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급적 분노와 자책감을 내려놓고 글을 써보려고 한다. 반드시 공론화되었어야 할, 그러나 단 한 번도 그러지 못한 얘기를 다시 꺼내고자 한다.
본격적인 얘기에 앞서 꼭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정부와 여당은 '사드 임시 배치'라고 말한다. '최종 배치'는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한 이후에 판단하겠다고 한다. 평가 결과 최종 결정이 달라질 수 있다고도 한다.
과연 그럴까?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 황교안 권한 대행 때 이뤄진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전략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불법이라던 소규모 평가를 마무리 짓고는 잔여 사드 발사대와 공사 장비를 성주 기지에 배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4대의 발사 차량이 국내에 반입된 사실을 뒤늦게 알고 분노를 표하며 진상조사에 나서겠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 4대의 발사 차량 배치를 강행한 당사자는 문재인 대통령이다.
이러한 문재인 정부가 일반 환경영향평가 이후 사드를 되돌릴 수 있을까? 지금도 미국의 부당한 요구와 압력에 속절없이 끌려 다니면서 배치가 완료되고 공사도 상당 부분 진행된 상황에서 미국에 '노(No)'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걸 대선 공약에 이어 또 하나의 '희망 고문'이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사드는 '끝의 시작'이다. 두 가지이다. 하나는 사드 배치 '완료'로 대한민국의 운명은 풍전등화 앞에 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 미중 무력 충돌 시 한국이 그 전쟁터가 될 수 있다는 경고는 이미 숱하게 해온 바 있다. 그런데 이것뿐만이 아니다. 사드는 미국의 예방 전쟁과 북한의 보복 전쟁이 야기할 수 있는 한반도 최후의 시나리오에 우리의 운명을 더 가깝게 다가서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끝의 시작'은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을 찾겠다는 심정으로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루기로 한다.
사드가 품고 있는 가장 큰 위험은 사드가 북한의 핵미사일을 막아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있다. 만약 세계 최강의 공격력을 갖춘 미국의 지도자 도널드 트럼프가 이러한 믿음을 갖게 되면 '코리아 아마겟돈'에 성큼 다가서게 된다.
이미 미국은 주한미군의 패트리엇 시스템을 추가 배치하고 업그레이드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 마무리되면서 북한의 장사장포 사정거리 안에 있던 미군 대부분이 평택으로 내려오고 있다. 미국 국방력 건설과 무기 판매의 핵심 대상을 미사일방어체제(MD)로 삼고는 미국과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을 요새화하려고 한다.
미국이 북폭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 가운데 하나는 자국의 피해 수준에 대한 판단이다. 그런데 미국이 예방 전쟁을 통해 북한의 핵미사일 전력을 상당 부분 무력화하고 나머지는 MD로 요격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면 어떻게 될까?
지나친 비약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1991년 걸프전, 94년 미국의 북폭 검토,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등의 사례가 말해주는 게 있다. 미국이 적국을 공격하거나 공격을 검토할 때, 방패부터 깔고 들어간다는 것을 말이다.
더구나 트럼프는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도록 내버려 두느니 북한과 전쟁을 하겠다. 만약 전쟁이 나더라도 거기(한반도)서 나는 것이고 수천 명이 죽더라도 거기서 죽는 것이지 여기(미국 본토)서 죽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모든 옵션은 테이블 위에 있다"고 하지 않는가?
사드는 한국은 물론이고 주한미군조차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한다. 그래서 미국이 주한미군 기지에 패트리엇을 추가 배치하고 업그레이드를 한 것이다. 하지만 사드와 함께 들어온 AN/TPY-2 레이더는 유사시 북한이 주일미군, 괌, 하와이, 미국 본토 등을 향해 미사일을 쏘면 그 정보를 탐지해 'MD 패밀리'에게 전달할 수 있다. 이처럼 사드를 비롯한 미국 주도의 MD가 강화될수록 '한반도에선 죽어도 미국에선 죽는 게 아니다'라는 트럼프의 믿음은 강해질 수 있다. 그리고 북한은 트럼프의 생각이 오판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핵탄두 장착 ICBM 보유를 향해 페달을 더 빨리 밟을 것이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반전(反戰) 의지를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실력이 있느냐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안타깝게도 그 실력이 한참 부족해 보인다. 첫 단추를 잘못 꿰고 나머지 단추를 계속 채워가는 모습에서, 최근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북한에 원유공급을 끊는 데에 협조해달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기어코 사드 배치를 강행하는 모습에서 반전의 의지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실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정리하면 이렇다. 사드는 방어용 무기이다. 그런데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대단히 위험하다. 사드가 아무리 뛰어난 무기라고 하더라도 휴전선을 맞대고 있고 종심이 짧은 한반도의 지리 법칙을 극복할 수는 없다. 레이더가 일본 및 미국 방어에는 기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말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와 정치인, 그리고 사드 배치를 지지하는 많은 언론과 국민들이 반드시 유념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전쟁을 막겠다며 하고 있는 일이 혹시 전쟁 가능성을 높이지는 않을까'라는 반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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