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원장을 놓고 다시 이런 정치지형이 형성됐다. 이번엔 유 원장이 적극적으로 주도했다. 지난 연말부터 여야가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복지 논쟁에 유 원장이 끼어들었다. 문제는 민주당이 의욕적으로 밀어붙이는 '3무+1반(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 반값 등록금)' 정책에 대해 맹비난하고 나선 것.
유 원장은 지난 13일 <중앙선데이>와 인터뷰에서 민주당의 주장에 대해 "선거용 캐치프레이즈로는 의미 있을지 모르지만 정치인이 논의를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며 "우리도 이명박 대통령처럼 747 공약이나 하게 될까봐 두렵다"고 평가했다.
유 원장은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진보, 보수를 갈라치고 원조 진보와 짝퉁, 명품 진보를 나누는 게 아니다"며 "지금 야권이 겪고 있는 어려움의 근본은 신뢰의 위기다. 신뢰가 없으면 어떤 정책을 내놔도 국민이 안 받아주는데 이래서는 신뢰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무상급식에 대해서는 유 원장은 "나는 이건희 회장 손자에게 공짜밥을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오세훈 서울시장을 포함한 한나라당과도 각을 세웠다.
진보정당에 '러브콜'하던 유시민이 왜?
▲ 유시민 원장. ⓒ계간 광장 |
그는 최근 발간된 <계간 광장>의 대담에서도 "무엇보다 국가가 복지를 어떻게 실현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포괄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며 "복지는 전체 틀을 놓고 어떤 정책들이 필요한지 우선순위를 봐가며 토론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인데 (요즘은) 무상급식, 무상교육 등 개별 사안별로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 와중에 증세 문제까지 겹쳐 상당히 혼란스러워 보인다"고 민주당이 주도하는 복지 논쟁에 대해 비판했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 원장의 이런 생각은 민주당 내의 '오른쪽'에 속한 이들의 '단계적 복지론', '점증적 복지론'과도 맥을 같이 한다.
복지에 대한 다소 '보수적'인 유 원장의 입장은 2012년을 앞두고 야권의 또 하나의 큰 화두인 '정치연대'에서 문제가 된다. 유 원장은 야권연대에 있어 '비민주 진보통합'에 관심을 보여왔다.
유 원장은 지난 해 11월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참여당이 노선상 차이는 민주당보다 진보정당과 더 크지만 지역에서 보면 당원들이 오히려 민주당보다 진보정당 당원들과 더 잘 지낸다"며 "지난 지방선거 때 보니 민주노동당이 민주당에 비해 훨씬 책임이 있고 성숙한 정당인 것 같다"고 민노당에 대한 호감을 드러냈다. 유 원장은 지난 1월 <한겨레>와 인터뷰에선 "참여당까지 포함한 진보통합을 하자"며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진행하고 있는 진보정당 통합 논의에 참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파티에는 초대 받아 가는 게 좋다"며 아직은 '관찰자적 입장'임을 전제했지만 말이다.
현재 '초대받지 못한 손님'인 국민참여당의 유일한 대권주자인 유 원장이 민주당의 '3무+1반' 복지정책마저 "무책임한 주장"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은 어떤 정치적 계산에 기반한 것일까?
더구나 유 원장이 2002년 대선 때부터 쏟아냈던 민노당 관련 발언으로 진보정당 내에서 그에 대한 '감정적 앙금'과 '불신'이 크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의 속내는 더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든다. 유 원장은 2002년 대선 당시 정몽준 의원이 선거연합을 깨버리자 "피 보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민주노동당"이라고 했다가, 정작 노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자 "민주노동당 덕 본 거 없다"고 말해 비난을 샀었다. 2004년 총선 때도 "득표력이 매우 높은 극소수의 후보를 제외하면 지역구에서 민노당 후보가 얻는 표는 모두 죽은 표가 된다", 2005년 재보선에선 "우리당이 중도노선의 당이라서 왼쪽으로 가려면 민노당과 타협해야 되는데, 한나라당과의 타협을 위해 오른 쪽으로 이동해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폭으로 왼쪽으로 이동해야만 협의가 가능하다" 등 민노당과 지지자들을 자극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복지 논쟁은 '오른쪽'에서, 선거연대는 '왼쪽'에서 하겠다는 유 원장의 전략이 성공할 수 있을까?
"유시민, 당분간 안정감 확보에 주력할 것"
우선 유 원장의 이번 발언이 '말실수' 차원이 아닌 치밀한 계산에 기반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민주노동당 관계자는 "유 원장은 논쟁은 일으켜도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처럼 설화, 필화를 일으키는 타입이 아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번 <중앙선데이>와 인터뷰를 통해 유 장관이 크게 2가지, 부수적인 측면까지 따지면 3가지를 얻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연말부터 설 이전까지 1차 복지논쟁이었다면, 유시민 인터뷰로 2차 복지논쟁이 촉발된 셈"이라면서 "유 원장이 민주당 주도의 복지 논쟁에 어렵지 않게 숟가락 하나 얹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론을 비판하면서 점증적, 단계적 복지론을 주장하고 나섬에 따라 보수층에게 자신이 위험한 정치인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줬다"며 "대권에 도전하는 유 원장 입장에서 당분간 안정감을 심어주는 행보를 중심으로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지막으로 이 관계자는 유 원장이 '보수층 안심시키기' 발언을 보수언론인 <중앙선데이>를 통해 냈다는 것에 대해서도 "다분히 계산된 행동"으로 분석했다.
복지정책에 대한 입장으로 진보정당과 심리적 거리감이 멀어진 것만은 사실이지만, 실제 선거연합에서 정책의 차이는 '협상 가능한 문제'라는 점에서 유 원장의 발언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유시민, 노이즈 마케팅하나?"
유 원장에게 선제공격을 당한 민주당의 반응은 격앙돼 있다. 이춘석 민주당 대변인이 유 장관을 비난하는 논평을 냈을 뿐 아니라 이인영 최고위원 등도 비판적 발언을 했다.
이철희 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 상임부위원장은 유 원장의 발언에 대해 "전략적으로도 긍정적이지 못하고 도의적으로도 적절치 못하다"면서 "민주당의 복지 정책을 이명박 대통령의 747 공약과 비유한 것은 과도한 발언 아니냐"고 말했다.
이 부위원장은 "복지논쟁에 있어 민주당과 의도적인 차별화를 꾀하려는 발언인 것 같은데 이를 통해 진보정당과 접합점을 또 하나 줄였다는 점에서 스스로 정치적 고립을 자초한 것 아니냐"며 "복지논쟁에 개입하는데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개입하는 방식으로 보자면 매우 부적절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진보진영의 공통분모가 크게 복지와 연대인데 두 가지 아젠다에 대해 상처를 낸 게 유 원장 본인에게 어떤 정치적 실익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오세훈 따라하는 유시민, 박근혜 만도 못하다"
민주당보다 한발 더 나간 복지정책을 주장하고 있는 진보신당의 평가는 더 냉혹하다. 이재영 진보신당 정책위의장은 "유시민 발언은 박근혜 만도 못하다"고 비판했다.
이 의장은 "정책적 정합성도 필요하지만 정치인이 해야 되는 여러 역할 중 하나는 사회를 이끌고 나가거나 사회 변화에 발맞추는 게 필요한데, 그런 점에서 민주당이나 박근혜 전 대표가 사회복지를 얘기하는 것은 반길만한 현상"이라면서 "여기에 찬물을 끼얹는 유 원장은 정치적 감각이나 의제를 읽는 감에서 박근혜 전 대표보다도 못한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당 복지정책이 재정 문제에 대한 계획이 치밀하지 못하다는 유 원장의 비판에 대해 "그렇다면 유 원장이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있는 참여정부가 내놓았던 '비전2030' 정책도 무책임하다는 평가가 앞서야 한다"며 "본인이 장관으로 참여했던 참여정부 문제에 대해서도 신뢰성이 없었다고 자기 비판하는게 먼저"라고 말했다.
유 원장의 이런 '우클릭'에 대해 이 의장은 "일련의 대선 프로젝트가 시작됐는데 그 컨셉은 '오세훈 따라하기'로 보인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보수층을 잡으려고 자기가 갖고 있는 개혁적 이미지를 탈색하기 위해서 무상급식 반대 전사로 나섰다"며 유 원장의 이런 행보가 "보수 영합적"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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