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 될 것인가. 크게 떠벌리기만 하고 결과는 보잘 것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최근 국회가 내놓은 특별수사청 설치안을 보면서 떠오른 말이다. 지난해 스폰서검사 문제 등을 겪으면서 국회가 앞장서서 사법개혁을 하겠다고 나섰다. 국회는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를 구성해 논의를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성과가 지난 3월 10일 6인 소위원회가 발표한 합의사항이다.
6인소위안에 대해 특히 검찰이 거세게 반발하는 가운데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6인소위안에 대해서는 사개특위 위원들조차도 의견이 모아지지 않는다. 개혁안이 발표된 뒤에 열린 사개특위 전체회의에서는 반대의견이 많이 나왔다. 특히 여당 의원들, 법조인 출신 의원들이 반발하는 양상을 보였다. 민주당은 6인소위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이다. 여야 지도부의 반응은 미온적이고,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도 반대하고 나섰다.
6인소위가 합의한 법조개혁안에는 긍정적 내용도 있고 기대 이하의 내용도 있다. 검찰시민위원회 설치, 중수부 폐지, 2017년 법조일원화 전면실시, '전관예우'관행 제동방안 등은 바람직한 내용이다. 국회 논의과정이 쉽지 않겠지만 입법과정에서 후퇴하지 않는다면 사법개혁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길 것으로 기대된다.
검찰시민위원회는 검찰권을 실질적으로 견제하는 기구가 되어야 한다. 재정신청 대상 확대는 피의사실공표죄 뿐만 아니라 고발사건 전체가 포함되도록 해야 한다. 경찰의 수사개시권 명문화와 복종의무 삭제가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검찰의 수사지휘권 조항을 수정해야 한다. 법원의 상고심제도 개선안도 대법관의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현재 14명인 대법관의 수를 6명 늘리고, 법조경력 10년의 경력자를 법관으로 임명하는 방안은 이미 대법원도 동의했던 내용이다. 그러나 하급심 강화라는 근본적인 대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대법원의 업무를 줄여주는 수준의 변화에 그치고 말 것이다.
6인소위안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특별수사청이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특별수사청 설치안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동안 시민사회에서 제기해온 검찰개혁 요구 중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뒤집었다는 것이다.
6인소위 개혁안을 보면 특별수사청은 대검 산하에 설치되며 판・검사의 직무관련 범죄 등을 수사하게 된다. 판・검사는 말할 것도 없고 대통령실 고위공무원・장차관・국회의원 등을 수사대상으로 삼고 있는 공수처보다 수사대상이 크게 축소되었다. 이 같은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국회 의결로 의뢰한 사건'을 수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국회가 의결하지 않으면 손을 대지 못하므로 개혁안대로라면 권력형 부정부패 전반에 대한 수사는 불가능하다. 지난날 특검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특별수사청이 대검 산하 기구가 되면 정치적 독립도 보장받지 못하고 검찰의 권한만 더욱 비대해질 뿐이다.
공수처 설치는 민주당의 당론이다. 한나라당도 공수처 설치의 필요성을 어려 차례 제기했다.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권력형 비리 수사기구 설치의 필요성에는 여야 모두 동의하는 셈이다. 그러나 권력형 비리를 뿌리 뽑겠다는 의지가 정치권에는 전혀 없다. 그러니 여야가 합의했다는 특별수사청이 종이호랑이도 못되는 수준으로 그려진 것이다. 공수처 설치는 권력형 비리 수사에서 확인된 특별검사의 긍정적 효과를 일상화ㆍ제도화하려는 의도이다. 고위공직자 부패수사의 공정성과 효율성도 확보하고, 나아가 검찰권도 효율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공수처를 설치하자는 것이다.
검찰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통령과 정치인, 고위공직자, 그리고 그 친인척의 부패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는 끊임없이 시비의 대상이 되어 왔다. 정치인들은 부패의 진상이 명백히 밝혀진 경우에도 '표적수사'나 '정치보복'이라고 우겼다. 불체포특권의 방패 뒤에 숨어서 체포동의안을 번번이 부결시켰고, 심지어는 검찰을 윽박지르기도 했다. '대어와 송사리', '몸통과 깃털' 등 형평성 시비도 많았다. 검찰이 '권력의 시녀' 역할을 했을 때에는 물론이고 검찰의 정치적 독립이 어느 정도 확보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시비는 기소권 행사의 타당성 여부를 넘어 수사의 전 과정에 걸쳐 있었다. 수사의 은폐ㆍ축소 의혹도 잇달았고, 자의적 기소권 행사도 늘 문제였다. 공수처 신설은 검찰 수사의 공정성 시비를 줄이고 권력형 부패의 효율적 통제를 가능하게 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판사ㆍ검사의 법조비리수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s) 문제도 회피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시비에 휘말리지 않고 부패비리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고 실질적인 권한과 기능을 갖는 공수처를 설치해야 한다. 공수처는 대검은 물론 대통령 소속도 아닌 독립기구가 되어야 한다. 참여정부 때는 공수처를 대통령 직속 부패방지위원회(지금의 국민권익위원회) 산하에 설치하려 했다. 그렇게 된다면 공수처가 검찰보다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위상을 보장받지 못했을 것이다. 위원 임명에 여야가 관여하므로 수사비밀이 정치권에 유출될 위험도 있고, 기존 검찰보다 외압의 통로도 넓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수처 장의 임명과정도 투명하고 중립적이어야 한다.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추천권은 지금까지 특별검사가 그랬던 것처럼 대한변호사협회에게 주되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해야 한다. 또 공수처 장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일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임기를 보장하되 연임을 제한하고 퇴직 이후 특정공직 취임도 제한해야 한다. 특별검사도 공수처 장의 제청에 의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면 된다.
공수처는 독립적인 수사권과 공소권을 가져야 한다. 독립적인 수사권은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배제한다는 뜻이다. 공수처가 다루는 범죄라 할지라도 검찰이 독자적으로 수사, 기소하는 것을 막는 것은 아니다. 6위소위안처럼 특별수사청을 대검 산하 기구로 하면 특별사법경찰기구에 지나지 않게 된다. 독자적 수사권한도 없고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게 되어 고위공직자 수사에 필수적인 계좌추적이나 압수수색을 검찰이 통제하게 된다. 사실상 검찰이 수사에 개입하는 것이다.
사실 다른 나라를 살펴보면 우리처럼 한 기관이 수사, 수사지휘 및 기소를 독점하고 있는 예가 없다. 수사 및 기소권을 현재의 검찰조직만이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은 기득권 수호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검찰의 기소권 독점에 따른 폐해를 줄이고, 비리수사에서 경쟁하는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도 특별수사청이 아니라 독자적인 기소권을 갖는 독립기구인 공수처를 만들어야 한다.
사법개혁은 민주화 이후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그리고 참여정부가 계속 추진했으나 실패했던 과제이다. 국민의 정부에서는 법조비리 등 사법제도의 문제점을 고치고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한 사법제도 구조조정을 위해 사법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가 구성되었지만 사법개혁에 실패했다. 법조계 출신 인사가 절반이 넘었고, 사법개혁을 힘 있게 추진할 정치권력의 부재 등이 실패요인으로 꼽혔다. 참여정부에서 사법개혁을 추진했던 사법개혁위원회(사개위)는 대법관 제청 파동을 겪은 뒤 법원 내부구성원과 시민들의 사법개혁 요구를 대법원과 청와대가 수용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사개위 역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논의는 많았지만 성과를 내지 못하고 흐지부지되었던 그 동안의 사법개혁 시도의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역대 정부기 사법개혁에 실패한 것은 진행된 논의 결과를 실현시켜 입법하거나 개혁작업을 추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법개혁 시도가 탁상공론에 그치는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논의 결과가 반드시 법적ㆍ제도적으로 실천될 수 있는 장치를 반드시 보완해야 한다. 사법개혁추진의 안정성과 구속력을 동시에 확보하고 각종의 정책대안들을 제대로 입법화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법개혁 논의 과정에 국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그동안 사법개혁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은 까닭 가운데 하나가 기득권을 내놓지 않으려는 사법부의 강한 저항이었다. 기득권을 포기하도록 사법부를 설득하는 데는 국민의 참여와 지지가 필요하다. 사법개혁의 목표는 국민을 위한 선진 사법부의 구현이다. 사법개혁은 국가적 과제이며 국민적 과제이지 사법부만의 과제가 아니다. 따라서 사개특위는 법조인보다는 수요자인 국민 편에 서서 사법개혁을 다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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