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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조 할 권리, ILO 협약에 다 들어있다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20세기 이어 21세기에도 노조 할 권리 외치다 ③

<인사이드 경제>는 2번에 걸쳐 ILO의 탄생 배경과 역사, 그리고 한국과 ILO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그럼 문재인 정부가 비준한다는 ILO 핵심 협약에는 어떤 것들이 담겨 있을까? 이제 본격적으로 ILO 협약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한국 정부는 ILO의 189개 협약 중 고작 29개만 비준한 상태이다. 양적인 면만이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문제가 심각하다. ILO는 189개 협약 중 ‘핵심 협약’을 8개로 정리한 바 있다. 한국 정부는 이중에서 △아동노동 철폐(138, 182호), △균등대우 및 차별금지(100, 111호) 등 4개의 협약만 비준한 상태이다.

한국 정부가 비준하지 않은 4개의 핵심협약은 △결사의 자유(87, 98호) △강제노동 철폐(29, 105호) 등으로, ILO 회원국 중 이들 4개의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중국, 마샬제도, 팔라우, 통가, 투발루 등 6개국에 불과하다. 1996년 이후 20년 넘게 ILO 이사국을 맡아온 한국 정부의 성적표는 참으로 초라하다.

결사의 자유 협약(87, 98호) : 노조 할 권리의 핵심

그럼 이들 ILO 협약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사실 협약들을 읽어보면 누구나 “아니, 이렇게 간단해? 이걸 아직까지 비준하지 않았단 말야?”라는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다. 각각의 협약들은 추상적 문구로 구성되어 있고 몇 줄로 요약이 가능하다. 한국 정부가 비준하지 않은 △결사의 자유 관련 2개의 핵심협약(87, 98호)를 사례로 들어보도록 하겠다.

ILO 제87호 협약은 “노동자 및 사용자는 사전인가 없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단체를 설립하고 그 단체의 규약에 따를 것만을 조건으로 하여 그 단체에 가입할 수 있는 권리를 어떠한 차별도 없이 가진다(제2조)”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당연히 이들 단체는 규약·규칙 작성, 대표자 선출, 관리 및 활동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권리(제3조)를 갖는다.

이러한 권리를 행사함에 있어 공공기관은 어떠한 간섭도 해서는 아니되며(제3조), “근로자단체 및 사용자단체는 행정당국에 의하여 해산되거나 활동이 정지되어서는 안된다(제4조)”고 협약은 명시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규약상 해고자를 조합원 범위에 포함시켰다는 이유로 법외노조로 몰려 기본권을 박탈당해온 전교조와 공무원노조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렇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에 ‘노조 아님’ 통보를 하고 온갖 탄압을 일삼아온 기존 정부 정책은 ILO 87호 협약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행위이다. 어떤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노동조합이 스스로 규약으로 정할 문제이며, 이를 이유로 정부가 일체의 간섭이나 해산·활동정지 처분을 할 수 없는데 말이다.

다만 87호 협약에 명시된 내용을 “군인 및 경찰에 적용하는 범위는 국내법령으로 정한다(제9조)”고 하여, 군인과 경찰만은 예외로 할 수 있도록 열어두었다. 하지만 이는 군인과 경찰에게 노동기본권과 결사의 자유 일체를 부정해도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 약간의 제한을 둘 수 있다는 의미일 뿐이다.

ILO 제98호 협약은 노동조합의 단체교섭에 대해 좀 더 분명한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해고 및 불이익을 받아선 아니되며(제1조),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사용자가 지배하는 노조를 설립하거나 그런 노조에 지원을 하는 행위도 금지된다(제2조). 사용자 주도 어용복수노조가 횡행하는 한국에 꼭 맞는 내용이 아닌가.

아울러 노동조건을 규제하기 위해 노사간 자발적 단체교섭을 위한 절차가 충분히 발달해야 하며, 단체교섭을 이용하도록 장려·촉진하기 위해 정부는 적합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제4조). 이 경우 단체교섭의 상대방은 한국처럼 법적 규제를 받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98호 협약에 대한 ILO의 해석에 따르면 한국처럼 각 사업장의 임금과 노동조건만을 교섭의제로 제한하는 것도 옳지 않다. 한국은 최저임금 인상, 실업문제 해결, 노동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는 파업 또는 총파업을 ‘권리분쟁’으로 보아 불법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ILO 98호 협약은 이러한 파업도 정당한 권리행사로 보호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결사의 자유를 명시한 ILO 87호, 98호 협약은 노동조합의 핵심적인 권리, 특히 그동안 한국 정부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정하거나 탄압해온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왜 이들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는지, 그럼으로써 얼마나 많은 노조 할 권리가 부정되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정기훈(

미조직·비정규직 노조 할 권리가 핵심

"한국 정부가 ILO 협약을 비준하면 전교조·공무원노조의 법외노조 상태를 해결할 수 있다."

ILO 협약을 들여다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ILO 협약 비준을 교사·공무원 단결권으로 너무 좁게 해석하는 얘기이다. ILO 협약은 이보다 훨씬 넓은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결사의 자유 협약(87, 98호)에는 수많은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가 담겨 있다. 노조 가입과 활동을 가로막는 한국의 법·제도는 이들 협약에 위배된다. ILO 협약 비준과 함께 이들 법·제도는 협약에 맞게 개정되어야 한다.

우선 한국 정부가 한사코 자영업자로 분류해 노동기본권을 빼앗아온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제한 없이 노조 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아울러 하청노동자가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면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거부당하곤 하는데, ILO가 적용하는 노동기준에 따르면 이것은 심각한 노동기본권 침해에 해당한다.

ILO 협약은 추상적인 원리만 제시할 뿐, 이런 구체적인 얘기가 명시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1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ILO는 그 원리를 구체적 사안에 적용하는 방법을 개발해왔다. 이를테면 ILO의 가장 중요한 기구인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여러 제소사건을 심의하는 원칙을 정리하고 있다.

이 심의 원칙을 담고 있는 ‘결사의 자유 위원회 결정 및 원칙 다이제스트(Digest of decisions and principles of the Freedom of Association Committee)’는 10여년에 한번씩 업데이트가 되고 있는데, 가장 최근 버전인 2006년 판 다이제스트에 따르면 다음의 내용이 나와 있다.

"결사의 자유 원칙에 의해 군인과 경찰만을 제외한 모든 노동자는 스스로 선택한 단체를 설립하고 그런 단체에 가입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런 권리의 적용 대상을 정하는 기준은 고용관계 존재 여부에 기초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농업노동자, 일반 자영업자(self-employed workers), 자유직 종사자의 경우에는 종종 고용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노동자들도 단결권을 누려야 한다."

즉, ILO 결사의 자유 협약의 적용 원칙은 고용관계 여부조차 뛰어넘는다. 한국의 특수고용직은 자신이 ‘위장된 자영업자’임을 입증해야만 노동자로 인정되고 노동기본권을 보장받는다. 그러나 위 다이제스트에 따르면 ‘일반 자영업자(self-employed workers)’도 적용되기 때문에, 위장 자영업자 여부를 입증할 필요도 없이 특수고용직은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참고로, 위 한글 표현은 한국 정부의 번역본을 가져온 것이다. ‘self-employed workers’를 직역하면 '스스로를 고용한 노동자'이며, 이를 줄이면 '자기고용 노동자'가 된다. 한국 정부는 자영업자 대부분이 자기 자신도 노동에 종사하므로 이 범주에 속한다고 본 것이다. 이 글에서는 위 표현의 번역으로 '자영업자'와 '자영 노동자'를 함께 사용하도록 하겠다.)

고용관계 여부와 무관하게 결사의 자유를 온전히 누려야 하기에,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때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다’라는 이유만으로 거부하는 것은 ILO 협약에 위배된다. 원청의 사용자책임 관련 명시적인 표현은 없지만, 그동안 ILO 결사의자유위원회는 수많은 제소사건에서 원청이 교섭책임을 져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ILO 협약과 노조법 2조 개정

한국에서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 노동조합을 결성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한 목소리로 외치는 요구가 있다. "노조법 2조를 개정하라!" 노동조합법 제2조는 이 법에서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단어인 '근로자'와 '사용자'를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근로자' 개념을 조금만 확장하면 특수고용직의 노동기본권이 보장되고, '사용자' 개념을 조금만 확장하면 원청의 사용자책임이 인정된다.

민주노총 역시 최근 문재인 정부를 향해 노-정 교섭을 위한 5대 요구를 정리하면서 ‘노조법 2조 개정을 통한 간접고용·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 보장’을 첫 번째 순위에 올려놓았다. 5대 요구의 맨 마지막 다섯 번째는 ILO 협약 비준으로, 사실상 같은 얘기를 반복하고 있다. ILO 결사의자유위원회가 한국 정부를 제소한 여러 사건에 나온 권고들을 소개해 보겠다.

■ 특수고용 관련 권고

◼ <2011년> “위원회는 이러한 원칙이 대형화물트럭 운전기사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판단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러한 원칙’이란 앞에서 인용한 ‘결사의 자유 위원회 결정 및 원칙 다이제스트’의 내용임.)
◼ <2012년> 위원회는 다시 한번 한국정부에 다음을 위한 필요한 조치들을 취할 것을 요구한다.
(i) 대형화물트럭 운전기사와 같은 자영 노동자들(self-employed workers)이 특히 자신들 스스로의 선택에 따른 조직에 가입할 수 있는 권리를 비롯하여, 결사의 자유 권리를 전적으로 향유할 수 있도록 할 것.
(ii) 자영 노동자들(self-employed workers)이 단체교섭을 통한 방식을 포함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증진시키고 지켜내기 위한 목적으로 협약 제87호와 98호에 따른 노동조합 권리를 전적으로 향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상호 간에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찾기 위하여 모든 당사자 간에 이러한 목적을 위한 협의를 진행할 것.
(iii) 관련 사회적 파트너들과의 협의를 통해, 필요할 경우 자기고용 노동자에게 맞는 특정한 단체교섭 메커니즘의 개발을 위하여 단체교섭과 관련된 자영 노동자들(self-employed workers)의 특질을 구명할 것.
◼ <2012년> 위원회는 또한 한국정부에 다음을 위한 필요한 조치들을 취할 것을 요구한다.
(i) 대형화물트럭 운전기사들이 설립하였거나 가입한 조직이 그들 자신의 선택에 따라, 그리고 해당 조직의 규정에 따라, 그 어떤 사전적 허가 없이 연맹과 총연맹에 가입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할 것.
(ii) 전국건설노조와 전국운수노조에게 차량소유 운전기사들을 조합원에서 배제시킬 것을 요구한 권고를 철회하고, 노조법 시행령 제9조 제2항 하의 조항을 포함하여, 이들 연맹들에 대해 노조 조합원들을 각 노조가 대표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그 어떤 조치도 삼갈 것.

■ 간접고용(사내하청·건설일용 등) 관련 권고

◼ <2006년> 건설 현장에서 원청업체의 지배적인 위치를 가정하면, 아울러 지역 및 산업 수준에서 단체교섭의 일반적 부재를 감안하면, 원청업체와의 단체협약 체결은 전체 건설 현장에서 효율적인 단체교섭 및 단체협상 합의 체결을 위해 실현 가능한 선택임이 분명하다.
◼ <2008년> 위원회는 한국정부에 금속 부문, 특히 현대자동차와 기륭전자, KM&I, 하이닉스매그나칩의 하청노동자들의 고용기간과 조건에 대하여 교섭 역량 강화 등의 방식을 포함하여 단체교섭 성사를 제고할 수 있는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 이를 통해 이들 회사의 하청노동자들은 신의성실에 기반한 교섭으로 조합원들의 생활 및 노동조건의 개선을 추구할 수 있는 자신들의 권리를 실제적으로 행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2012년> 위원회는 노조 권리의 행사를 회피하기 위해 “사내하청”을 활용한다는 지속되는 혐의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위원회는 이 점에 관해, 관련 노조와 하청·파견노동자의 고용기간과 조건을 결정하는 당사자 사이의 단체교섭이 항상 가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따라서 위원회는 한국정부가 관련 사회적 파트너들과 협의하여,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에 의해 모든 노동자에게 보장되는 하청/파견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 보호를 강화하여 노동자의 기본권 행사를 사실상 회피하는 수단으로 하청을 남용하는 것을 방지하는 목적으로, 미리 결정된 합의된 대화 프로세스를 포함하여 적절한 구조를 개발할 것을 요청한다.
◼ <2015년> 한국정부가 본 제소의 대상이 된 금속산업에서의 하청 및 파견노동자의 단체교섭을 촉진하기 위해 이루어진 어떠한 조치도 밝히지 않고 있음을 주목하면서, 위원회는 다시한번 한국정부에게 이러한 목적을 위한 모든 필요한 조치, 특히 해당 사업장의 하청·파견 노동자의 노동조합이 교섭을 통해 조합원의 생활 및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도록 단체교섭권을 실효성 있게 행사할 수 있도록 교섭 역량을 구축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할 것을 촉구한다.

한국 정부는 ILO 결사의 자유 협약(87, 98호)을 비준하지 않은 상태인데, 어떻게 제소를 당하고 권고까지 나오는 것일까? ILO는 앞서 얘기한 8개의 핵심 협약에 대해, 회원국 정부가 이를 비준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ILO에 제소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그만큼 결사의 자유 협약은 ILO 협약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위 결정문들을 보면 ILO 결사의자유위원회가 구체적인 조직 명칭과 업종까지를 언급하며 판단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노동자성을 가장 낮게 보고 있는 (차량을 소유한) 화물트럭 운전기사들에게도 온전한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고 명시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또한 결사의자유위원회는 현대자동차·기륭전자·하이닉스매그나칩·KM&I 등 구체적인 사업장을 거론하면서 이들의 단체교섭권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명시된 노동조합들 대부분이 당시에 하청업체들과 교섭을 하고 있거나, 업체가 부도·폐업 등으로 사라진 상태였다. 따라서 결사의자유위원회가 말하는 단체교섭권이란 ‘원청을 상대로 한 교섭권’을 말하는 것이다.

이상의 ILO 결사의자유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권고한 내용들만 보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요구하고 있는 노조법 2조 개정을 통한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보장, 원청의 사용자책임 인정이 ILO 협약 내용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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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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