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개혁 시도가 각 분야에 이어지는 가운데, 교육 분야 개혁 방향을 짐작 가능한 2021학년도 수능 개편안이 뜨거운 찬반 양론을 낳고 있다. 2021학년도 수능 중 4과목(영어, 한국사, 통합사회·통합과학, 제2외국어·한문)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1안과 7과목 전부(1안에 국어, 수학, 탐구택1 포함)를 절대평가하는 2안 중 하나를 이달 말 결정하겠다는 교육부 방침에 절대평가 찬반 세력 전부가 각자의 비판 목소리를 키우는 상황이다.
수능 절대평가 전환은 고교학점제, 국·공립대학 네트워크 등과 함께 문 대통령 교육 공약의 하나다.
전국 각지에서 총 네 차례의 공청회를 열어 각계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교육부 방침은 '입시 제도의 근본적 해결'을 바라는 민심과 온도 차이가 있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프레시안>은 교육부 발표 직후인 지난 11일, 이범 교육평론가를 만나 현 정부 교육 정책 근간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고민했다. (☞관련기사 : "文 공약인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해야 한다")
해당 인터뷰에서 이범 평론가는 수능 절대평가 도입의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교육부가 기본적으로 입시 제도의 기본 철학을 확고히 굳히지 않은 채 수능 절대평가 여부에만 집중하느라 실기한 것 아니냐는 의견을 밝혔다.
전반적인 교육 밑그림에 관한 입장을 넘어서, 우선 닥친 수능 절대평가 도입 여부에 더 집중하는 계기를 갖기로 했다. 2021학년도 수능 전 과목을 절대평가로 확고히 해야 한다는 교육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걱세)의 안상진 정책대안연구소 소장과 수능 절대평가 도입은 입시 교육을 더 망치리라 우려하는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박대권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교수를 만나 충돌하는 두 입장을 정리해봤다. 김 교수와 박 교수는 EBS 6부작 다큐멘터리 <대학 입시의 진실> 제작에 자문팀으로 참가했다.
수능 절대평가 전환 공약을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안상진 사걱세 소장은 입시 변별력을 유지하느라 망가지는 고교 교육 정상화 계기를 버리자는 주장은 납득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을 줄세우는 상대평가 대신, 절대평가의 취지를 살리면서 변별력을 보완할 방법을 찾는 게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장기적으로 서열화한 고교 평준화가 이뤄진다면, 내신도 절대평가로 전환해 고교 교육의 창조성을 키우는 밑그림을 문재인 정부가 그려야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다만, 안 소장도 이번 교육부 수능 개편안 발표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학부모 관심이 큰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문제를 함께 아울러 입시 개편안을 발표하지 않고, 수능 개편안만 발표하느라 소모적 변별력 논쟁이 일어났다고 그는 비판했다.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의 사걱세 사무실에서 진행된 안 소장과의 인터뷰를 정리했다.
수능, 절대평가 전환해야 학생 부담 줄어든다
프레시안 : 교육부의 2021학년도 수능 개편안 발표 후 수능 절대평가 도입 수준 논란이 뜨겁다. 사걱세는 2021학년도 수능부터 전과목 절대평가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이유는 뭔가?
안상진 : 학교 교육 정상화를 위해 수능은 9등급 절대평가로 전환돼야 한다. 현재의 상대평가가 유지되는 한, 전국의 학생을 오지선다형으로 평가해 줄세우는 교육을 극복할 수 없다.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면 그만큼 과도한 입시 부담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상대평가 체제는 학생을 무한경쟁의 소용돌이에 밀어넣는다. 만점자가 많을 경우 학생이 문제 하나만 실수해도 전국 석차가 뚝 떨어진다. 절대평가가 교육적으로 더 타당하다.
문 대통령은 이미 고교학점제와 고교 교육의 다양성을 강조해 왔다. 입시 정책이 전반적으로 변화하리라는 기대가 큰데, 상대평가는 이에 배치된다. 전국에 아랍어를 가르치는 고교가 6개인데, 지난 수능에서 제2외국어로 아랍어를 신청한 학생이 전체의 71%에 달했다. 왜 그런가? 중국어 등 인기 언어에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이 많으니, 학생들이 그저 점수를 쉽게 딸 과목에 전략적으로 쏠렸기 때문이다. 현 상대평가 체제가 교육의 다양성도 훼손한다는 증거다.
프레시안 : 수능 절대평가 도입을 반대하는 이들이 가장 우려하는 건 정시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같은 등급의 여러 동점자 중 대학이 어떻게 학생을 가려 뽑겠느냐는 얘기다. 일리 있는 지적으로 보인다.
안상진 : 교육적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입시에서 학생을 어떻게 줄 세울 것이냐만 우리 사회가 고민한다는 증거다. 동점자를 가리기 위한 추가 전형요소 하나만 포함한다면 상당 수준의 변별력을 정시에서 확보 가능하다.
수능에 내신 더하면 정시 변별력 확보 가능
프레시안 : 사걱세의 대안은 정시 수능에 내신을 반영해 변별력을 확보하는 방안이다. 내신이 수시뿐만 아니라 정시에까지 포함되면 오히려 학생의 사교육 부담이 더 커지지 않을까?
안상진 : 2021학년도 수능은 2015년 교육과정 개정안의 취지를 받아들여 공통과목과 통합과목 중심으로 출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개편되면 선택 과목 중심인 고교 2학년, 3학년 학습 체제가 수능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우려가 있다. 우리는 선택 과목을 학생부 성적으로 정시에 반영하는 게 바람직한 대안이라고 본다.
이 경우 수능 절대평가의 취지를 살리면서 학생의 전공 적합도도 정시에 반영할 수 있다. 앞서 아랍어 전공자의 역설처럼 공대 진학생 중 물리 과목을 택하는 아이 비율이 가장 낮다.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이 물리도 잘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는 전략적으로 물리 대신 다른 과목을 선택한다. 대학 입장에서 보면 물리 기초도 닦지 않은 학생이 공대생으로 들어오는 상황이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상대평가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대 입시생은 2, 3학년 선택 과목 중 물리 과목을 반드시 내신에 반영하도록 정시를 개편 가능하다. 대학은 적격자를 더 잘 선발할 수 있고, 학교는 아이들이 자기 적성에 맞는 과목을 선택하도록 북돋을 수 있다.
프레시안 : 정리하자면, 2021학년도 정시를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결과와 선택 과목 내신 일부를 반영해 합산하는 방향으로 개편하자는 뜻이다.
안상진 : 그렇다.
예술대 진학생이 꼭 국영수 열심히 해야 하나
프레시안 : 그렇다손 치더라도, 상대평가제가 유지되는 내신이 수시뿐만 아니라 정시에까지 포함되어 학생 사교육 부담을 키우리라는 우려는 해소하지 못하는 듯하다.
안상진 : 물론 내신 중요성이 커지는 만큼 사교육 시장 확대 우려가 있다. 하지만, 수능 전 과목이 절대평가화됨에 따라 얻는 사교육 경감 효과도 함께 봐야 한다. 지금보다 사교육 시장이 더 커지리라는 우려는 지나친 기우라고 본다.
프레시안 : 궁극적으로는 내신도 절대평가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데 이에 관한 사걱세 입장은 무엇인가?
안상진 : 동감한다. 하지만, 선결 조건이 있다. 고교 서열화가 해소되어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절대평가가 도입되면 자사고, 과학고 등으로 학생들이 더 몰리게 된다.
내신 부풀리기 방지책도 마련돼야 한다. 뚜렷한 대안을 우리 사회가 아직 찾지 못했다. 그리고, 현장 교사의 절대평가 역량도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이들 우려가 해소되어야 내신 절대평가가 가능하다.
프레시안 : 이번 수능 개편안이 장기적으로 문·이과 통합형 교육을 추구해야 한다는 2015년 개정 교육과정 취지에 맞지 않게 여전히 문·이과 분리형 체제를 유지했다는 비판도 있다. 학생의 지식 편식 현상을 개선하는 교육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깔린 지적일 것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 교육 공약의 하나는 고교학점제(선택과목제 확대)다. 이는 오히려 학생의 지식 편식 현상을 더 키우는 것 아닌가?
안상진 :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 수능은 통합형 교육과정을 따르는 게 바람직하지만, 전공 적합과목은 학생이 자유롭게 선택하게끔 선택권을 넓혀주는 게 바람직하다. 학생이 고교 1학년 때는 통합적 기초 소양을 갖추고, 2학년과 3학년 들어 적성에 맞는 과목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게끔 하는 게 바람직하다. 문 대통령 공약과 개정 교육과정 취지가 충돌하지 않는다.
의대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이 꼭 수학 적분과 물리를 생물과 함께 배워야 하나? 생물과 윤리를 배움으로서 철학적 고민을 넓혀갈 수도 있다. 예술을 좋아하는 아이가 꼭 국영수에 집중해야 하나? 오히려 예술 과목을 능동적으로 더 듣고 문학이나 역사를 공부하는 게 더 도움될 수 있다. 궁금한 과목을 학생이 능동적으로 찾는 걸 지식 편식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
학종 개편도 필요하지만...
프레시안 : 수능 절대평가제가 시행되면 학생 학력이 떨어지리라는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특히 수학 등 일부 과목을 중심으로 이 같은 우려가 나온다.
안상진 : 그와 같은 주장에 반감이 크다. 아이들에게 대학에서 배울 과목을 고등학교에서 해결하고 오라는 식이다. 수학의 경우, 공대 1학년 과정에 미적분이 있다. 미적분에도 공통 수준이 있고 응용 부분이 있는데, 응용 수준은 대학에서 배워도 된다. 아이들이 고교 시절 과도하게 배우는 게 문제다.
현 수능 상대평가 체제보다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느냐고 묻고 싶다. '수포자(수학 포기자)'는 이제 사회적 현상이다. 우리 단체 조사에 따르면, 고교생의 59.7%가 수포자다. 원인이 무엇인가? 상대평가를 덜 해서가 아니다. 입시 수학에 아이들이 질려서다. 현 입시 위주 교육의 실패가 수포자를 다량 생산하고 있다.
프레시안 : 일각에서는 교육을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전락케 한 학종 개편이 우선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안상진 : 일부분 인정한다. 우리 사회에 학종에 관한 문제 의식이 매우 크다. 그런데 교육부가 무작정 수능 개편 이야기부터 하니, 수능 절대평가 여부를 논의해야 할 상황에 모두가 학종 이야기만 하게 됐다. 교육부의 실패다. 교육부가 지금이라도 종합적인 2021학년도 입시안을 내놓아야 한다.
학종의 문제점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지금의 학종 비판은 너무 과도하다.
프레시안 : 수능 절대평가 찬반을 논할 게 아니라, 교육부의 입시제도 밑그림 부재를 비판해야 한다는 지적인가?
안상진 : 그렇다. 교육부가 전반적 입시제도를 어떻게 개편하겠다는 그림 없이, 수능 절대평가제 안에서 변별력을 어떻게 확보할지에 관한 설명 없이 무작정 절대평가 도입 여부만 발표하니 지금과 같은 소모적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학종, 논술 개편안도 발표하라
프레시안 : 학종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안상진 : 학종 문제는 비교과영역 문제다. 부의 대물림 수단은 비교과영역이다. 부모의 사회적 신분, 부모의 부가 교육에 개입할 여지가 너무 크다.
하지만, 학생을 오지선다형을 넘어 다면 평가한다는 학종의 장점도 분명 있다. 학교에 명확한 신호를 줘야 한다. 과감하게 비교과영역을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개선안이 마련돼야 한다.
프레시안 : 지금처럼 고교가 서열화한 상황에서 교과영역 평가를 신뢰할 수 있느냐는 우려도 존재한다.
안상진 : 고교 수업평가기록 작성 기준이 지금도 풍성해지고 있다.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되면 지금보다 더 개선될 것이다.
프레시안 : 2021학년도 입시제도는 전반적으로 어떻게 개편해야 하나?
안상진 : 수능과 내신, 학종, 논술을 종합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이 중 겨우 수능 개편안만 나왔을 뿐이다.
내신은 중간-기말고사 체제가 아니라 수행평가 중심으로 개선돼야 한다. 자연스럽게 고교학점제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아이들의 역량을 다면 평가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논술의 경우 사실상 본고사인 자연계 논술은 안 된다. 현 이과 논술 전형은 폐지돼야 마땅하다.
인문계 논술은 장점이 있다. 궁극적으로는 수능이 논술형으로 변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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