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이 '굴욕외교'라며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중국 정부의 외교적 결례 때문이다. 의전 무시나 기자 폭행 사건은 물론이고, '국빈'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중국 내 주요 인사들과의 접촉이 불발되었고 면담도 형식적인 수준이었다. 더욱이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도 채택하지 못하고 정상회담 주요 의제나 내용조차 공개되지 않은 것을 보면, 단지 중국의 대국적 오만 때문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중국은 결코 한국을 허투루 대하지 못한다. 큰 나라인 중국에 오랜 기간 눌려 살던 한국은 중국에 대해 콤플렉스를 갖지만, 중국 또한 한국에 대해 깊은 트라우마가 있다. 중국 역대 왕조의 대륙 경영에서 한반도와 만주에서의 정세변화는 그들의 정치적 존립 자체의 중요한 변수였다. 당태종과 청태종이 한겨울 만주의 삭풍을 뚫고 한반도로 친정까지 하면서 군사적 공략을 하려 했던 것이나 마오쩌둥이 한국전쟁에 개입했던 상황도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것'을 건 한판 승부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방중 당시, 시진핑 주석이 보여준 극진한 환대도 그들이 갖고 있는 한국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 예다. 한국이 작고 보잘것없는 나라였다면 그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중국이 문재인 대통령을 허투루 대했다.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중국의 외교 결례는 국빈방문 교섭 당시부터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다. 정상외교의 핵심은 상대국이 보내는 고단위의 외교 메시지를 해석(디코딩)해내는 것이다. 문제가 된 중국 정부의 외교 결례는 고압적이거나 오만하다기보다는 무관심으로 보인다. 중국은 애당초 이번 방문이나 회담에 깊은 관심이 없었다. 19차 당대회 직후 중국 지도부는 아직 한중간 핵심 의제에 대한 입장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들의 속내가 문 대통령 방중 기간 중 행동으로 표출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외교팀이 성급한 기대감에 급히 방문을 추진하다보니 의전과 성과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외교는 얼마나 주변 정세를 정확히 판단하고 핵심의제에 전략적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꼭 강대국이라고 유리한 것도 아니다. 이를 위해 상대방을 압박할 카드가 필요하다.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을 미국으로 초청한 존슨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을 한국으로 보내 박 대통령이 타고 오도록 했다. 더욱이 워싱턴 중심가에서 카 퍼레이드를 열어주고, 백악관에는 쌀밥과 김치를 준비하였으며, 환영만찬장에서는 '아리랑'을 연주했다. 당시 최빈국이었던 한국 대통령에게 미국으로서 가히 파격적인 대우를 한 것이다. 다름 아닌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 때문이었다. 이번 방중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의 '베트남 파병' 같은 결정적 카드가 없었다.
하지만 국빈 방문의 격에 맞는 의전과 성과를 도출할 나름의 복안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최소한 방중 직전에 실시했던 대규모 한미합동군사훈련은 방중 이후로 연기했어야 했다. 이는 평화와 공동번영을 논의하는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이자, 무엇보다 중국을 압박할 히든카드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기본 입장인 '쌍중단'을 국빈 방문 직전 정면으로 무시하고 대접을 받겠다고 기대한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현재 중국도 마음이 불편하기는 매한가지이다. 양측의 무역, 투자 및 문화 교류의 크기를 고려하면 중국도 한중관계를 조속히 복원시키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결국 양측 사이에 사드 문제를 포함한 용인될 수준의 합의가 도출돼야 한다.
한국이 처한 지정학적 현실은 매우 예민하며 엄중하다. 이웃나라인 일본이 굳건히 미국만 붙들고 있으면 되는 것에 비해,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변화하는 상황을 민감하게 인식하고 대응 수위를 조절해야한다. 이를 위해서 우선 '중국은 오랑캐, 미국은 우리를 도와준 나라'라는 단순한 이분법에서 벗어나 중견국가에게 요구되는 대외 정책의 방향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또한 방중 외교에 관해 일차적 책임이 있는 외교라인도 진지한 반성이 필요하다. 나아가 장기적인 외교정책 수립과 집행을 위해 청와대 외교정책실을 국가안보실에서 독립시키는 방안 또한 고려해봄직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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