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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야당' 결집 막고 '극우 세력' 고립시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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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야당' 결집 막고 '극우 세력' 고립시키기

[장석준 칼럼] '촛불 이후 르네상스'는 장기전이다

해마다 이맘 때면 한 해를 평가하고 새 해를 전망하는 글을 흔히 보게 된다. 대개는 밋밋한 내용일 수밖에 없다. 시간을 1년 단위로 셈한다 하여 꼭 연말이 되면 평가할 거리가 적당히 쌓이라는 법이 없다. 또한 다음 달이 11월이나 12월이 아니라 1월이라 불린다고 해서 유독 새로운 뭐가 튀어나올 리 없다. 그래서 그런 글을 써달라는 청탁이 들어오면 웬만하면 거절하곤 한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2017년은 다르다. '벌써 혁명'이라고도 하고 '아직은 항쟁'이라고도 하는 촛불이 첫(?) 성과를 낸 원년이기 때문이다. 5천만 모두가 평생 기억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을 한 해였다. 다들 하는 말이지만, 예년 같았으면 대선 추이를 놓고 조바심 내고 있었을 텐데 우리는 지금 문재인 '대통령'을 놓고 입씨름 벌이거나 '503'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5천만이 시대착오적 정권들에게 제 각기 10년의 세월을 빼앗기더니 지난 몇 달 동안은 '10년 같은 1년'을 살았다. 예기치 않았던 이 사건의 홍수 뒤에 우리는 지금 어떤 길 위에 서 있는가? 우리는 과연 잘 가고 있는가?

6월 항쟁 직후와는 달랐던 촛불 이후의 시간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이던 촛불 소강 국면에 사람들이 촛불의 미래를 물어올 때면, 나는 두 가지 정도를 이야기했다. 하나는 촛불의 가장 직접적인 목표, 즉 박근혜 정권을 끝내는 일은 분명히 성공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마치 1987년 6월 항쟁 직후에 노동자 대투쟁이 시작된 것처럼 촛불이 직접적 목표를 달성하고 난 다음에는 곧바로 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아래로부터 분출하리라는 것이었다.

돌아보면 하나는 맞았고 하나는 틀렸다. 앞의 전망은 맞았지만, 뒤의 전망은 틀렸다. 헌법재판소는 탄핵 인용 판결을 냈고, 조기 대선에서 정권 교체가 실현됐다. 촛불은 일단 승리했다. 하지만 그 이후 '곧바로' 사회 개혁을 주장하는 대중운동이 터져 나오지는 않았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이유가 무엇일까? 새 정부는 '촛불 정부'를 자임하고 있고 사회운동들도 모두 '촛불의 지속'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뭔가 개혁의 물결이 요동친다는 느낌은 또 아니다.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가?

문재인-민주당 정부의 행적을 따지기 전에 우선 확인해야 할 것은 새 정부의 행보를 제약하는 두 가지 무거운 족쇄다.

첫째 족쇄는 북한 핵무기 개발을 둘러싼 한반도 긴장 격화다. 출범 이후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는 이 문제를 푸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경쟁 정파의 눈으로 보더라도 국내 개혁을 가속화하지 못하는 사정을 이해할만하다. 반면 극우 세력은 이 문제를 최대한 활용해 생존을 도모하고 있다. 분단 70여 년 동안 남한 내에 변화의 기운이 꿈틀댈 때마다 한반도 문제가 발목을 잡았는데, 이번에도 우리는 이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둘째 족쇄는 촛불 이후의 민심 분포와 괴리된 국회 내 세력 균형이다. 촛불이 새누리당을 쪼개서 대통령 탄핵을 관철하기는 했다. 그러나 촛불이 만들어낸 국회의 변화는 일단 거기까지였다. 조기 대선으로 행정부가 바뀐 뒤에도 입법부만은 여전히 촛불 이전의 세력 관계에 고착돼 있다. 새누리당 계승 세력인 100석 안팎의 자유한국당이 모든 변화의 완강한 장애물 노릇을 하고 있다.

이 두 족쇄를 감안하면, 새 정부를 야박하게만 평가할 수 없을지 모르겠다. 사실 문재인 정부의 첫 출발은 사뭇 인상적이기까지 했다. 6월 항쟁이 12월 대선 패배로 끝난 기억과 견준다면, 촛불 시민들의 승리감을 더욱 높여줄만한 출발이었다.

그러나 이후 행보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나는 특히 위에 지적한 두 번째 족쇄와 관련해서 새 정부 첫 해를 냉정히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문재인-민주당 정부는 불리한 국회 의석 분포를 고려해 때로는 사자 같고 때로는 여우 같은 협력-대결 병행 전략을 구사해야 했다. 실은 협력과 대결을 병행하기는 했다. 그런데 방향이 잘못 된 경우가 많았다. 협력해야 할 때는 쓸데없이 대결하고 정작 대결을 감수해야 할 때는 맥없이 협력했다.

예를 들어 장관 임명 절차는 새 정부가 굳이 연립정부를 구성하지 않더라도 야당들을 최대한 협력의 장으로 끌어낼 기회였다. 자유한국당은 제쳐두더라도 탄핵 참여 야당들을 장관 후보자 추천 과정에 참여시킬 수 있었다. 그랬다면 장관 임명 과정이 이른바 '야3당'(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이 결집하는 계기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촛불의 연장선에서 야당을 '촛불 대 반촛불' 구도로 나누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또한 '야3당'이 모두 협력을 거부했더라도 이는 새 정부의 정당성을 높여주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높은 지지율에 취해서인지 이런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다.

반면 2018년 예산 결정 과정에서는 대결을 불사해야 했다. 특히 대통령 핵심 공약이었고 국민들의 지지도가 높은 아동수당 신설과 기초연금 인상이 그랬다. 애초에 자유한국당의 반대가 예상됐다면, 미리 여론전을 펼쳐야 했다. 그래서 이 쟁점을 둘러싸고 개혁 여론, 반자유한국당 여론이 비등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정부는 상층 협상만을 통해 너무 쉽게 시행 시점 연기를 받아들였다.

전반적으로 정부는 민심에 기대면서도 민심을 북돋지는 못하고 있다. 여전히 2/3선에 달하는 높은 지지가 문재인-민주당 정부의 가장 큰 자산이지만, 정부-여당은 막상 이 자산으로 해야 할 일은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미적댈 때가 아니다. 민심의 힘으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민심은 언제고 이완될 수 있다.

새 정부만이 아니라 사회운동도 약점을 노출했다

하지만 사회 개혁 움직임이 주춤한 주된 책임을 논하자면, 정부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사회운동에 주목해야 한다. 1987년에는 헌법이 바뀌기 전에, 정권이 교체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노동자 대투쟁이 폭발했다. 순전히 대중운동이 주도해 개혁 국면이 열렸다. 오늘날 문제의 핵심은 이런 국면을 열지 못하는 사회운동에 있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최저임금 인상 수준이 애초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이를 둘러싼 논란도 많지만, 어쨌든 이는 노동 진영이 오랫동안 쟁점화해 성사시킨 개혁이었다.

최근에도 몇몇 현장에서는 뜻깊은 성취나 시도가 눈에 보인다. 무엇보다 MBC가 노동조합의 힘으로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서울대병원 분회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MBC는 혹독한 탄압에도 지난 10년간 정권의 언론 장악에 맞선 투쟁이 이어진 곳이다.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은 백남기 농민 사건 때 연대의 기풍을 보여준 바 있다. 준비된 곳에서는 이렇게 촛불 다음 단계의 전진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많은 곳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특히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공론화되자 그간 잠복했던 문제들이 아프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직접적인 경제적 이해 충돌이 없는데도 많은 정규직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고 나섰다. 신자유주의가 전면화하고 나서 노동시장 경쟁과 분단이 첨예해진 결과가 무엇인지 이제야 실감되고 있다. 또한 한국 사회의 오랜 유산(유교적 능력주의? 고시주의?)과 결합된 한국 자본주의의 독특한 양상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

논란이 불거진 몇몇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곳의 기업별 노동조합이 유별나게 잘못해서 생긴 문제 또한 아니다. 노동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 전반의 준비 태세에 문제가 있었다. 사회운동은 늘 "신자유주의 극복"을 외쳤지만, 실제로 그게 어떤 의미이며 어떤 양상으로 닥칠지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다. 관료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수치와 표, 그래프로만 현실을 읽었다. 모종의 '경제주의'가 지배했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경쟁 20여 년을 거치고 나서 대중의 의식, 정서, 상상력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채 고민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이 점이 1987년과 다르다. 1987년에는 민주노총도 없었고 사회운동이라 해봐야 비합법 서클 수준이었지만, 준비 정도는 오히려 지금보다 나았다. 사회운동이 제시한 이념 틀이 당시 한국 사회와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너무도 잘 통했기에 6월 항쟁 직후에 대기업 사업장에서 자발적 파업들이 터져 나오고 이런 움직임이 이후 민주노동조합운동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때의 이념 틀이 대단한 무엇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때는 수준이 높았는데 30년만에 사회운동의 인식과 전망이 퇴행한 게 아니다. 지금의 경제주의가 바로 그때의 사회운동 이념이었다. 똑같은 이념 틀이 당시는 얼마간 시대에 부합했고, 지금은 전혀 그렇지 못할 뿐이다. 고도성장 와중에 극소수를 제외하고 대다수가 낮은 소득 수준에 있을 때는 "임금인상=노동해방" 식의 사고도 쓸모가 있었던 것이다.

반면 촛불 이후는 사정이 다르다. 1987년 수준의 노선에 따라 노동운동이 다다른 종착점이 '20 대 80' 사회로 나타나고 있다. 기존 노선만 고집했다가는 사회운동이 촛불 이후 사회 개혁을 주도하기보다는 사회를 더욱 파편화하는 한 요소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흔히 '회개'로 번역되지만 실은 '회심', '고개 돌려 다른 방향 바라보기'를 뜻하는 '메타노이아' 수준의 전환이 감행돼야 할 때다. 경제주의에서 벗어나 자존감과 이기주의, 상처와 회복력, 전통과 상상력 사이에서 어지러이 요동치는 인간 존재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사회운동은 결국 이 길에 나설 것이다. 앞 세대가 못한다면, 다음 세대가 일어설 것이다. 분명히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라나고 치유하고 만들어내는 데 어울리는 인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촛불 이후 사회운동의 르네상스는 장기전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사회운동의 재구성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지배 체제가 재편돼 속도 싸움에서 밀릴 수도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이 위험의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사회 개혁 공세와 선거제도 개혁의 변증법

내년을 전망해보면,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 나는 이 칼럼 지면에서 촛불의 승리를 낳은 예외적인 세력 균형을 짚으며 '촛불 형세'라 부른 바 있다(☞7월 4일자 칼럼 바로 가기 : "익숙한 정치 문법의 반복, 더 이상 안 된다"). 여성, 청년 등이 함께 한 광범한 개혁 연합, 민주당의 비일상적인 정치적 선택, 범보수 블록의 분열 등이 촛불 형세를 이룬 주요 요소들이었다. 지금 이들 요소가 이완되고 있다. 다행히 아직 완전히 해체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촛불 연합은 '마지노선 민주주의'파(☞9월 12일자 칼럼 바로 가기 : "지금 적폐가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와 이에 만족하지 않는 흐름으로 나뉘고 있다. 새 정부는 점점 일상의 논리에 고착되는 것 같다. 자유한국당은 몸집을 불리는 중이다. 이렇게 촛불 형세가 점점 더 이완되면, 결국 오랜만에 열린 개혁의 기회는 유실되고 말 것이다. 개헌도, 선거제도 개혁도 벽에 부딪힐 것이다. 멸망해가는 세력의 방해 때문에 다시 세월을 허비하고 말 것이다.

그럼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일단 빤한 장애물이 예상됨에도 국회 개혁은 계속 밀어붙여야 한다. 대통령이 국회 연설에서 표명한 것처럼, 내년에 가장 중요한 정치 현안으로 개헌, 선거제도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2018년 안에 실현 못하더라도 현 국회 임기 끝날 때까지 중단 없이 압박해야 한다. 2020년 총선을 어떻게든 승자독식제도 아닌 새로운 게임 규칙으로 맞이하는 것, 그래서 몰락하는 세력이 부당한 정치 지분을 챙기지 않게 하는 것이 촛불 정치 개혁의 완성이다.

그러자면 국회 개혁과 함께 반드시 사회 개혁 공세를 병행해야 한다. 올해처럼 주저하고 뜸 들여선 안 된다. 원내에서 극우 세력이 반대해 안 된다는 말은 변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다수 국민이 바라는 개혁을 극우 세력이 반대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저들을 고립시킬 수 있다는 태도로 임해야 한다. 이런 모습이 자주 재연될수록 국회 개혁의 열망과 의지 또한 높아질 수 있다.

개혁 의제 중에서는 특히 그간 개혁 담론에서마저 뒤로 밀렸던 이들의 권리를 강화하는 쟁점들이 적극 제기돼야 한다. 예를 들면, 임대료의 사회적 통제가 그런 쟁점이다. 이는 청년과 저소득층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면서 부동산 불로소득 규제라는 한국 사회의 가장 시급한 구조개혁 과제 중 하나다. 지방선거 등을 계기로 이런 의제가 부각돼야만, 여성, 청년 같은 새로운 주체들의 정치 참여가 촛불 시위 때처럼 다시 활발해질 수 있다.

민주당 정부가 '20 대 80' 중 '20'의 눈치를 보느라 이런 갈등적 쟁점을 다루길 꺼려한다면, 진보 세력이 앞장서야 한다. 작년 말 촛불 정국에서도 민주당이 좌고우면할 때마다 정의당이 한 발 먼저 "대통령 퇴진", "탄핵" 등을 제시해 제 몫을 한 바 있다. 덕분에 촛불 대열이 흔들리거나 쪼그라들지 않고 오히려 급진적인 목소리를 끌어안으며 확장될 수 있었다. 이제는 진보정당이 비정규직, 청년, 여성에게 시급한 사회 개혁 의제들을 던지며 그때와 비슷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제 국회 개혁과 사회 개혁이 병행 추진돼야 한다. 둘은 형식과 내용의 관계이며 상호 상승을 일으킬 수 있다. 반대로 어느 한 쪽이 힘을 잃으면 둘 다 제대로 추진되지 못할 운명이다.

2017년 촛불이 1987년 6월 항쟁보다 못한 결말로 끝날지 아니면 이를 훌쩍 뛰어넘을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내년조차 그 마지막 결판의 해는 아닐 것이다. 더 장기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이 그 결말을 결정할지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것은 국회 개혁과 사회 개혁의 변증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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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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