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라비아 반도와 고려 반도
아랍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작열하는 붉은 태양이 지고 청신한 푸른 어둠이 내리깔린다. 인도양에서 불어오는 소금 먹은 해풍이 사막의 모래 열풍을 잠식해 든다. 저 육/해의 바람이 교차하는 곳에서, 지구의 낮과 밤이 교체되는 곳에서 지구 밖 행성이 우아한 자태를 드러낸다. 이슬람세계, 西域(서역)의 월출은 생김새가 유독 신묘하다. 반달은 늘 좌/우로만 갈리는지 알았다. 아니었다. 페르시아 만의 반달은 상/하로 나뉜다. 아래서부터 절반을 채운 달이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 봉긋하게 부풀어 솟아오르는 것이다. 그렇게 지긋이 만월이 되어간다. 오만의 무스캇에서 지낸 나흘간 하염없이 밤하늘을 실컷 올려다보았다. 아라비안나이트의 진경을 만끽한 것이다. 지구를 무대로 펼쳐지는 태극의 우주쇼, 인간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천상의 예술이다. 은하수 아래 라마단은 그저 지상의 축제였다. 하늘 아래 한갓 미물로서 나는 나지막이 조물주 الله(알라)-를 찬탄할 뿐이었다.
시린 눈을 거두고 집에 들면 다시 아등바등 아웅다웅 인간사가 펼쳐진다. 인도에서부터 이집트까지 줄곧 <قناة الجزيرة>(알자지라) 방송을 틀어두었다. 간혹 아라비아 반도까지 شبه جزيرة كوريا (고려 반도) 소식이 날아든다. 주로 북쪽 이야기가 많다. 유난히 불꽃이 튄다. 핵실험을 했다 하고,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고 한다. 애써 외면하고 싶은,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싶은 달갑지 않는 소식이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남쪽 소식이 부쩍 잦아졌다. 昏庸無道(혼용무도)한 그녀의 민낯이 낱낱이 샅샅이 까발려졌다. 눈인사 나누며 지내던 아랍의 동네 친구들마저 '순씨르-', '쑨-시르' 하면서 한국 걱정을 대신 해준다. 계면쩍기 짝이 없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자괴감이 일었다. 수치심이 들었다. 휘영청 달빛 아래 숨을 곳마저 마땅치 않았다. 머리칼부터 피부색까지, 광대뼈부터 눈동자까지, 무슬림 사이 내 몰골은 영락없는 동북아의 반도인, كوري(쿠리)였다.
또 다른 불꽃이 튀어 올랐다. 촛불이 타올랐다. 남쪽의 소식이 톱뉴스가 되고 신문의 1면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나도 덩달아 고무되었다. 고조되었다. 만월이 차오르듯 한껏 고양되었다. 토요일마다 일과를 멈추고 광화문 현장과 실시간으로 접속했다. 촛불집회를 중계하는 온라인 방송을 여러 창 열어두고, 각종 SNS를 통하여 현장 사진과 문자도 받아보았다. 신명이 났다. 신바람이 났다. 신들린 것 같았다. 신이 내린 것 같았다. 내 안의 신성이, 불성이 밝혀지는 것 같았다. 조선식으로 人乃天(인내천), 내 안의 하늘님을 모시는 각별한 경험이었다. 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을 듯하였다. 서아시아에서도, 북아프리카에서도, 남유럽에서도 디지털 촛불시민으로 빙의하여 오롯한 일체감을 누린 것이다. 과연 21세기는 멋진 신세계였다. 인터넷과 모바일은 황홀한 신대륙이었다. 자부심이 일었다. 자긍심이 생겼다. '광화문'에 가려진 '光化門'이 귀환하는 듯하였다. 서울은 각성과 자성으로 광채를 뿜어내는 발광체의 대문이 되었다. 그 밝은 에너지와 맑은 기운이 지중해까지 와 닿은 것이다. 자랑스러웠다. 사랑스러웠다. 애향심으로 그윽하고 애국심으로 그득했다. 끝내 '동방의 등불'이 켜진 것만 같았다. 백 년 전 타고르의 기도가 이루어진 것 같았다. 'أنا من كوريا'(아나 민 쿠리야). 저는 한국 사람입니다. 제가 저 근사한 나라에서 왔습니다, 저 빛나는 고을에서 날아온 동방객사입니다, 사방팔방 동네방네 널리널리 알리고 싶어졌다.
촛불 1년. 나는 바지런히 옮겨 다녔다. 탄핵 인용 소식을 접한 곳은 베를린이다. 쾌재를 불렀다. 새 대통령 당선을 확인한 곳은 모스크바이다. 휘파람을 불었다. 더 이상 먼 곳까지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기로 했다. 가뿐한 마음으로 사뿐한 걸음으로 현장에 집중키로 했다. 동/서유럽을 훑고 중앙아시아를 지나 러시아를 거쳐 연해주의 극동 도시 블라디보스톡까지 다다랐다. 지구 최장 일만 킬로미터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종착점이다. 볼가 강과 바이칼 호수와 아무르 강을 지나 푸른 바다까지 이르렀다. 돌연 저 바다의 이름이 '東海'(동해)렷다! 감흥이 치솟았다. 자유항구 블라디보스톡은 반도와 중원과 열도와 시베리아가 만나고, 동해와 북해가 연결되는 육/해로 연결망의 허브였던 것이다. 이곳에서 200킬로미터, 자전거로 내리 사흘을 달리면 핫산까지 도달한다. 나선을 거쳐 평양에 이르는 기차표를 구할 수도 있다. 풍계리가 지척인 북방의 국경도시이기도 하다. 핵실험의 여파 또한 곧장 체감할 수 있었다. 태평양을 사이로 말 폭탄이 쏟아지자, 동해가 곧장 출렁이기 시작했다. 매주 눈에 들던 만경봉호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먹구름처럼 몰려왔던 시커먼 극동함대들은 좀처럼 떠날 낌새가 없다. 순식간에 군함이 상선을 대체한 것이다. 시장과 전장이 아슬아슬 힘을 겨룬다. 채널을 고정한 <Россия-1>(로씨야 1)에서는 연신 Корейский полуостров(고려 반도)를 둘러싼 흉흉한 보도가 줄을 잇는다. 다시 그 뜨거운 환희의 겨울이 오기도 전에 북극의 찬바람이 쌩쌩한 것이다. 북방의 삭풍을 먼저 맞으며 별을 헤아리는 내 마음은 갈수록 헛헛하다. 벌써 1년, 허허롭기 그지없다. 겨우 1년, 열망과 절망 사이 허망을 배회한다.
2. 횃불, 촛불, 혼불
촛불 이후 한국사회는 질적으로 나아졌는가? 촛불시민은 여전히 깨어있는가? 촛불 이전보다 더욱 성숙하고 완숙한 사람으로 거듭났는가? 장담하지 못하겠다. 점점 더 단언하기 힘들어진다. 촛불이 흔들리고 있다. 촛불이 흐려지고 있다. 촛불이 탁해지고 있다. 취해있다. 홀려있다. 촛불이 꺼져간다. 촛농이 다 녹아난다. 촛불이 납치되고 있다. '구시대의 막내', 올드보이의 후예들이 촛불을 낚아챘다. 8할의 성심과 정성이 달아올랐던 촛불이 고작 정권 교체를 몇 달 앞당기는 수단으로 그치고 말았다. 면면이 익숙하다. 그때 그 사람들이 속속 권좌로 복귀하고 있다. 1987년으로부터 30년, 강산은 세 번 바뀌었고 세대도 한 순번 돌았다. 하건만 여전히 그네들이다. 근혜를 몰아내고 그네가 돌아왔다. 그리고는 공론장을 장악하고 재차 쌍팔년도 언설을 늘어놓는다. 재빠르게 촛불을 혁명에서 反正(반정)으로 강등시키고 있다. 지겹다. 지루하다. 식상하다. 징글징글하다. 참 오래도 우려먹는다. 어지간히 들 한다. '民主'(민주)라는 이 신성한 단어가 어느덧 1987년 체제의 구세력, 기득권의 수호 논리로 타락하고 말았다.
먼저 무릎 꿇고 석고대죄 할 이들은 지식인이다.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자들이 촛불에 제 이름을 붙여주지 못한다. 실어증에 빠진 채로 正名(정명)을 부여하지 못한다. 정명이 아니고서는 님의 침묵은 더욱 길어질 것이다. 올바른 이름으로 불러주지 못한 촛불은 미처 꽃이 되어 오지 못할 것이다. 죽 쒀서 개 준 꼴이다. 특정한 정파와 그 셀럽과 팔로우들이 촛불을 독점하고 말았다. 성성한 비판의식은 사라지고 흐릿한 성군 숭배만 남았다. '하고 싶은 것, 다 해' 스스로 주권을 방기하고 절대 권력에 충성한다. 제 발등을 있는 힘껏 내리친 사드 (임시) 배치조차도 안면몰수 표변하여 한 입으로 두 말 한다. 상황이 달라진 것 전혀 없다. 애당초 사드는 북핵과 무관한 것이었다. 미국의 대중국 봉쇄 전략, 남한의 MD 편입이 목적이었다. 사드는 북핵의 파편조차 잡아내지 못한다. 애당초 박근혜 정부가 국민을 기만한 것이다. 이어서 문재인 정부가 시민을 기망한 것이다. 그런대도 북조선 탓, 중국 탓이다.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격이다.
1997년 IMF 사태, 신대륙의 세계화의 덫에 빠져 빈사 상태에 빠진 한국이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1992년 반세기 만에 재회한 구대륙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해탄과 태평양만이 아니라 황해가 있었기에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수백 년과 수천 년의 유산이 유구하였기에 불과 4반세기만에 나라살림의 근간과 먹고살기의 토대가 유라시아로 전변한 것이다. 그럼에도 사드 배치라는 이 어이없는 자충수로 서해를 왕래하던 살림살이는 급전직하로 떨어질 것이고, 태평양 건너 지불할 대금은 기하급수로 늘어갈 것이다. 한국 경제는 주름이 잡히고 고름이 고이다 못해 골병으로 문드러져갈 것이다. 그럼에도 권력의 오판을 비판하고 독선을 고발하기는커녕 반대편을 능욕하기에 여념이 없다.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곧은 비판을 하지 못한다. 직언은 사라지고 교언만 남았다. 상대평가에 의존하고 비교우위에 자족한다. 청와대는 연출가의 공연 무대가 되었고, 참여하는 시민들은 손뼉치고 소리 질러- 관객이 되었다. 대중을 추종하고 중생을 추수하는 극장정치가 횡행한다. 정치인은 정치꾼도 모자라 이제 예능꾼이 되지 못해 안달이다. 식자들마저 대세에 편승하여 비위 맞추기에 급급하다. 훼방하는 이들에게는 살벌한 적대감이 흉흉하다. 성주 주민들을 희롱하고 원불교 성직자들을 조롱하고 평화 활동가와 생명 운동가들을 '빨갱이'라며 혐오한다. 그 험하고 뾰족하고 표독한 말들은 거칠어지고 사나워진 마음의 반영이다. 편애가 편협과 편견으로 착종되고 있는 것이다. 눈 먼 사랑은 파국을 초래하고 폐허를 만들기 일쑤이다. 큰일 났다. 큰일이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제발 그 분의 말씀을 상기했으면 좋겠다. 누구보다 사람냄새 폴폴 풍기는 분이셨다. 박정희 신화화하듯 그 분을 가로 늦게 성역화해서는 곤란하다. 망자에 대한 도리도 아닐뿐더러, 그 자체로 不忠(불충)이다. 섬기고 기려야 할 것은 오로지 높은 뜻이다. 박정희를 영웅으로 둔갑시켜 정권을 탐하던 무리들을 근근이 물리쳤다. 그런데 그들을 따라서 또 다른 유훈정치를 교묘하게 획책하는 자들이 슬금슬금 보이기 시작한다. 어언 1년, 적폐들에 들이댔던 그 추상같은 칼날로 촛불의 현재 모습을 되돌아볼 때가 되었다. 그 분 또한 저 곳에서 깨어있는 시민들의 바닥모를 추락에 기겁 하실 것이다. 적개심과 보복심과 복수심으로 끓어오르는 모나고 모진 마음에 기함을 토하실 것이다. 낙향 끝에 '정치하지 마라-' 토로하셨다. 나는 내가 뽑은 첫 번째 대통령의 그 말씀을 87년 체제의 낡은 정치를 반복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뼈에 새겨야 할 말이다. 골수에 박아두어야 할 말씀이다. 망각하노라면 부메랑이 되어 제 목을 칠 것이다. 피바람이 불 것이다. 피가 튈 것이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먼저 끊어내는 자, 새 시대의 맏형이 될 것이다.
한중수교 25년, 언제 적 '중공'이라는 말까지 재등장했다. '북괴'라는 말도 들려온다. 언필칭 '민주어용시민'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손가락에서 삐져나오는 고색창연한 옛말이다. 민주 투사가 졸지에 반공 전사로 돌변한 것이다. 냉전수구세력들의 전문용어들을 고스란히 복제한다. 이쯤이면 막 나가자는 것이다. 지난 세기 반공의 우상에 맞서 이성을 마주세운 이가 리영희 선생이셨다. '시대의 은사'의 영전 앞에 영 볼 낯짝이 없게 되었다. 창피하다. 부끄럽다. 피눈물이 날 것 같다. 피를 토할 것만 같다. 얼치기들은 '포스트 차이나'라는 헛소리마저 지껄인다. 차이나 엑시트 이후 새 시장을 개척하잔다.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하라고 했다. '포스트 아메리카' 시대이다. 중국 시장이 있었기에 한류가 일었고 세계금융위기의 파고도 넘어설 수 있었다. 심지어 아직 만개하지도 않았다. 무르익기도 전이다. 여전히 부상 중이고 도상 중이다. 저 시장이 미국보다 더 커지고 구미를 합한 것보다 더 커질 날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2049년은 되어야 절정을 구가할 것이다. 게다가 동남아시아도, 중앙아시아도, 남아시아도, 러시아도, 유럽까지도 중국과 긴밀하게 엮이고 촘촘하게 묶이어 가고 있다. 아메리카 스탠더드를 유라시아 스탠더드가 대체해 간다. 중국과 척을 지고 새로운 표준(New Normal)에 합을 맞출 수 있나? 중국을 우회하여 새로운 지구의 중원, 유라시아에 진입하고 인도양에 합류할 수가 있나?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둘은 겨우 알아도 열은 미처 모르는 아둔함이다.
사드 배치는 한반도의 남쪽이 일본 열도의 5번째 섬으로 추락하는 21세기 최악의 선택이다. 평택의 육군기지와 강정의 해군기지와 성주의 미사일기지까지, 남한은 철저하게 기지국가로 종속되고 있다. 일본을 보호하고 미국을 수호하는 체스판의 졸로 떨어지는 것이다. 블라디보스톡에서 고려반도를 내려다보노라면 너무나도 明若觀火(명약관화)하게 떠오르는 상이다.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일본군이 은근슬쩍 북상을 노리고 있다. 질세라 중국군과 러시아군도 남하를 호시탐탐한다. 동학의 횃불을 꺼트린 것도 청군과 일군의 개입이었다. 청일전쟁은 러일전쟁으로 이어졌다. 한반도는 연달아 강대국의 전쟁터가 되었다. 사드 배치는 짚을 들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꼴이다. 촛불에 찬물을 끼얹고 반도를 화마로 이끄는 격이다. 이게 팩트이다. 이게 나라인가? 나라다운 나라인가? 설마하니 21세기에도 '삼전도의 굴욕'을 반복하고 말 참인가?
촛불은 정녕 새 정치였다. 낡고 늙은 87년 체제의 구 정치를 혁파하는 펄떡거리는 새 기운이 넘실거렸다. 그 팔팔한 기세로 쌍팔년도 사람들도 뒷자리로 물렸다. 정당들이 앞장선 적이 없다. 시민이 전위였고 정당은 들러리였다. 정파적 이익을 내세운 것이 아니었다. 양심의 발현이었다. 맑고 환한 마음으로 탁하고 흐릿한 세상을 꾸짖었다. 리(利)가 아니라 의(義)를 따졌다. 사사로움을 거두고 정의로움을 희구하는 공적 주체의 집합적 등장이었다. 하여 촛불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요, 진보도 보수도 아니었다. 차라리 공맹의 사도이자 퇴계와 율곡의 후예였으며 녹두장군의 의병들에 더 가까웠다. 太平天下(태평천하)를 염원하고 大同世界(대동세계)를 소망하던 저 의로운 선조들의 외침이 창조적 역사의 주체로서 벼락처럼 부활한 것이다. 그 순간 광화문은 치열한 학당이자 숭고한 성당이었다. 학당과 성당에 정당마저 결합함으로써 그 어떠한 근대적 폭력혁명과는 질을 달리하며 헌법적 틀 안에서 맹자의 방벌론을 완수한 것이다. 왕답지 못한 왕을 몰아내듯, 대통령 자격 없는 그년을 끌어내리고 내쫓아버린 것이다. 서구적 민주의 형식을 빌어서 동방형 혁명, 君舟民水(군주민수)를 완성한 것이다.
촛불 안에서 동과 서는 회통했다. 촛불 속에서 고와 금은 합작했다. 촛불로 인하여 성과 속은 공진화했다. 속물의 떼를 벗고 나를 태움으로써 남을 밝히는 촛불로 화하였다. 나를 정화함으로써 너와 내가 함께 살아가는 이 땅을 淨土(정토)로 전변시키는 弘益人間(홍익인간)의 유토피아가 발현되었다. 단군 가라사대, 곰과 호랑이가 쑥과 마늘을 먹는 고행 끝에 인간이 되었노라 하셨다. 인격 도야가 인권 보장에 선행했던 것이다. 수행하지 않은 민중은 개돼지만도 못하기 십상이라는 뜻이다. 사람이라는 요물은 본능의 충족 너머 욕심마저 추구하는 흉물이자 괴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여 병신년 촛불 또한 뜬금없는 일이 아니라고 하겠다. 돌발적인 사태도 아니었다. 120년 전, 동학의 횃불이 면면하여 끝내 동방의 등불로 진화한 것이다. 저 멀리 서역에서 눈시울 적시며 지켜본 촛불은 필시 혼불의 귀환이었다. '사람이 먼저다', 근대적 민주주의를 돌파하는 '사람다운 사람이 먼저다', 원초의 민주주의, 태곳적 민주주의가 현현한 것이다. 다시 한 번 인내천(人乃天), 오래토록 숙성해온 새 천년의 새 정치였다.
촛불과 혼불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 동방의 예외적 현상만도 아니다. 20세기의 구정치, 좌/우 이념을 대체하는 '정치적 영성'의 물결이 도처에서 도도하다. 지난 1년 히말라야에서 지중해까지 줄기차게 목도한 21세기의 뉴노멀, 신상태이기도 하다. 경제적 이성(산업화)과 정치적 이성(민주화) 이후, 탈세속화 시대의 정치적 영성화가 대세를 이루어간다. 중세로 퇴각한다는 말이 아니다. 성과 속이 공진화한다는 것이다. 성으로서 속을 정화하고, 속으로서 성을 단련시킨다. 이성과 영성이 상호 진화한다. 그러나 통탄스럽게도 이 동향이 좀체 한글 공론장에 가닿지 못한다. 말하고 글 쓰는 사람들의 중대한 임무 방기이다. 아직도 歐美(구미)를 맹종하며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좌/우와 보/혁의 언저리를 헛되이 맴돌고 있을 뿐이다. 헛개화에서 진개화로 이행하지 못한다. 다른 민주, 깊은 민주, 改新(개신) 민주를 탐구하지 못한다. 시야가 원체 좁기 때문이다. 세계관이 워낙 협소하기 때문이다. 그릇이 작으니 그 좁은 동네서도 협치도 못하고 연정도 못하는 것이다. 정치판을 살판으로 살려내지 못한다. 죽자 살자 굿판이 된다. 선거판에 매몰되어 에너지가 고갈된 것이다. 체력과 지력과 염력이 소진된 것이다. 돌림노래를 반복할 뿐이다. 반동적이다. 퇴행적이다.
부디 넓어지고 깊어져야 한다. 세계지도를 펼치고 지구본을 빙글빙글 돌리며 지난 백년과 다음 백년을 견주며 천년만년을 통으로 꿸 수 있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동아시아와 서유럽 사이 드넓은 세상이 자리한다. 힌두/불교문명권과 이슬람 문명권에 유라시아 인구의 절반이 살아간다. 인도는 미래의 G2이며 이슬람은 21세기 최대 종교이다. 그곳에서는 이미 '다른 백년'의 물결이 유장하다. 혁명과 건국이라는 20세기의 논리를 지나 中興(중흥)과 復國(복국)이라는 21세기의 섭리를 펼쳐내고 있다. 19세기 유럽과 아시아의 대분기 이래 서아시아의 대분열체제, 남아시아의 대분할체제, 동아시아의 대분단체제가 유라시아의 대통합으로 수렴되어간다. 접하지 못한 것을 접해보아야 한다. 맛보지 못한 것을 맛보아야 한다. 듣지 못한 것을 들어보아야 한다. 맡지 못한 것을 맡아보아야 한다. 듣도 보도 못한 구대륙과 첫사랑인양 낯설게 조우해야 한다. 멋진 신세계보다 더 근사한 옛 세계를 천진한 호기심으로 부딪쳐 보아야 한다. 그래야 지난 백년의 고정관념이 산산이 부서진다. 비로소 20세기의 맹신이 송두리째 무너진다. 기어이 아집과 독선이 뿌리 채 흔들린다. 창조적 파괴이다. 생산적 붕괴이다.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이다. 新生(신생)이자 再生(재생)이다. 또 다른 창세기, 또 한 번 개벽이다.
3. 선천과 후천, 선생과 후생
後天(후천)세상이 열리고 있다. 근대사의 후반전이 개막하고 있다. 전기근대가 가고 후기근대가 온다. 先天(선천)세상, 서구적 근대는 저물었다. 지구적 근대의 새벽, 여명이 동터온다. 더 이상 좌/우가 보수/진보가 척도가 아니다. 서구적 근대가 독주하던 선천세상의 어그러진 잣대였을 뿐이다. 古/今(고금)이 소중하다. 聖/俗(성속)이 관건이다. 고금합작이 시대정신이고 성속합작이 세기의 프로젝트이다. 민주주의 또한 진화한다. 20세기의 민주화는 만인이 주인되기였다. 一人(일인)의 권력을 萬人(만인)에게 나누어주었다. 민주화 1.0이다. 그러나 그 일인을 聖人(성인)으로 만들고자 했던 각별한 노력을 방기하고 말았다. 고로 21세기의 민주주의는 만인이 성인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에 달려 있다. 만인이 성인되기가 민주화 2.0이다. 만인이 일인처럼 성인에 이르도록 다함께 분발하고 격려하는 집합적 수행이 수반되어야 한다. '깨어있는 시민'이란 군자와 보살에 다름 아니다. 만인이 저마다 內聖外王(내성외왕)을 구현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주권자라고 자부할 수가 있다. 민주시민교육 또한 일인의 聖學(성학)을 모두가 더불어 공부하는 것이다. 이 각고의 수행이 동반되지 않는, 성인이 되고자 분발하지 않는 중생들의 민주주의는 말짱 도루묵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타는 목마름'이 없으면 민주주의는 삽시간에 추락한다. 작심삼일이라도 좋다. 삼일마다 작심을 거듭하여 삼십일, 삼백일, 삼천일, 삼만일이면 경지에 이른다. 그 분발과 분투 속에서 비로소 다른 미래가, 다른 민주가, 새 정치가 그 뽀얀 자태를 드러낼 것이다. 개헌과 開闢(개벽)이 공진화하는 깊은 민주주의(Deep Democracy)이다.
전기근대에서 후기근대로의 이행, 선천세상에서 후천세상으로의 전환은 나의 인생과도 공교롭게 포개진다. 3년 견문을 마감하는 2018년이면 꼬박 마흔이다. 지난 40년 나보다 앞서가신 분들을 나침반으로 살았다. 부모님과 선생님, 선배님을 북극성으로 삼았다. 이제는 달라져야 하겠다. 先生(선생)과 後生(후생) 사이 후자로 무게중심이 옮아간다. 이제 내가 선생 자리에 들고 후생들을 만나야 할 차례이다. 앞으로 40년은 나보다 뒤에 오는 이들과 동행해야 할 것 같다. 그들이 후천세상을 열어가고 후기근대를 밝혀가는 사업에 정과 성으로 후원하고 싶다. 고로 후배, 후학, 후세라고 쉬이 말하지도 못하겠다. '후생님', 이라고 아껴 부르기로 했다. 후생님을 생각하노라니 등골이 오싹하고 뒷골이 서늘하다. 선생님이 내주신 길을 따라가고 밟아가는 것은 그래도 쉽고 편한 일이었다. 누군가 뒤따라온다는 느낌은 북극의 빙하처럼 송연하고 서릿하다. 차마, 감히, 함부로 살아갈 수가 없다. 도무지 게을러 질 수가 없다. 도저히 나태해질 수도 없다. 절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後生可畏(후생가외)의 본뜻을 곰곰이 곱씹어보고 속뜻을 음미해보는 요즘이다. 뒷물이 앞물을 밀어낸다. 후생이 선생을 밀고 간다.
첫 번째 후생님을 뵈었다. 광화문에서 촛불이 막 타오르던 무렵이었다. 베이징에서 살고 있는 17세 소년의 편지를 받았다. 제자를 자처하고 자청하는 글이었다. 浩然之氣(호연지기)가 차고 넘쳤다. 기백과 기상이 넘쳐흘렀다. 내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촛불 하나가 환하게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영원과도 같은 일순이었다. 외로우면 부모님을 떠올리며 분발심을 키웠다. 지치면 선생님을 생각하며 채찍질로 삼았다. 이제는 후생님의 존재가 최상의 격려이자 최고의 훈장님이 되었다. 그 '첫 불'을 은은한 군불로 지피면서 촛불처럼 처음처럼 정진하게 되었다. 그래서 1권의 머리말도 고쳐두고 싶다. "내 길을 가고 싶었다. 새 길을 내고 싶었다."라고 했다. 수정한다. 혼자 가는 길이 아니었다. 후생님들과 함께 가는 길이다. 아니 그들이야말로 진정 주인이자 주인공일 터이다. 그 분들을 모시고 가는 길이다. 나를 따르라, 깃발을 든 것이 아니었다. 마음 같아서는 고운 비단을 깔아드리고 싶다. 안타깝게도 실력이 여태 가난하다. 그저 먼지가 덜 나도록 넝마라도 덮어드린다. 이 뿌연 옛 길에 다른 미래의 단서가 있습니다. 다른 백년의 밑천이 있습니다. 부디 다른 세상의 밀알이 되어주십시오. 기꺼이 허리를 굽혀 도약판이 되고 디딤돌이 되어드리겠습니다. 제 어깨를 힘껏 밟고 일어나 더 넓은 세계를 학습하고 더 깊은 세상을 탐구하며 훨훨훨~ 더욱 높이 비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북방의 한가위, 동해 위로 솟은 둥근 달님을 바라보며 두 손 모아 소원을 빈다.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이태백은 시선(詩仙) 이백, 아랍 출신의 낭인이었다. 일생을 동서남북 유라시아를 유랑하다 대당제국의 궁정 시인이 된 희대의 색목인이다. 조상님들도 내 나라/네 나라 가르지 않고 이태백을 노래하던 아련하고 아름다운 옛 세계가 있었다. 중원을 서역을 북방을 배타하지도 배척하지도 않으셨다. 정유년(2017) 극동에서 추석을 맞이하야 병신년(2016) 서역의 라마단을 떠올린다. 아래로부터 절반을 채워 만월을 향해가던 페르시아의 반달을 추억한다. 유라시아의 색목인들과 말을 섞고 글을 나누고 술잔을 기울였던 옛 반도인도 회감해 본다. 첫 손에 꼽을 이가 홀연한 구름(孤雲), 최치원이다. 고운 또한 태백에 전혀 못지않았다. 중원과 남방과 서역과 북방이 합류하는 장안(長安)을 터전으로 삼아 천하를 주유하던 반도인이자 유라시아인이며 세계인의 원형이었다. 그 옛날 옛적 옛사람 최치원을 후생님의 등불이자 혼불로 삼기를 권한다. 그리하여 기어코 '천하의 가장 넓은 자리에 거하고, 천하의 가장 바른 자리에 서서, 천하의 가장 큰 도를 행하는' 21세기의 大丈夫(대장부)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첫 후생님, 楮石堂(저석당) 金主鉉(김주현) 군에게 삼가 이 책을 드린다.
* 2017년 10월 4일 섭씨 0도의 한가위, 블라디보스톡의 新韓村(신한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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