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전국 8곳에서 치러진 재보선에서 민주당은 3곳만을 이겨 참패했다. 8곳 중 원래 5곳이 민주당 의석이었다는 점을 깔고 보면 더 처참한 패배다. '왕의 남자'라 불리는 이재오 후보, 선거에 나오기 직전까지 청와대 경제수석, 정책실장을 지냈던 윤진식 후보,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두 사람이 모두 당선됐다는 점에서 더욱 비참하다. 수도권 2곳에서 모두 패해 지난 지방선거 결과 어느 정도 희망의 싹이 보였던 '수도권 민심 잡기'에도 실패했다. 텃밭이었던 광주에서도 가까스로 이겨 체면을 구길 대로 구겼다. 원래 보수성향이 강한 강원도에서 3곳 중 2곳을 건져 '이광재 효과'를 확인했다는 게 유일한 위안거리다.
민주당이 6.2 지방선거에서 대승이라는 성적표를 받은 지 불과 두달만이다. 한나라당은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하고 2008년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한 뒤 2년 2개월 만에 지방선거 참패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그때도 빠른 민심의 변화 속도에 정치권은 놀랐었다. 두달 만에 울고 웃는 주체가 완전히 뒤바뀐 6.2 지방선거와 7.28 재보선 결과를 관통하는 것은 민심의 변화 속도를 여전히 따라잡지 못하는 정치권의 구태의연함이다.
정세균과 장상의 '사심'이 만나…
▲ 이번 재보선에서 민주당은 공천 실패가 가장 큰 패인으로 꼽힌다. ⓒ뉴시스 |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지방선거에서 드러났던 '반MB' 정서를 의식해 철저히 낮은 포복을 했다. '지역일꾼론'을 내세웠다. '조용한 선거'를 내걸었지만 ARS전화를 통한 지지호소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표를 끌어 모았다. 이번에 지면 정치 생명이 끝났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만큼 목숨을 걸었다.
반면 민주당은 안이했다. 이 후보보다 여섯 살이나 많은 71세의 고령 장상 후보를 내세웠다. 이재오의 대항마가 왜 장상이 돼야 하는지 민주당 내 누구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김대중 정부 말기 국무총리 후보로 지목받았다가 위장전입 의혹 등으로 낙마했던 그에 대해 금민 사회당 후보 쪽에선 '부패 후보'라고 맹비난하기까지 했다. 2006년 민주당에 입당하고 정치인생을 시작한 장상 후보에게 금배지는 총리서리로 그쳤던 것에 대한 개인적 명예회복 수단이었다.
장상 후보는 하지만 2008년 총선에서 당선권에서 먼 비례대표 순위를 받았다. 그가 정세균 대표 체제가 출범하면서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당 지도부에 합류하면서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촛불집회 등 각종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도 최후의 명예회복을 꿈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 후보는 지난 해 10월 재보선에서 수원 장안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손학규 전 대표의 측근인 이찬열 의원에게 밀렸고, 정 대표 입장에선 장 후보에게 2번이나 빚을 지게 된 셈이다.
은평을에서 생뚱맞은 장상 카드가 등장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구 민주당계의 일정한 지분을 갖고 있었던 장상 후보에 대한 '빚갚기'였다. 9월 초로 예상되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 재선을 노리고 있는 정세균 대표가 구 민주계 표를 다분히 의식한 결정이었다.
물론 정 대표도 장상 후보의 경쟁력을 우려해 신경민 문화방송 앵커 영입을 추진했으나 끝내 과감히 장 후보를 버리지 못했다. 거기에는 재보선 판세가 민주당에 전반적으로 유리한 만큼 은평을에서 지더라도 다른 지역에서 이기면 큰 타격은 아닐 것이라는 계산이 깔렸을 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니 이재오 후보를 국회에 재입성시켜 여권 내부의 자중지란을 부추기는 게 민주당에 더 유리하기 때문에 일부러 약한 후보를 내세웠다는 '음모론'까지 제기됐었다.
이런 안이한 생각은 인천 계양 공천에도 이어졌다. 정세균 대표와 송영길 인천시장 사이의 신경전으로 김희갑 후보가 '어부지리 공천'을 받았다. 그리곤 '송영길 안방'으로 여겨졌던 인천 계양에서도 검사 출신 한나라당 후보에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고, 수도권 2곳 모두 패했다.
민주당, 스스로 '반MB 연대' 상품성 저하시켜
신경민 앵커 영입 실패 이후 그래도 장상 후보를 민 것은 막판 후보단일화 효과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한명숙 후보가 석패한 뒤 독자완주한 노회찬 진보신당 후보에게 쏟아졌던 비난은 이번 재보선에서 야권에 '단일화 안 하면 죽는다'는 무서운 압박으로 작용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이 일찌감치 "지방선거와 재보선은 다르다"고 선을 긋고 나서는 등 '배짱'을 튕겼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등 다른 야당들 입장에선 민주당이 장상이라는 약체 후보를 내세워 '몽니'를 부려도 저항하기 힘들었다. 막판 단일화 과정에서 민노당과 참여당은 사실상 민주당의 요구를 전적으로 받아들인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단일화에 합의할 수밖에 없었고, 장상 후보가 '스케이트 날 하나'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천호선 참여당 후보를 누르고 단일화 후보가 됐다.
문제는 아무리 야권 단일화 후보가 됐어도 장상 후보가 '반MB연대'의 상징성을 전혀 부각시킬 수 없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노무현 정권에서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던 천호선 후보가 그 상징 조작 가능성이 높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MB연대'가 무조건 민주당 몰아주기로 귀결되면서 지난 지방선거 최고의 히트상품이었던 '야권연대'는 빛을 잃었다. 어차피 '반MB연대'의 최대 수혜자가 될 수밖에 없는 민주당 스스로가 상품성을 갉아 먹은 셈이 됐다. 야권연대가 실패한 이유에 대해 "선거에서 일차적인 노력은 혼자 힘으로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돼야 한다"는 민주당 한 중진의원의 조언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민주당이 과연 자신이 낼 수 있는 최선의 후보를 내고 보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다른 야당과 연대를 추진했던 것인지, 아니면 야권 단일후보라는 구도만 짜여지면 승산이 있다는 얄팍한 계산으로 머리를 굴렸던 게 아닌지 되짚어볼 일이다.
8월 대혼전으로 접어든 민주당…몸값 오른 민노당
당 대표가 된 뒤 모든 선거에서 이겼던 정세균 대표는 '다 차려놓은 밥상'으로 여겨졌던 이번 재보선에서 만회하기 힘든 패배로 궁지에 몰렸다. 정 대표는 지난 지방선거까지 승리를 기반으로 8월말 내지는 9월초로 예상되는 전당대회에서 다시 한번 당권에 도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재보선 책임론으로 앞길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6월 지방선거 패배를 예상하고 정 대표에게 칼을 갈던 비주류는 당장 '정세균 흔들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선거 패배 원인이 일차적으로 공천 문제로 모아지는 만큼 정 대표의 책임론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당내 역학 구도로만 보자면 재보선 참패의 최대 수혜자는 당권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정동영 의원과 손학규 전 대표가 됐다. 이번 재보선 결과로 두 사람 모두 당 대표 선거에 나서 '정세균-정동영-손학규' 빅3의 대결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민주당 안팎의 전망이다. 민주당에선 8월 향후 노선과 리더십을 놓고 대혼전이 벌어질 것이 예고된 셈이다. 누가 당 대표가 되든 2012년 총선과 대선으로까지 가는 길이 결코 녹록지 않다. 이번 재보선은 '반MB연대'라는 강력한 카드를 민주당이 자동적으로 가져가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민심이 재확인시켜줬다. 광주 남구에서 민주당의 패권의식과 구태를 집요하고 물고 늘어진 민주노동당은 44%의 지지를 얻어 민주당 견제세력으로 지위를 굳혔다. 지방선거를 통해 급부상한 민노당의 몸값은 더 올랐다.
"아니 표정들이 왜 그래요? 선거 결과 예상 못 했던 사람들처럼. 이렇게 될 줄 예상들 다들 했잖아요. 예상 못했으면 시민이 아니잖아요. 당 지도부지."
한 누리꾼이 트위터에 올린 일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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