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인근 공인중개사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매매가 2억 원인 오피스텔 전세금이 1억3000만 원입니다. 60%를 넘어서죠. 그나마 물량도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정부의 전세 대책이 효과가 있겠냐는 질문에는 피식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지난 2008년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각종 재개발, 리모델링 사업 추진을 공약으로 내거는 이른바 '욕망의 정치'로 수도권을 싹쓸이했다. 그 광풍이 지나간지 3년이 된 지금 '천당 아래 분당'의 풍경은 이러했다. 주택을 소유한 이도 힘들고, 주택을 소유하지 않은 이들도 힘든게 최근 분당을 포함한 수도권 부동산 시장의 현주소다.
"MB 정부 들어 부동산으로 이익은커녕 손해 보게 생겼다"
'경기도의 강남'이라는 분당에서도 제일 알짜배기라는 정자동은 탄천을 기준으로 동쪽은 지은 지 10~15년 이상 된 아파트들이 모여있고, 서쪽에는 삼성미켈란쉐르빌 등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성남대로, 낙생로 등 도시고속화 도로로 서울 강남까지 20분 안에 주파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수도권 민심 악화는 한나라당 인사들도 공히 인정하고, 또 고민하고 있는 지점이다. 그러나 민심을 달랠 마땅한 카드가 없다. 서울 강북 지역에서는 '뉴타운' 열풍이 불었지만, 분당 같은 신도시는 재개발, 재건축이 사실상 불가능한 곳이기 때문이다.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의 아파트 단지들 ⓒ뉴시스 |
그러다 보니 지난 2008년 총선, 2010년 지방선거에서 여야 후보들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게 리모델링 활성화 방안이다. 지은 지 15년 가량 된 아파트도 리모델링을 통해 수직 증축(층수 올리기)해 분양을 하는 방식이다. 이 문제는 현재 분당의 민심을 뒤흔들고 있다.
'범수도권공동주택리모델링연합회'에 따르면 서울과 수도권에서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아파트는 86개 단지 5만4641채에 이른다. 이중 분당의 경우 무려 8600세대 이상이, 정자동의 경우 3개 단지 2800여 세대 이상이 리모델링을 추진해왔다. 리모델링을 하려고 하는 아파트 단지 대부분은 '고급'과는 거리가 먼 탄천 동쪽 지역에 몰려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국토해양부는 국회에 발의돼 있는 공동주택 리모델링 활성화 법안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안과 리모델링의 안정성 등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태도 때문에 정부에 대한 지역민들의 불신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 이 지역 관계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부동산으로 이익을 보기는 커녕, 손해를 보게 생겼다"는 것이다.
정자동에 살면서 서울에서 사업을 하는 유상일 씨(가명, 42세)는 "솔직히 이번 정부 들어서 살림살이가 나아졌느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노(NO)'다. 한나라당을 쭉 찍어왔고, 앞으로도 찍을 것이지만,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언제까지 한나라당이냐', '괘씸하다'는 얘기들도 많다"고 전했다. 이른바 '상대적 상실감'이 큰게 이곳 '부자 동네'의 민심이다.
한나라당 '아성'에 균열…"野, 후보만 잘 내면…"
수도권, 특히 서울 인근 신도시의 민심을 가늠할 수 있는 정치 이벤트가 얼마 남지 않았다. 4.27 재보선 지역에는 분당을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임태희 전 의원이 대통령실장에 임명되면서 의원직을 사퇴했기 때문이다. 임 실장은 지난 2008년 4.9 총선에서 이 지역에 출마해 무려 71.1%의 지지를 얻었다. 당시 민주당 김종우 후보는 26.7%에 그쳤다. 대선에서 나온 득표율(이명박 13만 4000 여 표, 정동영 3만 6700 여 표)와 거의 비슷한 결과였다. 사람들은 "역시 한나라당"이라는 말을 했다.
그러나 7개월 여 전에 치러진 6.2 지방선거 결과는 달랐다.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이재명 현 성남시장은 분당에서 44.6%를 기록해 50.6%를 기록한 한나라당의 황준기 후보를 바짝 쫒았다. 특히 시의원 정당 득표율은 주목할만 하다. 분당 지역 성남시의원 14명 중에 한나라당이 8석, 민주당이 5석, 민주노동당이 1석을 차지했지만, 야 4당의 정당 지지율을 다 합하면 약 47.7%다. 한나라당 지지율인 49.5%와 비교하면 불과 1.8% 차이다.
▲ 지난 6.2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민주당 이재명 성남시장은 분당에서 한나라당 후보에게 불과 6%밖에 뒤지지 않았다. ⓒ뉴시스 |
민주당 지지율만 보면 29.8%로 초라하지만 국민참여당이 당시 11.9%를 기록했고, 민주노동당이 3.4%, 진보신당이 2.8%를 기록했다. 교육감 선거에서도 보수 진영의 분열로 얻은 반사이익이 있긴 하지만, 진보 성향의 김상곤 경기교육감은 40.6%를 얻어, 강남에 버금가는 교육 특구 분당의 아성을 깨고 1위를 기록했다.
이같은 결과가 나온 것은 정자동과 구미동 등지에 몰려 있는 임대주택 단지에 살고 있는 젊은층의 투표 참여가 폭발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었다. 이른바 '부동산 부자' 혹은 '자가 입주자' 등은 여전히 강고한 한나라당 지지 성향을 보이지만, 상대적으로 소외된 젊은층을 중심으로 '반 한나라당' 정서가 강하게 불었다는 것이다.
분당을 지역은 아니지만, 지난 지방선거에서 분당의 다른 선거구(수내1,2동, 판교, 운중, 삼평, 백현동)에서 민주노동당 소속 이숙정 시의원이 당선된 것도 분당 지역에 진보 성향 유권자들의 존재를 뚜렷히 보여줬다.
분당을 지역과 거의 겹치는 분당-파 선거구에서 당선된 민주당 정기영 성남시의원은 "지금 바닥 민심이 나쁘지 않다. 임태희 실장이 당선되고 나서 장관직을 맡고, 급기야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임 실장이 지역에 해 준것이 뭐냐'는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아성'의 균열을 목격한 민주당 인사들은 "결국 '인물'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손학규 대표의 경우 경기도지사를 지낸 전력이 있어 분당에 출마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물론 범 야권의 '단일화'는 아주 중요한 변수다.
이같은 위기감이 반영된 듯 한나라당 원희룡 사무총장은 최근 "분당 지역에서 패하면 한나라당은 짐 싸야 한다"는 말로 위기감을 드러냈다. 청와대에서는 "정운찬 전 총리의 공천을 고려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강재섭 전 의원을 비롯해 박계동 의원 등 굵직한 인물로도 선거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한나라당 '엄살'?…"분당 주민이 한나라 찍는 것은 생리(生理)"
물론 한나라당이 '엄살'을 부리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여론조사만 믿다가 참패의 충격에 빠졌던 기억 때문이다. 당내 선거 전문가는 "한나라당뿐 아니라 언제나 '여당'은 '표달라'고 우는 소리를 해야 한다. 여론조사만 믿고 '원래 우리 땅이니까'라고 하는 인식은 패배로 귀결될 뿐"이라고 말했다.
분당 지역에서 10년 이상을 거주했고 이 지역 선거를 취재해왔던 경기도 지역 유력지의 한 기자는 "분당은 한나라당의 '텃밭'이다. 이게 깨지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고 전망했다. 그는 다만 "2008년 4.9 총선 이후, 한나라당 지지율이 점점 낮아지고, 민주당 등 야당 지지율이 점점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선거 분위기가 조성되고 '정권 심판론'이 대두된다면 그 격차가 상당히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분당구 수내동에 사는 이지윤 씨(가명, 30세)는 "분당 지역에는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사는데, 노인 복지가 비교적 잘 돼 있는 편이어서 만족도가 높다. 대부분 노인들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고 이들은 모두 한나라당 지지자"라고 말했다. 분당세 30년 째 거주하고 있는 임광용 씨(가명, 35세)도 "분당 사람들은 신도시 개발 초기부터 강남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많다. 이들이 한나라당을 찍는 것은 그야말로 '생리(生理)'"라고 단언했다.
'생리'만큼 무서운 말도 없다. 그러나 '욕망의 정치' 광풍이 휩쓸고 간 후 3년, 단단한 아파트 숲으로 둘러싸인 분당 사람들의 '생리'에 균열이 생길지 주목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