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가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에 속도를 내면서 수요 예측치를 공개하였다. 2030년의 최대전력을 101.9GW로 예측하였는데, 7차 예측치 113.2GW에 비해서 거의 10% 가량 낮은 것이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충격적 결과"라고 평가할 정도다. 2년마다 수립되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수요 예측치가 갑자기 10% 가까이 떨어진 탓이다. 그 함의도 만만치 않다. 6차와 7차의 높은 전력수요 예측치를 근거로 석탄발전 12기, LNG 6기(이상 6차 전력계획), 원자력 2기(7차 전력계획)의 신규 건설계획이 반영되었다. 그런데 7차와 8차 수요 예측치의 차이인 11.3GW는 원전 8기(1.5GW 기준) 분량에 해당하기 때문에, 8차 전력계획에서 신규 발전소는 고사하고 기존의 신규 건설 계획도 취소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이는 수요예측 전문가들의 충격과는 별개로, 전력산업계에게도 엄청난 충격이 될 것은 분명하다.
일부 언론은 이번 수요예측를 두고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꿰맞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동아일보>, 2017년 7월 14일자). 전력수요 전망 작업에 참여한 한 교수는 "학자적 양심을 걸고 이번 발표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력수요 예측에서 70%의 설명력을 가진다는 GDP의 전망치가 7차와 8차 예측에서 달라진 것이 결정적이었다. 7차 예측에서 사용한 GDP 전망치는 3.4%이었지만, 8차 예측에서는 2.5%로 낮아졌다. 주요 변수인 GDP 전망치가 낮아지니 전력수요 예측치가 낮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력수요 예측하는 측에서 GDP 전망치를 임의로 낮춘 것도 아니다. 관행대로 별도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제공한 전망치를 사용한 것이다. 한국 경제의 저성장 기조를 반영한 것이다.
<동아일보>는 이번 수요 전망이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산업구조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며, 고의적인 전력수요 과소 예측의 의혹을 거두지 않고 있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 최근 성장하는 산업들은 지금보다 더 많은 전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반도체, 철강, 중화학공업의 전기 수요가 수년 내에 크게 줄어들 가능성도 거의 없다. 경제성장이 둔화되더라도 전력 사용량이 예상보다 크게 줄어들지 않을 수 있(어서)다."(<동아일보>, 2017년 7월 14일).
그러나 정부는 예측치에 이미 전기자동차 보급(과 함께 누진제 완화) 효과가 원전 1기 분량에 해당하는 1GW 증가로 반영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것이 충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 따져볼 일이지만, <동아일보>가 기대하고 있는 것처럼 GDP의 하락 효과를 상쇄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또한 철강, 석유화학, 조선 등의 에너지다소비 산업들의 경기불황과 이에 따른 전력소비 증가율이 감소할 가능성에 대해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낙관만으로 일관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탈핵 탈석탄 에너지 전환 정책을 흠집 내려는 시도로 읽힌다.
사실 8차 전력수요 예측치가 낮아지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 2014년 전력수요 증가율이 국제적인 경기 후퇴가 일어난 2009년 때의 2.4%보다 낮은 0.6%를 보여주면서, 한국의 전력수요가 정체기에 들어갔다는 분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또한 경제성장이 되더라도 전력수요가 늘지 않는 탈동조(de-coupling)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5년에 수립된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정부는 이런 변화를 반영하지 않고 연간 2.2%(최대수요)의 증가율을 보여주는 예측치를 제시한 것이다. 당연히 과잉 예측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는 정부 산하 기관에 의해서도 제기되는 평가다. 한국전기연구원 전력정책연구센터는 자신들이 발간하는 전력정책이슈리포트에서 "최근 추이를 볼 때 연평균 2%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는 것은 과다예측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전기신문>, 2017년 7월 13일)고 평가했다. 때문에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억지로 원전 2기를 추가 건설 계획을 반영하여 수요예측이 부풀려졌다는 의혹이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7차 전력수급계획 당시에 이루어졌던 환경부의 독자적인 수요 예측에서도 산업부의 과잉 예측을 파악할 수 있었다. 환경부는 <환경․기후변화를 고려한 에너지정책 대안 연구>에서 2030년의 전력수요치(목표 최대수요)를 제시하고 있는데 최대 98.2GW에서 최소 92.6GW에 머물러 있었다. 산업부 예측과 15GW에 해당하는 차이가 나타났다. 당시 환경부의 이 연구는 언론에 의해서 잠시 보도되었지만 결국 무시되었다. 산업부의 과잉 예측을 바로잡을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2016년에 들어와서도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전력수요 예측치를 제시하였는데, 이때도 7차 전력수급계획이 과잉 예측되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예측과 비교해보면 7차의 2029년 전력소비량 예측치는 5.3% 높이며 최대수요도 2GW가 많았다. 수요예측은 다양한 가정을 포함하기 있기 때문에, 여러 기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예측하고 그 사이에서 토론을 할 필요가 있다. 경향적으로 전력당국은 수요예측을 과장하기 때문에, 그런 토론은 수요 예측치의 거품을 빼는데 도움이 된다.
실제 나타난 전력 수요치와 예측치를 비교해보면 과잉 예측되었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점은 전력산업 업계의 전문지인 <전기신문>도 지적하고 있을 만큼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2013년 수립한 6차 계획에서의 예측치와 2014년 수요 실적치 차이가 전력사용량의 경우 -4.3%, 최대부하의 경우 –1.0%를 보였다. 2015년에도 전력사용량의 예측치와 실적치가 6차 계획은 -6.3%, 7차 계획은 -1.2%의 차이를 보였다. 최대부하에 있어서도 6차 계획, 7차 계획 모두 -4.5%, -4.7%의 매우 큰 차이를 나타냈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전기신문>, 2017. 7. 13).
이에 따라서 가뜩이나―논란 많은―설비예비율 22%를 훨씬 상회하는 과잉 발전설비로 인해서 전기요금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는 더욱 커지게 되었다. 6, 7차 계획대로 석탄발전소와 핵발전소를 건설한다면, 22%의 설비예비율보다 한참이나 많은 과잉 설비를 짊어지게 될 것이다.
이번 수요 예측치를 두고서 한 전문가는 "과거 계획과 이번 계획 중 하나는 틀렸다는 논란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동아일보>, 2017년 7월 14일)고 논평하였다. 맞는 지적이다. 그리고 분명히 말하지만, 과거 전력수급계획의 수요 예측은 잘못된 것이다. 과잉 예측이었다. 이번 수요 예측의 타당성에 "학자적 양심"을 걸었다는 교수는 과거 수요 예측에도 참여하였다. 그 때의 "학자적 양심"은 어찌된 것인지 궁금하다. 물론 그에게만 과거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 것이다. 향후 밝혀져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석탄발전소와 핵발전소 신규 건설 계획을 반영하기 위해서, 과거 정부가 체계적으로 수요를 과다 예측하도록 직간접적인 압력을 가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 때문에 삼척, 영덕, 당진 등 많은 지역에서 몸살을 앓았다. 이는 전문가들과 관료들에 의한 '사회적 범죄'다. 지금까지의 2년마다 수립되고 있는 전력수급기본계획과 그것을 수립했던 위원회들의 기본적인 목적은 전력설비를 계속 확장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때문에 "학자적 양심"이야 어쨌든 전력설비를 확대해온 시스템의 일부로 기능해온 것이다. 자기반성이 필요한 일이다.
따지고 보면 이번 8차 예측도 연평균 1% 가까이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온실가스 감축이나 에너지 자원의 한계와 같은 문제는 여전히 부차적인 문제다. 전력수요 정체나 감소의 가능성은 검토조차 되지 않았다. 선진산업국에서는 전력소비 감소가 나타나고 있다. 어쩌면, 8차 예측치가 가져온 충격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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