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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민주당 대표에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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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민주당 대표에게 바란다

[이태경의 고공비행] '2%' 부족한 신년연설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신년 기자회견은 파격적이었다. 손 대표는 '사회구조의 변혁', '사람 중심의 함께 가는 복지국가' 같은 어찌 보면 꽤 급진적일 수도 있는 표현을 사용해가며 한국사회의 문제점과 한국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해서 언급했다.

손 대표의 기자회견은 표현만이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파격적이었다. 손 대표는 대한민국 전체에 한국병이 퍼져 있다고 진단하면서 이 병의 증세를 가난의 확산, 빈부격차의 심화 및 빈부의 세습, 반칙과 특권의 만연으로 묘사하고 있다. 손 대표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의 최대 실정은 대한민국 공동체를 파괴하는 한국병을 결정적으로 악화시켰다는 데 있다.

한편 손 대표는 대한민국에 퍼진 한국병을 치유하기 위해 사회구조의 변혁, 사람 중심의 함께 가는 복지국가의 추구, 남북 간의 평화체제 구축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손 대표는 사회구조의 변혁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사회 건설, 반칙 없는 투명한 사회 구현, 질적 성장의 추구를, 사람중심의 함께 가는 복지국가의 추구를 위해 보편적 복지, 노동시장의 재분배, 사람중심의 재정 운영과 사람중심의 성장을 통한 지속가능한 복지 추구를 각각 표방하고 있다.

회견 막바지에 손 대표는 민주당이 서민과 중산층의 편에 설 것임을 강력히 천명하며, 민주진보진영의 연대와 통합을 호소했다.

한국사회의 현실에 대한 손 대표의 분석은 매우 적확하다. 손 대표는 한국사회와 한국사회 구성원들이 직면하고 있는 모순의 핵심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손 대표의 설명처럼 한국사회는 빈곤의 확산, 빈부격차의 심화 및 빈부의 대물림, 반칙과 특권의 창궐로 신음하고 있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내린 손 대표의 처방도 높게 평가할 만한 내용들을 많이 담고 있다. 특히 노동에 대한 존중, 동일노동ㆍ동일임금의 강조, 시장경제의 적들에 대한 응징의지 표명,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의 성장개념의 이동, 보편적 복지 옹호, 지속가능한 복지 추구 같은 것들은 한국사회의 특수성과 세계사적 보편성을 두루 감안한 정책 패키지로 보인다.

한 마디로 한국사회의 현실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손 대표의 신년 기자회견은 제1야당의 대표라는 타이틀에, 차기 대선주자 중 한사람이라는 지위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것이었다. 다만 손 대표가 기자회견에 담긴 문제의식을 조금 더 발전시키길 바라며 다음과 같은 것을 주문하고자 한다.

총체적이고 체계적인 국가발전 모델을 구성해야

손 대표는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근본 모순 및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처방에 관한 총체적이고도 체계적인 담론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물론 신년 기자회견에는 이미 손 대표가 구상하고 있는 국가발전모델에 대한 중요한 단초들이 담겨 있다. 그러나 손 대표는 여기서 머물지 말고 담론시장에서 확실한 우위를 지닐 수 있는 국가발전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예컨대 '사람중심의 함께 가는 복지국가' 건설 및 지속을 위해서는 보편적 복지 및 적극적 복지라는 사회정책, 예산 조정 및 증세 등을 포함한 국가재정정책, 공정경쟁 및 혁신을 내용으로 하는 경제정책이 패키지로 작동해야 한다. 손 대표가 이루려는 복지국가의 내용과 형식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 길은 없지만, 복지국가 건설 및 유지를 위해서는 사회정책, 재정정책, 경제정책이 총체적이고도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손 대표도 이를 간파하고 '사람중심의 함께 가는 복지국가'의 얼개를 총체성의 관점에서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손 대표는 이를 더욱 정교하게 또 구체적으로 디자인해야 할 것이다.

특히 손 대표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국사회 구성원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모순의 핵심에 토지와 학벌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토지문제가 한국사회에 끼치는 해악은 이루 헤아리기 어렵다.

토지소유의 편중 및 이로 인한 토지불로소득의 사유화는 빈부격차 심화, 정부 재정운용의 왜곡, 산업구조의 후진화, 부정부패 양산, 주기적인 경제위기, 노동과 자본 간 갈등격화 등의 주된 원인이다. 토지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없이는 정상적인 국민경제의 발전이 지체되거나 왜곡되기 쉽다.

학벌의 폐해도 토지문제에 버금간다. 천문학적인 사교육비의 사용, 인적자원의 왜곡, 공교육 붕괴, 인성의 파괴 및 교양의 결핍 등등의 수다한 문제들이 학벌에서 기인한다. 기실 대한민국에서 학벌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흡사한 기능을 한다. 대학입학시험이 한 사람의 사회적 신분 및 가능성 더 나아가 인생을 거의 결정짓다시피 하는 것이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학벌이 대한민국을 좌지우지 하는 까닭은 이른바 명문대학을 나와야 사회적 자원의 배분에서 우월한 위치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벌과 철저히 연계된 자원 배분 구조를 혁파하지 않고는 교육문제의 해결은 영구히 불가능하다.

모쪼록 손 대표가 토지문제와 학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국가발전모델을 구성할 수 있기를 빈다.

민주진보연합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설령 대한민국을 새롭게 디자인할 수 있는 국가발전모델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집권을 통해 이를 구현할 수 없다면 허사다. 대한민국 정치지형을 감안할 때 한나라당에 맞서 야당이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야당 통합 혹은 연정을 매개로 한 후보단일화가 필수다.

야권 통합이 됐건, 연정이 됐건 야당의 연합전선 구축을 위해서는 민주당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야당 가운데 민주당이 형편이 제일 낫고, 힘이 가장 세기 때문이다. 손학규 대표의 리더쉽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즉 손 대표는 야권 단일전선을 구축하기 위해 두 가지 역할을 해야 한다. 하나는 야당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한국사회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인데 '복지국가'가 그 청사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민주당 이외의 야당들을 위해 민주당이 과감히 헌신하고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도록 민주당을 견인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후보단일화 방식 및 연정시의 지분 배분에 이르는 첨예한 문제들이 포함될 것이다.

손 대표가 천명한 민주진보연합의 구축은 지난한 일이다. 야당마다 철학과 정책이 다르고, 소유하고 있는 정치적 힘과 자원이 상이하며, 정치적 이해득실이 상반되고, 당내 구성원들의 이해관계도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난제들을 극복하고 야권 통합 혹은 연정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하는 건 기정사실일 것이다.

손학규 대표가 가야할 길

대한민국을 새롭게 디자인할 국가발전모델을 구성하는 것도, 민주진보연합을 구축해 총선과 대선을 치르는 것도 어렵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러나 어렵더라도 가야할 길이고 피할 수 없는 잔(盞)이다.

손학규 대표가 엄동설한에 풍찬노숙을 감행한 용기와 결의를 가슴에 품고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면 그의 정치적 미래가 밝을 것으로 예상된다. 손 대표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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