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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여행'은 '비빔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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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공정 여행'은 '비빔밥'이다

[중국 윈난성 기행 ③] '공정여행', 그리고 '소통'

"국제민주연대와 이 공정여행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윈난성을 십 수차례 다녀왔습니다."

최정규 작가는 공정 여행을 기획하는 데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며 이같이 말했다. 다수의 여행 서적을 내고 직접 여행사를 운영했던 '베테랑' 여행 전문가지만 많은 인원이 움직여야 하는 '공정여행' 프로그램을 짜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최 작가가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역점을 둔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현지 사정에 대한 철저한 정보 수집, 그리고 다른 하나는 현지인-여행자, '여행자 끼리'의 '소통'이다.

▲티벳 소금마을에서 현직 '선생님' 들이 작은 강연을 열었다. ⓒ프레시안

자유여행과 패키지 여행의 중간 형태

최 작가는 "'공정 여행' 프로그램을 위해 지역을 선정하고 한국 여행사가 시도하지 않은 루트를 짰다. 그리고 수차례 이 지역을 방문해 현지인들을 중심으로 믿을만한 객잔, 식당 등의 정보를 취재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해당 지역의 사정을 세세히 알아야 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이는 '자유 여행'의 장점을 살리면서 '불공정 여행'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여행자는 공정여행을 "배낭여행과 패키지 여행의 중간 형태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배낭여행의 경우, 실행에 옮겨본 사람은 알겠지만, 여행자 스스로가 직접 현지 사정에 관한 정보와 함께 시시콜콜한 것들, 즉 게스트 하우스, 먹거리, 교통편, 가볼만한 곳 등을 알아보는 과정을 거치는 게 일반적이다. 이번 공정여행 프로그램에서는 이 과정을 국제민주연대와 최 작가가 전적으로 담당했다.

최 작가는 "윈난을 십수차례 오가면서 안면을 튼 현지인도 있다. 중국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지인들의 도움도 받는다"고 말했다.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정보들을 비교적 수월하게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다. 예를 들어 '보이차의 원산지'라고 하는 윈난에서도 '가짜 보이차'가 판치는 현실 속에서 '착한 보이차'를 파는 차창을 찾아낸 데는 최 작가의 노력이 컸다.

▲리장 고성 광장에서 현지인들과 어울려 춤추기 ⓒ프레시안

그는 "차 전문가에게 문의를 하면서까지 맛을 검증했고, 또 윈난에 들를때마다 찾아가니 주인도 알아서 거품을 뺀 가격에 보이차를 판다. 이를테면 '단골' 집을 만든 것이다"고 말했다.

최 작가는 "10만원 짜리 물건이 있다. 이것을 흥정에 붙여 7~8만원에 살 수 있겠지만 실제로 가격은 1만원도 안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6~7만원이 어디로 가느냐 하는 것이다. 십중 팔구는 중간 상인이나 쇼핑몰로 들어가게 된다"고 했다. 여행사가 추천하는 비싼 식당도 '커미션'을 붙이는 등 부당한 거래가 이뤄지는 것도 현실이다.

공정여행은 다르다. 이를테면 식당이 없는 티벳의 소금마을에서는 현지인들이 일종의 '마을회관'을 내 주고 외지인을 대접하게 되는데 적정한 가격을 지불하는 것은 현지인들의 경제 생활에 도움이 된다. 이같은 '공정여행'의 취지를 실천하기 위해 국제민주연대가 정한 '공정여행 10계명'을 숙지하고 여행에 나서는 것도 좋은 일이다.


▲ 길에서 만난 스님들 ⓒ프레시안

국제민주연대 간사 김경 씨는 "결국 여행자가 지불하는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 지 여행자 스스로가 알도록 하는 게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도심에 위치한 대형 레스토랑보다 맛과 친절함이 검증된 작은 식당, 혹은 민가에서 식사를 하는 행위는 여행자들에게 '현지인들과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줌과 동시에 패키지 여행을 통해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장소와 조우하도록 해준다. 여행 책자를 통해 소개된 맛집보다 민가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만두를 빚으며 수다도 떨 수 있는 곳이 여행을 더 윤택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초보' 여행자가 '베테랑' 여행자에게 들을 수 있는 각종 정보들을 '공정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여행은 '비빔밥'이다.

최 작가는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현지인과 접촉을 늘리고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지인들에 대한 편견도 없애고 친밀감을 느끼면서 정제된 문화가 아닌 진짜 삶을 조금이라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했다.

▲ '고희'를 앞둔 '최고령' 여행자 최동진 씨와 그의 '친구' ⓒ프레시안

'현지인과 격의 없느 어울림'. 여행 프로그램 중, 티벳 짱족 마을에서 동네 사람들과 모닥불을 피우고 전통춤을 배우는 시간이 들어있는데, 이 '이벤트'가 이번 공정여행의 중요한 요소인 이유기도 하다. 최 작가는 "어느 마을을 가든 사방가에서 춤판이 벌어지면 공정족들에게 적극 참여하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최 작가는 또 "여행사도 운영해보고, 여행 기획도 많이 해봤지만 공정여행을 기획하면서 느낀 것은 참여하는 여행자간의 '소통'이라는 것을 새삼, 절실히 깨달았다"고 말했다. 다양한 사연과 직업을 가진 이들이 10여일 동안 같은 목적지를 향해 움직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5차 째인 이번 프로그램에서도 눈에 띠는 사람들이 많다.

충북에서 온 차은량 씨는 "'유기농 쌀 농사'를 짓고 있다. 아이를 키워놓은 후 여행을 다니는 것, 글을 쓰는 것이 취미가 됐다. '꽃멀미'라는 에세이집도 냈다. 패키지 여행을 가서 호텔에 묵으면서 '인증'사진을 찍는 것 말고, 내가 생각하는 대로 하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 고산지대를 달리는만큼 자동차는 30분에 한번 꼴로 냉각수를 재충전해야 한다. 차 고장이 잦고, 또 지루한 시간을 보내게 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 주고 의지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프레시안

'고희'를 앞두고 있는 최동진 씨는 철도 기관사 출신으로 "철도 기관사 일을 제대하고 99년에 킬리만자로 4895m를 올라갔다 왔다"고 한 '베테랑' 여행자다. 그는 "2002년도 남아공 더반에서 사랑의 집짓기 행사에 참여 했는데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봤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에게 목포에서 가져온 보해 소주를 한 잔 따라줬다"는 일화를 소개해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젊은 선생님인 임수미 씨는 "나중에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어릴때부터 잔병 치레를 많이 해서 몸도 약했고, 여중, 여고, 교대를 다니면서 너무 곱게 자란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람들도 만나고 열린 생각을 하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온 직장인 조준기 씨도 "남중, 남고, 공대를 나온 엔지니어다. 내가 점점 '낡아간다'는 느낌이 싫고, 사람들을 많이 겪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김경미 씨는 "친구가 1달 동안 인도에 간다고 해서 나도 찾아보다가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해외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다"고 '홧김 여행' 사연을 고백했다. 올해 18세로 '메탈'음악을 좋아하는 '자유분방한' 민경훈 군은 검정고시를 봐 합격한 후 "세상을 '놀기' 위해"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25세 박준현 씨는 8월에 군입대를 앞두고 마지막 추억을 만들기 위해 왔다. 박미서 씨는 티벳에 수차례 배낭여행을 떠났던 '베테랑' 여행자로 유용한 정보를 함께 공유하기도 했다.

▲ 동 티벳 최고봉인 '메리 설산'에 오른 '공정족들'이 아마도 '윈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할 것 같은'(?) 현지 식당에서 '연주회'를 열었다. ⓒ프레시안

송수명 씨는 "1차 공정여행에 다녀오고 나서 그 추억을 잊지 못해 5차 공정여행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느즈막히 대학교 사진학과에 입학한 홍원효 씨는 시종일관 '화통함'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 외에도 다양한 직업과 경험을 갖고 10대에서 60대를 아우르는 사람들이 모였다.

전주에서 온 이미숙 씨는 티벳 소금마을 아이들을 위해 여행 전 손수건을 직접 만들어 왔다. 손수건에 직접 치자물을 들였다는 그의 손은 여행 내내 까만색이었다. 이 씨는 "새로운 곳에 가서 현지인들의 문화를 보고 배우고 즐기는 것도 좋지만 현지인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알려주고, 한국에서 가져온 작은 기념품을 나눠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손재주가 다양한 이 씨는 한복, 사물놀이, 전통 문양 등을 소재로 작은 악세사리, 열쇠고리 등을 직접 만들어와 아이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 샹그리라 밤거리를 거니는 '공정족' 들 ⓒ프레시안

이번 여행에서 통역을 자청해준 김광범 씨는 여행사 일을 했지만 지금은 작은 수출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박용 씨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여행사에 취직한 '사회 새내기'다. 김 씨는 "최 작가와 인연으로 1차 공정여행에서 통역을 했었다. '공정 여행'이라는 취지에 공감하고 참가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했고, 막상 어울려보니 정말 좋은 추억을 간직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용 씨는 "여행은 비빔밥과 같다"고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공정 여행'의 취지에 공감해 같은 목적지를 가지고 떠난다. 함께 먹고 자고, 때로는 얼굴도 붉히지만 서로 이해하고 즐겁게 어울리는 '소통하는 여행'을 표현한 것이다. 스스로 '공정족'이라 부르는 이들은 여행 후에도 카페를 개설하고 '소통'하며 추억을 공유한다.


국제민주연대의 공정여행 10계명

1. 공정여행에서는 현지인을 만날 때 열린 마음으로 항상 웃는 행동을 권장합니다. 여행자와 현지인의 간극을 가장 크게 줄여줄 수 있습니다.

2. 공정여행에서는 겸손한 마음가짐과 조심스런 행동을 권장합니다. 우리의 기준으로 판단하여 미개하다거나 불결하다거나 종교적 차이 등으로 인하여 무례를 범하지 않는 여행문화를 만들고자 합니다.

3. 공정여행에서는 보디랭귀지를 적극 권장합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고 의사소통을 하지 않고 통역에만 의지하려 하지 마십시오.

4. 공정여행에서는 100% 현지식의 식사를 합니다. 여러 한국 관광객들이 외국 여행에서 (특히 패키지 여행에서) 선호하는 한국식의 식사를 제공하는 음식점은 거의 100% 외지의 자본이 들어온 경우입니다. 공정여행에서는 원래부터 음식 장사를 하고 있었던 현지 사람들(최대한 소수민족들)의 음식점을 찾을 것입니다.

5. 차를 오래 탄다고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윈난의 경우 윈난성 내의 항공교통이 잘 발달돼 있어 현지의 여행지들 사이를 이동할 때 항공을 이용하면 매우 짧은 시간에 편하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정여행에서는 어마어마한 화석연료 소비의 대상인 항공 이동을 자제합니다.

6. 공정여행에서는 군것질을 적극 권장합니다. 보이는 대로 군것질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7. 공정여행에서는 시시때때로 쇼핑을 많이 하길 권장합니다. 현지인들의 경제에 가장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입니다. 대형 쇼핑센터를 들르는 시간은 전혀 없습니다. 곳곳에서 현지 소수민족들의 역사와 숨결이 담긴 민속공예품들이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8. 공정여행에서는 팁문화를 권장합니다. 숙소와 식당, 운수회사, 여행지 등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직접 전달되는 팁문화는 권장하고 싶습니다.

9. 최대한 1회용 세면도구의 사용을 줄이고자 세면도구는 꼭 준비해가시라고 권합니다.

10. 내복 등 충분한 속옷을 준비해가십시오. 윈난의 소수민족 지역은 큰 규모의 호텔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스팀난방이 되지 않으며, 그 정도 기온에 적응해서 사는 것이 그들의 일상입니다.

11. 가이드가 없습니다. 여행기획자와 통역자가 함께하지만 이들 역시 공정여행 참가자들과 함께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로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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