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이어 국가정보원 직원인 이창화 전 청와대 행정관의 광범위한 사찰 의혹이 폭로됐지만 청와대는 여전히 미동도 않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의 정례회동 다음 날인 8일, 의원총회에서 권성동 의원은 "차명폰에 대한 재수사와 특검 요구를 야당이 하는데 불가하다"며 "야당이 제시한 자료는 검찰 수사기록에 있는 자료이고 변호인에게 공개돼 복사한 자료가 유출된 것이다. 마치 검찰이 이를 수사하지 않은 것처럼 호도를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출직 최고위원들 사이에서도 재수사 불가피론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재보선으로 국회에 들어온 청와대 비서관 출신 초선 의원이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비례 대표 출신인 손숙미 의원도 "차명폰 특검이나 재수사는 안 된다"며 "야당에 끌려 다녀야만 하는가. 야당의 정치공세에 왜 휘둘려야 하냐"고 가세했다. 친이직계의 역공이다.
이날 저녁 청와대 초청 원내대표단 만찬에서는 '예산안 법정 시한(12월 2일) 처리'에 대한 대통령의 당부와 김무성 원내대표의 화답이 있었다. 자체 조사 결과라지만 60%를 넘는 대통령 지지율 앞에 거칠 것이 없는 분위기다.
하지만 미묘한 불안감도 엿보인다. 대포폰 문제에 대해 '차명폰이다', '조직적인 일이 아니었다'는 비공식적 해명이 여전하지만 그런 해명은 외려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청와대, 대포폰 증거인멸자들 유죄 받아도 입 다물까?
특히 이인규 전 지원관이 실형을 선고 받았을 뿐 더러 증거인멸을 주도한 진경락 전 총괄지원과장, 장 모 주무관에 대한 선고공판도 코 앞이다. 청와대는 공식적으로 "재판 결과가 나오면 입장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예고해놓고 있다.
최 모 행정관으로부터 지급받은 대포폰을 사용한 장 모 주무관, 최 모 행정관의 행정고시 동기인 진경락 총괄지원과장이 법정에서도 유죄를 선고받을 경우 더 버틸 명분이 없다. 청와대 정무라인의 한 관계자는 "정말 조직적인 무엇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고 해명하면서도 "야당은 끝까지 물고 늘어지지 않겠나. 만약 재수사를 한다면 이영호(전 비서관)만 하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박영준 지식경제부 차관이 청와대에 몸 담고 있을 때 바로 그 밑에서 일했던 국정원 출신 이창화 전 행정관의 직접 사찰 의혹도 터져나왔다. 사실 이 전 행정관 문제는 새로 밝혀진 사실도 아니다.
정두언 의원이 이미 '국정원이 내 뒤를 캤다'고 말한 바 있고 이창화 전 행정관의 원대복귀 과정에서 김성호 전 국정원장이 반대했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원세훈 국정원장은 지난 9월 국회에서 "(정두언 의원 등을 사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은 청와대에 파견된 (국정원) 직원으로 청와대가 지휘권한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국정원이 뭐라고 하기 힘들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석현 의원은 이 전 행정관의 행적을 종합정리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이 대통령과 더불어 이상득 의원, 박영준 차관을 '어둠의 축'으로 지목한 후속조치인 것이다.
그리고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靑 행정관이 국정원장·野대표 뒤 캤다는 건 뭔가'라고 지적했다. 이 전 행정관의 행적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대포폰 파문에 힘을 싣는 효과는 충분해 보인다.
김백준 기획관 아들 의혹에 대한 불안감
거기다가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김백준 총무기획관의 아들 관련 의혹도 제기됐다. 김 기획관의 아들이 자본금 5천만원으로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대기업의 태양광발전소 사업을 따내면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조사 중이긴 하지만 문제될 부분은 아직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다른 청와대 관계자들은 "김 기획관 아들 회사가 어떤 거 같나? 들은거 없나?", "기사는 어떻게 낼건가"라고 기자들을 상대로 '취재'하는 등 민감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나도 김 기획관 아들 속사정은 모른다"고 전제하면서도 "아주 조심스럽고 민감한 분위기가 있긴 하다"고 털어놓았다. 자타가 공인하는 이 대통령의 '집사'인김 기획관 쪽에서 일이 터질 경우 감당키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대포폰 건은 청와대 내에서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대놓고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다"고 전했다.
청와대 내부 기류는 '지지율 60%가 넘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 앞으로도 잘 나갈 것이다'는 식은 아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도 일말의 위기의식을 갖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G20 이후 이 대통령은 "G20으로 국격이 높아졌으니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습을 바꿔야 한다"고 반복해 말하고 있다. 파행을 겪고 있는 인권위원도 보수인사로 채우고, 기업호민관이 청와대를 비판하면서 사퇴해도 눈도 깜짝하지 않고 있다. 야당이 아무리 목청을 높여도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정국 전망이 어두운 이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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