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나 대리는 작년 봄 이직 후 유난히 바쁜 한 해를 지냈습니다. 2년 동안 휴가를 갈 정신도 여유도 없었습니다. 올해도 남은 연차휴가는 써 보지도 못하고 안녕입니다. 나 대리는 올해 연말이 되어서야 한숨 돌리며 남은 휴가를 챙겨 보려는데, 어째 계산이 맞지 않습니다. 설날, 추석, 샌드위치 휴일 때마다 이미 연차휴가가 대체되어 소진되었다는 겁니다. 사라진 연차휴가, 어찌 된 일일까요?
휴일과 휴가
직장인에게는 '회사에 가는 날'과 '회사에 가지 않는 날'이 있을 뿐이지만, 임금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보다 복잡한 개념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휴일'과 '휴가'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휴일'은 '노동자가 노동을 제공할 의무가 없는 날'이지만, '휴가'는 '노동자에게 노동을 제공할 의무가 있으나, 노동자의 요청으로 그 의무를 면제해 주는 날'을 말합니다.
노동자의 '휴일'은 근로기준법,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 각 회사의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에 정해져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사기업의 모든 노동자에게 주어진 '유급휴일'은 주 1회 이상으로 정해진 주휴일(많은 회사가 일요일을 주휴일로 정하고 있습니다)과 근로자의 날인 매년 5월 1일이고, 나머지 휴일은 회사마다 사정이 다릅니다. 휴일을 많이 주는 회사도 있고 그렇지 못한 회사도 있습니다.
휴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휴가가 많은 회사도 있고 그렇지 못한 회사도 있는데, 휴가가 많다고 무작정 좋아할 수도 없겠지요. 만약 회사 사정이 어려워 3개월 휴가를 쓰라고 한다면 3개월 동안 월급을 받지 못하거나 깎인 채 생활해야 한다는 것인데, 무급휴가가 많다고 무작정 좋은 것은 아니겠지요. 이 때문에 우리 법은 유급휴일 외에도 연차유급휴가(이를 보통 '연차휴가'라고 부릅니다)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근로기준법(근로기준법은 상시 근로자 5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됩니다)에서는 사용자가 1년 동안 80퍼센트 이상 출근한 노동자에게 15일의 휴가를 주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고(제60조 제1항), 3년 이상 계속 근로한 노동자는 매 2년마다 연차휴가가 하루씩 늘어나기 때문에, 3년 근로 시에는 16일, 5년 근로 시에는 17일의 휴가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최대 25일). 아직 1년을 채우지 못한 노동자나 1년 동안 80% 이상 출근하지 못한 노동자라고 휴가가 없는 것은 아니고, 한 달 개근하면 1일의 휴가가 생깁니다(제60조 제2항).
결국 유급으로 정해진 휴일이나 휴가는 소정의 노동을 한 노동자에게 임금의 삭감 없이 그 노동에 따른 피로를 회소할 수 있는 휴식의 기회를 제공하고 문화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라 볼 수 있습니다.
'빨간 날'에도 휴가를 내야 하는 회사
원래 연차휴가는 원칙적으로 노동자가 원하는 때에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업장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에서는 '사용자가 사업을 운영하는 데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는 그 시기를 변경할 수 있다(제60조 제5항)'라고 정한다는 이유로, 많은 회사들은 '막대한 지장'은 아니지만 회사 사정에 맞춰 휴가를 쓰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근로기준법에는 '사용자는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에 따라 제60조에 따른 연차 유급휴가일을 갈음하여 특정한 근로일에 근로자를 휴무시킬 수 있다(제62조)'라는 독특한 규정이 있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이 규정에 의하면, 사용자와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가 있으면 법정휴일(주휴일과 근로자의 날)이 아닌 중에서 회사가 정하는 날을 유급휴가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나 대리의 회사가 제대로 유급휴가 대체 제도를 도입한 것이라면, 나 대리의 연차휴가 소진이 불법은 아닌 것이지요.
하지만 나 대리는 '빨간 날' 내 연차휴가를 내고 쉬었다고 생각하니, 왠지 억울한 생각이 듭니다. 이전 회사에서는 당연히 '노는 날'이었던 '빨간 날'이 일해야 하는 날인지도 몰랐습니다. 알고 보니 공휴일은 관공서가 노는 날이지 노동자가 노는 날은 아니라는데, 어쩔 수 없이 연차휴가를 내야 할 날도 생기는데 연차휴가를 '쓰라고 쓰라고' 하기 전에 모든 노동자에게 평등하게 보장된 휴일이 많아져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회사 취업규칙을 찾아보러 갑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