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제명 처분했다. 지난 3월 10일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된 지 249일 만의 결정이다. 제명 처분 발표까지 한국당은 홍준표 지도부 측과 구 친박계 간 내홍을 겪었으며, 앞으로도 이 내홍은 이어질 전망이다. 다만 바른정당과의 '보수 통합' 논의는 이번 결정으로 인해 전기를 맞게 됐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3일 저녁 6시,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오늘 당과 나라의 미래를 위해 박 전 대통령의 당적 문제를 정리하고자 한다"며 "오늘로써 박 전 대통령의 당적은 사라지지만, 앞으로 (그가) 부당한 처분을 받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홍 대표는 제명 처분의 근거에 대해 "2016년 '최순실 사태'를 수습하지 못하고 국회 탄핵소추를 받았고, 올해 3월 헌정사상 처음으로 헌법재판소 탄핵 재판에서 파면당하고 검찰에 제3자 뇌물 등의 혐의로 영어의 몸이 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홍 대표는 "저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일관되게 탄핵 재판의 부당성을 주장해 왔고, 탄핵당한 대통령을 구속까지 하는 것은 너무 과한 정치재판이라고도 주장했으나 현실은 냉혹하고 가혹했다"며 "급기야 이들(정부·여당)은 박 전 대통령 문제를 내년 지방선거까지 끌고 가기 위해 무리하게 구속기간까지 연장하면서 정치재판을 하고 있다. 한국당을 '국정농단 박근혜 당'으로 계속 낙인찍어 한국 보수우파 세력들을 모두 궤멸시키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 대표는 "저는 한국당이 한국 보수우파의 본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박근혜 당'이라는 멍에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박근혜 정부의 무능력과 무책임으로 한국 보수우파 세력들이 허물어진 것에 대해 한국당 당원과 저는 철저하게 반성하고, 앞으로 깨끗하고 유능하고 책임지는 신보수주의 정당으로 거듭날 것을 국민께 약속드린다"고 했다.
홍 대표는 질의응답에서, 당내 구 친박계 의원 등이 '당헌당규에 따르면 제명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데 대해 "그 당헌당규를 2006년에 (한나라당 혁신위원장으로서) 내가 만들었다"며 당시 당규 제정 취지를 길게 설명한 뒤, 친박 쪽의 문제 제기를 "무지의 소치"라고 일축했다. 단, 홍 대표가 당규 '윤리위 규정'의 입안자라고 해도 한국당 당헌상 당헌당규의 유권해석 권한은 상임전국위에 있다.
홍 대표는 박 전 대통령과 함께 탈당 권유를 받은 서청원·최경환 의원에 대해서는 "오늘 그것까지 논의하면 정치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논의를 안 했다"며 "그건 의총 대상이다. 시간을 두고 원내대표와 의논하겠다"고만 했다.
최고위서 격론·고성…洪 "내가 책임지고 결정" vs. 김태흠 "무효"
앞서 이날 아침 열린 한국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홍 대표와 최고위원들 간 격론이 오갔다. 구 친박계 중에서도 강성으로 분류되는 김태흠 최고위원은 출당 연기를 요구하며, 부득이 오늘 결정을 하려면 최고위에서 찬반 표결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우택 원내대표도 당일 처리에 부정적인 의견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홍 대표는 회의 말미에 "최고위원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잘 들었다. 오늘 중으로 숙고해서 본인 책임으로 결정을 내리겠다"고 논의를 정리했다고 강효상 대변인이 밝혔다.
강 대변인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서 적극 반대 의사를 표현한 것은 김태흠 최고위원이 유일했다. 강 대변인은 "홍문표 사무총장이 그간의 경과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이 23일 탈당 요구서를 수령한 것으로 확인해 10월 2일에 재청구 기간이 만료된 것으로 보고. 당헌당규에 따라 제명 효력이 발생했다'고 보고했다"며 "김 최고위원은 이것이 (보고 후 대표가 처분할 사안이 아니라) '의결 사항'이라고 주장했다. 의결을 주장한 사람은 김 최고위원 한 분이었다"고 전했다.
김태흠 최고위원은 반면 "강 대변인 브리핑은 많이 왜곡돼 있다. 당 대변인인지 홍 대표 대변인인지 모르겠다"며 "반대는 저 혼자라고 한 것은 맞지 않다. 거의 반대했다. 홍 대표와 정확히 똑같은 입자에서 말한 사람은 이종혁 최고위원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김 최고위원이나 강 대변인 중 누구의 말에 따르더라도, 구 친박계이거나 '태극기 집회' 동조자라는 점에서 반대 의견을 밝힐 것으로 예상됐던 정우택 원내대표, 이철우·이재만·류여해 최고위원 등은 최소한 적극적으로 의사 개진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강 대변인과 김 최고위원의 말을 종합하면, 정 원내대표는 최고위에서 "표결로 가서는 안 된다.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다. 오늘은 결정을 하지 말고 좀더 고민하고 숙려 기간을 갖는 게 어떠냐"며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연기하자"는 취지의 의견을 밝혔지만, 홍 대표가 강행 의사를 밝히자 강하게 만류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철우 최고위원은 "어떻게든 표결로 가지 말고 결론을 내야 한다.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최고위원은 "(이 최고위원은) 소극적 이야기를 했다"며 "김광림 정책위의장은 완곡하게 징계 처리에 대한 부담감, 박 전 대통령을 내쫓는 식으로 하는 게 당에 도움이 되겠나 하는 부분을 말했다"고 전했다. 이재영 최고위원은 "박 전 대통령도 일부 비판하고, 제명 처리의 문제도 얘기했다"며 "양비론을 말했다"고 김 최고위원이 전했다.
류여해 최고위원은 공개 발언 때 "이제 우리 한국당은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서 나서야 할 때"라며 "오늘부터 다시 시작할 것"아라고 말해 홍 대표로부터 "최고위원 된 후 최고로 말을 잘 했다"는 칭찬을 들은 외에, 비공개 회의에서는 아무 발언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재만 최고위원의 발언 내용에 대해서는 김 최고위원이 "저나 정우택 원내대표와 비슷한 식으로 반대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최고위원들이 각자 이같은 의견을 밝히자, 홍 대표가 "최고위원들 이야기를 들었으니 숙고해서 결정하겠다"며 회의를 마치려 했고 이 과정에서 김 최고위원이 반발하면서 고성이 오갔다. 김 최고위원은 "'숙고'는 받아들이지만 독단으로 결정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독단으로 하면 무효다"라고 항의했고, 이에 홍 대표가 "책임지는 것은 당 대표다. 내가 책임지겠다"고 밀어붙이려 하자 재차 "당 대표만 책임지는 게 아니다. 최고위 모든 구성원이 다 책임지는 것이다"라고 반론을 폈다.
그러자 홍 대표 측근인 이종혁 최고위원이 "홍 대표는 당원 70% 지지를 받고 대표가 됐다"며 당을 대표해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취지로 지원 사격에 나섰고, 김 최고위원은 "최고위원들도 당원들 지지에 의해 선출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 대표는 김태흠-이종혁 최고위원이 언쟁을 벌이던 중 자리를 떴다.
다만 강 대변인은 "박 전 대통령 출당 문제를 반대하는 분은 제가 듣기로는 없었다"며 "다 동의하면서 '박근혜 당'(이라는 부담)은 청산·정리돼야 한다고 했지만 일부 의원들이 '시기적으로 좋지 않다. 숙려 기간을 가져야 한다'고 하는 말은 있었다. 박 전 대통령 출당에 반대한다는 발언은 없었다"고 전했다.
김 최고위원도 간담회에서 "박 전 대통령을 비호한다든가, 서청원·최경환 의원을 비호한다든가 이럴 생각은 추호도 없다"며 자신의 문제 제기는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자신이 '박 전 대통령이 스스로 당적을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朴 제명' 파장, 한국당 내분 불붙나…서청원·최경환은?
홍 대표가 구 친박계 반발을 감수하고 박 전 대통령 제명 처분을 밀어붙임에 따라 홍 대표 측과 구 친박계 간의 내분은 상당 기간 더 진행될 전망이다. 김태흠 최고위원은 이날 오후 2시반께 기자 간담회를 열고 "저는 오늘 '최고위에서 박 전 대통령 제명안 처리에 대해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면 당헌당규에 따라 표결로 의결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며 "홍 대표가 독단으로 결정하면 (이는) 당헌당규를 위반한 결정으로 무효다. 앞으로 법적·정치적 책임을 묻는 등 강력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진태 의원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통과된다는 보장이 없다고 최고위를 '바이패스'한다면 (최고위를) 해체하라"며 반발했다. 김 의원은 "어려운 때일수록 정도에 따라 최고위에서 당당하게 정면 승부하자"고 주장했다.
구 친박계 의원들은 박 전 대통령과 함께 '자진탈당 권유' 징계를 받은 서청원·최경환 의원의 제명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이다. 특히 김태흠 최고위원은 "오늘 최고위원회의에서 '만일 서·최 의원 문제를 거론하게 된다면 김무성 의원도 (당에) 들어올 수 없다'고 말했다"며 "(두 의원이) 법적 도의적 책임을 진다고 하면, 당시 당 대표였던 김 의원도 책임이 있다. 그래서 통합은 가치적 측면에서 이뤄져야지 전제 조건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이라고 기자들에게 말하기도 했다.
다만 홍 대표도 서·최 의원의 출당 처분을 급하게 재촉할 뜻은 없어 보이는 상태다. 홍 대표는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시간을 두고 의논하곘다"고 하기 전에도, 전날 밤 3선 의원 만찬 후 "의원총회를 열고 말고는 원내대표 소관이고, 안 열겠다고 하면 펜딩(pending. 연기)되는 것"이라며 "내가 의총을 회부하라고 지시할 수 없다. 이후 상황을 보자"고 말했었다.
바른정당과의 '보수 통합', 박근혜 제명 효과 볼까?
결국 홍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은 제명하되, △서·최 의원에 대해서는 제명 처분이 안 되더라도 이를 사실상 묵인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바른정당 통합파가 탈당 후 한국당에 재입당할 '최소한의 명분'을 세워 주면서도, '최소한의 최소한'만 내줌으로써 당내 친박 그룹의 반발도 무마하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김무성 의원 등 바른정당 탈당파는 '박 전 대통령만 출당 처리하더라도 탈당할 수 있다'는 분위기다. 김 의원은 지난 1일 당 만찬 후 기자들과 만나 '최종 시점을 언제로 보느냐'는 질문에 "5일 (의원총회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그때"라며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해, 5일 밤 의원총회에서 의견이 모아지지 않는다면 바로 탈당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바른정당에서 남경필 지사 등이 불을 지핀 '통합 전당대회'론은 그 불씨가 꺼지고 있다. 김무성 의원은 "남은 기간 동안 최선의 노력을 해보려 한다"면서도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전당대회 연기가) 안 되지 않느냐"며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당에서도 류여해 최고위원이 이날 기독교방송(CBS) 라디오에 나와 "그것은 헌 번도 고민하지 않았다. 별로 타당성도 없다"며 "왜 그렇게 황당한 말씀을 하시는지…(모르겠다.) 왜 갑자기 통합 전대를 이야기하느냐"고 일축했다. 이재영 최고위원도 이날 최고위 공개 발언에서 "요즘 통합에 대해 많은 말들이 있다"며 "통합을 위해서 이런저런 조건을 많이 달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는데,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이런저런 조건을 달 거면 필요 없다"고 했다.
바른정당 자강파의 좌장 격인 유승민 의원도 박 전 대통령 출당이 사실상 기정사실화된 이날 낮 기자들과 만나, 통합 전대론 관련 입장 변화가 없는지 묻는 질문에 "언론 보도 등을 보면 한국당도 통합 전대를 거부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별로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유 의원은 "지금 아무런 변화와 희망을 보이지 못하고 잇는 한국당과 통합하는 것은 진정한 보수 통합이 아니다"라며 "통합 전대는 기본적으로 한국당과 통합을 하는 게 옳다고 결정을 한 것"이라고 했다.
유 의원은 한국당의 박 전 대통령 출당 처분에 대해서는 "박 전 대통령 출당을 대단한 개혁인 것 같이 포장하는 데 대해 동의할 수 없다"며 "전직 대통령의 출당이나 제명은 진정한 보수 혁신이 아니다"라고 혹평했다. 통합-자강 논쟁에 중립적 입장인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도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게 지난해 12월 9일인데 지금까지 정리를 못 하고 있는 한국당의 자정력이 참…"이라며 "이제야 정리하는 것을 잘 했다고 하기도 뭣하고 한심하기도 하다"고 냉담한 평가를 내놨다.
이런 가운데 한국당 정당 지지도는 이날 갤럽 조사에서 전주 대비 1%포인트 하락한 9%를 기록하며 두 달여 만에 한자릿수로 내려앉았다. 한국당 지지율은 8월 5주 8%였다가 9월부터 10월 중순까지는 11~13%를 오갔으나, 10월 3주 12%, 10월 4주 10%에 이어 이번주 9%로 3주 연속 하락했다. (10.31부터 사흘간, 갤럽 자체 조사. 상세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민주자유당·신한국당 시절의 정치 원로 박찬종 전 의원은 이날 평화방송(CBPC) 라디오 인터뷰에서 '홍 대표가 인적 청산을 잘 하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굉장히 답답하다"며 "한국당에서 선택해야 할 길은 탈당 조치로 박 전 대통령의 그림자를 지우고, 작년 4.13 총선 때 '배신자 찍어내기'라는 전대미문의 일을 대통령 스스로 벌일 때 거기에 발맞춰서 칼춤을 춘 '친박 호위무사' 15~16명은 적어도 잘라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박 전 의원은 "15~16명 정도 살생부를 만들어서 떠나라(고 요구하고), 떠나지 않으면 당을 해체하고 나머지 사람들이 제3지대에 모이고 거기 바른정당 의원들 오라고 해서 제3정당을 창당하라. 이런 방법으로 결단을 해야 하는데 홍 대표가 결단을 못 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서청원 의원이 '홍 대표만 물러세우면 자기는 무사하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망상"이라고 홍 대표와 서 의원 모두를 비판했다.
"국민적 입장에서 어떻게 서청원·최경환 둘만 나가면 되느냐"는 선배 정치인의 조언과 달리, 한국당의 현실은 15~16명은커녕 서청원·최경환 의원 2명도 "펜딩" 상태인 셈이다. 한편 이날 박 전 의원이 바른정당 통합파 의원들에게 건넨 충고는 이랬다.
"바른정당에 있는 몇 사람이 왜 이 시기에 한국당에 들어갑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게 말이 됩니까? 오늘로 박 전 대통령 탈당 문제가 정리됐다고 해서 한국당이 환골탈태했습니까? 여전히 그 안에 '친박 호위무사'들이 버티고 앉아 있고 그게 제대로 된 당입니까? 그러니까 김무성 의원 등이 하는 행동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요."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