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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공정'이 전두환정부 '정의' 꼴이 안 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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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공정'이 전두환정부 '정의' 꼴이 안 나려면…

[기고]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 공정사회 첫 걸음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15 경축사에서 '공정'이란 말을 화두로 꺼내들었고, 얼마 후에는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국정과제의 핵심가치를 '공정'에서 찾겠다는 포부까지 밝혔다. '공정'이란 가치가 '열린 진보'와 '양식 있는 보수'가 통합할 수 있는 가치라고 보고 있었던 필자는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첫 번째 이유는 필자가 보기에 이명박 정부의 그간의 국정운영과 정책 방향이 공정과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전두환 씨가 '정의사회구현'을 국정목표로 내걸어 '정의'라는 말을 오염시켰듯이 '공정'이란 용어도 그렇게 수난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국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대통령이 한번 던져본 레토릭에 너무 진지하게 반응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냥 지나쳐버리기에는 공정이란 가치는 너무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방금 언급했듯이 필자는 '공정'이 한국 사회의 진보와 보수가 통합할 수 있는 원리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난마처럼 얽혀있는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밝히 볼 수 있는 안경과 그것을 고칠 수 있는 대안까지 제공해주는 가치라고 본다.
▲ 이명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공정한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청와대

공정성(fairness) = 평등한 출발 + 반칙 없는 경쟁 과정

8.15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를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한 기회를 주되,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사회"라고 설명하였다. '정의로운 사회'에 관한 '정의(definition)'가 다양하듯이 공정한 사회를 정의하는 것도 각자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공정한 사회가 무엇인지 제대로 논하려면 먼저 '공정성'이 무엇인지를 정의해야 한다. 그래야 공정한 사회, 공정한 나라를 좀 더 구체적으로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의 정의(definition)와 유사한 면이 있지만, 필자는 공정성을 '평등한 출발+반칙 없는 경쟁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그 반대의 상태인 불평등한 출발, 즉 남들보다 특별한 조건하에서 출발하는 특권을 누리는 것이나 경쟁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가리켜 '불공정성'이라고 정의한다. 혹자는 "출발과 과정은 있는데, 결과는 왜 빠졌냐?" 하고 정의(definition)의 부족함을 지적할지 모르나, 필자는 출발과 과정에 문제가 없다면 결과는 불평등한 것이 맞다고 본다. 보다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벌거나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합리적이고 사회를 보다 역동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공정성에 관한 진보와 보수의 입장

물론 공정성에 관한 위와 같은 정의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존 로크(John Locke)와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 류의 자유지상주의자들(libertarians, 오늘날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보수주의자들이 여기에 속한다)은 경쟁 과정에 반칙이 없는 것만 공정성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내 몸과 나에게 주어진 모든 조건과 환경이 나의 것이기 때문에 경쟁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해만 끼치지 않는다면 공정한 것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육상경기를 예로 들면 같은 출발 라인에 서있는 선수가 운동화를 신든 고무신을 신든, 라면만 먹고 연습을 했든 충분한 영양섭취를 하면서 연습을 했든 그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이들에게 있어서 공정성이란 결국 다른 사람에게 해만 끼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열악한 출발 상황이 양호한 출발 조건을 갖춘 사람의 가해가 빚어낸 결과가 아니라면 상관없다는 것이다.

노직은 여기서 더 나가서 평등한 출발을 공정성에 포함시키면 필연적으로 타인의 피해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출발을 평등하게 하려면 비용이 들게 마련인데, 결과적으로 그 비용은 경쟁에서 보다 나은 결과를 얻은 자가 더 많이 부담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출발과 과정 둘 다를 포함하면 공정성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보수주의자의 생각의 요체이다.

그러나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경쟁이 진정으로 공정하려면 '평등한 출발'은 필수적이다. 출발 조건은 매우 불평등한데, 경쟁 과정에 반칙이 없다고 해서 게임 결과에 모든 사람이 승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경쟁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이 같은 선상에 섰다고 생각하지만, 참가자들의 상태를 찬찬히 뜯어보면 그렇다고 하기 어렵다. 이는 참가자들의 능력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인데, 가령 육상 200미터 달리기 경주에 비유해 말하면 능력이 우등한 사람은 100미터 앞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열등한 사람은 100미터 뒤에서 출발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상태로 진행되는 경기에서 반칙이 없다고 해도 결과가 바뀔 확률은 극히 낮다.

필자가 반칙 없는 경쟁 과정만을 공정성에 포함시키는 것에 반대하는 까닭은 진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위와 같은 출발 조건의 차이가 각 개인의 노력이나 선택과 무관하다는 점 때문이다. 천재 음악가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같은 사람들을 제외하고 인간의 타고난 재능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이 재능이 어떤 환경과 여건 속에서 계발되느냐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상당한 능력을 갖추게 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심지어 타고난 재능마저 사장(死藏)되기까지 한다. 이런 환경과 여건은 출생과 관련이 깊은데, 출생은 도덕적으로 '임의적'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선택의 결과라면 스스로 책임져야 하겠지만, 내가 재벌 가문에서 태어날지 아니면 비정규직의 자식으로 태어날지 선택하지 않았다. 실상이 이러한데 경쟁의 결과를 모두 개인 탓으로 돌리고 경쟁 과정에만 반칙이 없다고 해서 공정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게임의 결과를 패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것을 시기심 때문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실제로 우리는 불운한 환경으로 인해서 자신이 가진 재능을 펼칠 수 없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흔하게 본다. 물론 그런 악조건에서도 이를 악물고 노력해서 성공한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소수이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런 사람들은 신세를 한탄한다. 부모 잘못만나서 내가 이 모양 이 꼴이라고 생각하고, 심지어는 태어난 것을 원망하기까지 한다. 실상이 이러한데 공정성의 의미를 '반칙 없는 경쟁 과정'에만 국한시키려는 보수주의자들의 생각이 설득력이 있을까?

그리고 경쟁 결과가 다음 경쟁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 스포츠와는 달리 시장과 사회에서의 경쟁은 오늘의 결과가 내일의 출발 조건에 영향을 주고 그것이 누적되면 경쟁 결과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특성을 감안하면, 국가는 경쟁 과정은 말할 것도 없고 출발 조건을 비슷하게 하기 위해서 애써야 한다. 그리고 국가는 경쟁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한 사람이나 패한 사람들도 재기할 수 있도록 적극적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요컨대 진보가 중시하는 '평등한 출발'이라는 가치와 보수가 중시하는 '반칙 없는 경쟁 과정'이라는 가치는 함께 공정성 안에 들어있어야 한다.

공정성 구현을 위한 필요조건들

이와 같이 정의된 '공정성'이 담보되려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까? 첫 번째로 평등한 출발을 '지속적으로' 담보하기 위해서는 출신과 소속에 관계없이 교육의 기회와 의료의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고, 실직자에게 충분한 급료를 지급하며 직업재교육과 일자리도 알선해야 한다.

두 번째로 반칙 없는 경쟁 과정을 위해서는 고위공직자일수록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야 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착취가 근절되어야 하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불합리한 격차도 시정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하게 지적되어야 할 것은 평등한 출발을 보장하고 반칙 없는 경쟁 과정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불로소득을 근절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불로소득 근절은 공정성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불로소득은 다른 사람 말해서 소득을 가로채는 것으로 그 자체 중요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출발까지 불평등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토지 불로소득을 통해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한참 앞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은 근본적으로 차단해야 하고, 주식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은 단기적 투기를 장기적 투자로 유도하는 방향에서 적절히 환수해야 한다.

그러면 환수한 불로소득은 어디에 사용해야 할까? 그것은 출발을 평등하게 하는데 투입해야 한다. 그래야 열린 진보와 양식 있는 보수가 만날 수 있다. 앞서 다뤘듯이 보수가 평등한 출발을 부담스러워 하는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출발을 평등하게 하려면 돈이 들어가는데, 결국 그 돈은 열심히 일해서 번 자들(주로 부자들)의 소득에서 충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환수한 불로소득에서 충당하면 아무 문제없다. 불로소득은 개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사적 소유권을 강하게 옹호하는 진정한 보유주의자라면 반대할 수 없다. 불로소득을 인정하면 개인이 열심히 일해서 번 소득, 어떻게 보면 진정한 사적 소유권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소득이 부정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유재산권은 불로소득을 구축(驅逐, crowding out)한다. 물론 진보도 불로소득을 환수하면 그 자체로 빈부격차가 완화되기 때문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이상과 같이 누구나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는 공정성이라는 가치는 기존의 진보와 보수의 인식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준다. 출발이 같아야 하고, 경쟁 과정에서는 반칙이 없어야 한다는 것에 누가 반대할 수 있을까. (토지·주식) 불로소득은 그 자체가 부정의하고 타인을 괴롭히는 것임으로 가능한 한 공적으로 환수해야 하고, 어디서 태어났느냐, 즉 출신과 같은 운(luck)이 한 사람의 일생을 좌우하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므로 모두에게 고른 기회를 주되 그 비용은 불로소득으로 충당하자는 것, 그리고 경쟁할 때는 다른 사람에게 반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결국 공정성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정성과 이명박 정부

그러나 위와 같은 공정성이라는 상식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에서 보면 그간의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 국정운영은 이것과 거리가 한참 멀다. 현재까지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부동산 과다소유자와 건설사들에게 엄청난 불로소득을 안겨주려는 정책으로 일관해 왔고, 교육과 의료 정책은 부자들에게 유리한 구조를 만드는 방향이었으며, 고위공직자 대부분이 위장전입·부동산투기 등의 반칙을 일삼은 자들이었다. 최근 대기업-중소기업 착취관계를 지적하기는 하나 실효성 있는 대책은 전혀 내놓지 않으면서 소리만 요란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명박 정부는 평등한 출발은 둘째 치고 보수가 중시하는 '반칙 없는 경쟁 과정'도 지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명박 정부에게 '보수'라는 이름을 붙여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는 정말 공정한 사회를 지향하고 싶은가? 만약 그렇다면 불로소득을 더 많이 환수해서 건실한 사회적 안전망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구축하고, 교육균등과 의료균등을 실현하는데 투입해야 한다. 반칙을 행한 고위공무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착취관계를 근절시키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불합리한 차별도 시정해야 한다. 만약 이런 방향으로 우리 사회를 개혁하게 되면 한 사회의 중요한 가치인 역동성과 안정성, 효율성과 형평성은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고, 이명박 정부의 주장도 진실성을 갖게 될 것이다.

만약 이런 방향으로 개혁을 하지 않으면서 계속 공정이란 말을 사용한다면, 이명박 정부에서의 '공정'은 전두환 씨의 '정의'와 같이 꼴이 될 가능성이 크고, 퇴임 이후에까지 이 잣대로 심판을 받는 정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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