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줄다리기 같았지만 제법 긴장감이 돌았다. 티벳 입경을 위해 공안들과 승강이를 벌였다. "당신네들 믿었다가 낭패를 볼 수 있으니까 상부에 확인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중국 공안의 말만 듣고 2시간을 넘게 기다렸다. 티벳 들어가기가 꽤나 까다롭다. 우리로 치면 경찰청, 문화체육관광부, 국방부의 재가를 동시에 받아내야 하는 꼴이다. 더친에서 2시간 여를 달려왔다. 이곳은 해발 약 2600미터, 간간히 어린 친구들이 고산병 증세에 시달린다.
▲윈난 소금마을 '자다 마을'의 소금밭 ⓒ프레시안 |
티벳 입경은 여행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특히 단체 여행일 경우는 더 그렇다. 5차 공정족 33명은 분명히 여행사를 통해 입경 허가를 받았다. 여행사도 '문제 없다'는 식이다. 여러 가지 편법으로 개별 여행이 가능하다지만 지금은 엄중한 상황, 게다가 편법을 썼다가 잘못 걸리면 추방당한다고 했다. 단체 여행객의 경우는 정해진 루트, 정해진 가이드, 정해진 시간 동안의 여행만 가능하다.
얘기를 들어보니 주로 서양들이 티벳에 들어가서 간간히 '티벳 독립 반대 시위'를 조직한다고 했다. 그런 '기획 입경'을 배제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팀의 '공정여행'을 디자인한 곳이 '국제민주연대'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의 단체 아닌가. 중국 공안들이 그 이름을 확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입경 허가'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리는 것을 보니 괜히 불안해진다.
입경 허가서가 확인이 된 모양이다. 통역을 기꺼이 담당해 준 재중교포 김광범 씨가 안도의 한숨과 함께 배시시 웃어보였다. "못들어가는 줄 알았어요. 워낙 이 친구들이 까다로와야지..." '허가'와 함께 몇 가지 주의 사항도 얻어왔다. 첫째, 보이는 민가라고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내부 사진을 찍지 말 것. 현지인들과 정치적 대화를 나누지 말 것. 체류 일정은 당일 하루. 솔직한 말로 여행자 대부분은 정치적 대화는 나누고 싶어도 나눌 수 없는 중국어 실력자들이다. 이 모든 것이 '분쟁 지역에 들어왔구나' 하는 실감을 안겨주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티벳 경계 지역, '소금 우물'이 있는 곳, 엔징(鹽井)과 '자다 마을'까지 우리를 안내해 줄 짱족 청년들이 중국어로 뭐라고 떠든다. 알아들을 수 없다.
▲ 티벳 공안 입경 사무소 앞에서 ⓒ프레시안 |
상황을 설명해주기 위해 입을 연 김광범 씨의 한국어가 반갑게 들렸다. "10월 1일이 중국 건국절입니다.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장제스(蔣介石) 국민당 정부를 몰아내고 정권을 세운 날로부터 딱 60년이 되지요. 제가 중국에서 석재 수출업을 하는데 광산에서 폭약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어요. 제 사업도 큰일입니다. 상하이 같은 대도시에서는 이른바 '조폭' 단속에 나섰어요. 작년에 대규모 티벳 소요 참사, 그리고 올 들어 발생한 신장(新疆) 우루무치(烏魯木齊) 지역의 참사가 재현될까 중국 정부가 노심초사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솔직히 '허가 다 받아놓고 티벳에 못들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불안했습니다. 그런데 다행이네요."
올 들어 중국 정부는 바짝 긴장했다. 지난 3월에는 티베트 민중 봉기 50주년, 6월에는 톈안먼(天安門) 참사 20주년이고, 7월에는 파룬궁을 불법화한 지 꼭 10년 째를 맞았다고 한다. 중국 정부는 굵직한 '반체제 인사들'의 기념일을 별 탈 없이 차례로 통과한 터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중국 정부는 반체제 활동가, 인권단체에 대한 감시망을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6521프로젝트'라는 것을 진행 중이다.
▲ 붉은 소금 '홍염' ⓒ프레시안 |
소금마을 아이들에게 학용품 전달하기
이런 저런 생각과 걱정이 교차하는 사이 차마고도가 시작되는 윈난성을 벗어나, 드디어 티벳 땅에 들어섰다. 곳곳에 티벳어와 중국어가 함께 쓰인 간판이 눈에 띤다. 탁한 란찬강(瀾滄江, 메콩강 상류)이 흐르는 골자기 깊숙한 곳에 '소금 우물'이 있다. 옌징(鹽井), 일명 '흰소금 마을'이다. 그 왼쪽에는 붉은 빛을 띤 산 아래에는 '자다 마을', 일명 '홍염 (紅鹽) 마을'이 있다. 지도에서 눈대중으로 본 이 마을은 윈난과 티벳의 경계선에 거의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구불구불 길을 따라 무려 2시간 이상 가야 하는 곳이다.
고스란히 비포장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해야 했지만 압도적인 주변 광경 덕에 지루함은 덜하다. 삼각 김밥처럼 비쭉비쭉 서 있는 커다란 산 사이 란창강이 조용히 흐른다. 산은 붉었다. 저 아래, 물은 흐리다. 멀리 보이는 산과 산, 그리고 산, 그 중턱에는 말이 겨우 지나갈만한 길이 물결 무늬처럼 길쭉하게 늘어서 있다. 산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저 길. 차와 소금을 실은 마방이 지나다니던 차마고도(茶馬古道)다.
▲ 자다 마을의 회관에 걸려 있는 중국 지도자 사진들 ⓒ프레시안 |
'홍염 마을'이라는 자다 마을의 별칭은 이 지역 흙이 붉은 빛을 띤다고 해서 그렇단다. 자다 마을은 티벳족의 일종인 장족(藏族) 사람들이 살고, 옌징 마을에는 나시족(納西族) 사람들이 산다고 했다. 1000년 전에는 이들 사이에 소금을 두고 전쟁까지 벌어졌다니, 과연 산간 벽두인 이 곳 티벳과 윈난성에서 소금이 얼마나 귀했는지 보여주는 사료 같다. 육지 소금은 과거 이 곳이 바다였음을 보여준다. 확실하진 않지만 가장 인정받는 학설이란다. 히말라야가 융기하면서 바닷물이 흙에 그대로 섞여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곳 '우물'에서는 '소금'이 난다.
'한 번에 한 대씩' 건널 수 있는 아슬아슬한 재래식 나무 다리를 건너 자다 마을에 도착했다. 아주 작은 소학교(초등학교) 분교에 들러 '공정족'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한국에서 사온 학용품을 건네줬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을 학교로 구태여 불러들인 '비호감' 손님이 됐을까? 외려 아이들에게는 우리같은 외지인이 신기해 보일만도 할 것 같다. 오밀조밀하게 꾸려놓은 소금밭에서 티벳 나시족 아낙네들과 소금을 그러모으며 '육지 소금'도 조금 맛 봤다. 칸칸으로 나눠진 소금밭은 마을사람마다 저마다의 소유지가 있다고 했다.
작근 마을회관에 들러 짱족식 전통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이 마을엔 영수증 따위를 끊어주는 식당이 없다. 외부인이 오면 회관을 내주며 식사를 대접한다. 물론 그에 상응한 '식대'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손님을 맞는 밝은 표정의 짱족 여인의 얼굴들, 긴장감이 훌훌 풀리기 시작하는 찰라, 식당 벽에 마오쩌뚱, 덩샤오핑, 장쩌민 등 중국 지도자들의 얼굴이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중국인입니다'라고 강변하는 중국 정부의 웅변처럼 보였다. 티벳 불교를 믿는 이들에게 달라이 라마 사진은 어디에 있을까?
▲ 샹그리라 근교 쑹찬린 사원 ⓒ프레시안 |
"난 티벳인이고, 티벳의 독립을 바란다"
이 곳에 오기 전에 들렀던 한 사원에서 달라이 라마 사진을 보긴 했었다. 리장에서 이곳 티벳 홍염마을까지 안내를 맡아준 '빠덴'이라는 이름의 짱족 가이드와 함께 샹그리라 근처의 쑹찬린 사원(松贊林寺)에서 봤던 달라이 라마, 그의 사진에 대한 기억. 빠덴은 당시 "티벳 사원에는 보통 달라이 라마 사진을 둘 수 없지만 이 곳 쑹찬린 사원에는 걸려 있어. 특이한 현상이야"라고 설명했다. 티벳 본토가 아니어서 이 정도 사진 쯤은 예외로 눈 감아줄 수 있다는 뜻인가? '팍스 차이나'의 강온 전술의 일환인가?
설명을 마친 빠덴은 달라이 라마 사진 앞에서 경건하게 절을 했다. 작은 돈을 그 앞에 '시주'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빠덴이 사진 앞에 둔 돈에는 마오쩌뚱 사진이 담겨 있고, 모든 중국 지폐에는 마오쩌뚱이 들어가 있다. 마오쩌뚱이 달라이 라마에게 인사할까? '이 돈을 독립 자금으로 사용하시오'라고. 물론 독립자금은 아니겠지만, 이 돈은 쑹찬린 사원에 모셔진 달라이 라마와 달라이 라마를 우러르는 스님에게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공안에게 '까닥'을 걸어주는 티벳 승려. '까닥'은 순수한 믿음, 정(情)의 상징이고 이를 목에 걸어주는 것은 '당신의 평화를 바란다'는 의미다. ⓒ프레시안 |
사원을 나왔더니 큼지막한 사진 하나가 눈에 띠었다. 티벳 승려가 공안의 목에 흰 비단천, '까닥'을 걸어주는 장면이다. 티벳 불교 의식에서 사용되는 '까닥'은 순수한 믿음, 정(情)의 상징이고 이를 목에 걸어주는 것은 '당신의 평화를 바란다'는 의미라고 했다. 또 다시 오체투지를 하며 땅에 머리를 찧던 승려들이 생각났다. 티벳 승려는 '우리의 독립'을 바라지만 '공안의 평화'를 위해 머리를 찧고 '까닥'을 목에 걸어준다. 그게 중국 공안의 목이라 해도 좋다. 촛불 집회 당시 전경의 방패에 꽃을 달아주던 시민들의 모습이 얼핏 설핏 생각났다.
▲장족 가이드 빠덴 ⓒ송수명 |
티벳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다람살라에서 4년 동안 영어공부를 했다던 그에게 "혹시 망명 정부에서 일을 했었나"라고 묻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그냥 영어 공부만 했어"라고 말했다. 영어를 배우려 했다면 왜 하필 다람살라에 갔을까라는 의문도 들었지만 딱히 얘기하고 싶어하지 않은 것 같아 더 묻기를 그만 뒀다. 대화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빠덴이 갑자기 물었다.
"밥 말리(Bob Marley) 노래 좋아해?"
"응, 사랑하지."
"이 노래 가사 알아? '세상의 일들에 대해 걱정마세요, 모든 것은 잘 될 거예요. 걱정말라고 노래를 불러봐요.' (밥 말리의 노래 'Three little birds' 가사 중에서)"
"하하, 잘 부르네, 아시아의 '짱족'이 '카리브해'의 밥 말리 노래를 부른다. 재미있군."
"그리고 이 노래도 있어. '일어나 어서, 너의 권리를 위해 일어나. 일어나 어서, 싸움을 포기하지 마." (밥 말리의 노래, 'Get Up, Stand Up' 가사 중에서)
역시 음악은, 아주 잠깐이지만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섞어준다. 화학적으로, 균질하게 해 준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다. 옛 철학자가 '음악은 말과 말의 틈새를 메워준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우린 같이 흥얼거렸고, 빠덴은 노래를 부르다 껄껄 웃으며 '버드와이저'를 한 모금 들이켰다. 내 안에 있던 선입견도 훌훌 풀려나갔다. '소수 민족'이라는 어감만큼 본질을 왜곡시키는 말도 없을 것이다. 빠덴은 자유분방한 청년이다. 세계 어느 거리에서나, 어느 대륙에서도 볼 수 있는 그런 청년.
▲ 소금마을의 공부하는 아이들 ⓒ프레시안 |
티벳에서 맞은 '잊지 못할' 생일 파티
소금마을에서 하루를 보내고 털털거리는 비포장 길을 꼬불꼬불 올라갔다. 날은 금세 어두워졌다. 이날 반나절동안 우리를 안내해준 가이드가 경영하는 짱족 식당에서 작은 '파티'가 벌어졌다. '야크 고기 바비큐'와 함께 식사를 하고 짱족 전통춤을 배웠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한국 전통춤과 비슷한 몸짓으로 짱족 아낙네와 청년들이 춤을 췄는데, 우린 어설피 흉내내다 그만 두고는 곧 '막춤'을 췄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이들과 마주보고 몸짓하는 사람들 얼굴에는 웃음이 흘렀다. 마침 이 날은 부산에서 올라온 15살 내기 '청소년 공정족' 박정현 군의 생일이었다. 정현군에게 해 줄 말을 손수건에 적어 목에 감아줬고, 짱족, 한국인 모두 입을 모아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이 친구, 연신 '셰셰'를 외치느라 정신 없었다. 티벳에서 맞은 생일,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이다.
▲ 쑹찬린 사원의 지붕 장식 ⓒ프레시안 |
▲쑹찬린 사원의 승려 ⓒ프레시안 |
▲짱족 자치주 더친(德欽) 현의 짱족 청년 ⓒ프레시안 |
▲ '우리의 독립'을 바라는 티벳 승려들이 '너희의 평화'를 위해 몸을 땅에 던진다. ⓒ프레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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