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원세훈 잘라라"…청와대 '나 몰라라'

정두언 "국정원이 마비상태란 이야기 오래전부터 들어"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잠입 사건과 관련해 원세훈 국정원장의 거취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한나라당 내부에서 '원세훈 국정원장 문책론'이 비등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 분위기는 또 다르다. 자칫 당청갈등으로 비화할 기미도 보인다.

"원장 경질이 쇄신의 출발점이다"

전날 이미 원 원장 사퇴를 주장했던 홍준표 최고위원은 23일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인도네시아 특사단 호텔 숙소 침입 절도 사건을 통해 국정원이 국제적인 웃음거리를 사고 있다. 국정원이 쇄신되어야 한다. 쇄신의 출발은 국정원장의 경질"이라고 말했다.

홍 최고위원은 "내부 갈등 문제라든지 국방부의 갈등문제라든지 이런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국정원장을 내보내려고 한다는 분석을 하는 것, 그 갈등이 노출된 다는 것 자체가 원장으로서의 책임을 져야하는 문제"라며 이같이 말했다.

홍 최고위원은 "국정원은 천안함, 연평도 사건으로 '대북 정보 능력 약화'가 아니고 아예 (대북 정보 능력이) 부재하다는 비판을 받아왔고 또 아랍어도 모르는 직원을 리비아에 파견해서 리피아 스파이 사건을 야기해 한-리비아관계가 단절 지경까지 간 적이 있다"고 과거 사례들을 들기도 했다.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불법 사찰을 당했다고 주장해오고 있는 정두언 최고위원은 "국정원이 시스템이 상실한지 오래이다. 홍 최고위원이 쇄신해야 한다고 하는데 정상화를 해야할 지경"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정 최고위원은 "전 정부 인사도 다 교체한다고 하면서 너무 인사가 자의적으로 수시로 시도 때도 없이 이루어져서 국정원 자체가 기능이 상실되고 마비상태에 있다고 오래전에 들었는데, 이 문제를 문책차원이 아니라 중추기능의 마비, 상실기능을 회복시키는 문제라고 같이 인식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몽준 전 대표도 "국내에서 산업 정보에 대한 활동(스파이)을 하다가 일이 이렇게 됐는데, 정보기관에서 산업 정보 활동하는 것을 대국민홍보용으로 너무 가다보니 실제 국정원이 뭐하는 곳인지 우선순위가 흐트러지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정 전 대표는 "과거 안기부 시절에는 미국내에서 불법 산업스파이 하는 나라로 대한민국이 1등인가 2등으로 꼽았었다"며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국정원 자체에서 잘 정리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당의 이같은 기류에도 청와대 분위기는 원 원장 유임 쪽이다. 지난 21일 원 원장이 청와대로 들어온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그 이후 '적절한 시기에 교체 가능'이야기는 들리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원 원장을 경질하면 국제적으로 이번 일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는 논리지만 이명박 대통령 특유의 인사 스타일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원 원장에 대한 여당의 신뢰가 이미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서, 여론을 등에 엎은 경질론이 힘을 얻을 경우 청와대도 난감한 상황에 처할 수 밖에 없다. '모른 척'에도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