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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성장 없는 번영', 받아들일 준비 되셨습니까?

[초록發光] '축소 사회'로 가는 재생산 모델

산업통상자원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했다. 주요 매체의 기사를 보면, '청정 에너지전환'에 방점이 찍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기존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어 추후 자세히 따져볼 게 많지만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단적으로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보다 2배 더 많은 예산을 주택·아파트·학교 및 농촌 태양광 발전 등 주민참여형 신재생에너지사업에 투입할 예정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에 대응해 '에너지 전환 국민소통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장관이 수시로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 전환'을 천명하는 것까지 고려하면 지난 몇 달 사이의 변화가 놀랍기까지 하다.


변화는 다른 곳에서도 감지된다. 적폐 청산 이후 문재인 정부가 그리는 미래의 윤곽도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사회정책으로 국한해도 지난 한 달 이슈가 된 정책이 한 두 개가 아니다. 제법 강경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데 이어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를 목표로 한 이른바 '문 케어'가 선을 보였다. 신생아 수 40만 명 붕괴가 거의 확실해지면서 저출산·고령화 대책도 관심을 끌고 있다. 그리고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아동수당 도입 및 기초연금 인상, 정년 연장에서 비정규직 차별 축소 등 복지 정책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앞으로 수많은 난관에 부딪치겠지만 '사회재생산'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전환과 사회재생산의 위기라니, 다소 뜬금없게 들릴지 모르겠다. 다소 거리가 있는 두 사안을 굳이 연결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에너지 전환이 에너지원의 변화를 넘어선 사회 변화를 함축하고 있다면 에너지 전환은 사회재생산의 위기를 같이 고민해야 한다. 사회재생산의 위기는 에너지 전환의 조건일 뿐만 아니라 위기의 해결책을 에너지 전환의 시각에서 짚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환경복지와 건강한 전환


먼저 환경복지로 에너지 전환을 넓혀보자. 출발점은 이미 익숙한 에너지복지일 게다. 최근 에너지에 대한 보편적인 접근성 보장을 넘어서 에너지 전환의 문제의식을 담은 '전환적' 에너지복지에 대한 논의가 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다. 저소득층에게 에너지 바우처를 제공하는 것 이외에 효율화 공사나 소규모 태양광발전을 지원하는 정책이 대표적인 사례다.


여기서 환경복지로 한걸음 더 다가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환경복지는 1차적으로 환경 불평등을 개선하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사전예방을 위한 환경조성으로 나아간다. 즉 누구나 깨끗한 곳에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환경복지가 지향하는 바다.

최근 환경복지를 강화하기 위해 그린 인프라(green infrastructure)를 늘려야한다는 주장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그린 인프라 개념이 낯설 수 있는데, 대표적인 그린 인프라 중 하나인 녹지와 공원을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듯싶다. 유해시설을 줄이고 녹지와 공원을 늘리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 기능도 유지·복원할 수 있으니 여러모로 유용한 일이다.


그런데 그린 인프라에 주목하는 것은 비단 환경복지뿐만이 아니다. 건강도시나 고령친화도시에서 주목하는 건조환경(built environment)은 그린 인프라라는 표현만 사용하지 않을 뿐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건강도시와 고령친화도시를 표방하는 여러 도시들이 생활권역 내에 공원과 녹지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울러 걷기 편한 길을 늘리고 대중교통체계를 정비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공동체텃밭(community garden)이나 도시농업도 건강도시와 고령친화도시가 주목하는 대표적인 영역이다.


환경복지와 건강도시, 고령친화도시의 교집합은 찾는 만큼 늘어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에너지 사용량이나 사용패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굳이 덧붙이자면 환경복지가 확대될수록, 건강도시와 고령친화도시가 늘수록 에너지 전환은 삶에 더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도시의 공원과 녹지는 열섬효과를 줄이고, 걷기 편한 길과 잘 정비된 대중교통이 만나면 자동차의 사용이 줄 것이며, 가까운 먹거리는 화석연료에 의존한 농식품체계에 작은 균열을 내지 않겠는가. 에너지 전환으로 가는 길은 곳곳에서 건강한 전환, 고령친화적 전환으로 뻗어갈 수 있다.

생태적 복지와 전환의 장벽


눈을 생태적 복지로 돌려보자. 복지의 영역을 환경으로 확대하는 것이 환경복지라면 생태적 복지는 복지의 방향과 방법을 문제 삼는다. 따라서 생태적 복지로 넘어가면 에너지 전환은 탈성장의 문제제기를 피할 수 없다. 대체로 생태주의적 입장에 선 사람들은 기존의 복지국가가 생산주의의 함정에 빠져있다고 비판하면서 노동연계복지를 탈노동사회의 비전으로 대체하려는 경향이 있다. 또한 국가보다 분권화된 공동체가 중심이 되는 복지를 선호하며 시민을 복지의 대상이 아닌 공유적 복지 실천의 주체로 바라본다. 실현가능성을 비롯해 논란거리가 많지만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지적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보면, 저출산·고령화로 가시화된 사회재생산의 위기는 생태적 복지에 까다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단적으로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주류적인 접근은 축소 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이행기적 혼란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저출산'이라는 명명 자체에 '고출산'에 대한 희망이 담겨있고, 여기에는 '좋았던 고도성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인구 수를 유지해야한다는 가정이 깔려있다. 그래서 개개인의 삶의 질과 행복을 말하기에 앞서 총량으로서의 인구 수가 문제가 된다. 앞으로 직면할 문제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성장의 한계'를 인식한 사회로 가면서 사회재생산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탈성장주의적 복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에너지 전환이 조만간 부딪치게 될 장벽도 바로 여기다. 자본주의적 혁신을 주도하며 전세계 재생에너지시장을 지배한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에너지 전환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다거나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반격에 끊임없이 시달릴 것이다. 혹여 재생에너지 시장을 선도한다해도 경제성장이 최우선의 목표라면 세계시장에서 더 많은 상품을 팔기 위해 에너지와 자원을 더 많이 쓰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이른바 '성장 없는 번영'이 없다면 에너지 전환은 끊임없이 흔들릴 것이다. 성장에 얽매이지 않은 채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을 실현할 수 있는 탈성장주의적 복지를 구축하지 못하면 복지와 전환의 대립은 불가피해 보인다.

에너지 전환과 전환 네트워크


다행히 위기는 기회다. 환경복지, 건강도시, 고령친화도시는 에너지 전환이 가지를 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드러난 사회재생산의 위기는 생각의 발본적인 변화를 이끄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예컨대, 일본에서 그랬듯이 한국도 머지않아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지역소멸 단계에 접어든 한계지역이 농산어촌에서 대도시로 확산될 것이다. 빈집과 방치된 공간이 늘어 골치 아플지 모르지만 거꾸로 값싸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느는 것일 수도 있다. 만약 그 공간을 공유적 실천으로 채우고 전환의 공간으로 만든다면? 거창하게 전술적 도시론(tactical urbanism)이라 이름붙이지 않아도 된다. 자투리, 틈새 공간을 이용해서 공원·녹지를 만들거나 간단한 먹거리를 기르는 것은 충분히 시도할 수 있는 일이다. 십수년 간 동네숲 만들기, 한평공원 만들기, 텃밭 가꾸기 등의 노하우를 다져온 곳들도 있다. 총유, 커먼즈의 이름을 빌려 낮은 비용으로 일정기간 안정적 이용할 수 있는 소유권 구조의 변화를 꾀할 수도 있겠다. 여기에 사회적 경제가 결합된다면, 국가 재정지출에 구속되지 않는 복지의 영역을 늘리고, 돈이 없어도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길이 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에너지 전환이 갈 수 있는 길도 더 넓어질 것이다.


기, 승, 전, 에너지 전환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모든 정책을 에너지 전환으로 분해할 수 있다는 뜻도 아니다. 어쩌면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조차 확정되지 않은 마당이니 한갓진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론과 무관하게 신고리 5, 6호기 이후의 에너지 전환을 생각하면 단편적이라도 더 넓게 에너지 전환을 이야기해야한다. 에너지전환이 단순히 원전과 석탄화력을 줄이고 이를 태양광과 풍력으로 대체하는 게 아니라면, 전체적인 에너지 공급과 소비구조를 어떻게 바꿔야할지 논의해야한다. 그리고 다른 생산방식, 다른 생활양식을 계속 에너지전환의 우산 아래 엮어야 한다. 에너지 전환의 여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인 바 거센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을 전환의 사회적 기반을 빠르게 늘려야한다. 그래야 국가를 가로지르는 에너지 전환도 가속화될 수 있다. 이점에 있어 사회재생산의 위기 속에서 싹트는 변화는 전환 네트워크로 연결될 잠재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다행히 정치적 기회는 확대되었고, 정책의 창도 열리고 있다. 단편적일지라도 에너지 전환을 모색하며 축소 사회로 가는 사회재생산 모델을 같이 고민할 때가 다가온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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