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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들, 나이 가리지 않고 무조건 반말해요"

[작은책] 만도일렉트로닉스 비정규직, 가입률 85% 노조를 만들다

회사는 생산량을 비축해 놔야 한다며 작업 계획을 내놨다. 그래서 월·화·수·목 아침 8시 30분에 출근해서 밤 9시까지 일을 했다. 원래 퇴근 시간은 오후 5시 30분이다. 금요일 오후, 창고에는 잔업을 해서 쌓아 놓은 물량이 가득하다. 생산 공장에서 일하는 20~30대 청년들은 조금씩 기대감에 찼다.

"우리 정시에 퇴근할 수 있을까? 재고를 보니 토요일에 안 나와도 되겠는데?"

그때 정규직 관리자에게 메시지가 왔다.

'오늘 9시까지 해야 할 것 같은데. 일요일에 출근할 수 있나?'

청년들의 기대는 금세 무너졌다. 정시 퇴근은커녕 주말에도 특근이다.

▲ 자동차 안전장치 부품을 생산하는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작은책(정인열)

이들이 일하는 곳은 경기도 인천 송도 경제자유구역에 위치한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주)(이하 만도헬라). 만도헬라는 한라그룹 자본인 만도와 독일 헬라(Hella)가 합작 투자한 법인으로, 자동차 브레이크 등 안전장치에 들어가는 센서를 생산하는 전자부품 회사다. 생산된 제품들은 현대-기아자동차와 한국GM 등에 납품된다. 자율 주행 자동 기술이 발달하면서 2008년 설립 후 해마다 꾸준히 성장해 지난해 매출 5700억, 당기 순이익 290억 원을 달성했다.

이 공장에는 약 700여 명의 노동자가 있다. 절반은 사무·기술운영직 정규직원, 절반은 제품을 생산하는 현장직이다. 현장직은 모두 하청업체인 ㈜SC와 ㈜HRTC(최근 쉘코아로 변경)에 소속된 비정규직인데, 약 30여 명의 기술 운영 직원들에게 모든 업무 관련 지시를 직접 받아 왔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제 고용주는 하청업체 사장이라고 볼 수 없다.

"사원증에도, 작업복에도 원청회사 이름이 적혀 있어요. 작업 지시도 모두 정규직에게 받았고요."

▲ 이경민 씨의 사원증. 만도헬라 로고가 새겨져 있다. ⓒ작은책(정인열)
비정규직 노동자인 한샘 씨와 이경민 씨는 입을 모아 말했다. 한 씨는 입사 8년 차로 SMT 부서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인쇄 회로 기판(PCB) 위에 부품을 얹는 공정이다. 기판대에 납을 바르고 부품을 얹고 이상이 없는지를 검사한다. 이 씨는 입사 4년 차로 생산 관리팀 물류 창고에서 일했다. 이 씨는 각 공정에 필요한 자재와 완제품의 입·출고를 관리한다.

생산 업무는 정규직원의 업무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 긴밀한 소통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작업 지시 및 근태 관리, 인사 평가 등 모든 결정은 정규직이 직접 했다. 체육대회와 동호회 활동도 정규직-비정규직 구분 없이 함께했다. 그러나 정규직과의 임금 차이, 업무 강도, 노동 시간은 격차가 컸다. 온라인 취업 포털 '사람인'에 따르면, 만도헬라의 2015년 정규직 신입 사원 연봉은 5008만 원으로 대기업 중 2위를 차지했다. 사무직은 오후 6시 30분이면 퇴근을 하고, 심야 근무도 없으며, 휴일 근무도 없다. 반면 비정규직은 휴일 근무와 잔업, 12시간 주·야 맞교대로 일했고 이들의 연평균 출근 일수는 340일, 주 평균 노동 시간은 69시간이었다.

"잔업은 저희한테 동의를 구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토요일에 일하는 건 당연하고요, 일요일에는 운이 좋으면 쉬는 거고요."

비정규직의 평균 시급은 7260원. 입사 4년 차 노동자가 한 달 동안 잔업, 특근을 안 할 경우 버는 돈은 144만3600원.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노동에 쏟아서 쥘 수 있는 돈은 200만 원 후반대.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누릴 시간도 포기해야 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일터에서 인격적 대우도 받지 못했다.

"우리에게 무조건 반말해요. '야, 일루 와 봐.' 나이 가리지 않고 정규직은 전부 다 그랬어요. 상대방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요."

폭언도 일상적이었다.

"'나가서 치킨이나 튀겨라', '네가 개냐?', '너희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못 배워서다', '너네 남동공단 노가다 하는 사람들보다 돈 많이 받으면서, 일은 왜 그것밖에 못 하냐?' 그렇게 말해요."

심야에 비정규직은 쉬지도 못하고 밤을 꼬박 새워 일해야 했지만, 정규직 관리자들은 사무실에서 잠을 잤다. 어쩌다 공정에 문제가 생겨 정규직을 찾아가면 잠을 깨웠다고 짜증을 냈다.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 저임금, 인격적 모멸감과 박탈감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만은 목까지 찼다. 각자 비밀리에 노무사를 찾아다니며 상담을 받다가 대응 방안은 노동조합이라는 걸 알게 됐다. 슬금슬금 노조를 결성하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지난 2월 12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만도일렉트로닉스 비정규직 지회를 설립했다. 가입률 85퍼센트로 대다수 노동자가 가입했다.

하지만 만도헬라는 자신들의 경영 핵심 가치로 내세운 '합력 배려와 소통, 상생'과는 정반대로 대응하고 있다. 노조 파괴 이력으로 직무 정지 징계를 받았던 노무사를 고용하고 도급업체와 계약 종료 및 대화 거부에, 불법 대체 인력까지 투입하고 있다. 3월 2일에는 하청업체 중 한 곳인 HRTC가 폐업을 선언해 4월 새로운 도급업체인 '쉘코아'가 선정됐다. 노조는 ㈜SC와 쉘코아를 상대로 교섭을 벌였지만, 실제 모든 결정 권한은 원청이 갖고 있기 때문에 진척이 없었다. 그리고 노조와 협의 없이 품질, 생산 관리팀을 없애고 노동자들을 타 부서로 전환 배치했다. 전환 배치된 조합원 70여 명이 5월 30일부터 파업을 시작했고, 나머지 230여 명 조합원들은 공장 안에서 특근 거부, 부분 파업 등을 진행했다. 하지만 7월 9일 회사는 ㈜SC와 쉘코아의 도급 계약마저 해지했다. 생산량에 차질이 빚어지자 원청은 업무 교육도 제대로 안 한 채 대체 인력을 투입했다. 이러니 제품 불량률은 높을 수밖에 없다. 노조는 약 1000여 개 불량품이 폐기되지 않은 채 납품된 것을 발견했다.

"지인, 친구들한테 지금은 차 사지 말라고 하고 있어요. 조만간 브레이크 부품이 작동 안 될 수도 있거든요."

▲ 지난 6월 30일 서울 광화문 사회적파업 집회에 참가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작은책(정인열)

만도헬라는 두 가지 큰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 첫째는 제조업에 비정규직을 6개월 이상 사용하여 파견법을 위반했고, 둘째는 비정규직 노동자 직접 고용 의무를 위반했다. 그러면서 비정규직 사용을 모른 체하고, 소비자의 안전은 뒷전으로 하고 있다.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는 모두 회사와의 투쟁이 처음이다. 폭염 속에서 온갖 관련 부처를 다니며 집회를 하고, 공장 앞에서 천막 농성을 하며 단체 생활을 하고 있다. 한 씨는 이 사태에 대해 이렇게 반문했다.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이 노동자인데, 노동자가 대우를 받아야 하지 않나요?"

배울 만큼 배웠다는 정규직들의 태도에서 국민의당 이언주 국회의원의 급식 노동자 비하 발언이 겹쳐진다. 그 뒤에는 '조금만 교육시키면 아무나 할 수 있는 단순한 업무'이기 때문에 비정규직 사용이 당연하다는 의식이 깔려있다. 그래서 비정규직의 요구가 무리하다고 생각하고, 학벌 조금 있다는 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비정규직을 차별하며 우월감을 가진다. 전국불안정철폐연대의 김혜진 상임 활동가는 자신의 SNS에 '모든 노동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누구는 중요한 일을 하고 누구는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다'고 밝혔다.

"하루아침에 비정규직 문제가 고쳐질 거라고는 생각 안 해요. 하지만 막상 겪어 보니 정부가 자꾸 미루는 것 같아요."

한 씨가 아쉬움을 토로한다. 이들은 정부와 정규직 노동자의 '양보'가 아닌 '연대'를 원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언제쯤 멈출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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