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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정책, 핵발전소처럼 공론화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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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정책, 핵발전소처럼 공론화 해야 한다"

[수능, 절대평가 vs 상대평가 ②] 박대권 교수, 김경민 교수 인터뷰

문재인 정부의 개혁 시도가 각 분야에 이어지는 가운데, 교육 분야 개혁 방향을 짐작 가능한 2021학년도 수능 개편안이 뜨거운 찬반 양론을 낳고 있다. 2021학년도 수능 중 4과목(영어, 한국사, 통합사회·통합과학, 제2외국어·한문)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1안과 7과목 전부(1안에 국어, 수학, 탐구택1 포함)를 절대평가하는 2안 중 하나를 이달 말 결정하겠다는 교육부 방침에 절대평가 찬반 세력 전부가 각자의 비판 목소리를 키우는 상황이다.

수능 절대평가 전환은 고교학점제, 국·공립대학 네트워크 등과 함께 문 대통령 교육 공약의 하나다.

전국 각지에서 총 네 차례의 공청회를 열어 각계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교육부 방침은 '입시 제도의 근본적 해결'을 바라는 민심과 온도 차이가 있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프레시안>은 교육부 발표 직후인 지난 11일, 이범 교육평론가를 만나 현 정부 교육 정책 근간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고민했다. (☞관련기사 : "文 공약인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해야 한다")

해당 인터뷰에서 이범 평론가는 수능 절대평가 도입의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교육부가 기본적으로 입시 제도의 기본 철학을 확고히 굳히지 않은 채 수능 절대평가 여부에만 집중하느라 실기한 것 아니냐는 의견을 밝혔다.

전반적인 교육 밑그림에 관한 입장을 넘어서, 우선 닥친 수능 절대평가 도입 여부에 더 집중하는 계기를 갖기로 했다. 2021학년도 수능 전 과목을 절대평가로 확고히 해야 한다는 교육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걱세)의 안상진 정책대안연구소 소장과 수능 절대평가 도입은 입시 교육을 더 망치리라 우려하는 박대권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교수(교육학 박사),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를 만나 충돌하는 두 입장을 정리해봤다. 박 교수와 김 교수는 EBS 6부작 다큐멘터리 <대학 입시의 진실> 제작에 자문팀으로 참가했다.


박 교수와 김 교수는 수능 절대평가 정책이 되레 사교육을 확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의 변별력을 원하는 대학이 절대평가로는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 이에 면접, 학생부종합전형 등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그에 따라 사교육 시장은 지금보다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현재 문제가 많은 학생부종합전형의 비율이 커지면서 문제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발적인 정책이 아닌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핵발전소 공론화위원회처럼 의견 수렴 기구를 만들어 교육 정책을 설득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거치자는 것.

아래는 17일 오후 서울 역삼동 '쉐어하우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이들의 인터뷰 전문.

▲ 박대권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입시제도, 모두가 수긍하지 않으면 문제 심각해진다"

프레시안 :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문재인 정부는 사실상 수능 절대평가를 전 과목에 도입하고자 한다. 수능 절대 평가, 그리고 상대 평가 중 어느 것이 더 우리 교육 현실에 맞다고 생각하는가. 더 정확히는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나.

박대권 : 기자 질문을 방해하는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우리는 대입에 대한 답을 찾기 보다는 이미 나온 '답' 중에서 하나를 고른 뒤, 이것을 가지고 서로를 설득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 주체들이 생각하는 각자의 '답'은 존재한다. 하지만 서로가 다들 자기 '답'만을 주장하면 정말 말 그대로 답이 없다.

프레시안 : 수능을 절대평가 하느냐, 상대평가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대입 관련, 어떤 결정을 내렸을 때는 그 결정과 관련된 관계자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인 듯하다.

김경민 : 어차피 절대평가이든, 상대평가이든, 그리고 내신이든, 본고사든 대입 전형을 만드는 이유는 대학교를 들어가는 기준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기준은 모든 이가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면 그 기준은 문제가 되고 공정성이 도마에 오른다. 현재 도입된 학생부종합전형(학종)가 대표적이다.

프레시안 : 학종이란 무엇인가.

김경민 : 학종은 학생이 지닌 학업 능력, 전공적합성, 비판적/창의적 사고력, 인성, 발전가능성 등의 다면적 평가기준을 설정해 학생부를 포함한 여러 서류와 면접을 토대로 평가하는 방법이다. 단순히 교과 성적, 교내 활동, 수상 경력 등의 표면적인 스펙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부나 자소서 또는 면접에서 드러나는 그에 대한 동기와 과정을 통해 수험생의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을 평가하는 방식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런 취지를 지닌 학종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달라.

김경민 : 학종은 결국 한마디로 학교 선생이 학생을 제대로 평가해서 대학에 가게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잘 사는 집 아이, 혹은 부모가 전문직인 아이에게 더 많은 혜택이 갈 공산이 매우 크다. 예를 들어, 학생의 부모가 교수이고 자식의 스펙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다면, 동료 교수들에게 이런 부탁을 할 수 있다. ‘여름에 해당 교수연구실에서 인턴 경력을 만들어주고, 여러 공저자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넣어달라’는 식으로. 사교육업체에서는 이런 비슷한 것을 연결시켜주는 곳이 존재한다.

프레시안 : 그게 입시에 좋은 영향을 미치나.

김경민 : 대단한 스펙이 된다. 자기 소개서를 쓸 때, 혹은 면접 때, 자기가 교수 연구실에서 빅데이터를 다뤘고, 어떤 것을 공부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늘어놓아 보아라. 다른 학생들과 차별성이 있지 않겠나. 게다가 그 교수가 추천서도 써준다. 그러면 어느 대학에서 이 학생을 안 뽑겠나. 학종이 취지는 아무리 좋더라도, 운영에서 충분히 외부 조직(사교육업체 등)이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 운영과정에서 문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박대권 : 제도 자체는 좋은 거다. 하지만 그것이 운영되는 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1920년대 미국 아이비리그에 학종이 도입됐다. 시험 이외의 제도를 만들어서 학생을 골라 뽑겠다고 발표했다. 그때 고려한 사항이 '학생 개인의 성격과 인성'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 의도는 다른 곳에 있었다. 당시 유대인들이 공부를 워낙 잘하다 보니 아이비리그 대학에 밀려들었다. 백인 주류 사회에서는 이런 현상을 그대로 두고 보면 안 되겠다고 해서 학생을 골라 뽑겠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의도가 있다 한들, 누가 반대할 수 있겠나. '개인의 성격과 인성'으로 뽑겠다는데. 결국, 입시 전형을 통해 특정집단에 대한 선호와 배제가 가능한 것이 학종이다.

프레시안 : 결국, 제도 자체가 좋다 하더라도 그것의 결과는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인 듯하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되고, 혜택 받는 이들이 많아지면 그 제도 자체에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다.

박대권 : 학종은 늘리는 게 아니라 지금보다도 더욱 줄여야 한다. 영재라고 신문기사에 나올 수준의 학생들이나 특정 분야에 월등한 잠재력이 있는 학생들 중심으로 소수만 대학에서 학종으로 뽑으면 된다. 그러면 학종이 공정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말 그대로 특수한 케이스에 예외조항을 인정하는 셈이다. 아인슈타인이 낙제생이었으나, 물리는 천재였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학종으로 대학을 가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경우가 몇 프로나 되겠나. 매우 소수다.

김경민 : 입시제도라는 것은 학생들이 대학교를 들어가기 위해 만든 객관적인,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제도여야 한다. 만약 여기에 수긍하지 못할 경우,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절대평가, 결국 잘 사는 집 아이들에게 혜택 갈 것"

프레시안 : 대학에 들어가는 기준이 모두에게 수긍할 만한 것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두 분이 보기에 수능 절대평가, 그리고 상대평가 이 둘 중 어느 것이 그래도 보다 많은 이가 수긍하리라 생각하나.

김경민 : 다른 것을 언급하기는 어렵고, 우선 영어에 관해서는 절대 평가에 찬성한다. 과거 교육의 불평등 관련해서 썼던 논문에서 연구한 내용이 있다. 거기에서 수능 데이터를 가지고 제일 잘 사는 지역과 못 사는 지역 간 국어, 수학, 그리고 영어 점수의 격차를 살펴본 적이 있다.

프레시안 : 잘 사는 지역 학생들에게 세 과목 모두 높은 점수가 나오지 않았나.

김경민 : 맞다. 그런데 눈여겨 볼 게 있다. 우리가 살펴본 바로는 국어와 수학은 약간의 격차가 존재한다. 하지만 영어의 경우는 매우 높은 격차가 있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격차가 대폭 확대되었다.

프레시안 : 그것은 왜 그런가.

김경민 : 국어와 수학은 가난하더라도 학생 머리가 좋으면 따라가지만 영어는 힘들다는 것을 방증하는 통계다. 영어 점수는 소득격차가 곧바로 교육격차로 나타나는 과목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왜 유독 영어만 소득 차이에 따라 크게 격차가 생기나.

박대권 : 한마디로 영어 교육이 사교육을 하지 않으면 점수가 나오지 않는 구조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문법, 발음기호, 독해 등을 중심으로 시험을 치렀다. 하지만 지금은 말하기, 듣기가 들어갔다. 이 말하기와 듣기는 어릴 때부터 해야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오를 수 있다. 저소득층 가정 아이가 어릴 때부터 이런 교육을 받을 기회가 얼마나 되겠나. 나는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반면, 고소득층 가정의 부모들은 어릴 때부터 자녀에게 말하기, 듣기 교육을 시킨다. 그것이 영어에서 가장 큰 격차가 생기는 이유다. 읽기에 중점을 두면 격차가 많이 줄어들 것이다.

김경민 : 어쨌든 영어는 수능 절대평가를 함으로써 그나마 저소득층 아이와 고소득층 아이 간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어에 한해서는 절대평가를 찬성한다.

프레시안 : 그런데 문법, 독해 중심의 영어 교육이 실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말하기, 듣기 중심으로 바뀌지 않았나. 교육이라는 게 현실에서 도움이 안 될 경우, 그것도 문제가 되지 않나.

박대권 : 맞다. 그래서 영어 교육에서 말하기와 듣기가 중요해졌다. 즉 실용영어 중심이 되었다. 그런데 내가 지적하고 싶은 점은 우리 공교육에서 영어 교육의 목표가 무엇이냐다. 과거 문법, 독해 위주로 시험이 출제되었을 때의 국민적 공감대는 '중고대학교에서 영어 10년 배우고 말 한 마디 못 한다'였다. 그래서 말하기 듣기 위주로 변했다. 그런데 그렇게 변경할 때, 교육부는 어떤 목표를 정했느냐는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 어느 수준의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한다’는 정도의 목표도 알려져 있지 않다. 한마디로 교육에 관한 어떤 목표도 없이 그냥 공감대가 생긴 사회적 요구가 있으면 바꾸는 식이었다.

프레시안 : 왜 그러한 목표를 정하지 않고 입시제도가 변경됐다고 생각하나.

박대권 : 혼재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 공교육에서 교육의 목표가 뭔지를 정해야 한다. 그리고 입시 전형이 정해지는 구조로 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여론, 또는 사회적 요구가 생기면 입시 전형을 바꾸고 그에 맞춰 공교육이 변화하는 구조다.

프레시안 :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는데, 그것과는 반대되는 행보 아닌가.

박대권 : 교육 정책은 정치적 영향력이 강하다. 그래서 공정, 엄정해야 한다. 따라서 정치인이 교육부 장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교육감 입후보 자격에 준하는 정도의 기준을 적용하면 어떨까 한다.

프레시안 :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 '학벌없는 사회' 주최 토론회에서 교육은 뚝심있게 장기간 정책을 밀고 나갈 사람이 장관이 돼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장기 비전을 보고 교육 정책을 이끌어나갈 사람이 수장이 돼야 한다는 의미였다. 정치를 하는 사람이 교육 정책을 맡게 되는 순간, 대중영합적인 정책이 나온다는 이야기인가.

김경민 : '교육이 무엇인가'. 그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공부한다는 것은 힘든 거다. 그것은 불변의 진리다. 하지만 자꾸 공부를 쉽게 하라고 한다.

박대권 : 사실 정치권에서는 학업 관련, 매번 부담 줄인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이야기다. 어른들이 선거, 즉 표와 타협했기에 나온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교육의 본질, 즉 학업은 어렵다. 부담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를 솔직히 선언해야 한다. 그러면 문제가 풀린다. 대학 입시? 무엇을 바꾼다 해도 경쟁은 줄지 않는다. 그렇기에 어른들이 솔직히 이야기해야 한다. '공부는 어렵다. 그렇지만 그렇게 공부한 노력을 의미 있게 만들겠다'. 이것이 어른이 해야 하는 말이다. 경쟁 자체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경쟁의 과정이 공정하고 그 결과가 의미있게 만들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프레시안 : 그런 이야기를 하는 정책 입안자를 본 적이 없다.

박대권 : 교육을 가지고 정치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꾸 교육 정책이 포퓰리즘으로 간다. 즉흥적으로 대중이 원하는 방향으로 간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 대중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교육은 장기 비전을 가지고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장기 비전이 없다는 이야기다.

"10%의 대학, 그리고 인재양성은 어떻게 할 것인가"

프레시안 : 의도가 어떻게 됐든, 결과적으로 수능은 절대평가로 진행되는 구조다. 절대평가가 옳으냐 상대평가가 옳으냐고 물었을 때, 즉답을 피했다. 질문을 돌려보겠다. 절대평가의 문제점은 없나. 있다면 무엇이 있나.

김경민 : 대학교에 몸을 담고 있다 보니 대학 입장에서 이야기해보겠다. 절대평가가 도입될 경우, 일부 상위권 대학의 고민은 깊어진다. '대체 대학은 학생의 무슨 기준으로 뽑으라는 건가'. 결국, 내신과 학종으로 변별력을 만들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고등학교 안에서의 경쟁 더 심해진다고 생각한다. 이는 사교육의 확산으로 될 가능성이 높다.

또는 새로운 안(면접 강화)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현재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도 면접에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학원 등에 다니는 것을 보면, 대학입시에 면접이 강화된다고 할 때, 사교육 확산 가능성이 없다고 보기 힘들다.

프레시안 : 왜 그렇게 생각하나.

김경민 : 국내에서 미국 대학에 자식을 보낸 부모는 잘 안다. 미국 입시 제도가 학종과 비슷하다. 미국에 대학을 보내는 부모는 대부분 사교육, 즉 컨설팅 업체에 의존한다. 아까 말한 교수 연구실에서 인턴하기, 논문이나 보고서 등에 참여하기, 에세이(미국 대학시 제출하는 일종의 자기소개서) 준비하기 등. 이런 것들은 학생 혼자하기는 매우 힘들다. 컨설팅업체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프레시안 : 결국, 부모의 소득에 의해 대학이 결정된다는 이야기인가.

김경민 : 학종이 영향력을 발휘할 경우, 공부를 중간 밖에 못하는 부잣집 아이들이 가장 많은 혜택을 볼 가능성이 높다. 현재 지방에서 학종으로 대학가는 아이들을 특별히 관리하는 경우가 있다. 가정을 해 보자. 둘 다 공부를 어느 정도 하는데, 학교가 한 명을 뽑아서 관리해야 한다고 하면, 어느 집안 아이를 관리하고자 할 것인지. 한 아이는 부모가 네트워크가 좋아서 이미 다양한 스펙을 만들어오기까지 했다면 말이다. 결국 한 명이 돋보이도록 나머지를 배제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이는 매우 비교육적이다. 그런데 수능 절대평가를 할 경우, 즉 수능에 변별력이 없다고 하면, 학종의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하지만 수능 절대 평가의 장점도 있지 않나. 경쟁에 내몰린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숨통을 트여 줄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대권 : 이렇게 이야기해보겠다. 과거 입시전형이 수월해지자 서울대에서 본고사 카드를 꺼냈다. 하지만 중하위권 대학은 본고사 자체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학생 충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하는 서연고, 그리고 중견 대학까지는 변별력을 원한다. 전체 대학이 400개 정도라면 30개 정도 대학은 학생 선발이 필요한 대학이 될지 모르나 나머지는 아니다. 즉 약 10% 정도의 대학만이 '경쟁에 의한 선발'이 필요하다. 즉 다시 말해 변별력은 10% 대학만의 이야기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10 : 90으로 정책을 다르게 펴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박대권 : 변별력 문제는 10% 대학의 문제다. 이번 정책으로 90%가 혜택을 받는다고 한다면, 나머지 10%는 어떻게 할지를 논해야 한다. 이를 무시할 수 없다. ‘서울대는 왜 들어가기 힘들어야 하나? 왜 이들을 위해서 변별력을 심화해야 하나?’.

프레시안 : 결국, 인재 양성을 위해서 아닌가.

박대권 : 공부 자체가 재미있는 활동은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어렵고 힘든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런 훈련은 아이 때부터 해야 한다. 그렇게 초·중·고를 거치면서 공부한 것을 기본으로 대학에서도 연속해서 힘든 공부를 해야 한다. 그게 문제인가? 휴대전화 사용이 아니라 휴대전화 개발을 하는 사람들, 보통 사람의 인생과는 전혀 관련 없는 추상적인 고난도 수학을 연구하는 사람, 현재 쓰지도 않는 한문으로 써진 고문서를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은 일부러라도 키워야 한다.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이기 때문이다. 엘리트를 양성하는 교육은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대학 입장에서도 제대로 준비도 안 된 학생을 뽑아서 심화 교육을 시킬 수는 없지 않나. 이것을 정부가 막아서는 안 된다. 변별력을 따지도록 해야 한다. 10%의 대학에는 그것을 하게 해줘야 한다.

김경민 : 그렇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때 발표한 교육 관련 두 가지 공약, 즉 '정시 늘린다'와 '수능 절대평가 도입'은 앞뒤가 안 맞는다. 절대평가를 하면서 정시를 늘릴 수는 없다. 대학교 차원에서는 불가능하다. 변별력이 떨어지니 정시 이외에도 다른 것도 집어넣으려 할 것이다. 면접이라든지, 학종이라든지. 그러면 자연히 학생들의 부담은 더 커진다.

프레시안 : 북유럽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학생들은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박대권 : 핀란드, 스위스 등과 우리나라를 비교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거기는 인구가 500만 명에 불과하다. 그런 나라와 교육을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우리와 비슷한 인구가 높은 지역, 즉 파리를 봤을 때, 거기는 자유로운 수업할까. 아니다 고등학교 때 매우 열심히 공부한다. 그리고 핀란드도 공부를 열심히 시킨다.

김경민 : 미국의 경우도 고등학교 경쟁이 매우 심하다. 미국 보딩 스쿨의 경우, 1년 학비가 6만 달러다. 보딩스쿨에 진학하는 경우 아이비리그 대학교와 MIT, 시카고 등 명문대학교 진학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그러니 중산층 이상은 매우 보내고 싶어하고, 심지어 재수를 해서라도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미국에서 좋은 공립 고등학교에 보내기 위한 경쟁이 없다고 보나? 공교육의 지역간 격차가 매우 심하기 때문에 우리보다 덜하지 않다. 하지만 문제가 덜한 이유는 거긴 인구가 3억 명이다.

박대권 : 사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교육 문제는 결국, 사회 문제다. 사회 문제가 교육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저소득층 학생의 교육 수준 문제, 대학 서열화, 지역에 따른 교육 차이 문제 등이 복잡하게 꼬여서 발생하는 문제다. 그런데 이것을 자꾸 입시 제도로 해결하려 한다. 이는 비유하자면, 거울을 보니 내가 뚱뚱하게 살이 쪄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거울을 바꿔야 할까. 아니면 내가 살을 빼야 하나. 살을 빼야 한다. 그런데 사회문제를 교육문제로, 특히 입시와 학교의 문제로 귀인하는 경우가 많다. 이건 살 빼는 노력없이 거울을 오목 거울로 바꾸는 식이다.

ⓒ프레시안(최형락)

"교육 정책, 핵발전소처럼 공론화 해야 한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지금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박대권 : 지금으로서는 절대평가를 몇 과목 할지를 정하고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프레시안 : 아까 말한 살을 빼는 방식, 즉 다른 방향으로의 전환은 어렵나.

박대권 : 의미 없다. 처음에 말했듯이 우리 교육에서는 답이 중요하지 않다.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냐. 받아들여서 익숙해지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일부 절대평가 도입을 발표한 뒤 30일에 최종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결국, 설득하는데 채 한 달도 안 걸리는 셈이다.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장기적으로 판단했다면 이렇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김경민 : 핵발전소 정책 관련해서는 공론화 위원회를 열고 90일 동안 의견 수렴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교육 정책은 그런 절차 자체가 없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해서 일까. 하지만 이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밀어붙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합의 내지 설득이 필요하다.

박대권 : 문제를 고칠 수 있는 획기적 방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걸 밀어붙이는 것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나 가능했을 것이다. 이후부터는 불가능하다. 교육 문제를 푸는 방식이 과거에는 모래밭에 아파트를 세우면 그만이었다. 단순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는 아파트를 재개발해야 하는 식이다.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있는데, 이에 대한 재개발 정책은 주민을 설득하지 못하면 안 된다. 과거 백사장에 건설하는 식으로는 안 된다. 많은 사람의 삶과 직결되어 있는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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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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