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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 선생 서거 70주기를 맞으며

[김민웅의 인문정신] 8.15 특사,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논리

여운형이 1945년 8월에 한 일

7월 19일은 1947년 이날 몽양 여운형 선생이 혜화동 로터리에서 암살당한 지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의 나이 62세였다. 건국준비위원회를 기반으로 조선인민공화국 수립을 주도한 좌익 지도자라는 틀 속에서 이름조차 거론하기 힘들었던 때와 비교하면, 오늘날 몽양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큰 진전이 생겼다. 이제 그의 민족사적 기여는 공식적 위상으로 확정되었다. 따라서 그의 족적을 주목하면서 오늘의 우리 현실을 돌아보는 것은 70주기의 의미를 명확히 살려내는 일이 될 것이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여운형은 당시 총독부 정무총감 엔도 류사쿠(遠藤柳作)의 요청으로 조선정세 관리의 책임을 맡게 된다. 그에 대한 조선인들의 신망이 높았던 것을 증명해주는 사건이었다. 일본인들의 안전한 철수를 보장하는 조건으로 여운형이 내세운 조건의 1순위는 "정치범 즉시 석방"이었다. 해방된 조국에서,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가 부당하게 옥살이를 하는 이들을 풀어내는 것은 마땅한 과제였을 뿐만 아니라 해방정국의 주체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기도 했다.

이와 함께 그는 "자주적인 치안유지와 건국을 위한 정치운동에 간섭하지 말 것"을 총독부에 요구했다. 식민지 체제의 청산과 새로운 나라 만들기의 주체적 역량이 발휘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려 한 것이었다. 그는 이런 작업이 목적하는 바는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다. 진보적 민주주의를 기치로 내세웠다고 평가되는 여운형의 정치철학은 이후 분단을 넘어서는 통일정부 수립에까지 이어진다.

촛불시민혁명의 요구와 정치범 석방, 사면 복권

좌우의 이념대립과 남북 분단체제의 현실에서 여운형이 마주하고자 했던 과제는 민초(民草)들이 주인이 되어 민족이 서로 갈라지지 않고 힘을 모으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으며, 그 원칙은 민주주의였다. 그의 서거 70년이 되는 오늘날, 그의 이러한 꿈과 비전은 촛불시민혁명과 그대로 일치한다. 그런 까닭에 문재인 정부는 지난 70년 동안 이 나라를 쥐락펴락 해왔던 세력과 그 기반을 하나하나 해체하고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틀과 가치 위에 서 있는 국가를 세워야 할 역사적 책무를 받았다.

그러나 상황은 만만치 않다. 박근혜는 탄핵으로 몰락했지만, 그의 세력권은 아직도 한국사회의 강고한 기득권 체제를 구성하고 있으며 촛불시민혁명의 관철을 끊임없이 교란, 훼손하고 있다. 정치권 내부에서는 협치를 명분으로 내세워 문재인 정부의 행동반경을 좁히려 들고 있으며, 촛불시민혁명의 정신을 좌절시키는 시도를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는 중이다. 조선일보를 필두로 하는 수구언론세력은 문재인 정부의 성취를 왜곡하고 폄하하는데 여념이 없고, 근거 없는 비난여론을 일으켜내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가령, 7월 18일 조선일보 사설의 제목은 "또 대통령 '일방독주 통치', 개헌밖에 없다"로 탈 원전, 최저임금, 4대강 문제 등에 대해 일방적 행태를 보인다고 비난했다. 이미 시민적 합의가 결집된 사항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현실을 은폐한 채 개헌을 계기로 민주정부의 역량을 제약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셈이다. 여론 지지율 80퍼센트를 넘나드는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해 일방독주 통치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의 논리로도 해명이 되지 못할 터이다.

이 뿐만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 한반도 평화비전>에 대한 논란을 제기한 사설의 제목은 "양보하고 뺨 맞던 南北 대화 쳇바퀴 또 도는가"라고 정하고, "과연 지금이 우리가 먼저 저자세(低姿勢)라는 모양새까지 취하며 대화에 나서야 할 시점인지는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남북대화가 꽉 막힌 상황을 돌파하려는 정치적 의지를 저자세로 평가하면서 대결주의적 냉전정치의 복원을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시스템에 갇히지 말라

촛불시민혁명은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향하고 있으며, 지난 시기에 이러한 가치를 탄압의 대상으로 삼은 세력을 적폐로 규정했다. 이들을 정치적으로 청산하는 과정 없이는 우리가 갈망하는 민주주의 사회가 어렵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지난한 과정이 요구되고 음해와 왜곡, 그리고 반동적 여론전이 반복될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과감하고 돌파력 있는 선택과 추진력, 그리고 실행의 결말이 있어야 한다. 취임 초기의 높은 지지율과 기대는 그러한 궤도를 굳히는데 가장 좋은 조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8.15 광복절 특사는 없다"는 청와대 발 보도의 내용은 심각하게 재고되어야 할 사안이다.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 관계자가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한 달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특사(준비)의 주체는 법무부이고, 사면을 준비하려면 시스템 상 3개월 이상이 소요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특사는 현재 제도적으로 법무부 장관이 보고하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 권한으로 이뤄지니, 8월 특사라는 시한으로는 시스템 상 곤란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청와대 관계자가 누구인지 기사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아니다. 1945년 당시 상황과 동일한 조건과 내용은 아니나 여운형이 "정치범 즉시 석방"을 요구한 것은 기존의 시스템을 넘어서는 선택을 촉구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촛불시민혁명의 기본요구는 기존의 시스템에 문재인 정부가 갇히지 말라는 것이었다. 적폐로 작동한 기존의 시스템을 이유로 정치범 석방과 사면 복권을 담는 8.15 특사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논리는 스스로의 존재원칙을 저버리는 결과에 직면하게 된다.

특사 기대 명단은 준비되어 있다

특사 대상을 정하는 일에 공정성을 잃지 않기 위한 시스템 작동이 필요하다면, 언제까지는 하겠다는 의지표명이 필요하다. 오는 10월 추석 특사라든가 또는 그런 특정한 날에 구애받지 않고 특사 일정을 구상하고 기획하면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사실 역사상 모든 혁명정부의 첫 작업은 정치범 석방이었다는 점에서, 촛불시민혁명의 열매인 문재인 정부가 시스템 상 물리적 불가능성을 운위하는 것은 이 과제가 우선순위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는 토로가 된다. 만일 그렇다면 이는 되돌아봐야 할 일이 아닐까?

정계, 노동계, 교사운동 등의 영역에서 지난 적폐정권에 의해 부당한 탄압과 옥살이 그리고 미복권 상황에 놓인 이들이 적지 않다. 동일한 맥락에서 벌금형까지 받은 일반시민들도 하나 둘이 아니다. 각 영역에서는 이미 특사 기대 명단도 준비한 상태이다. 이걸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우리에게 과연 없는 것인가? 아니면 의지의 문제인가?

시스템의 정비도 국정을 책임진 권력의 결단이 시동을 건다. 여운형 선생 서거 70주년을 맞이해 그가 제일 먼저 한 작업의 의미가 문재인 정부의 앞날을 위해 무게 있게 되새겨지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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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미국 진보사학의 메카인 유니온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동화독법>, <잡설>, <보이지 않는 식민지> 등 다수의 책을 쓰고 번역 했다. 프레시안 창간 때부터 국제·사회 이슈에 대한 연재를 꾸준히 진행해 온 프레시안 대표 필자 중 하나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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