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사회보장기본법 전부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직접 주최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복지 급여 중심으로 되어 있는 현행 사회보장 제도를 사회 서비스 중심으로 재편하는 한편 생애 주기에 따른 복지 수요를 고려해 통합적 사회안전망을 구축하자는 게 개정안에 담긴 박 전 대표의 주장이다.
"현행 복지제도, 사회안전망 역할 못한다"
'한국형 복지국가', '박근혜식 복지국가'라고 표현되는 이같은 내용은 다음 대선을 겨냥한 박근혜 전 대표의 첫 화두이기도 하다.
박 전 대표는 "그 동안 우리나라는 세계 10위 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우리의 복지현실에는 여전히 미흡한 점이 많다"며 "매년 복지예산은 크게 늘고 있고, 4대 사회보험 구축과 전국민에 대한 확대 등 제도적 발전도 이뤄졌지만, 왜 국민이 실제로 느끼는 복지 체감도와 현장 만족도가 과거보다 더 낮아졌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박 전 대표는 "우리의 사회보장 제도는 서구 국가들이 과거에 복지국가를 지향하던 구시대에 만들어진 틀"이라며 "현금 급여가 중심이 되고, 생애 주기에 따라 필요한 서비스가 제공되지 못할 뿐 아니라 사각지대도 많다"고 진단했다.
박 전 대표는 "이런 틀로는 사회안전망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할 뿐 아니라 고령화나 양극화 등에 따른 빈곤문제, 사회적 소외문제가 발생해 제도의 유지조차 어렵다"며 "복지 모델의 핵심은 선제적, 예방적, 지속가능하며 국민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통합적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박 전 대표는 "국민이 어려움에 내몰리지 않도록 미리 예방하고 똑같은 돈을 써도 경제적, 생산적으로 모든 국민이 일상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틀을 바꿔야 한다"며 "이로써 누구나 맡은 바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하면 기초적 삶에 대한 두려움 없이 죽을 때까지 안전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박 전 대표는 지난 지방선거부터 이어지고 있는 '무상급식 논란' 등을 의식한 듯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를 둘러싼 논란이 많다"고 언급한 뒤 "하지만 이는 이분법적 문제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함께 가야 하며, 전 국민에게 각자 평생의 단계마다 꼭 필요한 것을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것에 촛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 전 대표는 "이번 전부개정 논의를 통해 복지의 패러다임이 소득중심인 구시대에서 소득과 사회 서비스가 균형있게 보장되는 미래형, 선진국형으로 전환되길 바란다"며 "이와 함께 제대로 된 법과 제도가 만들어져 진정 국민이 행복한 대한민국이 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 박근혜 전 대표가 20일 열린 '사회보장기본법 전부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 자신이 제안한 개정안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
"예방적, 선제적 복지로 사각지대 공략"…구체적 복지공약-재정확보 방안은?
박 전 대표가 제안한 개정안은 사회복지 시스템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행법에는 "국가발전의 수준에 부응하는 사회보장제도를 확립하고 매년 이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해야 한다"는 내용에 그친 반면 개정안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증진하는 책임을 가진다"라는 보다 명확한 규정이 담겼다.
개정안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지속가능하며, 국가 발전의 수준에 부응하는 사회보장제도를 확립하고 매년 이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되,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여야 한다"는 조항도 추가됐다.
나아가 보육, 교육, 직업훈련, 보건, 주거, 노후생활 등 전국민을 대상으로 추진되는 1차 안전망, 사회보험형 공적 현금 급여로 이뤄진 2차 안전망, 중산층 이상의 복지 욕구를 고려해 퇴직연금과 민간연금보험 등으로 구성한 3차 안전망, 취약 계층의 잔여 욕구와 노인가구, 장애인가구 등 저소득층에 특화된 4차 안전망 등 4단계의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 복지의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는 것.
발제를 맡은 서울대 안상훈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사회 서비스를 우선하는 것이 경제성장 친화적"이라며 "잠재적 혜택인 현금 이전보다는 일상적 혜택인 사회 서비스를 우선할 경우 국민들의 복지 체감도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안종범 교수(경제학부)는 "현행 제도는 대체로 소득보장 중심의 전통적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하지만 이러한 복지국가는 인구구조의 고령화 등 최근 복지환경의 변화로 더 이상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개정안으로 우리나라 복지정책의 예방적, 선제적 기능이 추가됨으로써 복지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크게 제고하는 동시에 복지정책의 추진 및 운영상의 통합성과 연계성을 높여 사각지대 해소 및 정책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평가했다.
다만 박 전 대표는 복지제도 개편과 맞물릴 수 밖에 없는 재정확충 방안은 거론하지 않았다. 사회보장기본법이 각종 복지정책의 방향을 규정한 모법(母法)인 만큼 '공약'의 수준에서 구체적인 정책들이 제시되지 못한 점도 풀어야 할 숙제로 거론된다.
친박(親朴)계 인사들은 구체적인 재원 확보 방안은 세법 등 국가재정 문제를 다룰 별도의 자리를 통해 밝히겠다고 설명하고 있다.
▲ 이날 행사에는 60명이 넘는 국회의원들과 수백여 명의 지지자가 몰려 흡사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는 평가다. ⓒ뉴시스 |
흡사 '대선 출정식'…박희태 "유력한 미래권력 박근혜"
한편 이날 공청회에는 수백여 명의 취재진과 당원, 지지자 등이 행사장에 밀려 드는 등 흡사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하는 모습이었다. 박 전 대표의 인사말이 이어지는 동안 청중들은 수 차례에 걸쳐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박희태 국회의장을 비롯해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원희룡 사무총장 등 60여 명이 넘는 현역 국회의원들이 직접 행사장을 찾았다. 친박계 인사들뿐 아니라 나경원, 장광근, 원희목, 김기현, 김정훈, 강승규, 고승덕, 나성린 의원 등 친이계 인사들도 참석했고, 민주당에선 박 전 대표와 함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이용섭 의원이 참석했다.
특히 최근 '날치기 파동' 이후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박희태 의장은 축사에서 '박근혜 대표'라는 호칭을 사용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박희태 의장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 캠프 선대위원장을 지냈던 인물이다.
박 의장은 "복지국가로 가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운명"이라며 "이런 역사적 흐름 속에서 오늘은 유력한 미래 권력이신 박근혜 대표께서 한국형 복지의 기수로 취임하시는 날"이라고 말했다.
박 의장은 "복지라는 게 다 돈이 있어야 하는 일인데, 사회 복지 서비스를 갖고 복지의 절반을 채우겠다는 이런 발상을 어떻게 하셨는지…"라며 "참 대단하시다"라고 말했다.
안상수 대표는 "원고를 보지 않으면 실수를 잘 하기 때문에 원고를 보고 하겠다"라며 단상에 올랐다. 최근 자신의 '보온병 파동' 등의 설화를 의식한 농담으로, 행사장에선 당장 폭소가 터져 나왔다.
안 대표는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이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당의 어른으로서 좋은 방향을 제시하셨다"며 "이런 높은 뜻이 우리나라의 복지 발전을 위한 큰 디딤돌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친이(親李)계 핵심 인사로 손꼽히는 박희태 의장과 안상수 대표의 축사가 이어지는 동안 박 전 대표는 가벼운 미소를 표정에 변화를 보이지 않고, 이를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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