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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날고 까마귀는 떨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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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날고 까마귀는 떨어지네

[문학의 현장] 나는 슬픔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배는 날고 까마귀는 떨어지네
배는 날고 까마귀는 떨어지네

아빠는 어디 계시니?

엄마는?

오빠는?

그 아이, 나이먹지 않는 오빠의 사진을 품은 채 처녀가 될 것이고 어느 해 봄, 4월의 꽃을 든 신부가 되어도 이 세상 여전히 더러운 물결은 칠 테지만

바닥부터 구멍 난 숙명, 모든 기만deceit은 배에 있다

까마귀는 떨어지고 배는 날아가네
까마귀는 떨어지고 배는 날아가네

(덧댐)

나는 슬픔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나는 최근에 비올라로 채워졌다.
시작노트

새로운 눈물

저 시의 일부가 된 덧댐이 처음엔 시작노트의 전부였다. 비올라.

(지금은 쫓겨난) 위정자가 중환자실에서 치료에만 집중해야 할 한 어린아이를 데려와 기자들과 카메라 앞에 세웠다. 그리고 물었다. 누가 봐도 그 질문은 천박한 쇼였으며, 아이의 대답은 짧았다. 가슴 자체인 대답은 농축되었고 너무나 투명해서 나는 눈물의 호박琥珀을 보고야말았다. 인간의 욕망과 정치적 수신호인 수소水素, 산소酸素, 탄소炭素 따위와 화합하여 돌처럼 굳어진 그것은 장식이기를 거부한다. C40H64O4, 당신들의 알코올을 여기에 들이붓지 마시라. 그렇다고 침식될 눈물은 아니지만, 어쨌든 당신들이 감추고 있는 벤젠, 에테르를 끄집어내 하수구에 처박으시라. 그리고 바다를, 꽃병을 한 번만이라도 쳐다보시라, 꽃이 도착하지 않은 꽃병을!

내 시는 꽃병에 지나지 않는다. 그 속의 비어있는 공간이 내 시의 몸이다. 누가 꽃을 꺾어 한 아름 안고 와서는 내 시 앞에서 서성댄다. 별이 지고, 별이 다시 돋는 밤이 와도 내 시는 완성되지 않는다. 머리가 무거운 꽃, 그 꽃의 꽃대가 들어차면 내 시는 곧 죽으리라. 죽어야 이루어지는 시라니! 인류가 이미 20세기에 겪은바 있듯이 인간은 누구나 “고통을 선택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고통 받는 태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빅터 프랑클)”

나는 희망한다. 내 시가 죽어도(=회자膾炙되지 않아도) 좋으니, 그 아이의 ‘내적인 힘’은 끊임없이 꽃의 봄이기를. 왜 살아야하는지를 알게 되기를, 그 앎을 힘차게 견인하는 정신의 강인함이 내리뻗는 햇살 같기를. 그리하여 그 아이 처녀가 되었을 때 어느 해 4월의 결혼식에서 가장 고결한 신부가 되기를.

기만deceit과 끔찍함을 실은 배(舟)는 날아갔다. 무책임한 위정자는 썩은 배(梨)처럼 떨어졌다. 시의 싹들이 땅에, 바다에 번진다. 촛불에 둘린 말씀들이 쌓인다. 그렇다한들 “시인은 말씀의 성층권에 오래 머물 수 없다. 그는 새로운 눈물 속에 똬리를 틀어야 할 것이며 그의 법칙 안에서 좀 더 앞으로 뻗어나가야 할 것이다.(르네 샤르 [입노즈의 단장 19번])” 나는 다른 시 한 편을 「배」의 짝인 양 쓰기 시작했다. 꽃병은 하나만 필요한 것일까.

"수류탄手榴彈

포도에게서 온다. 하나의 불꽃! 시란 어떤 갱신, 몽상, 자신의 굴성屈性 tropisme, 존재를 요구하는 반응 ──종이컵 안의 촛불이 지난겨울 내내 그것을 입증했다.

내가 불어제친 알코올의 입김으로 포도는 불을 켠다. 포도송이들이 잎사귀를 넓히고, 잎사귀는 포도송이마다 피를 주기 위해 길을 낸다. 잎사귀를 건드린 손에서

손금이 번진다. 주먹을 쥐었다 펴보면 불꽃이 증식한다, 쏟아진다. 나무에게 술잔을 건넨다. 불을 옮기는 나무, 석류石榴! 꿀에 말린 불꽃의 자립! 불씨를 돌돌 말아 쥔

수류탄手榴彈,
지난겨울 우리는 던지지 않고
그것을 시의 이마에 바쳤다."

꽃병에 다름 아닌 내 시의 이마에 새로운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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