서였다"며 "하지만 막상 와서 보니 그것이 허황된 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저 하청에서 잘리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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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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