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 의원의 발언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검찰 수사 밖에 없다.
김 여사가 실제로 남상태 사장을 잘 알고, 또 로비에 동원됐는지의 진위 여부를 따지려면 먼저 남 사장이 왜 연임을 하고 싶어했는지, 연임을 해야할 이유가 있었는지, 이 과정에서 로비를 했는지, 로비 자금은 어디에서 나왔는지 등과 관련해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
지금까지 정치권과 언론을 통해 제기돼 왔던 의혹을 종합하면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은 게 사실이다. 검찰이 이같은 의혹을 수사해 '사실 무근'으로 밝혀낸다면 '폭로전'을 펼진 민주당 강기정 의원은 무거운 정치적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검찰 수사에도 불구하고 제기된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정치적 공방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남상태는 누구?
남 사장은 연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1979년 대우조선에 입사했고, 2003년에 부사장을 거쳐 2006년 3월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됐다. 옛 대우 계열사인 대우조선해양은 97년 외환위기로 모회사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1조 원 이상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회사다. 현재 최대주주는 지분율 31.26%의 산업은행이다.
▲ 대우조선해양 남상태 사장 ⓒ대우조선해양 |
이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사실상 선거 지원 조직이었던 선진국민연대 인사 등이 공기업을 장악했다는 뒷말도 나왔다. 청와대 정인철 전 기획관리비서관이 주요 은행장, 공기업 CEO 등을 정례적으로 만나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나왔었다.
'영포라인'을 포함한 선진국민연대 출신들이 청와대, 공기업에 두루 포진되는 과정에서 노무현 정부 시절 임명됐던 기관장들이 줄줄이 낙마했다. 이처럼 '피바람'이 몰아치는 상황에서 남 사장은 2009년 2월 20일 연임을 확정지었다. 많은 이들의 눈길이 쏠린 것은 당연했다.
강기정 의원의 주장에 따르면 남 사장은 연임하기 전인 2009년 1월 자신의 '친구'인 고 김재정 씨가 입원하자, 김 씨를 방문, 대통령 영부인인 김윤옥 여사의 일정을 알아냈다. 결국 서울대병원에서 남 사장은 김 여사를 만났고, 이후 이 대통령의 동서 황태섭 씨를 통해 남 사장은 자신의 부인으로 하여금 청와대에서 김 여사를 만나도록 해 1000달러 짜리 수표 다발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이 대통령이 진노했다"는 말을 전함과 함께 강 의원이 제기한 주장에 대해 "큰 틀에서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즉 남 사장과 김 여사가 어린 시절 친분이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로비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상태 사장도 해명자료를 통해 "어릴적 이후 (김 여사를) 본 적이 없다"고 관련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검찰, 남상태에 칼끝 겨누나…천신일 선에서 끝내나?
"김윤옥 여사가 로비 몸통"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 전까지 야당 의원들에 의해 제기된 연임 로비 의혹은 남 사장이 협력업체인 임천공업 등을 이용해 비자금을 조성해 그 돈으로 정권실세에게 로비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정권 실세로는 이 대통령의 '40년 지기'인 천신일 세중나모회장이 지목됐다. 또 대우조선해양에 취직한 3명의 측근을 이유로 이재오 특임장관에게도 의혹의 눈길이 갔다. 이 장관의 경우 인사청문회에서 이 문제가 주요 쟁점이 됐지만, 관련 의혹에 대해 부인했다.
하지만 천신일 회장은 달랐다. 천 회장은 지난 8월 10일 검찰이 경남 거제시 임천공업 사무실과 임원 자택 등 10여 곳을 수사관 30여 명을 동원해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이는 등 임천공업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하면서 금품을 받은 구체적 '물증'이 나왔다.
임천공업으로부터 40억여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일본으로 출국한 뒤 귀국하지 않으면서 수사는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임천공업 수사와 남상태 사장의 로비 의혹은 '별건'이라고 여러 차례 입장을 밝혔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천신일 회장 선에서 수사를 끝내려는 것"이라는 관측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1년 째 수사중…'남상태 비자금'은 있나 없나?
사실 남상태 사장의 비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된 것은 지난 2009년 7월. 검찰은 대우조선해양을 압수수색했다. 7월 23일자 <해럴드경제>는 당시 검찰 고위관계자가 "(대우조선해양을 압수수색한 것과 관련해) 회계자료 등 확보한 압수물을 분석하면서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하는 중"이라며 "비자금 조성 의혹 부분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그러나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결국 1년이 지난 7월 6일 민주당 강기정 의원은 "지난 6월 중에 대우조선해양 압수수색 영장을 작성한 후 폐기 했다"고 폭로했다. 이와 관련해 3일 대정부질문에서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영장 반려 사실을 국정감사 과정에서 알았다"며 시인했다.
남 사장의 비자금 조성과 관련해 검찰이 임천공업 이수우 대표 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초창기 600억 원대 비자금 조성을 포착했다고 한 뒤 공소장에 354억 원으로 기재한 것에 의혹의 초점이 맞춰진다. 강 의원은 "사라진 300억 원이 남상태 사장의 연임 로비에 쓰인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에 이귀남 법무장관은 "여러 자료가 완벽하지 못한 상황에서 영장이 청구됐었고 기소를 할 때 본인(이수우 회장)이 변명을 하다보니까 (횡령 액수가) 빼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검찰이 임천공업 비자금 조성액과 관련해 남 사장이 연루됐을지 모를 '비자금' 부분을 덮고 있거나, '플리바게닝(형을 줄여주고 자백을 받아내는 방식, 한국에서는 허용되지 않음)을 했다는 의혹도 나온다.
지난해 7월 대우조선해양 관련 수사를 진행하던 검찰이 "남 사장의 비자금 의혹도 들여다 보겠다"고 한지 1년이 넘은 지난 8월까지 "남 사장 비자금 조성 여부를 조사하겠다"는 데 그치고 있다면 검찰의 수사 의지를 의심해볼만한 상황이기도 하다.
검찰이 "남 사장은 비자금을 조성하지 않았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는 한 남 사장 비자금 의혹은 사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결국 이 비자금이 연임을 위해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쓰였는지 여부가, '강기정 폭로'의 진실을 가리는 첫 고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사실장은 돌연 해고…이창하 씨와 '수상한' 관계도 검찰이 남 사장의 비자금 조성 여부를 조사했을 때 석연치 않은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감사실장이 돌연 해고된 것이다.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해 7월 남 사장의 비자금 조성 여부를 조사했는데, 그해 8월 27일 대우조선해양 신대식 감사실장은 해고를 당했다. (☞ "남상태 '부당거래' 의혹 지적하자 '청와대 외압'으로 해고" ) 신 씨는 해고 전까지만 해도 대우조선해양이 협력업체 등과 비정상적으로 거래하는 것 등을 지적해 보고서를 올렸었다. 신 실장은 이후 <프레시안>과 만나 "협력업체는 물론 자회사 설립 등에 있어서도 수상한 부분이 한 두군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감사실장을 갑자기 해고해야 했을까? 대우조선해양 측은 "출장비를 과도하게 쓰고 근무 태도가 좋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신 씨의 주장은 다르다. 신 씨는 현재 해고무효소송을 진행하며 이창하 씨와 대우조선해양의 수상한 관계를 지적하고 있다. 정체 모를 회사를 거액에 사들이는 방법과 함께 특정 인물을 대주주로 만들고, 대우조선해양, 혹은 그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건설에서 물량을 몰아주는 식으로 이 회사를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이창하 씨는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다. (☞ 대우조선해양과 건축가 이창하 씨의 '수상한 관계') 대우조선해양 입장에서도 신 씨는 '껄끄러운'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우제창 의원은 지난달 19일 산업은행 국정감사에서 "이창하 씨는 바지사장이고, 실소유주는 남상태 사장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우 의원 말대로라면 이 씨의 회사 등이 남 사장의 비자금 창구로 쓰였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우 의원은 이 때 남 사장이 대선을 앞두고 외화 유출 등의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새로운 의혹도 제기했다.
당시 신 씨는 해고 이유에 대해 "청와대의 외압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신 씨가 해고된 후 한달 만인 9월 이재오 특임장관의 측근이자 한나라당 당료 출신인 오동섭, 정하걸, 함영태 고문이 들어왔는데, 자신의 해고가 이들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이다. 현재 야당은 이들 '3인방'이 천신일 회장 등과 함께 남 사장 연임을 위한 '로비 창구'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남 사장이 유독 한나라당 출신 인사들을 많이 영입한 이유도 궁금증을 자아내는 부분이다. (☞ 대우조선해양을 덮친 '한나라 낙하산') |
산업은행의 책임 방기?…'로비 연루 의혹'에 대한 해명도 '갸우뚱'
대우조선해양과 관련해 주목할 부분은 또 있다. 산업은행과 대우조선해양의 관계다. 이를 둘러싸고 정권 실세, '로비 몸통' 등의 이름이 현재 제기된다. 민주당 우제창 의원과 신건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대우조선해양이 알짜배기 자회사인 디섹을 매우 낮은 가격에 매각했는데 이는 결국 대우조선해양에 손해로 돌아오는 것이며,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산업은행이 이를 묵인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디섹 지분을 사들인 '스타코'의 회장 이모 씨가 천신일 세중나모회장과 친분이 있는 인물이어서, 천 회장과 디섹 지분 매각을 승인한 남 사장과의 관계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는 의혹도 나온다.
김유훈 전 산은 재무관리본부장(부행장급)이 대우조선해양의 재무담당 부사장으로 영입되는 등 산업은행은 현재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에 관여할 수 있는 상태여서, 사실상의 '배임' 행위로 볼 소지가 있는 지분 매각을 방기했다는 의구심이 생기는 것이다.
민유성 산은지주 회장은 강 의원이 "남상태 연임 로비의 고리" 중 하나로 언급한 인물이다. 남상태 사장의 부탁을 받은 김윤옥 여사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정동기 전 수석을 통해 민 회장에게 연임 지시를 내렸다는 주장이다. 강 의원에 따르면 '남상태→김재정→황태섭→김윤옥→정동기→민유성'으로 이어지는 '로비 루트'가 있었다는 것이다.
▲ 강기정 의원이 제시한 '로비 라인' ⓒ강기정 의원실 |
민 회장은 이같은 주장에 대해 3일 전면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정동기 전 수석과는 "한 두번 만난 적이 있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점은 민 회장이 정 전 수석과 만난 일자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우제창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남 사장이 연임하기 직전인 2월 초 아니냐"고 질문했을 때 민 회장은 "(시점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만 말했었다. 이귀남 법무장관도 대우조선해양 수사와 관련해 민 회장과 정 전 수석이 만났던 사실을 "만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보고받았다"고 했다가 "만난 사실을 보고받지 못했다"는 것으로 말을 바꿨다.
대우조선해양 관리 부실 의혹에, 야당 의원으로부터 "로비의 고리"로 지목된 민 회장의 향후 행보에도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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