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발사로 미국의 대북 추가 제재안으로 떠오른 '해상 봉쇄' 카드에 대해 청와대가 논의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일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어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해상 봉쇄는 언급된 바 없다"며 "해상 봉쇄 관련 부분은 정부 차원에서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군사적 조치'를 논의했느냐는 질문에는 "군사적 조치에 대한 구체적 요구나 제안도 없었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지난 11월 29일 새벽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시험 뒤 미국은 추가 대북 제재 방안의 하나로 '해상 봉쇄'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분위기다.
앞서 일부 언론은 미국 태평양사령부가 '해상 차단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해상 봉쇄를 준비해왔으며, 지난달 우리 측에 검토 중인 실행 방안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도 외교적 해법을 강조하면서도 "기존 유엔 제재에 더해 해상 보안을 강화하는 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북한에 '해상 봉쇄' 가능성을 내비쳤다.
'해상 봉쇄'란 북한을 오가는 무역선의 운송을 공해상에서 제한하는 조치로, 원유 공급 중단과 함께 강력한 압박 카드로 거론된다. 지난 9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금지 화물을 싣고 있다는 합리적 근거가 있는 정보가 있을 때, 해당 선박 등록 국가의 동의 아래 공해상에서 검색을 할 수 있다"는 북한 6차 핵실험에 대한 대북 제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따라서 미국이 원하는 수준의 동의 없는 '강제 검색' 조항을 도입하려면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수정해야 한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이 원하는 수준의 '강제 봉쇄'에 동의할지는 회의적이다.
해상 봉쇄 방안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핵과 미사일 문제는 일차적으로는 미국과 북한의 문제이고, 우리는 북한과 미국 간 대화를 통한 외교적 방식의 해결을 선호하고 있다"며 부정적인 뜻을 밝혔다. 이 관계자는 "해상 봉쇄를 위해서는 유엔 안보리의 새로운 결의도 필요하다"며 "해상 봉쇄가 어느 정도로 효과가 있는지는 평가를 해봐야겠지 않나"라고 말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정부로선 제안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인 협의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해상 봉쇄는 이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에 포함돼있으며, 공해상에서 차단하는 경우에는 기국(선박의 등록국)의 동의 아래 실시하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해상 봉쇄' 조치에 대해 "(미국이) 요구하면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해 여지를 남겼다.
청와대 "북한 '핵 무력 완성' 선언…새로운 대화 계기될 수도"
청와대는 이번 북한의 미사일이 거리상으로 보면 ICBM급이 맞지만, 핵탄두 탑재 능력, 종말 단계 유도 기술, 재진입 기술 등에서 ICBM이 완성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북한의 미사일 기술 수준이 일부 진척된 것은 맞지만, 소위 '레드 라인'을 넘어서지는 않았다는 판단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전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어제 발사된 미사일이 모든 측면에서 지금까지의 미사일 중 가장 진전된 것임은 분명하나, 재진입과 종말 단계 유도 분야에서의 기술은 아직 입증되지 않았으며, 핵탄두 소형화 기술 확보 여부도 불분명하다"고 강조한 점도 미국이 군사적 조치, 무리한 제재 조치에 나서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대신 청와대는 북한이 스스로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간 북한은 대미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핵무기 기술을 보유할 때까지 모든 대화를 사실상 전면 거부하고 있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북한이 스스로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함에 따라 향후 협상 국면이 열리지 않겠냐는 기대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스> 같은 외신들을 보면, 북한이 스스로 미사일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새로운 대화의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는 분석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레드라인'에 대해서도 "레드라인이라는 게 크게 의미가 없다"며 "지금 한미 간에는 가장 단호한 압박과 제재를 적용하고 있고, 국제 사회가 유엔 안보리를 통해 제재와 압박에 참여하고 있다. 레드라인을 넘었기 때문에 뭘(추가 대북 강경 수단을) 하고 안 하고의 차원은 아니고, 계속해서 최고의 압박들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북한이 ICBM급 미사일을 발사하자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어설 경우 우리(한국과 미국)가 어떻게 대응할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레드라인의 기준을 핵탄두를 탑재한 ICBM급 미사일의 완성으로 잡았다.
당장 청와대는 오는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여해 남북 관계에 해빙 분위기가 무르익기를 바라는 눈치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올림픽이 한반도를 둘러싼 핵과 미사일 위기를 돌파할 계기가 될 수 있다"면서 "북한이 평창 올림픽에 참가하면 한반도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북한 IOC위원장을 다음 주에 초청해 올림픽 참가 문제를 협의하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다만,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거나 축소하자는 진보 학계의 제안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된 바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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