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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 성추행에 시달리는 여학생은 극한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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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 성추행에 시달리는 여학생은 극한직업

[서리풀 연구通] 성추행,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다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언론에 보도되는 사례들은 콩쿨이나 올림피아드 같은 유수의 국제대회에서 뛰어난 실력으로 입상하는 모습. 가족관계나 경제적 측면에서 버거운 삶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 그도 아니면 어른도 고개를 돌릴 만큼 끔찍한 범죄사건에 연루된 경우 중 하나이기 마련이다. 이러한 극단적 사례들 사이에서 일상의 권리를 주장하는 청소년의 목소리는 '철모르는 애들의 불온한 짓'으로 폄하되고는 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연이은 여학생들의 폭로에 의해 교사들의 성적 괴롭힘 실태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주목할 만하다 (☞관련 기사 : "어떻게 이런 학교, 이런 교사가"부안 여고생 성추행 '일파만파' , 여주 여고생 성추행 피해자 50명 넘어 , "짝짓기 시즌에 가치 높여라" 여고서 교사가 성희롱 발언).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교사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서 여학생들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며 악질적 방식으로 통제해왔다는 점이다. 사건 발생 '이후'도 심각하다. 경찰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겨우 용기를 내서 문제를 제기하고 공론화시킨 학생들의 명단을 학교에 제공했고, 학교장은 '조용히 끝날 일'이라며 문제를 은폐하려 했다 (☞관련 기사 : 부안여고 성추행 사건 '빙산의 일각'이라더니 , 성추행 은폐의혹 교장 "조용히 끝날 거야"). 요즘 말로 '인류애를 잃게' 만드는 대응이 아닐 수 없다.


당시에는 그것이 성적 괴롭힘, 성추행인지조차 몰랐었지만, 여학생들에게 추근거리고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일삼던 남성 교사에 대한 기억은 대한민국 성인 여성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뉴스를 접하게 되면 '그 좋아졌다는 세상은 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되묻게 된다. 그리고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한참이 지나서도 그때의 기억이 선명한 것을 보면, 새삼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성적 괴롭힘을 당한 소녀들의 후유증은 그저 기분 나쁘고 불쾌한 감정에서 그치는 것일까? 청소년기의 성적 괴롭힘 경험이 정신건강, 섭식장애, 심리적 손상, 비만 등과 관련 있다는 해외 연구들이 있다. 국내에서도 직장 내 성적 괴롭힘이 여성 노동자들의 분노, 수치심, 두려움, 우울증 같은 정서반응은 물론, 수면장애, 두통, 체중감소, 폭식 같은 신체반응과 근로의욕 저하, 자신감 저하, 대인기피 같은 인지변화를 유발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탈리아 트리에스테(Trieste) 대학 로미토(Romito) 연구팀은 <스칸디나비아 공중보건학회지>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성적 괴롭힘이 월경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했다.


연구진은 이 문제를 확인하기 위해 여자 대학생 349명을 대상으로 자기 기입식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설문 내용에는 성적 괴롭힘에 노출된 정도와 함께, 다섯 가지의 월경 장애 관련 증상들, 즉 월경 전 증후군, 심한 출혈, 통증, 불규칙한 월경주기, 무월경 경험 여부가 포함되었다.


성적 괴롭힘은 성적 강압, 젠더 괴롭힘, 사이버 괴롭힘의 세 가지 영역으로 구분했다. 성적 통제(sexual coercion)에는 지속적인 성적 요구, 원치 않는 신체 접촉, 성적인 공갈과 협박 경험이, 젠더 괴롭힘(gender harrassment)에는 외모에 대한 부적절한 언급, 요청하지 않은 포르노물에의 노출, 여성에 대한 공격적 발언의 경험 여부가 포함되었다. 사이버 괴롭힘(cyber harassment)은 온라인 방식을 이용한 협박, 모욕, 당사자에 대한 사적인 루머, 원치 않는 성적 사진, 성적인 요구, 다른 충격적인 메시지 수신 등을 포함했다. 각 질문에 대해서 지난 1년간 해당 경험이 '0(없었다), 1(1~2회), 2(3회 이상)'의 3가지 척도로 답변하도록 했다. 이를 종합하여 성적 괴롭힘 지수(sexual harassment index)를 만들었는데, 위의 세 가지 영역 중 해당하는 것이 하나도 없으면 '수준 0', 세 영역 중에 하나가 해당될 경우 '수준 1', 세 영역 중에 둘 이상에 해당될 경우 ‘수준 2’로 정했다.

분석결과, 조사에 참여한 여자 대학생의 41.8%(146명)가 지난 1년 동안 성적 괴롭힘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경험한 성적 괴롭힘의 정도는 '수준 1'이 26.1%(91명), '수준 2'는 15.7%(55명)였다. 또한 연구 참여자들의 월경 장애 증상을 살펴보면, 월경 전 증후군을 경험한 경우가 31.9%, 심한 출혈 35.3%, 심한 통증 51.4%, 불규칙한 월경주기 55.5%, 무월경 6.7% 등으로 나타났다.


무월경을 제외한 모든 월경 장애는 성적 강압과 젠더 괴롭힘을 경험한 여성에서 많이 발생했고, 사이버 괴롭힘은 월경 전 증후군, 불규칙한 월경주기 증상과 관련 있었다. 참여자의 연령, 출생지, 커플 관계, 호르몬 치료 여부, 고용 상태, 어머니의 교육 수준 등 사회인구학적 변수를 통제한 후에도, 월경 장애의 빈도는 (무월경 제외) 성적 괴롭힘 노출 수준이 높아질수록 체계적으로 증가했다. 이를테면 월경 전 증후군의 빈도는, 성적 괴롭힘을 전혀 경험하지 않은 여성들과 비교했을 때, 성적 괴롭힘 노출 정도가 '수준 1'이었던 여성들은 2.1배, ‘수준 2’인 여성들은 3.6배 많았다.


성적 괴롭힘이라는 스트레스가 월경 장애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연구진은 스트레스가 월경 주기와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 스트레스가 월경 장애를 민감하게 인식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어쨌든 주목할 것은, 젠더 폭력 대책의 주요 관심사인 파트너 폭력이나 성폭력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덜 심각해 보이는 성적 괴롭힘 또한 여성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월경 장애는 심각한 중증 질환은 아니지만 여성들의 학업과 업무는 물론, 전반적인 삶의 질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약물 치료나 외과적 처치 등의 비용 부담도 존재한다.

이 원고를 쓰기 위해 자료를 검색하면서 확인한 것은, 학교 혹은 청소년 시기의 성적 괴롭힘에 대한 논문들의 절대 다수가 또래들에 의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사례처럼 교사들에 의해 자행되는 성적 괴롭힘에 대한 연구 논문은 한 편도 찾을 수 없었다. 세계적으로도 이는 흔한 사례가 아닌데다, 아마도 보건 영역에서 '연구'해야 할 주제가 아니라 '형사범죄'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곳이다. 이미 소녀들은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TV에서, 인터넷에서, 무수한 성적 괴롭힘과 혐오 발언에 노출되고 있다. 성적 괴롭힘, 입시 스트레스, 외모 스트레스를 견뎌내고 맞이한 생리주기에는 휘발성 유기화합물로 오염된 생리대가 기다리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소녀로, 여학생으로 산다는 것은 일종의 극한 직업이다.

일부(라고 믿고 싶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교사들에 의한 성적 괴롭힘은 여성성에 대한 젠더 역할 기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 연령과 교사-학생이라는 권력 관계를 통해 강화된 명백한 젠더 폭력이다. 가해 교사와 책임자에 대한 적극적 처벌은 당연하며, 이미 법에서 정한 대로, '피해 학생에 대한 상담, 전문기관과의 연계, 의료시설 안내 등 적극적인 조치'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불어 이러한 피해 경험이 여학생들의 정신건강과 신체건강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 문제를 제기한 용감한 소녀들을 보호하고, 소녀들이 더 큰 목소리를 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격려하고 함께 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이따위로 만든 어른들이 담당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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