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의 로비 의혹의 끝은 어디인가. 지난 10월 28일 세중나모 본사를 압수수색하면서 급속도로 진행되는 검찰 수사가 국세청까지 뻗쳤다. 천 회장은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인 임천공업 이수우 대표(54. 구속)로부터 쇼핑백에 담긴 26억 원 등 40억 원대의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 1부(부장검사 이동열)는 최근 당시 임천공업 세무조사를 벌였던 부산지방국세청과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직원 4~5명을 최근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검찰에 따르면, 임천공업에 대한 세무조사는 2008년 부산지방국세청에서 검토하다가 2009년 서울국세청 조사4국이 진행했다.
문제는 2008년 부산국세청이 세무조사를 검토하던 당시 국세청장이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인 한상률 전 청장이라는 점. 천 회장과 한 전 청장의 '특수관계'에 대해선 이미 2008년 박연차 게이트 수사 당시 불거진 바 있다. 천 회장은 당시 태광실업 세무조사 무마를 위해 한 전 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압력을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상률 전 청장은 천신일 회장과 마찬가지로 해외에 체류 중인 현 정부와 연관된 대표적인 비리 의혹 연루자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 임명된 한 전 청장은 대선 직후 연임을 위해 현 정권 실세에 10억 원을 전달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이른바 '그림 로비'라 불리는 한 전 청장의 연임 로비 의혹과 관련해 구속된 안원구 전 국세청 국장은 자신이 이상득 의원에게 두 차례 한 전 청장의 연임을 부탁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 전 청장과 관련된 의혹은 이 뿐이 아니다. 한 전 청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한 '박연차 게이트'의 사전 작업인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4월 "박연차 회장에 대한 수사는 이상득 의원의 지시로 한상률 청장이 했고, 당시 입수한 박 회장 여비서의 다이어리에는 이명박 대통령 측에 건너간 자금 리스트가 있는데, 이것을 한 청장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를 했다"며 "검찰에 넘겨 준 리스트에는 이명박 대통령 대선자금이 삭제돼 있으며, 당시 민정수석이 국세청장에게 (자신을) 경유하지 않고 직보한 것에 대해 꾸짖은 것도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박 의원은 이상득 의원의 최측근인 박영준 국무총리실 차장(현 지식경제부 차관)이 미국에서 한상률 전 청장을 만났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정부 고위층 인사로부터 '이미 정부에서는 이상득 의원과 한상률 청장의 문제는 개인 문제로 정리했으니 조금 도와 달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폭로했다.
천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급진전되면서 이런저런 의혹이 한꺼번에 불거져 나오면서 현 정부에서 '판도라의 상자'로 여겨졌던 한상률 전 청장의 비리 의혹이 다시 주목받게 되는 셈이다. 야당은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천신일-한상률-이상득'으로 이어지는 로비 의혹에 대한 집중 추궁했었다. 한 전 청장이 사실상 미국으로 도피하게 된 것도 정권 실세가 배후에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공교롭게도 이상득 의원은 천신일 회장의 사무실이 압수수색이 단행된 10월 28일 일본 방문길에 올랐다. 한일의원연맹 회장자격으로 정·재계 인사들을 만나 우호협력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공식적으로 밝힌 목적이다. 여권 일각에선 현재 일본에 머무르고 있는 천 회장을 만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국세청은 임천공업에 대한 세무조사 무마 의혹과 관련해, 실제 세무조사가 2009년에 실시됐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한상률 전 청장과 연관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임천공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관할청인 부산국세청을 건너뛰고 2009년 곧바로 서울국세청 조사국에서 했다면 업무절차상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당시 부산국세청에서 세무조사 대상으로 올렸다가 조사를 아예하지 않은 것 자체가 오히려 '로비설'을 입증한다고 볼 수도 있다. 국세청은 임천공업에 대한 세무조사 무마 의혹에 대한 최초 보도인 1일 <국민일보> 보도에 대해선 부산국세청과 서울국세청 사이의 '교차세무조사(세무조사 실시 기관을 바꾸도록 하는 국세청 내부 제도)'의 일환이라며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해명을 내놓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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