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대학교 설립자의 자진 폐교신청 소동, 백제예술대학교 가족운영자들의 대학공금 유흥비로의 탕진 등, 얼마 전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이다.
어찌 사학의 비리들이 이들 대학만의 일이겠는가? 그나마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이전 보호대상의 적극적인 방어가 잠시 소강한 상태라서 일부 언론에서나마 대중들에게 알려졌다고 생각을 해 본다. 사실 대학의 비정상화로서 사회 황폐화를 야기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초 대학 준칙주의로의 전환으로 이미 예상이 되었다. 대학의 비판력 상실에 대한 사실상의 원인으로 대학 설립을 자유롭게 해 준 당시 정치가들과 교육 관료들의 책임이 크다, 그럼에도 당시 이를 입안하여 주도한 세력들에 대해 물어야 할 책임추궁, 일부 양심적인 대학교수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대학을 둘러싸고 있는 이해관계의 구축은 공고하다는 증표이다. 얼마 전 국회에서 폐교 대학 사학포럼이 열렸다. 폐교로 졸지에 직장을 잃은 동료 교수들을 조금이나마 도우려고 광주에서 새벽 5시 버스를 타고 참석하였다. 사학진흥재단과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국회의원실이 공동 주최한 자리였다.
참석자들은 대부분은 폐교 대학 사례를 통하여 변칙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사학의 실태에 놀라움을 표시하였다. 이날 포럼을 실제로 주도한 오영훈 의원도 그 심각성을 재삼 인식한 듯 폐교 대학의 피해자 격인 교수들과 별도의 간담회를 즉석에서 제안하였다.
사학운영 실태는,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그 추악한 사태들이 오늘날까지 지속되어 온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이다.
사실 필자도 이전에 한국은행, 다국적기업 IBM 등 직장에 근무한 적이 있어 조직체의 생리를 대략 파악은 하고 있다고 나름 자부를 하였다. 그러나 대학의 구성원으로서 그 내부를 보고 황당함과 놀라움을 감출수가 없었다. 어떻게 말도 안 되는 주먹구구식 운영이 가능한 것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도 한 두 해가 아닌, 설립년도부터 똑같은 비상식적 운영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때문이다. 지성인으로서 대학교수들의 침묵은 더욱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총체적인 비리여서, 애써 무시한 것이다.
필자의 전공은 경영학이다. 어느 정도 기업 경영 등을 이해하고 긍정하고 있는 입장이다. 다만 재무관리 전공자로서, 정보비대칭에 의한 방만한 도덕적 해이가 만연함에도 재정적인 어려움도 없이 그 조직체가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울 뿐이었다. 오히려 설립자는 수십억 아니 수백억대의 자금을 아무런 감시 통제 없이 사금고로서 이용하고 있었다. 도덕적 해이의 대표적인 집단인 상호저축은행도 이를 방지하고자 하는 장치를 두고 있다. 그러나 사학은 잘못을 저질러도 다시 복귀하는 사례가 예외가 아닌 일상적인 관행이다.
20세기 사회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가 한국의 사학이다.
사실 많은 조직체들이 적절한 긴장과 견제를 갖고 자체의 모순을 극복은 해 나간다. 그만큼 자정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의 경우도 대표적 보수적인 관료집단이지만 노동조합 등 관료성 극복을 위한 제도적인 장치는 마련되어 있다.
최첨단 인적관리와 자본이 중심이 되어 그 조직을 유지하고 있는 IBM도 공룡 같은 거대 조직체의 의사결정자에 대한 도덕적인 해이 차단과 자본에 의한 부패 예방을 위해 항상 내부 긴장감을 갖도록 제도의 보완을 시도하고 있다.
채용과정에서부터 현재 한국 대학의 교수 채용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절대로 자신들의 자본적인 이해만을 옹호하는 자들을 신입사원으로 선발하지 않고 있다. 동종교배의 문제점을 다국적 자본가들은 잘 알기 때문이다. 조직 자체를 비판할 수 있는 소위 와일드덕(Wild-duck)이라 불리는 인력이 있다. 기존 조직 문화에 순종하지 않고 이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행동하는 다소 이단적인 기질과 성향의 내부 인력을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충원함으로써 자신들 조직의 경직화를 사전에 예방한다. 항상 조직에 긴장감을 갖게 함으로써 조직의 폐쇄화와 내부 부패에 의한 조직 붕괴를 사전 대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사립대학은 그 능력도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대학이 설립되고 이를 견제할 그 어떤 제도적인 장치도 마련되어 있지 않고 있다. 사학은 운영의 대부분 재원을 세금으로 조성되는 자금을 국가로부터 배분받아 유지하고 있지만 이를 효율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제어 장치는 전무한 편이다. 아니 형식적인 감사 기능 등은 갖추고 있지만 이를 감독, 감시할 교육부 관료들과 재직 또는 퇴임 후 자리 마련 등 그들만의 특수한 먹이사슬 관계로 완전히 밀착되어 버렸다. 잘못된 비리를 적발해야 할 감독관청이 상식 밖의 비리를 일상으로 자행하고 있는 사학운영자를 적극 변호하는 기막힌 상황들이 일상으로 행해지고 있는 셈이다. 대학 구성원들도 시정을 위해 제안을 하지만 이를 제보하는 자들은 대학에서 퇴출 등 그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한다. 잘못이 정상으로 절대로 환원되지 않고 있다. 교수들은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일에 손해를 감수하고 뛰어들 교수는 거의 없다.
오늘날 사학의 비리에 대하여 주요한 구성원으로서 교수들의 책임도 있다. 교수들은 한 직장에서 평생을 근무하기에 누구보다도 대학 자체의 비리를 잘 인지하고 있다. 물론 그 해결 방법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현재 대학 특히 사학의 교수 충원 구조 하에서는 교수들로 하여금 이러한 잘못된 행태를 바로 잡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선 채용과정에서 사립대학은 비판적인 성향이 있는 선비, 학자 성향의 교수보다는 자신들의 비리를 덮어 줄, 아니 공조해 줄 노예적 근성의 직장인을 채용하기 때문이다.
현재도 사학 정상화를 위해 어렵게 싸우고 있는 상지대, 조선대 등 많은 대학의 사례들이 이를 실증해 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촛불민심의 힘을 얻어 집권하였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은, 그릇된 길로 가고 있는 한국 사회를 바로 세울 것으로 기대하고 그를 선택하였다. 사실 촛불집회 이전에 이미 대학 교수 등 구성원들이 먼저 나서야만 한 상황이었다. 예전 한국사회에서 그 엄혹한 박정희 군사정권에서조차도 부정의에 대하여 당당하게 맞선 집단이 청년 대학생과 교수들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박근혜 집권 10년 기간에 확인되었듯이 학생들은 취업이라는 현실 앞에서, 청년으로서 특권인 사회참여에 대해 비켜서 있었다. 상당수 교수들은 관직 출세나 돈줄 확보를 위하여 어용 교수로서 재벌 등 대기업의 일방적인 이익만을 대변하는 지식 장사치로 나섰다. 개혁의 고삐를 당겨야 할 문재인 정부 1년차에도 이들 불량 교수들의 자기 반성은 행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자신들의 기득권 확보를 위하여 보수언론과 교묘히 공조하여 개혁의 방해세력을 자처하고 있다. 탈원전 정책을 천명한 문재인 정부에 맞서 나선 ‘원전마피아’들의 성명을 보라. 정상으로의 정책선회를 바라는 많은 촛불민심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이 모든 요인은 대학이 대학답게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였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특히 사학의 상식 밖의 운영은 단지 사학 구성원들의 피해로만 남지 않는다. 대학에서 발원되어야 할, 아닌 것을 아니라고 이야기해야 할 비판 정신의 원천적인 차단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대학의 적폐 청산 없이는 정부의 그 어떤 개혁정책도 추진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린 경험으로 확인하였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통한 차별철폐는 헌법32, 33조에서 규정한 기본 노동권의 실현이다. 시간강사 등 비정규직 교수들의 정당한 권리 회복은 과거 50여년 전 5.16 군사쿠테타로 인해 도둑 맞은 연구자들에게 당연히 되돌려주어야 것들이다. 이는 정치인들의 책무와 역할이다. 사학적폐 청산도 연구자로서 신분 회복과 경제 생활 보장을 통해 교수들의 비판 정신이 회복되면 자연히 해소될 수 있다. 대학 구성원들이 사학경영진들의 잘못된 행태를 당연히 비판하고 고발을 하는데 어찌 비상식적인 후진적 관행이 반복될 수 있겠는가?
현 정부의 개혁도 우선 순위가 있을 수 있다. 물론 언론 개혁, 법원과 검찰 등 사법 개혁, 경제민주화로서 재벌 개혁 등도 시급히 실천해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대학을 대학답게 하는 사학의 적폐 청산을 통한 교육 개혁이 전제되지 않고는 그 어떤 개혁도 이룰 수 없다고 단언한다. 오늘날처럼 다수의 지성인 집단이 불의에 대하여 침묵하고 동조하는 사회는 그 어떤 희망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교육부 해체론이 사람들에 회자 되겠는가?
이젠 대학은 직업전문학교로서 취업을 준비하는 공간에서 벗어나 자유스럽게 토론하고 사회 잘못을 비판하고 때로는 현장에 적극 결합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수노조의 합법화가 필요하다. 공기업과 대기업 등을 우선으로 향후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조직체에 단계적으로 적용이 강제화 될 예정에 있는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령’ 등을 사립 대학에도 의무 적용하는 방안도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