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2011년 현재 벌어지고 있는 복지논쟁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이렇게 표현했다. 14일 서울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내 의원 모임 '민주희망쇄신연대' 주최의 토론회에 참석해서였다.
총선과 대선을 1년 넘게 앞두고 있는 지금 벌어지는 복지 논쟁의 최대 수혜자가 누가 될지 현재로서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이같은 우려는 최근 복지논쟁이 여야 공방이 아니라 민주당 내, 더 넓게는 야권 내 공방으로 진행되는 데 있다.
복지 의제를 선점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정교하고 설득력 있는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못한 채 증세의 필요성에 대한 논쟁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야권 내 주도권 다툼 양상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실제 민주당 내 이른바 '빅3'는 복지 재원 마련 대책을 놓고 서로 다른 의견을 내고 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가장 왼쪽에서 '부유세'를 주장하는 반면 손학규 대표와 민주당 재원조달방안기획단은 "증세 없이도 가능하다"고 맞서고 있는 것.
"민주당의 증세 논쟁, 손학규-정동영 주도권 다툼은 위험하다"
이에 오건호 실장은 이날 "보편적 복지,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토론회에서 "복지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한 논쟁은 필요하지만 서로 힘을 모으는 방식이 아니라 지나치게 주도권 다툼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오건호 실장은 "복지재정 확보를 위해서는 (손학규 대표 등) '비증세론자'들이 주장하는 지출개혁도 필요하고 증세도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며 두 세력 모두를 비판했다.
'비증세론자'들의 주장이 허황된 이유는 간단하다. 보편적 복지가 민주당이 지금 내놓은 '3+1 정책(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 반값 대학등록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
오건호 실장은 "공공주거, 기초노령연금, 최저생계비 현실화, 일자리 등이 (무상복지 시리즈와) 함께 추진되어야 하는 만큼, 아주 낮게 잡아도 최소 30조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며 "결국 민주당은 내년 대선까지 현재 20조 원에서 조금씩 조금씩 필요 예산 규모를 늘려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동영 최고위원 등 '증세론자'들에게도 오건호 실장은 우려를 표명했다. 오건호 실장은 "보편 복지의 원리에 조응하려면 증세 주체도 결과적으로는 가능한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며 "벌써부터 '부자 증세'로만 못 박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시민들로 하여금 '복지 혜택이 이 정도 늘어난다면 내가 세금 더 낼 수 있다'는 참여를 끌어내야하는데, '부유세' 등 부자증세론은 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다는 지적이다.
"보편적 복지국가, 노동시장 개혁 없는 '무상시리즈'로는 안 된다"
▲ ⓒ연합뉴스 |
그러나 증세 자체만 놓고 논쟁이 길어질 경우 '어떤 복지국가인지'에 대한 논쟁은 자연히 소흘해질 수밖에 없다. 복편적 복지가 민주당의 '3+1 정책'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이날 토론회에서 많은 전문가들은 보편적 복지는 결국 노동복지, 즉 노동시장에서의 1차 분배 구조를 개선하는 것과 함께 진행돼야만 한다고 입을 모았다. 문진영 서강대 교수는 "증세를 통한 복지확대 효과를 증폭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시장의 개혁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이미 소득격차가 엄청난 상태에서는 복지라는 2차 분배의 효과도 적고 지속가능성도 낮다"고 덧붙였다.
김용익 교수도 "실업수당과 같은 노동 복지 영역의 기본 과제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전면적 재검토를 통해 전략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익 교수는 "충분히 성숙된 국가운영 비전이 없으면 사안이 있을 때마다 민주당은 표류할 것이고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오히려 민주당이 논리적 코너에 몰릴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복지국가 실현, 성공한 복지 모델 창출이 시급하다"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은 민주당이 주도하고 있는 복지 논쟁을 놓고 "한 마디로 문제제기는 잘 했지만, 이것으로 집권 하겠냐라는 의구심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대근 논설위원은 "민주당이 '3+1 정책'을 통해 과거의 모호한 노선을 정리한 것은 분명하지만 '무상 시리즈'를 먼저 내놓고 '어떻게 실현할지'를 고민했다"며 "이처럼 순서가 틀리면서 의지에 대한 의혹을 남기고 증세가 불가피한 복지국가를 왜곡시키는 역효과를 냈다"고 말했다.
이대근 논설위원은 '증세론자'들을 향해서도 "증세가 불가피하지만 불가피하다는 것이 가장 우선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비판했다. 증세를 앞세우면서 현재 상태에서는 불필요한 거부감만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대근 논설위원은 대표적인 실패의 예로 노무현 정부의 '국가비전 2030'을 들었다. 이 논설위원은 "국가비전 2030은 복지 국가를 위한 장기 계획이었으나 이미 집권세력이 분열하고 몰락하던 중에 나왔다는 점에서 '유서'에 불과했다"고 평가했다.
이 논설위원은 "복지국가의 실현을 위해서는 하나의 복지 성공 모델 창출이 중요하다"며 실현 가능성을 강조했다. 이 논설위원은 "덜 중요하지만 시급한 것이나 덜 시급하지만 실현하기 쉬운 것에 집중해 성공을 일구어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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