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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눈으로 꿀벌의 시간을 존중하다

[작은것이 아름답다] 동갑내기 부부의 양봉 이야기

꿀벌이 이렇게 삶 깊이 들어올 줄은 몰랐다. 꿀벌이라니, 곤충에 불과했던 꿀벌이 삶을 온통 바꿔 놓았다. 종일 꿀벌 생각하고 철마다 꿀벌 눈으로 세상을 보고 듣고 꿈꾸게 됐다. 꿀벌이 날갯짓해야 세상이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기도 김포에서 도시양봉하며 꿀벌의 시간을 살아가는 동갑내기 부부를 만났다.

꿀벌의 눈으로 새로운 세상을 보다

'언젠가'로 맞춰둔 귀농이었다. 농사도 몰랐고, 경험도 없었지만 너무 각박하지 않은 '자연에 가까운 삶'을 막연하게 꿈꿨다. 노신영 님은 전기설계 기술자로, 박새롬 님은 방송기자로 도시의 분주한 삶을 살았다. 2014년에 노신영 님이 다니던 회사가 부도를 맞으면서 이참에 1년 만이라도 농사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 크는 것 볼 겨를도 없이 여유 없는 삶이 힘겨웠어요. 어떤 일이든 자연과 함께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생소한 농사일은 당장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모험이기도 했어요."

박새롬 님은 남편이 농사일하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은 탓에 말렸지만, 결국 경험하는 시간 정도로 받아들였다. 노신영 님은 바로 김포도시농부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고양시도시농업 모임 '풍신난도시농부들'도 만나면서 우보농장에서도 농사 경험을 쌓게 됐다. 동료로부터 '도시양봉'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양봉을 새로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벌통을 위탁하고 교육도 하는 꿀벌 스승을 소개받았다. 벌통 하나를 받아 꿀벌 공부를 시작했다.

"신기하고 재미있더라고요. 벌통 안에 벌어지는 생명 가득한 꿀벌의 일상이 놀라웠어요. 새로운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는 경험이었어요."

도시농업하면서 양봉에 관심을 두게 된 다섯 명이 의기투합해 '우리벌 공동체'를 만들었다. 우보농장에 벌통 10개를 놓고 함께 관리하면서 공부도 이어갔다. 하지만 늦여름에 말벌이 벌통을 공격해 10통이 다 망가진 뒤로 조금 더 촘촘하게 꿀벌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보농장과 함께 그해 11월에 '도시양봉학교'를 열었다. 다양한 방식으로 양봉하는 분들을 강사로 초청해 강의를 들었다. 이듬해 7월까지 20여 명이 벌통 40개를 관리하며 양봉을 공부했다. 나라 안팎 양봉 관련 책들도 뒤적이고, 인터넷 공간에서 저마다 다양한 양봉 경험을 나누는 모임에서도 도움을 받으면서 양봉을 본격 이어가기로 결심했다.

▲ 꿀벌의 눈으로 보면 삶과 세상이 다르게 보여요. 철마다 벌의 일상에 맞춰 살고 있어요. 꿀은 자연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며 자연 자체라는 것을 늘 잊지 않으려고 해요. ⓒ작은것이아름답다(김기돈)

2015년 2월 도시농부학교 동료 소개로 김포시 감정동에 1500평 밭을 임대로 얻어 벌통 20개를 놓고 양봉가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다행히 주변에 아카시 나무도 많고 밀원(蜜源)이 나쁘지 않았다. 나머지 밭에는 참깨나 해바라기 같은 밀원식물을 심고, 고구마도 심었다. 아내 박새롬 님도 10년 기자 일을 내려놓고 양봉과 농사에 힘을 보태기로 결심했다.

"남편에게 '돈 없는 건 참을 수 있는데, 명분 없는 건 못 참겠다. 농사를 짓던, 양봉을 하던 삶의 의미를 찾고 가치를 잃지 않는다면 함께 하겠다'고 했어요."

'히즈허니'라는 이름도 지었다. '착한 농부가 만드는 정직한 꿀'이란 가치도 앞세웠다.

"첫 마음을 잃지 않고 흔들림 없이 가야 한다는 우리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해요."

해마다 벌통이 늘었다. 3년째를 맞은 지금 300통 가까운 벌을 돌보고 있다. 벌들이 이끄는 대로 자연이 되어 정직한 꿀을 늘 처음인 듯 신기하게 선물로 받고 있다.

꿀벌의 시간을 존중하며 기다린다


"꿀은 꿀벌공동체가 모든 것을 다 건 노동의 결과잖아요. 작은 날갯짓으로 하루에 수백 번 오가며 찾아 모은 숨결의 결정체라고 생각해요. 꿀은 자연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며 자연 자체라는 것을 늘 잊지 않으려고 해요."

노신영 님은 꿀벌 스승으로부터 '생꿀'을 배웠다. '욕심부리지 말고 벌이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겉으로 보기에 꿀은 다 비슷하고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생산 과정에 따라 생꿀, 농축꿀, 사양꿀로 구분한다. 대부분 '농축꿀'을 생산한다. 이동양봉을 하면서 짧은 시기에 많은 양의 꿀을 따기 위해 대부분 벌통 안에서 숙성되지 않은 상태로 바로 꿀을 딴다. 수분함량이 높아 묽기 때문에 농축기에서 열처리 단계를 거치는 것이다. '사양꿀'은 벌통에 호스를 깔아 설탕물을 계속 먹여 만든 꿀이다. 말 그대로 사육하는 것이다. 이틀에 한 번씩 벌통에서 설탕 꿀을 빼내 열처리를 통해 농축하면 보통 3~7일 안에 내다 팔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사양꿀 생산하는 농가는 전체 10퍼센트 정도인데, 생산 비율은 30퍼센트 가까워요. 대규모로 해야 이익이 남으니까요. 대부분 제빵, 제과업체로 들어가죠. 사양꿀은 꿀 범주에서 빼야 한다는 의견도 있어요."

노신영 님도 처음에는 꿀을 농축하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그런데 농축꿀 생산자들도 자신이 먹을 것은 자연 숙성된 생꿀을 선택하는 것을 보고, 솔직하지 못한 태도라고 생각했다. 꿀벌이 만들어 준대로 생산하는 생꿀 쪽으로 방향을 정한 이유이다. 생꿀은 꿀벌이 숙성한 그대로 깊은 맛과 향이 살아있다. 농축꿀은 깊은 맛이 덜하다. 열처리 농축과정에서 꿀마다 지니고 있는 미세한 향기가 날아가는 탓이다.

"생꿀은 벌들이 먹고 뱉는 과정을 반복하고 날갯짓으로 수분을 날려 숙성시킨 꿀이에요. 생꿀은 수분함량이 낮으니, 채밀할 때 꿀이 잘 빠지지 않고 일손도 많이 들어가요."

농축꿀은 많게는 여섯 번까지도 꿀을 딴다. 아카시 철에는 사흘에 한 번씩 꿀을 따는 탓에 벌들도 스트레스 많이 받기도 하고, 노동량이 더 많아져 벌 수명도 짧아진다. 처음에 왕성했던 벌들이 급격하게 줄어 끝 무렵에는 벌통이 텅텅 빌 정도다. 생꿀은 한 번밖에 채밀하지 못한다. 하지만 꿀벌 소모도 적고 수명이 길다. 시장 논리를 따르지 않고 꿀벌의 시간을 존중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꿀 성분이 다 같고 거기서 거기라고 말하는데 사실 같을 수가 없잖아요. 소비자들도 자신이 먹는 꿀이 어떤 꿀인지, 어떻게 생산되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삼국사기>에도 벌을 쳤던 기록이 있다. 고구려 주몽시대부터 동양종벌을 중국에서 들여와 백제 때 일본까지 전파됐던 기록도 있다. 고종 때 서양종 꿀벌이 처음 들어왔다고 한다.

"예전에는 인공 농축 방식이 없었고, 모두 자연 숙성한 생꿀이었어요. 생꿀이 전통방식인 겁니다. 대부분 어르신들도 생꿀을 드신 뒤, '어렸을 때 먹던 맛'이란 말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미세한 향기와 맛을 기억하는 거죠."

한번은 도시양봉학교 때 벚꽃꿀, 아카시꿀, 밤꿀, 야생화꿀, 사양꿀을 이름을 가려놓고 사람들이 시식을 해보게 했다. 놀랍게도 가장 맛있는 꿀로 사양꿀이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다들 깜짝 놀랐다.

"의외였어요. 모르고 먹으면 미세한 차이를 구분하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시중에 판매되는 꿀에 대한 신뢰가 많이 떨어졌다고 생각해요. 꿀에 대해 잘 믿지 못하는 분위기가 많아요. 안타깝죠. 히즈허니가 '착한 농부'의 '정직한 꿀'을 포기하지 않고 자연이 내준 맛을 지키려는 이유입니다."

ⓒ작은것이아름답다(김기돈)

꿀벌의 때에 맞춰 살아간다

"꿀을 따는 시기가 이른 봄에서 늦여름 사이거든요. 벌도 저도 가장 바쁜 시기에요. 이월 중순이면 벌을 깨우고 산란 시작하는데 저도 그때 시작이고, 12월 말이면 월동에 들어가서 벌의 한해살이가 끝나야 저도 비로소 방학입니다."

노신영 님은 이동양봉 방식이 아니라 몇 군데 거점을 정해 대여섯 가지 꿀을 딴다. 꿀 나오는 순서는 4월 말에 벚꽃이 진 뒤 벚꽃꿀로 시작한다. 그 뒤로 아카시 꽃이 많은 예천에 내려가서 5월 중순까지 있다가 김포로 돌아오면 5월 말까지 피어 있는 아카시 꽃에서 꿀벌이 마저 꿀을 모으게 한 뒤 아카시 꿀을 딴다. 밤꽃이 피기 전까지 야생화 꿀을 따고, 6월 말까지 밤꿀을 딴다. 6월 말에는 피나무 군락이 있는 인제로 이동해서 피나무꿀을 딴다. 아카시꿀 보다는 부드러우면서 조금 덜 달고 요리하기에 좋은 꿀이라는 평이 있다.

처음에 피나무꿀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연고도 없는 곳에 가서 벌통을 놓았다가 지역 양봉하는 분들이 야단이었다. 하는 수 없이 이동을 했는데 그곳도 이미 많은 벌통이 놓인 곳이라 인제로 다시 옮겼는데도 자리를 못 잡았다. 네 번 이동 끝에 아는 분 시골집 마당에 겨우 벌통을 놓았다. 해마다 같은 곳에 때맞춰 내려간다. 예천도 손꼽히는 아카시 군락지다. 예천 아카시꿀이 특별히 맛있는 이유는 아카시아 필 때 찔레, 때죽, 복분자가 같이 펴 조금씩 섞이기 때문이다.

"꿀이 섞여도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이름을 지어요. 맛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너무 많이 섞이면 야생화꿀로 부르고, 절반 정도 섞이면 두 이름을 같이 써요. 첫해는 복분자가 많이 섞여 '아카시- 복분자꿀'이라고 지었어요."

농축꿀에서 아카시꿀은 무조건 맑아야 한다. 납품할 때 색별로 등급을 매기는 탓이다. 그런 기준으로 하면 히즈허니 생꿀은 질 낮은 꿀 취급 받는다.

"누구를 위한 기준인가 싶어요. 사실 섞일수록 영양소도 많아지고 맛도 풍부해지거든요. 겉에 보이는 것에 치중해 아카시꿀은 무조건 맑은 것이라는 편견을 심어준 거죠."

올해는 60통 정도 이동했는데, 앞으로 300통을 잘 관리하고 세력을 넓혀 내년에는 90통 정도 이동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벌통을 더 늘려서 전통방식으로도 규모 있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동시개화 현상이 잦아 이동이 불가능한 상황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꽃은 온도에 민감하다. 밤 기온도 14도, 낮 기온 24~26도를 유지해야 꽃에서 꿀이 많이 나오는데, 낮 온도가 30도를 넘으면 꿀샘이 말라버린다. 비가 너무 많이 와도 꿀벌이 일을 못 하고, 꿀 수분함량이 높아져 꿀 생산량이 줄어든다.

"양봉을 하면서 날씨에 민감해졌어요. 날마다 온도, 비, 바람까지 확인해요. 바람이 너무 세면 꿀벌이 저항을 많이 받아 날 때 힘들어하거든요. 철마다 때마다 벌이 살아가는 흐름에 맞춰 살고 있어요."

벌들이 이른 봄엔 해돋이가 늦어 늦게 활동 시작하고, 여름엔 새벽 5시부터 움직인다. 벌의 활동에 맞춰 해 뜨면 일어나 일하고, 해가 지면 자는 생활이 이제 몸에 뱄다.

"벌과 함께 하는 생활방식이 몸을 건강하고 즐겁게 해요. 어딜 가든지 꿀이 있는 식물은 얼마나 있는지, 어떤 나무가 있는지 꿀벌의 시선으로 살피게 되더라고요."

아이도 곁에서 같이 지내니까 개나리를 보면 '개나리는 꿀이 별로 없지!' 그러기도 하고 어딜 가든 어떤 꽃이 피는지 함께 살핀다.

"꿀벌의 눈으로 보면 삶과 세상이 다르게 보여요. 벌 치는 게 직업이지만 벌을 보호하고 벌과 함께 생태계를 지킨다는 마음을 늘 갖고 있어요. 벌이 위협을 받으면 자연 생태도 어려움에 놓이는 것이기에 늘 자연에 대한 생각을 더 하는 거죠.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이 지구에서 모두가 함께 사는 법을 몸으로 익히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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