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의 핵심 현안이었던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캐스팅 보트'를 쥐었던 국민의당에서 과반 찬성표가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총력을 기울여 설득에 나선 결과라는 평이 나온다.
국회 본회의 표결 결과는 예상보다 찬성이 다소 높게 나왔다. 국회는 총 재적 의원 299명(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의원직 사퇴로 결원 1명)의 의원 중 구속 수감 중인 배덕광 의원만을 제외한 298명이 이번 표결에 참여했다. 사실상 전원 참석인 셈이다.
당초 찬성표는 가결 기준선인 재석 과반(150명)을 간신히 넘길 것으로 예상됐다. 민주당 의원 121명, 정의당 6명, 새민중정당 2명, 민주당 출신 정세균 국회의장까지 더한 130명에, 국민의당에서 과반 이상의 찬성을 얻는 것을 전제로 한 계산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찬성은 160표였다.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이 찬성 투표를 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을 감안할 때, 국민의당에서 최대 29명이 찬성했거나 자유한국당·바른정당에서 일부 추가 이탈 표가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예상보다 높게 나온 찬성표 수는 집권세력이 받아든 '협치' 성적표로 평가된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이번 표결 과정에서 국민의당 설득에 각별히 공을 들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방미 직전인 18일 오후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김동철 원내대표에게 몸소 전화를 걸어 협조를 요청했다.
추미애 대표는 여당 내 대표적인 대야(對野) 강경파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18일 오전 당 최고위원회에서 자신이 앞서 했던 국민의당 비판 발언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추 대표는 표결 전날인 20일에는 안철수 대표에게 회동을 제안했고, 안 대표 쪽 사정으로 회동이 불발되자 이날은 예고 없이 김동철 원내대표를 찾아가 협력을 당부하기도 했다.
여당 원내 사령탑인 우원식 원내대표도 직접 국회 의원회관의 야당 의원 사무실을 일일이 찾아다니는가 하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야3당을 향해 협력을 호소했다.
이런 여권의 노력은 국민의당 내에서도 일부 평가를 받았다. 박지원 전 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문 대통령이 안 대표와 김 원내대표에게 간곡한 전화를 했지 않느냐"며 "문 대통령이 우리 당 대표에게 전화를 하고 민주당 지도부에서 의원들을 설득해서 만약 오늘 우리가 김 후보자를 대법원장으로 가결시켜 줬는데도 협치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앞으로도 많은 기회가 있다"고 반대파 의원들을 달래면서 찬성 취지의 토론을 했다.
국민의당으로서도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이어 대법원장 후보자까지 부결시킬 경우 여론 반발이 부담되는 처지였다. 특히 여권에서 당·청 지도부가 총동원되다시피 해 '러브콜'을 보냈는데도 이를 걷어찬다면, 오히려 향후 대여 협상력이 떨어질 우려까지 있었다. '우리가 뭘 어떻게 하더라도 어차피 반대할 당'으로 인식될 경우, 여당 입장에서는 더 이상 국민의당에 협력을 기대하지 않고 강공 일변도로 나올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관심은 이제 향후 정기국회에서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개혁 입법'을 하는 데에도, 이번 임명동의안 가결을 이끌어낸 사실상의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협력 모델이 작동할 수 있을지에 모인다. 이 '모델'의 작동을 위해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관련해서는 이번 임명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얻은 경험이 노하우가 될 수 있다.
이날 본회의 후 여당 지도부가 "안철수 대표와의 만남을 계속 추진하겠다. 다른 야당과도 협치 기조를 이어 나가려 한다"(추미애), "야당, 국민의당 의원들께 진심으로 감사한다. 앞으로 더 몸을 낮추고, 여당으로서 개혁과 민생을 위해 뜻을 함께하는 야당과 손을 굳게 잡고 협치의 길을 활짝 열어가겠다"(우원식) 등 발언을 내놓은 것이 주목되는 것은 그래서다.
실제로 이날 본회의 후 우원식 원내대표는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를 찾아가 감사 인사를 전하고, 정치개혁·예산안·입법 등과 관련해 협치를 다짐하기도 했다.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도 야당에 감사를 표하며 "대통령 귀국 후 여야 대표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통해 협치의 틀을 만들어가겠다"고 했다.
국민의당 입장에서도, 이번 임명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민주당·한국당 양 쪽에서 '몸값'을 한껏 높이며 존재감을 드러내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사법부 수장 공백을 막았고, 여당에 적지 않은 빚을 만들어 둠으로써 남는 장사를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이번 국면에서 득보다 실이 많았다. 한국당은 본회의 표결 후에도 당 대변인 논평을 통해 "김명수 대법원장이 그동안 보여준 인식과 좌편향적 코드는 사법부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더욱 불확실하고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 자명하다"며 '뒤끝'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바른정당은 동성애 혐오 주장 등 한국당이 내세우는 김 후보자 반대 논리에 편승하면서 '개혁적 보수'로서 한국당과의 차별성을 드러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렇다고 한국당에 비해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특별히 더 주목을 끈 것도 아니어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은 모양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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