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의 삶 속에서 희노애락을 함께하며 베테랑 수사력을 펼쳐왔던 전북지방경찰청 박성구 총경이 29일 명예퇴임식을 끝으로 35년 간의 경찰 발걸음을 멈췄다.
이날 전북경찰청 5층 회의실에서 명예퇴임자들을 위한 퇴임식이 진행됐지만 박 총경은 후배 경찰들에게 부담주기 싫다며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이임식과 퇴임식 대신 경찰 후배들을 위해 장학금 300만원을 기탁하며 석별의 정을 대신했다.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경찰
고창 출신인 박 총경은 학창 시절 남다른 운동 신경으로 전국체전에 육상 종목으로 출전해 도 1위를 차지하는 등 체육 쪽으로 진로를 염두해 두고 있었지만,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고 그들의 삶 속에 뛰어들어 따뜻한 경찰이 되고 싶어" 지난 1982년 순경 공채로 경찰에 발을 들였다.
이후 빼어난 수사력을 뽐내며 김제·익산·군산경찰서 수사과장, 전북경찰청 수사계장, 익산경찰서 형사과장, 전북경찰청 형사과장 등을 역임하며 수사와 형사 분야에서 베테랑의 면모를 보여 경찰들의 귀감이 돼왔다.
◆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경찰관
특히 익산경찰서 형사과장으로 재직 시 70대 노모의 자식사랑에서 빚어진 음료수 절도사건은 박성구 총경의 따뜻한 경찰상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지난 2013년 11월5일 익산경찰서는 마트에서 음료수를 훔친 윤모(79) 할머니를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당시 생활고에 시달리며 40대 정신지체 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을 보살펴 왔던 79세 노모가 음료수라도 실컷 먹게 해주려던 애틋한 범행 동기는 경찰서를 넘어 세간에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눈시울을 적시며 독지가들을 움직였다.
본 기자도 당시 취재에 나서 현장에 도착했을 때 윤 할머니 모자가 거주하는 집은 숨쉬기도 힘든 악취와 집 입구에 쌓인 쓰레기 더미 때문에 기어서 들어가야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특히 쓰레기더미 때문에 집 안에는 바퀴벌레와 쥐떼가 몰려다녔으며, 이들 모자의 거주 환경은 매우 위험한 상태였다.
윤 할머니 역시 하늘을 올려다 보기 힘들 정도로 굽은 등과 깊게 패인 주름이 그동안 정신지체장애 2급 아들을 보살피며 생활고에 힘들어했던 흔적이 역력했다.
이웃 주민들 역시 이 모자를 딱하게 여겨 음식을 자주 주는데, 한 주민은 "윤 할머니의 수집강박증 때문에 음식을 나눠줘도 먹지 않고 모아둬, 오히려 썩어버리니 도와주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어떻게 생활하느냐는 박성구 형사과장의 물음에, 윤 할머니는 "형사님 죄송합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나는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자식들이 2명 있다는 이유로 지원금이 나오지 않아, 지체장애 아들이 받는 2만원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고개를 떨궜다.
이후 박 과장 직원들은 쇠고랑 대신 지역 봉사단체와 함께 윤 할머니 집을 깨끗이 청소한 뒤 생필품까지 전달했다.
또 이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익산시 여성회관 및 여러 NGO단체들의 이들 모자를 돕기 위한 발걸음이 이어졌다.
◆대규모 난투극 앞둔 조폭 소탕작전
하지만 시민들을 위협하는 일에는 한 발 빠른 수사력으로 시민 불안을 말끔히 해소하기도 했다.
지난 2013년 6월12일 익산경찰서는 집단 난투극과 보복 폭행을 벌인 익산 폭력조직 B파와 G파의 조직원 2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지난달 13일 오전 3시20분께 전북 익산시 영등동의 한 주점에서 인사 시비로 한 차례 집단 난투극을 벌였었다.
이후 이 주점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뒤 3시간 뒤인 오전 6시10분께 B파의 조직원들은 G파를 미행했고, 익산시 팔봉동의 한 도로에서 보복 폭행을 가했다.
점차 싸움이 커져 G파 조직원 9명이 나흘뒤인 체어맨 승용차에 골프채와 야구배트 및 목검 등을 싣고 습격에 나서던 찰나 박 과장과 형사들이 현장을 덮쳐 이들을 소탕했다.
박 과장의 신속한 대응이 아니었다면 자칫 도심 속 대규모 난투극으로 시민들도 다칠 수 있었던 상황.
당시 박성구 형사과장은 "조폭이 난투극을 벌였다는 신고를 접수한 뒤 단순 패싸움이 아닌 것 같아 직원들과 함께 첩보를 모으고 잠복에 나서 큰 사건을 미리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북경찰청 신설부서 전담 해결사
이러한 빼어난 수사통을 인정받아 전북경찰청이 새로운 부서를 신설하면 어김없이 박 총경이 앞장서 도맡아 왔다.
전북지방경찰청 초대 기동수사대장, 전북청 초대 112 종합상황실장, 전북청 초대 형사과장까지 거치며 도민들과 밀접한 치안행정력을 펼쳐왔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4년 1월9일 경찰의 꽃이라 불리는 총경으로 승진했다. 순경에서 총경으로 임용된 것은 전북경찰청에서 6년만에 일이었다.
◆여성납치 강도사건과 대전 10년 미제 사건 동시 해결
또 전북청 형사과장 당시 '전주여성 납치 강도 사건'과 '10년 동안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던 대전 여성 강도 사건을 단 19일만에 동시에 해결하면서 돋보인 수사력의 면모를 보여줬다.
당시 전북경찰은 박성구 형사과장과 강력계를 중심으로 한 수사전담반을 주야로 가동하면서 덕진경찰서와 완산경찰서를 비롯한 광역수사대까지 아우르는 수사망으로 납치범의 검거망을 좁혀 체포에 성공했다.
박성구 형사과장은 "전북경찰의 모든 형사인력이 합심단결해 전주 여성 납치강도 사건과 자칫 미제로 남을 수 있었던 대전 강도사건마저 동시에 해결할 수 있었다"면서 "그동안 불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을 믿어준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조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전주 덕진경찰서 서장 부임
전주 여성납치강도 사건을 끝으로 형사 지휘봉을 내려두고, 박 총경은 전주 덕진경찰서 서장으로 부임했다.
박 서장은 당시 취임사를 통해 "주민들이 행복을 공감하고 느낄 수 있도록 맞춤형 공감치안을 펼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기존 시민단체와 더 밀접하게 호흡하며 기존 904명의 자율방범대원과 녹색어머니회 등을 6072명으로 대폭 늘렸으며, 범죄피해자 치유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주민과 밀접한 행정을 펼치는데 주력했다.
또 덕진경찰서를 방문하는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전북도내 최초로 무인민원발급기를 설치해 등초본과 가족관계증명서, 혼인증명서 등 66종의 서류를 경찰에서 발급할 수 있게했다.
기존 퇴임한 역대 덕진서장들을 한 자리에 초청해 소통과 화합의 시간을 가지며 주민 치안을 위한 고견을 청취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박 서장은 "지식은 익히는 거지만, 지혜는 구하는 것이다"면서 "경찰 역사의 산 증인이자 경륜이 풍부하신 선배님들과의 만남을 통해 얻은 소중한 지혜를 바탕으로 더욱 안정된 치안 확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박 서장은 공정하고 청렴한 공직생활과 전주 지역의 치안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한 공로를 인정 받아 '2016 전라북도 인물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덕진서장 재임시 U-20 월드컵축구 성공적 안전개최와 제35사단항공대대 이전에 반대하며 주민들이 대규모로 반발했지만 충돌 없이 해소한 일 등은 큰 업적으로 남았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 받아 박 서장은 '2016 전라북도 인물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경찰 재직기간 동안 대통령 표창과 모범공무원 총리상을 수상했고, 녹조근정훈장 수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박성구 총경은 <프레시안>과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지금껏 사회적 약자를 위해 틈틈히 도와왔는데, 이제는 그들을 위해 좀더 현실적인 봉사활동을 펼치며 살겠다"면서 "경찰동료 여러분 그동한 함께해 너무나도 고맙고 행복했습니다.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리고 많이 사랑합니다"고 전하며 또 다른 삶의 여정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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