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1호선이 온양온천을 통과하면서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통비 부담이 없는 노인들의 온천행이 늘었다는 거다. 인천도 비슷한 현상이 생겼다. 인천지하철 2호선이 개설된 이후 인천대공원을 이용하는 시민이 늘었고, 그중 노인이 많다. 주차장과 떨어진 공원의 출입구는 인근 지하철역에서 내려 숲길로 접어드는 노인으로 붐빈다. 유모차를 끌고 오는 가족도 꽤 늘었다. 그뿐인가? 연결 대중교통이 불편해 모임에 소원했는데, 서구의 지인들을 만나는 기회가 크게 늘었다.
우리나라의 어느 도시나 지하철은 적자 운영이라고 한다. 승객이 아무리 늘어도 적자라면, 요금 체계에 문제가 있는 걸까? 우리뿐이 아니다. 대부분 국가의 지하철은 적자라고 한다. 시민의 편의와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공공 교통시설이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는 풀이한다. 그러고 보니 일본 신칸센이나 JR노선을 민영화하자 요금이 대폭 올랐다는 말은 들었지만, 일본에 사설 지하철이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우리 철도를 완벽하게 민영화한다면? 요금은 당연히 오를 텐데, 일본도 지하철은 민영화하지 않았다. 시민의 발이 아닌가.
지하철 건설비용은 만만치 않다. 그러므로 대부분 공공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반면 브라질 쿠리치바는 지하철 건설비의 100분의 1로 버스 전용차선을 지상에 만들었다. 서울의 버스 중앙차로는 쿠리치바 흉내를 냈다지만 완벽하지 않다. 철저한 버스 전용차선이 아니다. 지하철이 있기 때문에 굳이 쿠리치바와 같을 필요는 없을 테지만, 쿠리치바의 원통형 정거장에서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도 이용 요금은 추가되지 않는다고 한다. '사회적 요금'이기 때문이란다. 부자나 가난한 자, 사는 곳이 시내든 외곽이든, 요금이 같으므로 보편적 복지 개념이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우리 지하철은 어떤가?
지난 9월 2일 개통한 경전철 우이신설선이 적자라고 얼마 전 언론은 일제히 보도했다. 고작 한 달 운영한 뒤에 나온 반응이다. 북한산국립공원과 이어지는 노선이므로 적어도 사계절, 1년 이상 운영해야 추세를 반영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포스코건설을 비롯해 10개 회사가 출자한 우이신설선은 30년 동안 민간이 운영하고 서울시에 귀속한다는데, 벌써부터 적자 타령이라니. 당장 이용료를 올려 달라는 연막성 하소연일까? 우리나라 굴지의 건설회사가 애초 이용객 추산을 주먹구구로 했을 리 없는데, 수상쩍다.
이용 승객이 당초 예상의 절반에 머물고 그나마 '어르신 카드'를 가진 65세 이상의 노인이 3분의 1이라 적자가 가중된다고 울상인 민영회사는 서울지하철 1호선 신설역에서 북한산 우이동을 왕복하는 11.4킬로미터 구간에 13개 역을 짓는데, 9299억 원의 비용을 감당했다고 밝혔다. 대략 1미터에 1억 원 규모의 비용을 투자한 대기업은 경로우대에 딴죽을 건다. 지하철 운영 과정의 손해는 보전하지 않기로 서울시와 계약했는데, 우이신설선은 경로우대에서 예외이길 바라는 건 아닐 테고, 벌써부터 요금 인상을 요구하는 걸까? 그 요구에 우리 언론들이 왜 나팔을 대신 불어 대는가?
골프와 주식 이야기로 일관해 모임의 참여를 주저하게 만들던 또래들인데, 언젠가부터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대화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천지(天地)의 변화에 촉각을 세우며 자신의 몸에 민감한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리라. 손주 사진을 스마트폰에 저장해 놓고 자랑하기 여념이 없는 지공노인 세대들은 또 다른 대화 풍경을 연출한다. 자식들에게 짐스럽지 않으려 열심히 운동한다며 정보를 공유하고 격려하는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인천지하철 2호선에 노인이 많은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겠다. 우이신설선도 마찬가지겠지.
요즘 공원을 걷는 노인의 수보다 요양원이 훨씬 많다. 최근 거의 우후죽순이다. 노인들이 주로 머무는 요양원이라면 공기 청정하고 조용한 전원을 연상했는데, 요즘은 도심 복판에 경쟁적으로 생긴다. 고급 식당이 요양원으로 변하더니, 대형 병원 근처의 고층 사무공간이 통째로 둔갑한다. 수요가 생겼기 때문일 텐데, 기력을 소진해 가는 노인을 모시기 어려운 가정이 갑자기 늘어난 건 아니겠고, 국가 보조금 때문일까? 아닌 게 아니라, 서류 조작으로 100억 원대 국가 보조금을 빼돌린 요양원 대표들이 검거되었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노인 증가가 문제인가? 정부는 아이를 더 낳으라고 젊은 부부에게 성화인데, 아이가 늘어나면 노인 비중이야 다소 줄겠지만, 그런다고 노인의 절대 수가 감소하는 건 아니다. 경제 능력을 상실하는 노인은 장차 더욱 확대된다. 그때 요양원과 국가 보조금 확충을 위해 세금을 납부할 젊은이를 늘려야 할까? 더 큰 문제를 다음 세대에 떠넘기는 악순환이 아니겠는가. 노인 일자리를 늘리는 방안이 필요하겠지만, 건강 수명을 최대한 연장하는 정책이 훨씬 중요하겠지.
가족 부양 의무를 벗은 노인은 자신의 몸을 돌보며 손주 용돈 마련하는 재미로 산다. 그런 노인에게 절실한 돈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준의 기본소득을 우선적으로 노인에게 제공하면 어떨까? 건강 수명이 연장되지 않을까?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노인들은 요양원에서 생을 마치기보다 가볍게 운동하면서 가족과 편안하게 남은 삶을 보내는 편을 선호할 듯하다. 요양원에 들어가는 국가 예산도 줄어들겠다. 기력 잃은 노인을 모시느라 힘겨워하는 가족이 화목해질 가능성도 더욱 높일 수 있으리라.
노인에게 제공하는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요양원이 무섭도록 늘어나는 우리 사회에 무성해지길 바라면서 새삼스럽게, 대공원이나 국립공원, 또는 온천으로 지하철이 이어지는 현상은 우리 사회에서 참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어르신 카드' 덕분에 노인들은 주변 눈치 살피지 않고 자기 건강을 스스로 돌볼 여력이 생겼다. 관련 전문가의 연구가 이어지면 좋겠는데,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편익도 상당하리라. 그렇다면 어르신 카드를 보편적 복지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우이신설선을 운영하는 민영기업은 경로우대 때문에 적자가 누적된다고 아우성이다.
우이신설선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설업체들이 운영한다. 법적이나 윤리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준수했다고 강조해 왔을 그 기업들은 고용으로 일자리를 늘리면서 성장해 왔다. 그 기업은 자신이 고용한 직원들을 생각해 보라. 경제 능력을 잃은 부모를 부양하는 직원들은 기력을 잃은 부모를 요양원에 보내겠지만 자신도 결국 은퇴할 것이다. 우이신설선 민영기업이 한 달 만에 작성한 자료를 질문 없이 보도한 기자들도 마찬가지인데, 노인들의 지하철 이용 때문에 적자가 난다고?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기업에서 내세울 명분과 거리가 멀다. 노인들의 편의와 운동을 위한 시설을 지하철과 주위의 크고 작은 공원에 능동적으로 확충하는 게 사회적 기업의 근사한 면모가 아니겠는가.
지하철마다 마련한 알량한 경로석을 두고 노인들이 드잡이하는 모습을 가끔 본다. 버스와 지하철에 선반이 사라지면서 가방을 받아 주는 미덕이 없어졌듯, 경로석이 젊은이의 양보 의식을 무력화했던 걸까? 서글프다. 우리 경제 수준을 이만큼 키우는 데 몸을 바쳤던 이 땅의 노인들은 시방 외롭다. 버스와 지하철 경로우대는 노인에 대한 이 사회의 그 작은 배려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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