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부에 의해 사망한 희생자 일부를 광주 망월 묘역(현 망월 구 묘역, 3묘역)에서 지방으로 분산 이장하고, 유족 일부는 포섭하라는 지시를 직접 내린 정황이 드러난 문건이 처음 공개됐다.
그간 정부가 망월 묘역이 성지화하는 것을 꺼려 은밀히 5.18 희생자 분산 이장을 지휘했다는 주장은 학계와 5.18 희생자 유족 등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는데, 이번 문건을 통해 이 주장이 사실이었음이 입증됐다.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일명 '비둘기 시행계획' 문건을 공개하는 한편, 1981년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광주 사태 관련자 현황' 문건과 1983년경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광주 사태 관련 현황' 자료도 함께 공개했다.
해당 문건 중 '비둘기 시행계획' 문건에는 희생자 묘지 이장을 위한 구체적 계획이 작성되어 있다. 총 3단계로 구성된 해당 계획은 첫 단계로 505보안부대가 1차 이장 대상 연고자 11인의 배경을 정밀 조사한 후 2단계로 전라남도가 순화책임자를 소집해 교육토록 했다. 마지막 3단계로는 순화 결과를 판단한 후 공원묘지 관리소 운영 장의사와 용역 계약을 체결해 이전을 위한 절차를 마련토록 했다.
이 계획은 전남지역 개발 협의회가 주관하고 전남도청과 광주시청, 해당 시·군청이 순화 책임을 지며, 505보안부대가 기획지원하는 한편 검찰과 안기부, 경찰을 협조기관으로 지칭했다. 이들 협조기관을 지정한 이유로 문건은 "본 계획 추진 과정상 문제점 야기시 협조 요구" 필요가 있어서라고 적시했다. 사정 기관을 총망라한 정부 산하 기관들이 이장 시도에 총동원된 정황을 드러낸 셈이다.
망월 묘역에 묻힌 희생자를 지방에 분산한다는 내용은 '광주 사태 관련자 현황' 자료의 '대책' 란에 "공원 묘지의 지방 분산"이라는 문구를 통해 다시금 드러난다. '광주 사태 관련 현황' 문건에는 더 구체적으로 '공원 묘지 이전 계획'이라는 제목 아래에 구체적인 추진 경위가 적시돼 있다.
해당 내용에 따르면 1982년 3월 5일 전남도지사가 '각하(전두환)' 면담시 공원 묘지 이전 검토를 지시받았고 같은 해 7월 30일에는 (전남도지사가) 세부 계획을 작성해 내무 장관에게 보고했으며, 다음 달 25일에는 청와대 정무 제2수석에게도 보고됐다.
이는 무엇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직접 '비둘기 시행계획'을 지휘한 정황을 드러내는 자료다. 그간 전 전 대통령 측은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대가 시민을 쏜 건 정당방위였고, 희생자들은 폭도였다는 식의 주장을 반복해 왔다. 전 전 대통령 측의 주장이 맞다면 '비둘기 시행계획'은 애써 정부가 실시할 필요가 없다. 전 전 대통령 측이 거짓으로 일관함을 이 자료들이 간접적으로 입증하는 부분이다.
정부가 유족 간 분열을 획책한 정황도 드러났다.
'광주 사태 관련자 현황' 자료에는 정부가 "유족 성분을 분석"해 이른바 '극렬 대상자'를 따로 3단계로 분류해 관리한 정황도 드러났다. 해당 분류 기준에 따르면 이른바 ‘극렬 대상자’ 중에서도 가장 강경한 그룹인 A등급은 대정부 강경 비판자, 여타 유족 선동 조종 행위자, 폭도 판정 유족으로 보상금 지원 요구자, 유족회 임원에 선출된 자다. B등급은 보상금 미수령자로 대정부 불만 포지자, 유족회 임원 중 온건자, 문제 집회 참석 빈번자며 C등급은 타의로 문제집회 참석 빈번자, 피동적 자다.
문건에 따르면 유족 150명 중 A급은 7명, B급은 17명, C급은 6명이었다.
희생자 중 505보안부대는 사망자 관련 문제를 다뤘고 부상자는 안기부가, 구속자는 경찰이 전담해 치밀하게 관리했다. 특히 유족 중 가장 강경히 정부를 규탄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38명은 이른바 '집중 순화 대상'으로 선정해 관리하기도 했다.
'광주 사태 관련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이들 이른바 '극렬 유족'에 관한 대책으로 "공원 묘지의 지방 분산"과 "극렬 대상자의 유족 지속 순화"가 나열되어 있다. 정부가 체계적으로 5.18민주화운동의 여파를 억누르려 했음을 추정 가능한 대목이다.
정부가 이처럼 희생자 문제를 관리하려 한 주된 이유는 1984년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광주 방문 이전에 망월 묘역이 성지화하는 걸 막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 대목이다.
이와 관련, 1995년 한인섭 서울대 교수와 박은정 전 권익위원장이 공동 저술한 <5.18 법적 책임과 역사적 책임>(이화여자대학교 출판사 펴냄)에서 저자들은 "1983년 들어 망월동 공동묘지의 성역화를 우려한 당국은 묘지의 분산 이장계획을 은밀히 진행"했으며 "묘를 이장하면 1000만 원의 위로금과 50만 원의 이장비를 받는다는 소문이 사실로 확인되기도 하였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번에 공개된 문건은 해당 주장이 사실이었음을 입증한다. '비둘기 시행계획' 내용 중 일부와 이 책이 주장한 액수가 정확히 일치한다.
해당 문건의 '소요 예산 산출' 부문을 보면, 정부는 총 1억2280만 원을 들여 1차 이장 대상 희생자 11명에게 각각 위로금 1000만 원과 이전비 50만 원을 지급하는 한편 1인당 순화비 30만 원을 들이고 총 400만 원을 부대경비로 사용키로 했다.
이밖에도 정부는 1982년과 83년, 희생자들에게 쌀과 연탄을 지급하고 의료혜택을 주는 등 국민에게는 알리지 않고 유족을 포섭하려 하는 한편 505보안부대 주관하에 1982년 2월 3일 5.18 유족회를 해체하는 등 5.18의 여파를 최소화하려 시도했다.
이번 문건을 두고 박주민 의원은 "대통령이 나서서 유족에게 돈을 주고, 고인의 묘소를 이장하도록 하고, 연탄까지 지원한 내역을 꼼꼼히 기록하면서 국민을 대상으로는 공작을 일삼았다는 건 매우 충격적 사실"이라며 "이번 문건을 통해 전두환 군사 독재 정부의 민낯이 다시금 드러났다"고 강조했다.
이어 "5.18 민주화 운동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명박근혜 정부 9년간 민간인 사찰이 시행되는 등 역사가 되풀이됐다"며 "5.18 민주화 운동 진상규명 특별법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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