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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전환, 보다 정의로우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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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전환, 보다 정의로우려면

[초록發光] '보완' 넘어서는 적극적 접근 필요

파리협정 체결 이후 석탄화력발전의 단계적 폐쇄가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전환 측면에서 중요한 화두인데,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로 석탄화력발전소가 거론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록 탄소를 포집해 저장하거나 자원화하는 기술적 해결책에 기대를 거는 입장이 없는 것은 아니나 해당 기술의 불확실성과 위험성을 지적하는 주장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 지구적 온실가스 감축에 강한 드라이브가 걸려야 하는 2030년까지 이 기술이 상용화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2016년 11월, 기후변화 정책·과학 연구기관 '클라이미트 애너리틱스'(Climate Analytics)가 발표한 <파리협정이 발전부문의 석탄사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까지 석탄발전을 중단해야 파리협정이 정한 온도 상승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대신 국가마다 다른 시간대가 가이드라인으로 제시됐는데, 기후변화 책임과 대응 역량이 국가마다 상이하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그 결과는 경제협력개발기구와 유럽연합 국가들은 2030년까지, 중국은 2040년까지, 그리고 개발도상국과 나머지 국가들은 2050년까지 석탄발전 가동을 중지하는 시나리오로 요약된다.

영국의 싱크탱크 E3G는 국제개발협력기구 회원국의 탈석탄 현황(2017. 9)을 조사하였는데, 명확한 목표가 설정된 나라를 꼽으면 이렇다. 벨기에(2016년 완료), 프랑스(2022년), 뉴질랜드(2022년), 영국(2025년), 오스트리아(2025년), 아일랜드(2025년), 미국(없음, 캘리포니아, 매사추세츠, 뉴욕, 오리건, 워싱턴 2025년), 이탈이아(2025~2030년 검토 중), 캐나다(2030년, 앨버타와 온타리오 선도), 덴마크(2030년), 핀란드(2030년). 이들 나라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계통 안정성 확보 등을 통해 에너지 안보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발전소가 있는 지역사회와 노동자들을 위한 질서 있는 전환, 즉 '정의로운 전환'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가 핵심 쟁점으로 다뤄지고 있다.

파리협정 전문에 정의로운 전환 개념이 포함됐으며, 국제노동기구 또한 <정의로운 전환 가이드라인>을 채택했다.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역시 이와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 G20과 OECD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를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국가별, 지역별로 정의로운 전환이 어떻게 제도화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평가할 단계는 아닌 듯하다. 그동안 노동계와 시민사회와 독립 싱크탱크가 퍼뜨린 담론이 환경 위기와 기후변화, 에너지 전환 시대를 맞아 이제야 정당성을 획득하고 있는 상황에서, 본격적인 정의로운 전환 프로그램은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들 터. 현재는 대체로 관련 사례를 조사하여 취합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역사 속에서 탄생하여 발전해 온 정의로운 전환 접근은 지구 곳곳에서 자체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캐나다 앨버타주에서는 앨버타노동조합연합(AFL)과 석탄전환동맹(CTC)이 함께 '정의로운 전환 전략'을 세워 추진하고 있다. 또한 2015년, 오바마 대통령은 에너지 경관의 변화로 영향을 받는 지역사회를 지원하기 위해서 POWER(Partnerships for Opportunity and Workforce and Economic Revitalization) 이니셔티브를 실시했다.

이 지원 취지에 동조하여 민간에서도 정의로운 전환 기금(Just Transition Fund)을 조성했다. 이 기금은 애팔래치아의 탄광과 석탄화력발전소 주변지역이 기존 독성경제에서 지속가능한 새로운 경제사회 모델로 전환하는 프로그램에 활용된다.

정의로운 전환의 본래적 의미와 캐나다와 미국의 사례는 국내에서 에너지 시설의 주변지역에 제공하는 지원금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갖는다. 우선, 에너지 전환에 대한 비전과 사회적 합의의 유무가 결정적인 차이를 낳는다.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경제적 지원은 보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다음으로, 변화를 인정하더라도 전환 과정에서 구상해야 할 새로운 경제사회 모델이 외부에서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설사 변화의 계기가 외부 요인에 의해 발생했더라도 미래 전망은 외부의 관심과 지원 속에서 내부에서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선택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전환은 정의로운 전환의 원칙과 기준에 얼마나 부합할까. 물론 과거 정부에서는 에너지 전환은커녕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관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직후 발표된 <에너지 전환(탈원전) 로드맵>에서 현 정부의 관점을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에너지 전환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되는 지역과 산업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보완 대책도 강구", "주민, 지자체가 참여하여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 "원전산업 중소·중견기업의 판로 전환 등을 지원하기 위하여 산업계와 함께 참여형으로 에너지 전환에 따른 보완대책을 수립", "한수원은 원전안전운영과 해체산업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개편"(산업통상자원부 보도자료, 2017년 10월 24일)

아직까지는 소극적·방어적 성격의 "보완 대책"으로 평가할 수 있는데, 앞으로는 보다 적극적인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정의로운 전환의 개념과 사례가 2008년부터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했지만, 노동계를 비롯한 시민사회 진영의 고민 수준과 실천 의지는 미흡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최근 탈핵, 탈석탄, 재생에너지 확대 등 에너지 전환이 국가적 사안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산업, 노동, 지역의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관심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정부 관료와 공무원, 그리고 정치인들의 에너지 전환에 대한 개념 장착이 시급한 과제라 하겠다.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이 말의 의미를 공론화나 수용성으로 협소하게 볼 게 아니라, 더 많은 주체가 존재하며, 이들의 상상력으로 더 밝은 미래가 가능하다는 가능성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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