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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카스트 제도' 고착화를 예방해야 한다"

[사회 책임 혁명] 사다리가 빠진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정책

의자가 열 개 있다. 한 개는 튼튼하고 안락하다. 세 개는 삐걱거리고 나머지 여섯 개는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위태롭다. 부러진 의자다. 의자의 차이는 의자에 앉은 사람들의 사회적 신분을 규정하는 듯하다. 실제로 차려진 밥상이 다르다. 겸상하면 어색하다. 가능하면 따로 앉는다. 불편하니까. 더러는 불편함이 이유가 아니라 특권의식이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인격적 모독을 감내해야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위화감'이라는 순화된 용어로 표현되곤 하지만, 실상은 사회적 갈등의 씨앗이다. 고용형태별로 계급을 부여하듯 차별을 조장해온 정책이 만들어낸 부작용이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국가정책을 수립하는 것에 서툰 정부가 확산시킨 해악이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에서 부러진 의자를 버리고 튼튼한 의자 수를 늘리겠다고 한다. 정규직 의자다. 삐걱거리는 무기계약직 의자는 좀 더 튼튼하게 수리하겠단다. 늘어난 의자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그간 언제 넘어질지 모르는 부러진 의자에 앉아있던 비정규직이다. 정부는 지난 7월 부러진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 중 누구를 새 의자에 앉힐지, 또 누구를 앉히지 말아야 할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어 9월에는 교육부가 '교육 분야 비정규직 개선방안'을 내놨다. 교육 분야에서 취업 준비생이 미리 찜한 정규직 의자도 있었나 보다. 튼튼한 의자 수는 약속했던 것보다 대폭 줄었다. 언론은 '이해관계자 간 밥그릇 싸움'으로 시선을 옮기게 만든다.

삐걱거리거나 부러진 의자를 모두 튼튼하고 안락하게 수리하는 것이 가장 간단한 접근법이다. 굳이 튼튼한 의자를 새로 준비할 필요도 없고 누굴 앉힐지 고민할 필요도 없으니까. 그러나 의자를 모두 수리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달갑지 않은 '의자 앉기 놀이'는 반복된다. 기간제교사와 스포츠강사 등이 의자 앉기 놀이에서 탈락할 것 같다. 물론 9월 말까지 예정된 시⋅도 교육청별 정규직 전환심사 결과에 따라 달라질 여지가 없지는 않다.

사다리가 없다

비정규직은 그 자체로 부작용이 아니다. 악용하는 것이 문제이고 그에 따라 고통을 받는 사회적 약자가 늘어난다는 것이 문제다. 자유시장과 개인의 자유로운 이익추구를 위해 무한경쟁과 이윤극대화는 무조건 '선(善)'이고 정부의 개입과 규제 따위는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국부론>의 '보이지 않는 손'을 시도 때도 없이 가져다 인용한다. 하지만 저자 애덤 스미스는 부의 생산 원천이 노동이라는 사실을 <자본론>의 저자 카를 마르크스보다 100여 년 먼저 주장했고, '경제적 이기심은 도덕적 한계 내에서만 허용된다'고 선을 그었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하이에크나 밀턴 프리드먼도 시장의 조정능력을 신뢰, 윤리적인 범위 내에서 이윤 극대화를 말했을 뿐이다. 윤리적 한계를 넘어서는 노동 효율성 추구는 부작용을 낳게 되어 있다.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정책은 도덕의 울타리 안으로 노동 효율성을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공공부문이 앞장서고 민간의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목적이다. 제대로 길을 찾았다. 하지만 의사결정 과정이 아쉽고 사다리가 빠졌다. 교육부는 관련 단체 등의 추천을 받아 외부위원 중심으로 공정하게 심의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미 당사자가 되어버린 정규직을 대변하는 단체로부터는 위원 추천을 받고, 비정규직과 예비교사들로부터는 한 차례 의견수렴만 있었다. 공정성 논란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시⋅도 교육청 전환심의위원회 구성은 달라져야 할 필요가 있다.

다시 기간제교사와 스포츠강사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고용 형태를 제외하고는 기간제교사와 스포츠강사 다수가 정규교원과 동일한 정교사 자격을 갖추고 현업에서 경험을 축적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현업에서는 임용고시 출신이 아니란 이유로 '상대적 평등'을 앞세워 사실상 부당한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 반대로 임용 과정에서는 다년간의 현장 경험에 대해서 어떤 우선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절대적 평등'을 강요받고 있다. 기간제교사와 스포츠강사가 경력직으로 정규 교원이 될 수 있는 별도의 임용 채널을 마련함으로써 어느 정도 개선된 수준에서 교육 분야 '카스트 제도'가 다시 고착화되는 것을 예방할 필요가 있다. 사다리를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정규 교원이나 무기계약직이 되어야 할 유인이 없을 정도로 처우가 개선된다면야 말할 것도 없다. 조금 기울어진 수평 사다리가 놓인 셈이니까.

각 교육청에 게재된 각 학교의 채용공고를 보니, 임금과 수당 등에서 스포츠강사에 대한 처우가 열악하기 짝이 없다. 기간제교사는 그나마 낫지만, 교육공무원법 제32조 규정에 따라 교원 임용에서 어떠한 우선권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스포츠강사와 다를 바 없다. 교육부가 정부지침이나 사회적 형평성을 고려해 기간제교사의 정규 교원 전환과 스포츠강사의 무기계약직 전환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비판할 생각도 없다. 비정규직이 같은 자격과 풍부한 경험을 앞세워 보다 쉽게 정규직으로 옮겨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정규직 전환 지침보다는 동일한 노동에 같은 값은 아니더라도 괴리감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값을 부여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죽음도 부족해 하해와 같은 성은에 기대야만 정규직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세상과는 이별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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