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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혁명이 '국회의 덫'을 벗어나려면

[김윤태 칼럼] 여소야대 국회와 시민혁명의 모순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는 "혁명이 성공하는 순간 혁명가는 보수적으로 변한다"라는 말을 했다. 촛불 시민혁명이 국회의 탄핵으로 성공하는 순간에 국회는 혁명을 중단했다. 국회에서 민생 예산이 후퇴하고 개혁 입법은 희미해지고 선거구제 개혁과 개헌 논의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시간이 갈수록 촛불을 든 시민의 혁명적 요구에 국회와 정부가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촛불 시민혁명이 헌법적 민주주의의 틀에서 이루어진 구조적 한계로 '여소야대' 국회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촛불을 든 시민은 정권교체를 이룬 순간 직장과 학교로 돌아가고 1년 만에 시민혁명은 멈춘 것처럼 보인다.

촛불 시민혁명의 한계

시민혁명을 주도한 대중의 직접행동은 대통령의 탄핵과 정부의 교체를 이룩했지만, 한국 사회의 실질적 변화를 이룩한 것은 아니다. 결국, 사회의 개혁은 의회의 입법과 예산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수 여당은 입법과 예산을 주도할 힘이 없다. 국회의 도움이 없다면 청와대의 정책은 그저 '발표'에 그칠 수밖에 없다. 청와대와 여당이 연합정부나 정치 공학을 거부하는 도덕 정치(moral politics)를 존중한다고 해도, 국회는 철저한 현실정치(real politics)의 현장이다.

이런 점에서 시민의 직접행동은 대의민주주의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역할에 머무르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촛불 시민혁명 이후 헌법적 절차(탄핵)와 정부 교체(대선)에 매몰되어 촛불 시민혁명에서 분출한 대중의 다양한 요구를 정당이 대변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많아지고 있다. 소수파 정부는 개혁 의제를 추진하는 동력이 근본적으로 취약하다는 '국회의 덫'에 갇혀 있다.

한편 영국 사회학자 콜린 크라우치가 지적한 대로 자유로운 선거 등 형식적 평등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정책 결정에 대다수 사람이 참여하지 못하고 불평등이 심화되는 '포스트 민주주의(post-democracy)'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주기적 선거와 빈번한 촛불집회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정부의 정책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미약하다. 촛불 시민혁명의 성공 후에 '민주주의의 위기'가 발생했다는 지독한 역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음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적폐 청산과 법치

최근 일부 정치학자들은 '적폐 청산'은 선악을 구분하고 도덕적 원칙에 집착하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적절하지 않다. 적폐 청산이라는 용어가 박근혜 정부가 처음 사용했으며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최선의 용어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적폐 청산이 부정선거, 권력 남용, 권력형 부패를 바로잡는 것이라면, 이는 법에 의한 지배(rule of law, 法治)라는 민주주의의 핵심적 가치에 부합한다.

촛불 시민혁명이 박근혜의 권력 남용, 최순실의 부정 특혜, 삼성의 불법 행동으로부터) 촉발되었으니 훼손된 법치주의의 원칙을 지키고 법 앞의 평등(형식적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하다. 신분 차별과 특권을 철폐하고 법 앞의 평등권을 수호하는 것은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 이후 민주 국가에서 면면히 내려오는 전통이다.

이런 의미에서 촛불 시민혁명이 열기를 계승하여 고위공직자수사처 설치와 국정원법 개정도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적폐 청산에 대한 높은 국민의 지지는 민주주의의 원칙에 대한 지지로 해석할 수 있다.

▲ 2016년 말부터 진행된 촛불 시민혁명의 한 장면. ⓒ프레시안(최형락)

사회경제적 개혁의 중요성

촛불 시민혁명에서 대중의 요구는 박근혜의 하야, 탄핵, 구속으로 초점을 이동했지만, 그 구조적 배경에는 부정부패, 권력 남용,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광범한 대중의 불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수 천만 개의 촛불에는 법 앞의 평등권에 이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경제적 평등권을 요구하는 시민의 열망이 담겨 있다.

정당과 시민사회단체가 분배적 정의를 향한 대중적 요구를 적극적으로 대변하지 못했지만, 사회경제적 개혁은 촛불 시민혁명의 완성을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사회정의와 평등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영국의 사회학자 토머스 험프리 마셜이 '사회적 시민권(social citizenship)'을 강조했듯이 세계인권선언과 현대 국가의 헌법은 동등한 지위를 가진 모든 시민의 사회경제적 권리를 강조한다. 대한민국 헌법 2조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한다고 말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법률과 제도는 아직 부족하다.

경제 문제만 해결하면 다른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은 오류이다. 재벌 개혁도 자본을 소유한 초부유층 내부의 권력 배분의 문제이기 때문에 국민의 생활을 개선하기에는 부족하다.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는 보편적 복지국가를 만들고 노동자를 대변하는 사회적 대화와 산업민주주의가 필요하다. 더 많은 사회적 평등을 추구하고 더 많은 참여를 보장하는 민주화운동의 2단계가 필요하다.

좋은 거버넌스

촛불 시민혁명에서 정부의 실정과 부패에 저항한 시민의 직접행동은 제도적 차원의 개혁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이미 지난 이십 년 동안 전 세계적 차원에서 정부 이외에 초국적 기구, 지역 조직,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거버넌스(governance)가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정부가 중요한 정책을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대신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토론과 숙의를 벌이는 협치(協治)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시도한 원전 건설에 관한 공론위원회는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이미 1990년대 이후 국제사회에서 거버넌스가 시민의 참여를 통한 민주주의 모델로 부상하고 있다. 시민사회가 정부와 시장의 실패를 유연하게 바로 잡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유엔(UN)은 '좋은 거버넌스(good governance)'의 8가지 특징으로 참여, 합의, 책임성, 투명성, 반응, 효과성과 효율성, 형평과 포용, 법의 지배를 지적했다. 이러한 거버넌스를 통해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가장 취약한 사회집단의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촛불 시민혁명에서 등장한 시민의 목소리는 협치라는 제도적 틀에서 생활정치의 일상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개헌과 선거구제 개혁

촛불 시민혁명에 터져 나온 대중의 요구를 제도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제왕적 대통령제(imperial presidency) 대신 국민의 기본권과 의회의 권력을 강화하는 개헌이 필요하다. 모든 시민의 존엄과 권리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권의 지속적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특히 보편적 공교육을 비롯하여 건강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 사회보장을 제공할 제공해야하는 국가의 의무를 실현하는 제도적 개혁이 시급하다.

현재 야당의 반대로 개헌이 험난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바로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정치권의 개헌특위 이외에 광범한 시민들이 참여하는 개헌 논의와 개헌 추진 기구가 필요하다. 선거 제도의 개혁도 시급하다. 대중의 다양한 정치적 욕구가 효과적으로 표출될 수 있는 독일식 정당 명부 비례대표제를 확대하거나 스웨덴식 대선거구제 개혁이 필요하다.

미국 정치학자 피터 홀과 영국 정치학자 데이비스 사스키스가 미국과 유럽의 비교 연구에서 분석했듯이, 의회의 다수당이 권력을 장악하는 다수제 민주주의(majoritarian democracy)보다 다양한 정당의 연합정치를 추구하는 합의제 민주주의(consensus democracy)가 사회 통합적 제도를 만드는데 효과적이다.

다수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고 소수파와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는 승자 독식 정치(winner-takes-all politics)는 사회의 분열을 악화시킬 수 있다. 지나친 권력 독점을 허용하는 다수제 민주주의보다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합의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범국민적 선거법 개정 운동이 필요하다.

장기적 혁명

2016년 촛불 시민혁명은 단순하게 정부의 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삶의 질과 복지수준을 높이는 지속적인 개혁 과정으로 발전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시민혁명의 촛불은 여소야대의 국회 앞에서 그대로 꺼지고 말 것이다. 시민혁명의 정치적 열광과 환멸의 반복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법치의 확립, 사회경제적 민주화, 거버넌스 개혁, 헌법 개정, 비례대표제 강화 등 제도적 개혁이 중요하다. 시민혁명은 장기적 혁명(long revolution)이며,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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