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의 2017년이 흘러갑니다. 미래를 희망하는 이들이 정권을 바꾼 올해, '표지 너머 책 세상'은 한 해를 마무리하며 올해의 출판 트렌드를 정리했습니다.
올해의 출판 트렌드를 정리하기 위해 우리는 교보문고와 예스24, 알라딘으로부터 올해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받았습니다.
우선 눈에 띄는 책은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지음, 민음사 펴냄)과 <언어의 온도>(이기주 지음, 말글터 펴냄), <자존감 수업>(윤홍균 지음, 심플라이프 펴냄)입니다. 세 책은 세 서점에서 모두 1,2, 3위를 차지했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어진 페미니즘 서적 열풍을 상징하는 책입니다. 민음사에 따르면 이 책은 꾸준한 입소문을 통해 출간 14개월 만에 50만 부 넘게 판매되었습니다. 단권으로 1년여 만에 50만 부 팔린 기록은 출판 불황이 항구화된 근래 이례적인 성적입니다. 이 책 외에도 <나쁜 페미니스트>(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사이행성 펴냄),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이민경 지음, 봄알람 펴냄), <이갈리아의 딸들>(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 히스테리아 옮김, 황금가지 펴냄),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창비 펴냄) 등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들었습니다. 특이한 건, 이들 책이 모두 지난해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올랐다는 사실입니다. 페미니즘에 관한 관심이 단순해 한 해 반짝한 것이 아님을 베스트셀러 순위가 입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82년생 김지영>과 <언어의 온도>, <자존감 수업>은 2016년 발행된 책임에도 올해까지 높은 판매고를 유지했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이른바 '역주행'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오랜 기간, 꾸준히 많은 독자의 선택을 받은 책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습니다. 본문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출판사의 '밀어내기'만으로 베스트셀러가 되는 시대가 지났음을 상징하는 사례입니다.
유난히 눈에 띄는 저자의 이름도 있습니다. <언어의 온도> 말고도 <말의 품격>(황소북스 펴냄)까지 높은 판매고를 기록한 이기주 작가와 더불어 유시민, 김영하, 설민석의 이름이 단연 두드러집니다. 이들 작가의 책은 여러 권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습니다. 이들의 이름으로부터 우리가 캐낼 사실도 있을 것입니다.
에세이/대중인문서적 트렌드가 조금 변화했다는 점도 짚어볼 만합니다. <자존감 수업>,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김수현 지음, 마음의숲 펴냄),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김신회 지음, 놀 펴냄), <약간의 거리를 둔다>(소노 아야코 지음, 김욱 옮김, 책읽는고양이 펴냄), <미움받을 용기>(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인플루엔셜 펴냄) 등은 비록 장르 분류상으로는 다른 책으로 볼 수 있겠으나, '온전한 나'로 살아갈 것을 독자에게 주문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닙니다.
무엇보다 강력한 사회적 변화였던 촛불혁명이 출판계에 영향을 미친 점도 짚어야 하겠죠. 문재인 대통령 이름으로 나온 서적을 포함해 유시민 작가, 김제동 방송인, 주진우 기자 등의 책은 모두 이 흐름에 한데 얽혀 설명 가능합니다. 관련 책들을 보면, 촛불혁명에 나온 사람들은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근본적인 사회 변화를 바랐다는 점을 캐치해낼 수 있습니다. 같은 의미로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기술 혁명의 예고된 도래 역시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대담은 지난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출판문화연구소에서 진행됐습니다. '표지 너머 책 세상'은 내년에도 더 흥미로운 이야기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출판 외부 흐름이 책에 영향을 미치다
-올해 출판 트렌드를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개별 사례를 짚기에 앞서, 우선 두 분의 정리 기준을 확고히 세우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우리가 마냥 잘 팔린 책만 이야기하고 이 자리를 끝내지는 않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이홍 : 교과서적인 정리를 빌리자면 ‘트렌드’는 세 가지 요소를 충족해야 합니다. 우선 지속성입니다. 단기적으로 끝나는 이슈가 아니라 시간적인 지속성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적어도 6개월~1년가량은 꾸준한 흐름을 보여야 트렌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대중이 인지하고 지지해야 합니다. 셋째로 구조적 변화를 촉발해야 합니다. 특정 흐름이 사회 제도를 바꾸거나 사람들의 의식을 바꿔야 합니다. 변화를 촉발하지 못하고 끝나버리면 일시적 유행에 불과하죠.
달력의 구분에 불과한 '한해'라는 시간 안에서 출판과 관련한 트렌드를 분석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정리의 측면에서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지만 실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과는 별 상관없을 수 있습니다. 우선 트렌드라고 근거할 객관적 데이터가 없어요. 베스트셀러? 단순히 많이 팔렸다고, 트렌드를 주도했다고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연말이 되면 트렌드 분석과 전망이라는 이름으로 갖가지 모임이 열리고 있습니다. 올해도 열리고 있고 내년에도 열리겠지요. 하지만 대부분 결과의 단순 정리나 오판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특히 다수의 대중이 지배하는 흐름은 대응의 영역이지 예측의 영역은 아니거든요.
장은수 : 동의합니다. 누구보다 출판 트렌드에 관심이 클 출판사 편집자들은 사실 베스트셀러 순위 분석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출판 기획에서 의미가 있는 건 과거 분석이 아니라 미래 분석이기 때문입니다. 책의 세계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힘을 인식하는 게 중요합니다.
아울러 출판계 내부의 흐름보다 책 문화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인 힘을 위주로 출판 트렌드를 보는 게 중요합니다. 크게 다섯 가지 정도를 꼽을 수 있을 듯합니다. 정보화의 충격, 가족의 해체와 재구축, 장기 저성장 시대, 민주정치의 일상화(페미니즘, 갑질 논란 등으로 표출된 소수자 문제), 저출산 고령화 사회 등이 그것입니다. 이들 흐름은 모두 이홍 이사가 언급한 트렌드 정의에 부합합니다. 장기간에 걸쳐 새로운 서적 출판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변하는 것'보다 '변하지 않는 힘'에 더 주목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좀처럼 변하지 않지만, 일단 작동하면 세상을 크게 바꾸는 힘에 주목해야 합니다. 변하지 않는 힘이 변화를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살피는 거죠. 메가트렌드라고 할 수 있겠죠. 예고된 전환인 개헌 논의가 대표적입니다. 만일 내년에 개헌이 이뤄진다면 우리 사회 곳곳에 장기적으로 거대한 전환이 일어날 것입니다. 예민한 출판 편집자라면 당연히 헌법의 변화와 삶을 잇는 책을 고민하겠죠.
출판사가 베스트셀러 만드는 시대 끝났다
-이제 개별 주제를 하나씩 이야기해 보죠. 두 분은 우선 '역주행'을 올해의 트렌드로 꼽으셨습니다.
이홍 : 3개 온라인 출판사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 1, 2, 3위에 전부 <82년생 김지영>과 <언어의 온도>, <자존감 수업>이 랭크되었습니다. 전부 지난해 나온 책으로 소위 역주행 베스트셀러죠. 아울러 저자가 기존 출판계 스타가 아니라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최근 주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는 독자가 직접 책을 선택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이전에는 출판사의 프로모션이나 신문 기사 등 매체 노출에 의해 설정된 유명 저자의 책에 충성도를 발휘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독자가 책을 구매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소셜 미디어에서 입소문을 타거나, 팟캐스트 등 뉴 미디어에서 예비 독자를 확보한 책이 장기간에 걸쳐 판매를 주도하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이 흐름을 주도하기 시작한 것은 일부 눈 밝은 출판사와 아울러 주체성을 가진 독자들입니다,
<언어의 온도>뿐만 아니라 <라틴어 수업>(한동일 지음, 흐름출판 펴냄)과 같은 책은 과거 기준으로는 베스트셀러가 되리라 생각하기 힘든 주제의 서적입니다. 저자가 소위 말하는 스타도 아니었고요. 하지만 올해 출판 흐름을 주도했습니다.
장은수 : 대표적 비즈니스 구루로 꼽히는 필립 코틀러는 "마케팅에 관계된 모든 걸 바꾸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연결성"이라고 했습니다. 초연결성이 구현되기 이전에 독자를 설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보 불균형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출판사가 독점적으로 가진 정보를 광고 등을 통해 대량으로 쏟아내면 독자가 그 정보를 믿고 책을 구매했죠.
하지만, 초연결사회에서는 독자가 손 안의 미디어를 통해 출판사가 쏟아낸 정보를 실시간 검증합니다. 소비자와 생산자 간 정보 불평등이 해소되었습니다. 출판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 분야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죠.
출판사 입장에서 봤을 때 책을 출판한 후 적당한 독자를 찾아내 설득하기 더 힘들어졌죠. 그러니 독자를 미리 연결해서 설득부터 한 후 책을 내는 모델이 만들어지는 중입니다. 소셜 미디어 등을 이용하지요. 마케팅 용어로는 D2C(direct to consumer)라고 합니다.
D2C 환경에서는 무명 저자도 소셜 미디어를 통해 독자를 끌어 모아 팬덤을 획득하면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기존 유명저자의 티켓 파워와 전혀 다릅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채사장 지음, 한빛비즈 펴냄) 시리즈가 대표적이고, <언어의 온도>와 <말의 품격>, <나에게 고맙다>(전승환 지음, 허밍버드 펴냄)도 마찬가지 과정을 거쳤습니다. <야밤의 공대생 만화>(맹기완 지음, 뿌리와이파리 펴냄)도 같은 사례죠. 미리 구축된 팬덤을 토대로 베스트셀러에 오르면, 독자들이 그 책의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서므로 장기간 인기를 끌 수 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스타 저자가 탄생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결국 저자의 지명도가 책 판매에 직결된다는 점에서 기존 출판사의 스타 저자와 새로운 이들의 차이는 없는 듯한데요?
장은수 : 차이가 있다면 기존 저자와는 달리 이들은 독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소셜 인플루엔서라는 점입니다. 기존 출판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 소셜 미디어 환경에서 '출판사의 도움 없이' 독자의 지지를 받는다는 점이 기존 스타 저자와 차이죠.
이홍 : 이 새로운 현상은 단순히 출판사와 독자 간 정보 격차가 줄어들었다는 말로 설명하기 부족합니다. 이제 정보의 소통권이 소비자에게로 넘어갔음을 뜻합니다. 출판사나 저자의 힘이 아니라, 소비자의 힘이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미디어셀러 현상은 바람직한가
장은수 : 판매 영향력에서 베스트셀러 목록을 넘어서는 강력한 힘이 탄생했습니다. 기존 방식대로 출판사가 자금력을 동원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린 책도 소셜 미디어에서 독자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금세 순위권에서 사라집니다. 마케팅 권력이 소비자에게 있음을 입증하는 현상이죠.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는 올해의 트렌드로 미디어셀러 현상을 꼽을 수 있습니다. 출판사가 아니라, 다른 미디어가 출판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 매우 강해졌습니다. 특히 올해 들어 나타난 현상은 <알쓸신잡>(tvN)이나 <차이나는 클라스>(JTBC)와 같은 지적 예능, 혹은 예능형 교양 프로그램이 베스트셀러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입니다. 인문학이나 교양과학 등 분야에서 기존 상식으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 힘들었던 책들이 잘 팔리는 현상이 두드러졌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설민석의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세계사 펴냄),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아이휴먼 펴냄) 시리즈입니다. 유시민 작가의 책 여러 권이 베스트셀러로 꼽힌 것도 마찬가지이고, 김영하 작가의 소설이 베스트셀러 순위 높은 곳에 위치한 것 역시 방송의 위력을 빼고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김영하의 <오직 두 사람>(문학동네 펴냄)의 경우, 단편집임에도 20만 부가 넘게 팔리는 기현상을 연출했습니다.
심지어 <알쓸신잡>에서 소개된 <도구와 기계의 원리>(데이비드 맥컬레이 지음, 박영재·김창호 옮김, 크래들 펴냄)와 <세계사 편력>(자와할랄 J. 네루 지음, 남궁원·곽복희 옮김, 일빛 펴냄) 시리즈가 뒤늦게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큰 틀에서는 <너의 이름은>(신카이 마코토 지음, 박미정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역시 영화의 힘이 이어진 베스트셀러라는 점에서 미디어셀러로 묶을 수 있습니다.
이들 미디어셀러 현상에 특이점이 있습니다. 30대 남성이 움직였습니다. TV에 소개된 책을 보고 30대 남성이 도서 구매에 나선 거죠. <세계사 편력>과 <도구와 기계의 원리>의 경우, 거의 30% 가까운 독자가 30대 남성이었습니다. 기존 출판 환경에서는 아주 드문 일입니다. 출판 시장을 주도하는 이는 30~40대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 강해지리라고 봅니다. 한편으로는 출판의 대중 추수주의가 심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한편 드는 대목입니다.
이홍 : 미디어셀러 현상에는 명암이 있습니다. <세계사 편력>은 무려 1990년대에 나온 책인데 이 시대에 부활했습니다. 출판 산업 측면에서만 보면, 구간도 많이 팔릴수록 좋습니다.
하지만, 시대의 지식인이라 불리는 분들이 교양으로 포장된 TV의 예능 프로그램에 우르르 몰려나와 이미지를 소비하면서 시청률 확보의 선봉장이 되는 현상이 과연 정상적이냐는 데는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요리사는 자기 주방에서 고객 서비스에 가장 충실해야 하고, 학자는 연구실에서 책 읽고 글 쓰는 데 우선 충실해야 합니다. 의사는 진료실이 본래의 자리인데 예능에서 떠들고 홈쇼핑에 등장한다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단기적으로는 TV 출연을 통해 얻는 후광효과가 달콤할 수 있겠지만, 매체의 속성상 나오지 않는 순간 바로 잊힙니다. 방송은 대중의 기호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분출시켜야 하는데 걱정이 되죠.
장은수 : 덧붙여 말하자면, 방송에 나오는 지식인 중 일부는 아예 연예인을 관리하는 회사와 관리 계약까지 맺었습니다. 본인의 정신적 지향과 ‘연예’라는 현실이 충돌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에이전트가 필요하다손 치더라도 기존 출판문화에 익숙한 이와 계약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가랑비에도 옷은 젖으니까요.
이홍 : 미디어셀러가 언제까지고 양질의 지식 수준을 담보하리라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방송에 맞춘 지식을 편집한 책과 대중이 직접 발견한 베스트셀러 사이에는 질적 차이가 있습니다.
콕 집어 말하자면, <명견만리>(KBS <명견만리> 제작진 지음, 인플루엔셜 펴냄)의 경우 이 책에 담긴 내용은 방송 <명견만리>의 이미지를 걷어내면 사실 기대만큼 충실하지 못합니다. 설민석의 책도 그가 역사가들 사이에서 일으킨 논란을 생각하면 대중 교양서적으로서도 조금 부족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책의 가치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미디어셀러 현상을 좋게만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두 분의 우려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대중적 징검다리를 통해 더 많은 이가 교양 욕구를 채운다면 그것대로 긍정적인 면을 봐야 하지 않을까요?
장은수 : 마냥 긍정하자니 방송에 소개된 지식 중 이미 시대와 맞지 않거나, 최신 연구를 통해 사실이나 의미가 달라진 지식이 너무 많다는 점이 우려됩니다. 몇몇 이들은 최근 연구 성과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 이른바 '쌍팔년도' 이야기를 대중에게 알리면서 그게 전부인 양 말하죠.
이홍 : 지식 자체의 내용보다, 프로그램이 표방하는 속성을 강조하는 게 방송에선 더 중요함을 입증하는 현상입니다. <알쓸신잡>의 경우, 30~40대 남성이 '보기에 좋아 보이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지식을 활용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따지고 보면, 근래 요다이즘으로 채워진 상당수 베스트셀러에서 비슷한 문제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내용이 보편적 교양으로 확산된다면 긍정적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페미니즘 출판은 계속 된다
-올해도 출판계에서 가장 막강한 위력을 떨친 트렌드는 페미니즘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이 한해 가장 많이 팔린 책에 올랐고, 여러 페미니즘 관련 서적이 그야말로 쏟아졌습니다.
이홍 :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말을 꺼내기가 대단히 조심스럽습니다. 페미니즘이 새삼 출판계의 주목받은 계기는 강남역 살인사건입니다. 추모 분위기에서 이 사건을 둘러싼 남녀 성대결 양상이 페미니즘과 맞물려 강해졌습니다.
예전과 달라진 건, 과거에는 출판이 페미니즘의 학문적 해석, 남녀 차별 문제에만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구조 안에서, 우리 일상 안에서의 문제를 지적하는 방향으로 페미니즘을 소화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역시 핵심은 '여성'입니다. 그게 구조의 문제이든 개인의 문제이든 제도적이든 생태적인 것이든 말입니다.
장은수 : 우선 남성끼리 모여서 이야기하는 중이라는 한계를 전제한 후, 여성이 왜 남성보다 책과 친한가는 질문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여성이 시민권을 획득한 역사가 길지 않습니다. 긴 시간 여성은 주체성을 확인했으나, 이를 사회적으로 실현할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간 그 욕구를 해소해준 게 책입니다. 사회 구조에 억눌린 여성이 독자가 되어서 책에 욕망을 투사했습니다. 중세의 돈키호테가 근대의 보바리 부인으로 진화한 셈입니다. 조금 과장하면 근대 이후 책의 독자는 여성명사화 됐습니다.
근대 이후 대부분 세계에서 여성보다 남성이 책을 많이 읽는 경우는 없습니다. 자연히 출판은 여성 독자의 요구에 부응하려 노력하는 게 자연스럽죠. (성 평등이 이뤄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여성의 갈망’을 담은 책은 언제나 성공했습니다.
이 전제 아래에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를 보면, 출판이 분출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매우 빠른 속도로 반영하는 중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이미 페미니즘이 일상의 문제를 이야기했고, 출판도 이를 적극적으로 소화했습니다. 구체적 삶의 현장, 즉 여성이 직장에서, 데이트 과정에서, 온라인 활동에서, 집안에서 겪는 문제를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다루는 책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은 어쩌면 그 절정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맘충'이라는 말로 여성 육아 문제를 사회적으로 부각시켰고, 한 사람의 여성이 성장하면서 겪는 일상의 차별 문제를 르포르타주 식으로 다루어, 독자들한테 커다란 공감을 일으켰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의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일상에서, 심지어 형식적으로도 여성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여전히 많아 보입니다.
<당신의 신>(김숨 지음, 문학동네 펴냄), <다른 사람>(강화길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딸에 대하여>(김혜진 지음, 민음사 펴냄), <현남 오빠에게>(조남주·최은영·김아설·최정화·손보미·구병모·김성중 지음, 다산책방 펴냄) 등 특히 문학이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껴안은 점이 눈에 띕니다. <이혼일기>(이서희 지음, 아토포스 펴냄),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은유 지음, 서해문집 펴냄) 등도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더 쉬운 말로 일상의 문제를 여성의 시각에서 풀어내는 책은 앞으로도 꾸준히 나오리라 생각됩니다.
이홍 : 앞으로 남성 지배 구도가 사회적이냐 본능적이냐는 등의 문제를 제기하는 관점의 책도 소개될 것으로 보입니다. 페미니즘에 관한 반작용으로 남성성에 관한 이야기 역시 앞으로 주목받는 소재가 되지 않을까도 여겨집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본래 출판의 속성 자체가 한쪽으로 완전 기울어지지는 않습니다. 흐름을 주도하는 목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반대쪽의 반응이 나오니까요. 반응과 지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장은수 : 페미니즘을 향한 관심만큼 그 반작용에 관심을 쏟을 출판사는 많지 않으리라 여겨집니다. 유리천장을 깨려는 여성의 노력은 앞으로도 중요한 사회적 요구일 것이고, 이를 위해 새로운 삶의 규칙을 세우자는 요구가 점차 강해질 겁니다. 반대쪽 흐름이 출판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입니다. 일시적 현상으로는 나타날 수는 있겠죠.
오히려 더 여성적 시각으로 사회를 보려는 시도가 강해지리라고 봅니다. 가령 여성의 정치, 여성의 경제, 사랑과 성에 관한 문제도 아직은 남성 중심적 시각에서 다뤄지는 경향이 짙은데, 이런 문제를 새롭게 조명하려는 시도가 이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장기 트렌드, 4차 산업혁명
-올해의 출판 트렌드로 4차 산업혁명을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알파고 충격이 한국을 휩쓴 이후, '4차 산업혁명'은 마치 주문처럼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장기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올해 역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조현욱 옮김)와 <호모 데우스>(김명주 옮김, 이상 김영사 펴냄)를 비롯해 여러 권의 기술혁명, 정보혁명 관련 서적이 대중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장은수 : 1990년대 인터넷 혁명 이후 지난 20여 년 동안 기술 혁신과 관련한 베스트셀러가 나오지 않은 해가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여태 말한 여러 트렌드 중 정보 혁명만큼 강력한 트렌드도 없습니다. 정보 혁명이 우리 사회를 가장 근저에서 뒤흔드는 힘을 갖고 있음을 대중이 인식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올해의 경우 유발 하라리의 서적을 비롯해 <세계미래보고서 2055>(박영숙·제롬 글랜 지음, 이영래 옮김, 비즈니스북스 펴냄), <인포메이션>(제임스 글릭 지음, 박래선·김태훈 옮김, 동아시아 펴냄), <인에비터블>(케빈 켈리 지음, 이한음 옮김, 청림출판 펴냄), <나인>(제프 하우·조이 이토 지음, 이지연 옮김, 민음사 펴냄) 등 수준 높은 책이 많이 나왔습니다.
AI 혁명을 다룬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김재인 지음, 동아시아 펴냄), <포스트휴먼이 온다>(이종관 지음, 사월의책 펴냄), <지능의 탄생>(이대열 지음, 바다출판사 펴냄) 등도 큰 관심을 받았죠. 빅데이터 시대에 관한 두려움을 담은 책으로는 <대량살상수학무기>(캐시 오닐 지음, 김정혜 옮김, 흐름출판 펴냄) 등이 나왔습니다. 아마 내년에는 블록체인에 관한 책이 쏟아질 것입니다.
정반대로 이런 혁명의 흐름에 저항하는 책도 나왔습니다. <아날로그의 반격>(데이비드 색스 지음, 박상현·이승연 옮김, 어크로스 펴냄)이 대표적이죠.
이홍 : 정보 혁명은 연간 단위로 분석할 수 없는, 실로 강력한 트렌드입니다. 요즘 대형 서점에 가면 아예 4차 산업혁명을 따로 독립 코너로 마련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 실체가 명확한가는 의문입니다. 본래 산업과 사회 구조의 변혁은 심한 격동을 앓은 후 그 시기가 지나야 겨우 형태와 본질을 규정할 수 있는데, 4차 산업혁명은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지도, 어디로 가는지도 모릅니다. 시작을 말할 수는 있겠지만 정리하거나 규정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닌데, 출판사가 쏟아내는 책을 보면 이미 혁명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변변찮은 의제가 없이 흘러온 지난 10여 년의 움츠림 때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 이후 출판계가 집중할 거대 담론이 없었습니다. 담론을 이끄는 구루도 부족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이 화두로 등장했습니다. 그야말로 대형 호재죠. 그러니 출판계가 앞장서서 4차 산업혁명을 규정하려는 듯합니다. 이런 경향은 내년이 되면 더 강해질 것임이 분명합니다. 아마도 이 흐름 속에 존재하게 될 인간의 문제를 다루려고 하겠지요. 당연한 수순입니다.
장은수 : 맞습니다. 이 분야에서는 내년에도 베스트셀러가 나올 것입니다. 출판계에서는 농담 섞어 이들 분야를 'ICBM'이라고 합니다.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기술(Cloud), 빅데이터(Big data), 모바일(Mobile)이죠. 여기에 블록 체인(Block chain)을 더해, 실로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 혁명과 관련한 책이 나올 것입니다.
굳이 예측을 덧붙이자면, 내년에는 이들 거대 기술이 우리 일상과 어떻게 조응하느냐를 조명하는 책들이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가령 블록체인이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빅데이터가 라이프 스타일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꿀지, 인공지능이 재테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책들이 더 구체적으로 조명하리라 여겨집니다. 그럴수록 아날로그적 삶에 대한 갈구도 깊어지겠죠.
'나'를 찾아줘
-두 분이 '개인'을 올해의 트렌드로 꼽으셨습니다. 얼핏 생각하기에 이 문제가 그 정도로 올해 출판을 설명하는 트렌드로 꼽을 만큼 강력한가는 의문이 듭니다.
장은수 : 아주 강력한 트렌드입니다.
부모와 아이로 구성된 가족을 '표준 가족' 혹은 '신성 가족'으로 상정할 수 있다면, 현대는 표준 가족이 해체되고 재구축되는 시대입니다. 아주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탄생 중입니다. 일인가족, 동성가족, 다문화가족, 공동체가족, 자발적 무자녀 가족, 반려동물가족, 한 부모 가족, 조손가족 등은 결손 가족이 아닙니다.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죠.
과거의 표준 가족도 물론 여전히 유효합니다. 아무래도 우점종이니까요. 외동이가 많아지면서 부모가 아이에게 과잉 투자하는 '골드 키드'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교육에 돈을 쏟아 붓는 게 대표적이죠. 이러한 가족의 욕구를 정확하게 건드린 베스트셀러가 <못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오은영 지음, 코리아닷컴 펴냄), <엄마 반성문>(이유남 지음, 덴스토리 펴냄) 등이죠.
하지만, 최근 새로운 가족에 초점을 맞춘 책이 많이 나온다는 점을 더 깊이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이상한 정상가족>(김희경 지음, 동아시아 펴냄)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새로운 가족 구성원으로 수용되는 중인 반려 동물 관련 책이 폭발적으로 출간되고 있습니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고양이 관련 서적은 전년대비 무려 80%나 성장했고, 개 관련 서적도 20% 성장했습니다. <퇴근 후 고양이랑 한잔>(진고로호 지음, 꼼지락 펴냄), <히끄네 집>(이신아 지음, 야옹서가 펴냄) 등이 대표적이죠.
가족의 정의가 '피로 얽힌 관계'가 아니라, '구성원 간 합의에 따른 계약 관계'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책들입니다. 한국사회도 이와 관련한 갈등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대표적 사례가 동성결혼에 관한 찬반 논쟁입니다. 이는 결국 다른 형태의 가족을 인정할 것이냐 말 것이냐에 관한 싸움입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개나 고양이에게 유산을 상속하는 게 가능한데, 앞으로 이런 문제에 관한 논의도 한국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결국, 출판 역시 가족의 해체나 재구성에 관한 여러 담론을 담을 것입니다.
이홍 : 가족의 재구성을 자극하는 요인은 오래된 트렌드인 '개인화'입니다. 사람은 어떻게든 관계를 맺어 사는 동물임에도 개인화가 뜬다는 건, 결국 개인과 사회의 새로운 관계를 요구하는 흐름이 강력해졌음을 뜻합니다.
경제·경영서적도 이런 흐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조직 문제에 관한 책이 그 증거죠. 글로벌 기업의 혁신을 다룬 책 대부분이 이기적이고 퍼스널 브랜드화 된 젊은 인재를 어떻게 품을 것이냐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조직의 퍼포먼스에 초점을 맞추던 전통 기업이 앞으로 어떻게 개인을 끌어안을 것이냐가 기업의 중요한 고민으로 떠올랐음을 입증합니다. 이제 기존의 조직 이데올로기는 통하지 않으니까요.
결국 강한 집단이 충성스러운 개인을 키워주는 조직이 아니라, 개인의 생산성을 조직이 계약 관계를 통해 나눠 먹는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는 게 결론입니다. 자신을 위해 일하는 독립된 개인이 모여 회사를 만드는 체제가 도래했다고 할 수 있죠.
이런 개인으로의 변화가 결국 가족 관계를 재구성하게끔 하는 추동력이 되었습니다. 회사가 변하고 가족이 변한다면, 결국 우리 사회 전반을 재조직하자는 흐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공권력이 힘을 잃는 시대, 국경 개념이 흐려지는 시대가 도래하는 데서 나아가 새로운 개념의 무정부주의 시대가 올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그야말로 지속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트렌드가 될 것입니다.
장은수 : 그렇습니다. 근본적으로 삶의 태도를 재정의하려는 움직임이, 특히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강해지고 있습니다.
청년층과 장년층의 삶의 태도는 이제 확연히 다릅니다. 윗세대의 특징은 축적의 시대를 살았다는 점입니다. 젊을 때 아끼고 참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삶은 좋아진다는 믿음이 확고했습니다. 저축하면 돈이 불어나고, 힘든 일이라도 참으면 성공으로 보답 받았습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좋은 시대, 오늘보다 내일이 좋은 시대를 살았습니다. 이 시대를 상징하는 체제가 연공서열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대는 '마시멜로 효과'를 경험적 진실로 알았습니다.
이제 이 시대는 끝났습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지난 20년간 우리 사회는 끝없는 구조조정과 저성장의 시대를 경험했습니다. 이제 현재를 희생해 미래를 사라는 소리는 경험적으로 거짓말입니다. 청년세대는 삼촌들을 보면서 이를 익혔습니다. 그렇기에 청년세대는 허황된 미래를 꿈꾸기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자는 규칙을 따릅니다. '욜로(YOLO)' 라이프가 새로운 트렌드가 된 원인입니다.
이처럼 가치관이 다른 두 세대가 이제 전면 충돌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우리 모두 지난 겨울을 기억할 것입니다. 함께 촛불을 들고 박근혜를 몰아낼 때까지는 청년과 장년이 동지였습니다. 당시 대통령 탄핵 후 외쳐진 구호는 '이제 일상의 민주주의를 정립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결과가 어떻습니까?
일상을 민주화하려니 청년과 장년은 서로 적이 됩니다. 여전히 회사에서는 장년층이 청년층을 열정노동을 내세워 착취합니다. 청년이 허름한 골목에 카페를 열어 상권을 살리면 장년의 건물주가 나타나 그들을 내쫓습니다. 청년이 일자리를 비집고 들어가려니 장년으로 구성된 노조가 정년을 늘려 취업문을 닫아버립니다. 이제 청년세대와 기성세대 간 새로운 합의가 필요한 때입니다.
이런 청년층의 욕망을 출판이 반영했습니다. 상징적인 책이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히노 에이타로 지음, 양경수 그림, 이소담 옮김, 오우아 펴냄),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양경수 지음, 오우아 펴냄)입니다.
올해 베스트셀러의 주제어를 하나 꼽으라면 '나'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자존감 수업>, <신경 끄기의 기술>(마크 맨슨 지음, 한재호 옮김, 갤리온 펴냄), <센서티브>(일자 샌드 지음, 김유미 옮김, 다산3.0 펴냄),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약간의 거리를 두다> 등은 모두 나 자신에게 집중하라는 책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나 자신에 몰입하는 게 가장 훌륭한 삶의 태도가 됐습니다. 우리 시대의 새로운 '뉴 노멀'입니다.
촛불혁명은 이제 시작
-뭐니뭐니 해도 올해 가장 큰 사건은 정권 교체였습니다. 정권 교체 열망과 맞물려 수많은 책이 쏟아졌고, 새롭게 주목받았습니다. <국가란 무엇인가>(유돌베개 펴냄)를 비롯한 유시민의 여러 책, <문재인의 운명>(문재인 지음, 북팔 펴냄),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주진우 지음, 푸른숲 펴냄) 등이 사회 변화를 원하는 대중의 열망을 담은 대표적 베스트셀러입니다. <촛불혁명>(김예슬 지음, 김재현 사진, 박노해 감수, 느린걸음 펴냄), <천만 촛불바다>(여러 시인 지음, 실천문학사 펴냄) 등 촛불혁명 자체에 초점을 둔 책도 올해 여럿 나왔습니다. 굳이 얘기하자면 '촛불혁명'을 하나의 키워드로 길어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은수 : 세월호란 무엇일까요.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으로 상징되는, 시민을 수동적 주체로만 여기는 명령-복종의 사회 체제가 낳은 참혹한 비극입니다. 촛불은 무엇일까요. 시민이 잃어버린 주체성을 되찾으려고 권위주의적 정치와 신자유주의적 경제가 결합한 구체제를 파산시킨 자율혁명입니다.
촛불 이후, 국가와 사회의 전 영역에서 무엇을 청산하고, 새로운 사회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것은 우리의 중대한 의무가 되었습니다. <대통령의 글쓰기>(강원국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 <국가란 무엇인가>(유시민 지음, 돌베개 펴냄),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주진우 지음, 푸른숲 펴냄), <지금 다시, 헌법>(차병직·윤재왕·윤지영 지음, 로고폴리스 펴냄) 등이 촛불시위 와중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어서 <국가가 할 일은 무엇인가>(이헌재·이원재·황세원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 <주적은 불평등이다>(이정전 지음, 개마고원 펴냄), <권력과 검찰>(최강욱 지음, 창비 펴냄), <권력과 언론>(박성제 지음, 창비 펴냄) 등이 국가와 사회와 경제의 주요 쟁점들을 따졌습니다.
<네가 나라다>(김상봉 지음, 길 펴냄), <민주주의의 시간>(박상훈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정치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박상훈 지음, 이음 펴냄) 등은 이 문제를 어떻게 근본적으로 성찰할 것인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홍 : 촛불은 일시적인 혁명이 아니라 의식된 시민의 깨어 있는 힘을 부조리한 권력이 강제할 수 있는 시대가 완전히 끝났음을 알렸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이끈 시민의 정신과 자신감이 시민 사회를 건강한 방향으로 끌어간다면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극적인 자산을 획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늘 반동에 직면했음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반동은 이미 시작되었고 반드시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지금 촛불 당시의 흥분된 감동을 되새기는 모자이크된 회고를 되새기는 건 그래서 별 의미가 없습니다.
대통령이 바뀐 정치 과잉의 해였지만 솔직히 서점가는 조용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책이 잘 팔린 건 예의라고 봐야겠지요. 광장에서 열기를 쏟아내고 종편에서 정보를 소비시켜주니, 독자가 다시 책으로 돌아와 뭔가를 뒤질 여력이 없었다고 봐야지요.
장은수 : 박근혜 대통령 퇴진은 정치사회적 변화의 출발이지, 완성이 아닙니다. 새 정부가 들어섰다고 우리 삶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제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룰 것이냐가 우리의 새로운 과제입니다. 내년은 개헌의 해입니다. 올해만큼 강력한 제도 변화가 예고된 해입니다. 우리 일상의 원리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강력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꼭 좋은 헌법을 만들어야만 합니다. 성공적인 개헌을 완성해야만 촛불혁명 이후 '나'의 행복을 고민할 시간이 비로소 제대로 주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 좋은 책 찾는 2018년 되길
-이제 내년을 기대하는 한 마디로 올해를 마칠까 합니다.
장은수 : 책은 우리 삶의 다양한 면모를 반영합니다. 올해 전반을 책을 통해 돌아보자면, 의외로 정말 좋은 책은 과거보다 눈에 덜 띄었던 듯합니다. 책이 사회를 쫓아가기에 바빴습니다. 내년에는 우리 출판사들이 한 발 떨어져서 성찰을 통해 앞서가는 힘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이홍 : 오직 2017년만을 상징하는 중요한 출판 이슈가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최근 수년 간 지속된 출판계의 중요한 특징은 작지만 실속 있는 책이 꾸준히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기존의 저자 외에 신선한 전문가 필자가 꾸준히 나타나고 있기도 합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출판의 구조를 예고하는 신호들입니다. 우리 출판이 변화에의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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