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개헌론에 불을 지피고 있는 이재오 특임장관이 7일 정치권 원로들로부터 거센 질타를 받았다. 흔히 정권 후반기에 나타나는 레임덕 현상을 피해가는 동시에 특정 대선 후보를 겨냥한 정략적 목적의 혐의가 있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이재오 "개헌은 제 소신"
이재오 장관은 이날 서울 여의도 모 호텔에서 열린 대한민국헌정회 신년인사회에 남미를 순방하고 있는 김황식 국무총리를 대신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이 장관은 "지난 해 헌정회 회원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 84%가 개헌에 찬성한다고 들었다"면서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들어서는 정치체제를 검토해야 한다는 게 제 소신"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내가 18대 총선에 떨어지고 세계 30여개 국을 돌면서 보니, 소득 3만 달러 이상인 24개 나라 중 대통령제를 하고 있는 곳은 미국과 스위스 두 나라 뿐이더라"면서 "개헌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국회에서 민주적 토론을 거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축사를 겸한 발언을 통해 개헌의 필요성을 한껏 '홍보'한 이재오 장관은 곧 행사장을 떴다. 하지만 이후 마이크를 잡은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이같은 주장을 정면에서 반박했다.
이만섭 전 의장은 "이재오 장관에게 몇 마디를 하려고 했는데 조금 전에 나가버렸다"며 "헌정회원들이 가만히 있으면 개헌 찬성론자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승인하고 박수치는 것처럼 보일까봐 한 마디 하겠다"라고 포문을 열었다.
이 전 의장은 "이런 이야기는 안 하려고 했지만 (이 장관의) 강의만 듣고 나가는 것처럼 되어선 곤란하다. 선배들 앞에서…"라면서 축사만 하고 자리를 뜬 이재오 장관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내기까지 했다.
이 전 의장은 "지금까지 우리가 정상적으로, 국민의 열망에 의해 개헌을 한 것은 두 번뿐"이라며 "4·19 혁명 이후 및 6월 항쟁 이후의 개헌 외에는 모두 변칙적 개헌"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 의장은 "개헌을 하려면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돼야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라며 "그러나 여당 내에서도 친이(親李)계, 친박(親朴)계 모두 다른 생각이고 야당도 당론 통일이 안 됐다"라고 했다.
또 이 전 의장은 "안 되는 것을 자꾸 이야기하니까 이명박 대통령의 권력 누수를 막기 위해서, 친이계가 친박계를 견제하기 위해 개헌을 추진한다는 등 별별 이야기가 돈다"면서 "개헌은 지금 절대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이 전 의장의 질타가 이어지자 참석자들 사이에선 "옳소", "잘했다"라는 호응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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