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승마협회를 맡아 좋은 말도 사주고 전지훈련도 도와달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서 한 말이다. 여기서 '사주고'를, '주다(Give)'가 포함된 뜻으로 볼 수 있는가.
뇌물, 횡령, 재산 해외 도피, 범죄수익 은닉, 위증 등 혐의로 1심 유죄 판결을 받은 이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 5명의 항소심 재판에서 국어 논쟁이 벌어졌다.
이재용 측 "'사주고'는 '사서 주고'라는 뜻 아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 심리로 19일 열린 공판에서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사주고' 속 '주고'는 보조동사라고 주장했다. '놀아주다', '보여주다' 등에서, '주다'는 '놀다', '보이다' 등 본동사를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사주고' 역시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사다'라는 본동사가 핵심이라는 것. 이 부회장 측은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을 인용해서 이런 주장을 했다. 아울러 이 부회장 측은 "승마계에서 '말을 사준다'는 것은 말을 제공해 훈련이 가능하도록 임대해준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박 전 대통령 발언의 의도는, 삼성이 말을 사서 정유라 씨에게 주라는 게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대로라면, 뇌물 죄의 근거가 흔들린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런 해석에 동의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 발언은, 삼성 돈으로 말을 사서 정유라 씨에게 주라는 취지였다고 봤다.
특검 "2014년 박근혜-이재용 1차 독대 당시 말 소유권 이야기 나왔다"
아울러 특검 측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정 씨에게 말을 사주기로 한 합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특검 측은 지난 2014년 9월 15일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진행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1차 독대 당시 말 소유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것으로 봤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이 부회장에게 대한승마협회 인수, 올림픽을 대비한 우수 마필(말) 구입과 해외 전지훈련 등을 요구했다. 이는 사실상 정유라 씨에 대한 지원 요청이라는 게 특검 측 주장이다. 실제로 당시 삼성은 승마단을 사실상 해체한 상태였다.
반면 이 부회장 측은 삼성이 최순실 씨에 대해 알게 된 건 지난 2015년 7월이라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이 부회장 측은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정유라의 관계는 알 수 없다"라며 "이들 관계를 미리 알았다고 증언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과 박원오 전 전무는 국정농단 조력자로서의 자기 역할을 축소하려고 그런 진술을 했을 수 있다"고 밝혔다.
2015년 코어 스포츠와의 계약,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승마 지원…왜 이리 다른가
삼성전자는 2015년 8월 최순실 씨가 사실상 소유한 '코어 스포츠'와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계약서를 보면, 말과 차량의 소유권이 삼성전자에게 있다고 돼 있다. 이 부회장 측이 정유라 씨에게 말을 주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한 근거다.
하지만 특검 측은 계약서에 이런 문구를 넣은 게 "허위·가장 행위"라고 주장했다. "범죄를 은닉하기 위한 수단"으로 넣은 문구라는 것.
그리고 특검 측은 2015년 삼성전자와 코어 스포츠의 용역 계약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 삼성의 승마단 지원을 비교했다. 삼성이 아테네올림픽 때에는 4년 동안 60억 원을 지원했고 말을 임대하는 용역 계약도 세계적 회사인 '홀 쇼케물러'와 맺었지만, 정유라를 지원할 땐 3년 동안 213억 원을 들여 말을 구입하고, 신설 회사인 코어 스포츠와 계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뇌물 성격을 고려해야만, 설명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특검 측은 최순실 씨가 "(말을) 사준다고 했지 언제 빌려준다고 했느냐"며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에게 화를 냈다는 증언, 그리고 최 씨로부터 "자기 말처럼 타라"라는 말을 들었다는 정 씨의 증언 등을 근거로 내세웠다. "좋은 말도 사주고"라는 박 전 대통령의 말을, '사서 주라(Buy and give)'로 해석해야 할 근거라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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