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의 비리 의혹은 '곁가지'다. 천 회장이 대우조선해양 협력사인 임천공업으로부터 43억 원의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은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연임 로비와 연관된 문제다. 검찰은 두 사건이 '별건'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정황 증거가 여러 개 있다.
임천공업 이수우 대표가 천 회장에게 로비를 한 대가가 은행 대출, 세무조사 무마, 납품 청탁 등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로비가 있었던 2008년에는 임천공업의 은행 대출이 오히려 감소했고, 2009년에 160억 원이 늘어났다. 160억 원을 대출 받기 위해 40억 원을 줬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또 임천공업은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512억 원의 선수금을 받을 정도로 안정적인 관계라는 점에서 납품 청탁을 굳이 할 필요도 없다. 이 때문에 이석현 민주당 의원은 지난 달 7일 국정감사에서 "남상태 사장이 임천공업을 통해 천신일 회장에게 로비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었다.
지난 달 28일 검찰이 세중나모여행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하면서 속도를 내던 천신일 회장에 대한 수사가 천 회장이 당분간 귀국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해옴에 따라 다시 미궁에 빠졌다.
천 회장은 지난 8월 검찰의 소환조사를 5일 앞두고 일본으로 출국한 이후 지금까지 귀국하지 않고 있다. 그간 검찰은 천 회장의 귀국을 종용했으나 천 회장은 지난 1일 법률 대리인을 통해 "일본에서 치료 날짜를 잡았다"며 당분간 귀국이 어렵다는 의사를 전해 왔다고 한다.
천 회장이 귀국을 하지 않고 버틸 경우 검찰 수사는 다시 지지부진해질 수 밖에 없다. 검찰이 천 회장을 강제로 불러들일 방법이 마땅치 않다. 현재 천 회장의 혐의는 알선수재인데, 일본에는 알선수재라는 죄목이 없어 범죄인 인도요청을 하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범죄인 인도요청을 하더라도 실제 천 회장이 귀국하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이런 상황은 현 사정정국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천신일 수사에 갑작스레 속도를 냈던 이유에 대해 야당들은 태광그룹, C&그룹 등 검찰 수사가 야당에 집중되는 것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한 '균형 맞추기'라고 비판해왔다.
일단 알려진 바로는 천 회장 본인의 의지로 귀국을 '안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교롭게 천 회장이 '귀국 불가' 뜻을 밝혀온 1일 민주당 강기정 의원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남상태 사장 연임 로비의 몸통이 김윤옥 여사"라는 폭로를 했다. 김윤옥 여사가 1000달러 수표 다발을 받았다는 '메가톤급 폭로'로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며 검찰이 접었던 남상태 사장의 로비 의혹이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천신일 꼬리자르기' 정도로 덮어질 문제가 아니게 됐다.
그래서 천 회장의 입장 표명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천 회장이 제기된 의혹에서처럼 남상태 사장 연임 로비 의혹의 '중간 다리' 역할을 했다면? 천 회장이 알고 있는 '진실'은 현 정부와 여권을 겨냥한 '칼'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천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데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는 상황이다. 천 회장이 앙심을 품고 검찰에서 예상치 못한 진술을 할 수도 있다. 따라서 귀국을 원하지 않는 것은 천 회장 본인 만이 아닐 수 있다. 이들과 조율을 거쳐 '귀국 불가' 결정을 내렸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그림 로비' 의혹이 제기된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작년 3월 미국으로 건너간 뒤 아직까지 귀국하지 못하는 것과 똑같은 일이 재발될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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