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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블랙리스트, '외풍'보다 무서운 게 '내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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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사법부 블랙리스트, '외풍'보다 무서운 게 '내풍'이다

[인터뷰] 한승헌 변호사가 말하는 적폐, 그리고 개혁

변호인이 피고인이 되었다. 유신 체제의 공포가 정점을 찍던 즈음이었다. 상식은커녕 법조차 휴짓조각이 되어버린 그 시절, 변호사조차 '사법 피해자'가 되었다. 그리고 42년 만에야 억울한 누명을 벗었다.

'시국 사건 1호 변호사' 한승헌 변호사의 이야기다. 한 변호사는 반공법 위반 혐의로 지난 1975년 유죄 판결을 받고 영어의 몸이 되었다. 굵직한 시국 사건 변호를 맡아 정부의 눈 밖에 난 탓이었다. 엄혹한 시대에서, 시국 사건의 변호인은 결국 시국 사건의 피고인이 되었다. 그리고 42년 만인 지난 6월 22일,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사법 피해자 가운데 한 명으로서, 그리고 독재와 맞서 싸운 변호인으로서 그는 지난날을 한탄했다.

인권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가 과오를 씻고 제대로 기능하는 것, 이는 한 변호사의 오랜 바람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 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그는 최근 법조계 전반에 불고 있는 개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변호사를 만나 과거 사건 재심 판결부터 법조 개혁과 국가보안법 이슈, 아울러 문재인 대통령과 남다른 인연까지 긴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는 지난달 25일 서울시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한승헌 변호사. ⓒ프레시안(최형락)

김규남의 '김'자도 없는데 용공 몰이

숱한 시국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한 변호사가 반공법 피고인이 된 것은 한 편의 글 때문이었다. 1972년 9월 <여성동아>에 쓴 '어떤 조사'라는 제목의 수필로, 사형제도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신문 한 귀퉁이에, 눈에 뜨이기도 힘든 일단 기사에서 당신의 죽음을 알았습니다. 사형이 집행된 것입니다.(중략) 법에 사형을 규정한 조항이 너무나 많다는 입법의 과오, 생명형 아닌 다른 형벌 선택할 권한을 용기 있게 행사하지 못하는 사법의 과오. 이런 것이 어쩌면 당신을 이 세상으로부터 앗아갔을지도 모릅니다."('어떤 조사' 중)

검찰은 여기서 등장하는 '당신'을 '유럽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1972년 7월 사형당한 김규남 전 공화당 국회의원이라고 지목하고, 간첩으로 처형된 자의 죽음을 애도한 것은 용공(容共)이라고 주장했다.

'어떤 조사'의 문제는 사실 허울에 불과했다. 그가 구속기소되기에 앞서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역임하신 이병린 변호사가 당시 재야 민주세력의 중심체인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을 맡고 있었는데, 중앙정보부 요원이 이 변호사에게 '대표위원을 사퇴하지 않으면 간통죄로 구속될 것'이라고 협박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법조 출입 기자들에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울분을 토했는데, 이튿날 신문에 '한승헌 변호사의 전언'이란 부제까지 붙은 기사가 크게 나간 겁니다. 바로 그날 중정 수사관이 제 사무실에 찾아와 몇 가지 묻고 가더니, 그다음날 밤 나를 집 앞에서 강제로 연행해갔습니다."

▲한승헌 변호사의 단행본 <위장시대의 증언>에 실린 '어떤 조사'. ⓒ프레시안(서어리)
끌려간 곳은 남산 중정 지하실이었다. 요원들은 '어떤 조사'가 실린 책을 꺼내 보여주며, 이 글은 용공이라는 식으로 몰아붙였다. 한 변호사는 "김규남의 '김'자도, 간첩의 '간'자도 없다"며, 이 글은 사형제도 자체를 비판하는 글이지, 어느 특정인을 놓고 쓴 글이 아니라고 했다.

혐의를 인정하지 않자 가혹 행위가 시작됐다. 밤새 잠 안 재우기는 물론이고 몽둥이까지 등장했다. 말로만 듣던 대로의 곤욕을 치르고 사흘 만에야 풀려났다.

그로부터 두 달 뒤,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됐다가 석방된 김지하 시인이 <동아일보>에 인혁당 사건의 조작설을 주장하는 기고를 했다가 다시 구속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전에 '오적' 사건 때도 그의 변호인이었던 한 변호사는 다시 변호를 맡고 나섰다. 그런데 변호인 선임계를 서울지방검찰청에 직접 제출한 그 날 바로 중정에서 전화가 왔다.

"변호인을 사퇴하라는 요구를 하더군요. 그에 불응했더니 다시 두 번째의 전화가 와서 같은 요구를 되풀이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김지하 사건을 맡아도 좋다. 당신이 다른 시국 사건을 맡아도 좋다. 그러나 당신이 김지하를 변호하는 건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라고 큰소리를 치더군요. 저는 어찌 변호인 선임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있느냐고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그 중정 직원은 '상부 명령이라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상부 명령이라 어쩔 수 없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 거기에 있었다.


두 번에 걸친 협박성 요구를 연달아 거절하자, 중정에서는 다시 한 변호사를 강제연행해 갔으며, 마침내 정식 구속영장이 떨어졌다. 명분은 앞서 문제 삼았던 '어떤 조사'의 반공법 위반 혐의였다.


"때 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한 변호사의 구속 소식이 알려지자, 129명이라는 사상 초유의 대규모 변호인단이 구성되었다. 국내외 많은 인권 단체 또한 석방 운동에 나섰다. 그러나 재판은 불리하게 돌아갔다. 1심 재판부는 변호인단의 보석 청구와 기피 신청을 모두 기각하더니 결국 징역 1년 6월, 자격정지 1년 6월 실형을 선고했다.

"통상 이런 사건에서는 겁주기 식으로 기소와 재판을 하고 나서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었는데, 제 경우에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1심 판결문은 황당하리만큼 이상했다. 공소사실에서는 간첩 김규남을 애도했다며 문제를 삼았는데, 정작 판결문에는 그 점에 대한 아무런 판단이 없었다. 엉뚱하게도, 글에도 없고 따라서 단 한 번의 문답도 나온 바 없는 '반공법 폐지 주장'을 범죄사실로 내세웠다.

항소를 거쳐 대법원까지 올라갔지만 상고는 기각당했다.

"대법원 선고기일이 의외에도 빨리 잡혔습니다. 이상해서 알아보았더니, 정년 퇴임이 얼마 안 남은 주심 대법관이 '누가 해도 욕먹을 사건이라면 차라리 내가 안고 가겠다'라고 실토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한 변호사는 결국 '사법 피해자'가 되어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변호사 등록도 취소됐다. 그러나 그의 사법 피해자들을 위한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복역을 마친 뒤 변호사 자격을 회복할 때까지 그는 변호인석 대신 방청석을 드나들며 시국 사건 피해자들을 도왔다.

그렇게 42년이 지났다. 지난 6월 22일, 그는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의 사과는 없었느냐고 묻는 이도 있었다지만, 그저 무죄 판결만으로도 고마웠다고 했다. 그렇다고 마냥 기쁠 수만은 없었다.

"저는 그래도 8년 만에 복권이 되어 다시 법조인 생활을 하면서 살아왔지 않습니까. 반면,재심의 기회도 얻지 못하고 고통 속에 여생을 보내고 있는 사법 피해자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또 처형되거나 사망한 뒤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억울한 피해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제 재심의 계기가 된 유럽 간첩단 사건의 김규남 의원의 경우도 2015년에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되었지만, 피고인들은 이미 40년도 전에 처형됐습니다. 목숨은 이미 사라졌는데 무죄가 나온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니 안타까웠고, 그래서 '때 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윌리엄 그래드스턴의 말을 상기시키기도 했는데, 그 말이 마치 내 재심을 두고 한 말처럼 일부 언론에서 잘못 인용되는 바람에 곤혹스럽기도 했어요."

유럽 간첩단 사건이 무죄 판결을 받았을 당시에도 그는 슬픔에 젖었다. 자신의 명예 회복 기회가 왔다는 기쁨보단 오판으로 처형된 고인의 억울함이 더욱 사무치게 다가왔다. 그래서 재심을 꺼렸다. 그러나 동료·후배 변호사들의 끈질긴 설득으로 뒤늦게야 그는 재심을 청구했다.

▲1975년 5월 22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한 변호사 사건.

사법부, 외풍보다 무서운 내풍

과거 전두환 대통령 때에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이영섭 대법원장은 퇴임사에서 자기의 지임 시절을 "회한과 오욕의 나날"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과거 사법부가 정권에 휘둘렸다는 얘기다. 사법부의 회한과 오욕의 역사를 변호인으로서, 또는 피고인으로서 지켜본 한 변호사는 '추종 법관'들에 대해 "보기에 딱했다"고 술회했다.

"왜 재판부에 대하여 서운한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저들도 피해자였고, 권력에 굴복한 패배자였습니다. 자기 소신을 펴지 못하는 저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정권과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사법부도 한 변호사의 주장대로 일종의 피해자, 패배자에 속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이 보기에 사법부는 그보단 가해자 그룹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역사학계와 법조계 일부에선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해 부당한 재판에 관여했던 법관의 책임을 거론하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최근 과거사 재심에서 무죄가 나오는 경우, 판사들이 선배 법관들을 대신해 법정에서 사과를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한 변호사는 이에 대해선 "대단히 좋은 일"이라며 "비록 선배 법관이 저지른 일이지만 국민 입장에서 보면 같은 사법부의 일원이므로, 오판에 대한 고통에 대해 사죄하는, 이런 사례가 쌓이면 사법부가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현 정부 들어 법조계 전반에 개혁 바람이 불고 있다. 한 변호사는 사법 개혁의 요체는 독립이며, 사법부의 독립은 두 가지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즉, 사법부 밖으로부터의 간섭이나 침해, 즉 '외풍'과 사법부 내에서 정치적인 분위기에 영합하거나 편승하는 '내풍' 두 가지를 다 막아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금은 외풍보다 무서운 것이 내풍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외풍을 막아내지 못해 떠밀려서 많은 오판이 생겼지만, 지금은 사법부 내의 관료적 위계질서나 법관 상호 간의 친분이 작용해서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과거 세 번에 걸친 사법 파동 모두 외풍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내풍을 간과했다는 성찰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저는 지금이 사법부의 내풍에 대해 거론하기 좋은 시점이라고 봅니다. 지금 '사법부 블랙리스트' 파동이 진행되고 있지 않았습니까? 최근에 사실심 판사들이 대법원장에게 그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는데,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움직임이 재판권의 독립, 개별 법관의 독립을 위해서 바람직한 일이라고 봅니다."

▲한승헌 변호사가 쓴 글씨를 새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현판. ⓒ프레시안(서어리)

"국보법 존치 논란, '북한=반국가단체' 등식부터 법적으로 살펴야"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도 개혁에 착수했다. 국정원은 내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적폐청산TF를 설치하고 13가지 적폐 사건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와 맞물려 국정원의 존립 근거라 할 수 있는 국가보안법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 상황이다. 국보법 폐지는 참여정부 당시 4대 개혁입법 과제 중 하나였지만, 반대 여론에 밀려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시국 사건 변호인이자 반공법 피해자이기도 한 한 변호사는 국보법이 법리적 측면에서나 구체적 적용 면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법률이라고 지적했다.

"국가보안법은 기본적으로 북한이 반국가단체임을 전제로 만들어진 법입니다. 그런데 우리 헌법과 7.4 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와 부속합의서,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및 남북 당국자 간 교섭 합의 사례 등을 본다면,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기 어려운 조항이나 내용들이 적지 않습니다. 만일 북한이 반국가단체라면 마땅히 무력으로라도 궤멸시킬 의무가 정부에 있다고 봐야 하는데, 이는 헌법 제4조의 평화통일 조항과 모순됩니다. 그리고 유엔 헌장 4조엔 평화 애호 국가만을 회원으로 한다고 명시돼있는데, 북한이 반국가단체라면 왜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에 권유하여 함께 유엔에 들어갔는지를 설명할 수가 없어요.

가장 놀라운 것은 1992년 채택된 남북기본합의서와 부속합의서입니다. 합의서를 보면, 남과 북은 상호 관할구역을 인정하고 내정에 간섭하지 아니하며, 상대방을 파괴 또는 전복하려는 일체의 행위를 하지 아니한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남북 정부가 공식적으로 합의한 내용입니다. 이것도 '북한은 반국가단체'라는 등식과 맞지 않습니다. 정작 우리 정부가 나서서 그런 합의를 했을 때도 국민들이 '용공 정권'이라고 대거 규탄한 기억이 없습니다. 정부가 하면 영단이고 국민은 말만 해도 범죄라는 모순을 씻어내야 합니다."

"'물 먹인' 변호사 압박하는 검찰, 자해행위"

정치 검찰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던졌다. 한 변호사는 과거 시국 사건을 변호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검찰에 의해 구속 기소까지 당했다. 그러나 이는 과거만의 일이 아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북한 보위부 직파 간첩 조작 사건 등의 변호를 맡은 장경욱 변호사도 최근 검찰에 소위 '찍힌' 변호사다. 검찰은 장 변호사가 간첩 혐의를 받고 있는 피고인에게 거짓 진술을 강요했다는 이유로 대한변호사협회에 징계를 요청하기도 했다.

한 변호사는 "시국 사건에서 검찰을 '물 먹였다'는 이유로 담당 변호사의 흠집을 잡아서 압박을 주는 것은 한 마디로 검찰의 자해행위"라며 "검찰이 지금까지 얼마나 분별없이 권력을 남용하였으며, 경우에 따라선 권력자에 영합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며 검찰 개혁을 촉구했다.

검찰 개혁은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과제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검찰을 개혁 대상 1호로 선정할 만큼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때 직접 검찰 개혁의 실패를 경험한 분이 아닙니까. 그 당시 검사들과 노 대통령이 소위 말해 '맞짱'을 뜨는 장면을 방송으로 본 사람 중에는, 검찰은 정권 초장에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당시 노 전 대통령과 신경전을 벌이던 검찰은 나중에 진짜 정권으로부터 독립한다는 듯이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을 잡아들였습니다. 후일 노 전 대통령의 비운은 사실 그 연장선상에서 일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변호사는 그러나 검찰 개혁이 성공하려면 우선 검찰 조직 내부의 진통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런 점에서 문무일 신임 검찰총장이 당장은 검찰 개혁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을 노상 부정적으로만 볼 일이 아니라고 했다.

"많은 사람이 검찰총장 청문회를 보며 답답해했을 겁니다. 그런데 검찰 개혁은 총장 의지대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관 부처의 책임자 또는 관리자는 조직에 자극도 줘야 하지만 추스르기도 해야 하는 여러 입장이 있습니다. 그래서 검찰총장도 청문회 과정에서는 무난하게 답변의 기조를 정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실인즉, 검찰 개혁의 제도적인 틀은 국회의 입법사항이란 점을 국민들이 이해하고 주시해주길 바랍니다."

ⓒ프레시안(최형락)

구치소에서 '러닝셔츠'로 맺은 文과의 인연

한 변호사는 문 대통령의 후보 시절, 통합정부추진위원회의 자문위원단장을 맡은 바 있다. 당선 후에는 모든 국민을 아우르는 통합 정부를 실현해야 한다는 본인의 생각과 맞는 자리였다. 그는 "처음엔 이름과 시간을 좀 내주면 되는 줄로 알았는데, 막상 나가보니 그리 만만한 자리가 아니었다"고 했다. '여든 고령에 이제 와서'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문 후보와 맺은 인연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문 대통령과의 인연은 1975년 서울구치소 수감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둘은 구치소 옆방의 입소 선후배 사이였다.

"구치소에 수감된 지 한 달쯤 지났을 무렵, 제 옆방에 데모 학생이 잡혀들어온 걸 알았어요. 더워지기 시작할 때라, 교도관에게 부탁해 제 방 선반 위에 있던 새 러닝셔츠 상하의 한 벌을 옆방에 전해주도록 했지요. 저는 옆 방 학생이 누군지 그땐 몰랐습니다.

이후 제가 징역을 다 살고 나와서 다시 변호사 생활을 하던 중, 부산에서 노무현 변호사를 만날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노 변호사와 함께 온 문 변호사가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러닝셔츠 이야기를 해서 반가웠습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출판된 당시 문 후보의 자서전 <운명>에도 그 이야기가 실려서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지요."

그 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과 사법개혁 상안 단계에서도 두 사람 사이의 인연은 이어졌다.

한 변호사가 보기에 문재인 정부는 '아직까지는' 순항 중이다. "당선 직후부터 고위직 인사를 비롯해 국정에 관한 많은 결정과 정책을 쏟아내는 것을 보면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는 "여소야대 정국을 잘 극복해나가면 국민의 높은 지지율에 상응한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협치를 당부하면서, "여러 분야의 개혁이 성공적으로 이루지기를 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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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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